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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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극한의 슬픔이 찾아온다면, 참을 수 없는 감정의 고통이 찾아온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여기, 누군가가 길을 떠난다. 눈먼 강아지 '와조'와 언제 돌아갈지도 모르는 길을 떠난다. 모텔을 전전한다. 그리고,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번호로 기억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길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전한다. 연필로 꾹꾹 감정을 눌러담고, 일기를 쓰듯 말한다. 고시원에서 생활 중이던 367번 어머니의 불륜을 알게 된 239번 여고생, 자살을 하려 했던 이를 구하고 자신이 목매 죽으려 했던 운동화끈을 바꿔 맸던 32번, 문득 생각이 날 때마다 편지를 보낸다. 비상한 자신의 기억력이 주소를 기억하고 사람을 기억할 때는 아주 유용하다. 그는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린다. 여행을 떠나 왔으니, 그의 답장을 기다려주는 이는 따로 있다. 그의 친구. 아침마다 그를 깨워 우편물이 왔는지 확인하지만, 아무도 편지하지 않았다. 그는 한 장의 답장이라도 도착한다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아무도 편지하지 않아 3년 동안 여행을 이어가고 있다.

말더듬이였던 그는, 타인의 앞에 나서서 매끄럽게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 속에서 훈련한 그만의 치료 방법. 말을 심하게 더듬어 모든 게 자신 없었던 그는, 여행을 떠나기 전 엄마의 강요에 못 이겨 우편배달부를 하게 된다. 우편배달부는 특별히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에, 엄마와 가족들이 그의 직업을 결정했다. 형은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직업이니 멋지다고 추천했지만, 소식이란 나쁜 것, 좋은 것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만을 전해주진 않았다. 아버지는 발명가였다. 아버지는 식구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마다 발명을 했고, 발명품을 소중히 여겼다. 장난감 가게를 운영했는데, 아버지는 형이나 여동생보다 그가 아버지의 장난감 가게를 이어 운영해주길 바랐다. 여동생은 공부도 잘했고 똘똘한 아이였지만, 외모로 판단하는 사회에 질려 얼굴을 고쳐나갔다. 결국,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똑똑해도 사람들은 얼굴만 예쁜 사람만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엄마, 아빠, 형, 동생에게도 편지를 쓴다.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담아 멀리멀리 보낸다. 그의 집으로.

모텔을 전전하며, 뚜벅이 여행을 하던 그에게 나타난 751번. 그녀는 자신이 쓴 소설을 팔러 다니는 특이한 사람이다. 지갑을 소매치기당한 그를 도와주게 되어 여행을 함께 하게 되고 그는 그녀의 책을 파는 일을 돕기도 한다. 티격태격 싸우고, 한 방에서 같이 자기도 한다. 아플 때 옆에 있어주는 것은 그녀였고, 와조를 돌봐주던 이도 그녀였다. 어느 날부터 여행 동지가 되어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하고 서로의 삶과 길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그의 여행 습관을 그녀 때문에 바꿔야 하기도 했고, 길거리에서 낭독도 하고 지하철에서 그녀의 책을 팔아주기도 했다. 누군가 함께 하기만 하면 잡음을 냈던 그녀는 점점 그에게 익숙해지고, 그를 편하게 느낀다. 그녀가 옆에 있는 게 싫지 않다. 

어느 날, 그와 그녀는 고시원에서 하룻밤을 자게 되고, 그날 밤 고시원에 불이 나게 된다. 와조가 그가 자살하려 할 때 날뛰어 그를 구했던 것처럼, 그를 깨워 불구덩이에서 탈출시킨다. 뉴스에도 크게 보도될 정도로 큰불이었고, 많이 지쳐 있었던 와조는 힘겨워한다. 눈이 보이지 않던, 나이가 많았던 와조. 할아버지의 맹인견이었던 와조는 할아버지와 함께 사고를 당한 후에 눈이 멀게 되었다. 와조를 부탁하던 할아버지, 와조를 누군가에게 맡길 수 없어 먼 길 여행을 함께 했던 와조. 이제 와조가 아프다니 그는 돌아갈 결심을 한다. 발작을 일으키게 하는 집이지만, 집이기에 받아들여야 하기에 돌아간다. 

텅빈 집, 고요한 집, 아무도 없는 집에 도착한 그. 3년 전 일들이 떠오르고, 또 발작을 일으킨다. 친구가 와서 떠드는 통에 증상이 호전되기도 하지만, 혼자 남게 되면 어김없이 발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웃집 아줌마가 찾아 와 그가 돌아온 것을 확인한 후, 들고 온 꾸러미. 온통 편지뿐이다. 그가 그렇게 기다렸던 답장은 그렇게 쌓여 있었다. 눈물이 난다. 편지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말이다. 그가 보낸 소식들은 헛된 것이 아니었고, 그가 기억한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거짓 주소를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고, 답장이 오지 않자 또 보낸 사람도 있었다. 

그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떠났다. 여행 길목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주소를 묻고, 번호로 기억해 편지를 보냈다. 그들의 답장을 기다리면 길에서 보냈던 3년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 그는 오지 않는 편지 때문에, 많은 생각을 했다. 모두들 그에게 주소를 잘못 알려줬을지도 모른다는, 답장하고 싶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많은 상상 속에 아쉬워하고 힘들어했다. 하지만, 자신이 정한 규칙과 원칙을 지키며 여행내내 매일 밤 잠들기 전 기억 속에 가둔 사람들을 끄집어내어 편지를 썼다. 매일 실망하면서도 매일 편지를 썼다. 그에게는 어떤 의식이었고,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말을 더듬던 그가 말을 더듬지 않게 된 것도, 집에 돌아와 발작이 멈추게 된 것도 편지 속의 주인공들과 그 편지들 때문이었다. 그는 희망을 발견한다. 슬픔의 먼지를 털고, 세상 속으로 나가려고 준비한다. 그동안 주저했던 일들을 이제는 해야 할 시간이다. 와조도 떠났고, 소중한 사람이 그를 떠나갔지만, 이제 다시 시작할 힘이 난다. 그가 보냈던 편지들에 대한 답이 그에게 힘을 준다.

몸부림쳐도 되지 않는 일이 있다면,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잊혀지지 않는 고통이 있다면, 억지로 고통을 지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좋다. 그냥 훌쩍 떠나거나, 훌쩍 돌아오거나, 낯선이들을 만나 나를 소개해도 좋다. 그들의 인생 소식을 들으며, 내 고통과 상처를 잠시 잊을 수 있고, 그들의 인생 고통을 들으며 공감하며 치유할 수도 있다.
그가 받은 '편지'는 그가 삶을 다시 살아갈 '희망'이 되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순간, 모든 이들이 떠났다고 생각한 순간, 그에게는 모두가 생겼다. 길에서 만난 모두가 그의 인생의 모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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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아이레스
정은선 지음 / 예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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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다. 갑자기 떠난 사랑하는 여인을 찾기 위한 OK김, 막장 드라마 작가에 표절의 오명까지 뒤집어쓴 나작가,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사채를 쓰고 쫓겨 다녀야 했던 박벤처, 감 떨어진 포토그래퍼에 사랑하는 여인마저 잃게 된 원포토.
OJ김여사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OJ'에서 만나게 된 이들. 누군가를 찾는 이, 머리를 식히려고 떠나온 이, 누군가를 지우려고 떠나온 이 사연도 가지각색. 하지만, 그들은 OJ 여사의 참견 속에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마음껏 즐겨야 한다. 

삶이 피곤하거나, 스트레스가 극도로 달했을 때 우리는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린다면, 뭐든 괜찮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찾기 위해 떠나기도 한다. 도대체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맞는 곳인지 의문을 품은 채 살아가는 게 힘들어질 때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론가 떠난다.
우리가 여행지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 더 큰 세계가 있다는 깨달음, 문화, 음식, 낯선 세계 속에 타인, 그리운 일상. 떠나보면 알지 못하는 여유와 자유까지도 우리는 어딘가를 갔을 때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여인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자기 일을 내팽개치고 그녀를 찾아 미친 듯이 지구 반 바퀴를 돈 OK김. 그는 그녀를 찾는데 온 힘을 기울이지만, 겹겹이 쌓인 난관에 마음만 탄다.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 OJ여사는 대체 입을 열 줄 모르고, 엿듣기도 불사하며 그녀를 찾아 나선다. 9일간 그녀를 찾아 헤매며, 그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녀의 상처, 그녀가 떠나온 이유, 알고 싶지도 알려 하지도 않았던 것들. 그는 망설인다. 과연, 나는 그녀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찾으려 했던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일까? 망설이는 그의 등짝을 치며 그녀에게 달려가라는 OJ여사. 그는 그녀를 찾으러 부에노아이레스까지 달려왔다. 하지만, 그가 찾게 된 것은 그 이상이었다.

쓰고 싶었던 드라마는 종래 쓰지 못하고 막장 드라마를 만드는 작가가 된 노작가. 이번에 만든 드라마는 심지어 표절 시비까지 걸렸다. 인기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도 욕을 먹으며 살았기에, 사람이 두려웠고 사람이 불편했다. 모든 걸 내던지고 부에노아이레스로 왔건만 지갑을 잃고, 어떤 여자의 도움으로 게스트하우스OJ에 당도한다. 당장에라도 도망가고 싶었는데, OJ여사는 사람을 끈다. 그리고, 세상을 등지고 사라져버릴 것 같은 원포토를 만난다. 둘이 함께 아르헨티나를 돌며 노작가는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빈둥거리며 라면을 먹는 박벤처. OJ여사 아들 아리엘과 아르헨티나를 심드렁하게 즐긴다. 그는 가족을 등지고 아르헨티나로 떠나온 중년의 남자. 사업이 망하기도 했지만, 아내의 등쌀에 아이들 교육비로 수많은 돈을 미국으로 보내며, 고시원으로까지 쫓겨나게 됐다. 기러기 아빠로 살며, 아이들은 지원해야 했기에, 사채까지 쓰게 됐고 어느 날 펑하고 터져버렸다. 아르헨티나에서 아무도 모르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의 시름은 깊어 가지만, OJ여사는 그가 가족을 등지고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인을 다른 남자에게 떠나보내야 했던 원포토. 그녀를 만나고 삶의 힘을 얻었는데, 그녀를 잃고 삶의 힘을 잃는다. 잊기 위해, 버리기 위해 찾아온 아르헨티나. 죽을 것만 같다. 한 때는 자신에게 찍히기 위해 모델이 줄을 섰고, 사진을 배우겠다며 간도 쓸개도 뺀 아이들이 줄을 섰지만 이제는 감 떨어진 사진작가라는 오명에 B급도 되지 못한다. 사진 찍는 일도 두려워졌다. 그에게 남은 게 없다. 하지만, 그의 절망 뒤에는 또 다른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찾거나, 헤매이거나,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아르헨티나를 여행한다. 밤 문화에 미쳐있는 젊은이들이 가득찬 클럽을 구경하기도 하고, 열정적인 탱고쇼에 매료되기도 한다. 거대한 크기에 움직이는 꽃 조형물 플로라리스 헤네리카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기도 하고 부에노아이레스의 신흥 부촌 푸에르토 마데로에서 멋진 야경에 즐거워하기도 한다. 거대한 빙벽과 무엇이든 삼킬 것 같은 폭포. 그들이 지나치고, 머무르는 그곳들은 변화와 용기를 주는 이상한 힘이 있다. 세상의 끝 우체국에 섰을 때 끝보다 시작이 보이던 여행길.

그들 모두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멍하니 헤매고 있을 때 아르헨티나와 OJ여사는 마법의 가루를 뿌려 그들이 힘을 내게 한다. OJ여사도 남편이 떠난 후, 그를 기다리며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아들을 키웠다. 그 또한 상처에 가득하고 힘든 삶을 살았을 테지만, 아르헨티나는,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저마다 제자리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힘을 얻는다.

9일간의 여행, 그리고 선택, 누군가는 무엇을 버렸고 누군가는 어떤 것을 찾았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가기 전에는 괴로웠고, 고통스러웠고, 상처투성이였지만 다시 지구 반바퀴를 돌아 삶의 터전으로 돌아왔을 때는 모든 기억들이 조각조각 나뉘어 몸속으로 퍼져 기운을 준다.

<찾거나 혹은 버리거나 in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작가가 찍은 사진, 명소에 대한 설명이 섞인 자전적이며 픽션을 가미한 소설이다. 그녀가 떠난 여행에서 얻었던 것들에 인물을 만들어 새로운 생명력을 넣어 만든 이야기다. 인물에 대한, 아르헨티나에 대한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다. 현실처럼, 혹은 거짓처럼 아르헨티나를 짚어갈 수 있다. 흔해 빠진 여행 소개책보다는, 픽션을 가미한 여행 소설쯤 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 또한 만신창이가 되어 아르헨티나에 도착했지만, 돌아올 때는 새로운 힘을 얻었다.

'나는 아르헨티나에서 힘을 얻었다'라는 사실적인 이야기보다, 각각의 인물이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며, OJ여사의 말에 따라가며 힘을 얻는 모습이 더 설득력 있는 여행담을 만들어낸 것 같다.

여행 후에 반드시 남겨야 할 것.
담아온 추억들을 삶의 현장에 투영시키기!
찾아온 무언가가 현실에서 느껴질 때 우리는 이미 또 다른 여행지에 서 있다.
- 268p

작가는 아르헨티나에서 담아온 추억들을 그녀의 현장에 투영시켜, 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만신창이가 되었던 마음을 위로받고 돌아와, 이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여행을 떠나고 있는 작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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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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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 물이 위험수위를 넘는다. 사람들이 패싸움을 벌인다. 살자고, 다른 지역에 물이 차올라도 모른 척 모래가마니를 쌓는다. 물이 사람을 위협한다. 그 와중에 사회부 기자 문정수는 기사 거리를 찾아 배고픈 개마냥 침수 지역을 어슬렁거린다. 비릿한 물비린내가 그를 가득 채운다.

타이웨이 교수의 <시간 너머로>의 출간에 참여한 노목희, 고향 창야의 저수지 뚝방 붕괴사고를 보며 과거의 어떤 이를 회상한다. 노학연대 집행부였던 장철수, 그는 연마공의 추모집회에서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라는 추도사를 한다. 그리고, 그는 그 추도사와 걸맞게 비루하고 치사하게 경찰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자취를 감춘다.

초등학생은 개에 물려 죽는다. 방치당한 채, 자기집 개에 물려 죽는다. 철거 지역에 사는 아이였다. 강제철거 빈민지역에서 일어난 사고는 톱뉴스가 된다. 죽은 아이의 엄마는 나타나지 않고, 문정수는 죽은 아이의 엄마를 찾아 '해망'으로 간다. 그에게 또 다른 기억이 있는 해망. 그곳에는 아이의 죽음을 알고도 나서지 못한 여자 오금자가 있다.

인명구조특공조장 소방위 박옥출은 화재 현장에서 보석을 훔친다. 뒤늦게 보석이 사라졌다는 게 밝혀지지만 그는 입을 다문다. 브로커에게 장물을 팔아넘기고, 신장이 나쁘다는 핑계로 명예롭게 퇴직한다. 이 사실을 눈치 챈 문정수. 하지만, 박옥출은 그에게 함구할 것을 요구한다. 문정수는 알면서도 모른척한다. 박옥출은 해망으로 향한다. 어떤 사업을 벌이기 위해서.

잘, 더, 좀, 또, 꼭, 좋아, 싫어 같은 외마디 한국말을 좋아하는 후에는 해망의 바다에서 특별한 것을 건져낸다. 8년 동안 미군 폭격기와 전투기 들이 쏟아낸 포탄 껍데기와 탄두가 널려 있는 바다는 쇳덩어리를 품고 있다. 해망의 펄 속에서 쇳덩어리를 건져내는 후에. 그녀는 한국에서 무엇을 건지고 싶었던 것일까.

방조제에서 한 아이가 크레인에 깔려 죽는다. 환경이 오염되는 것을 무시하고 방조제 건설에 정신이 없었던 해망. 그 사이에서 17세 여학생이 깔려 죽는다. 죽은 아이의 아버지는 바다 곁에서 논과 밭을 일구며 사는 방천석. 딸의 죽음으로 여론이 시끄럽다. 시민단체가 공사 반대운동에 불을 당기고 한 아이의 죽음은 가족들이 슬퍼할 겨를도 없이 전략적으로 이용된다. 마을 사람의 바람대로 당분간 보상금을 받지 않도록 한다. 침묵하지만, 그는 행동할 수 있을 때를 기다린다.

해망을 밥 먹듯이 드나들게 된 문정수, 새벽에 찾아오는 그를 조용히 도닥이는 노목희, 후에와 쇳덩어리를 찾아 헤매는 노목희의 선배 장철수, 후에와 장철수와 한 지붕 아래에 살게 된 오금자, 오금자에게 집과 논, 밭을 빌려주고 보상금을 받아 떠난 방천석, 포탄과 탄두를 거둬드리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게 된 박옥출, 박옥출의 고철 사업 때문에 쇳덩어리 찾는 일을 못하게 되어 장기 밀매를 한 장철수, 그 장기를 받은 박옥출.

그들은 해망과 함께 시간과 사연으로 얽혀있다. 모든 인물은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상황과 마주치거나, 그러한 상황을 만드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그러한 상황에 상처받기도 한다. 서로가 얽히고 섥혀있지만, 서로를 알듯 말듯 잘 알지 못한다. 

소금을 만들어내는 펄처럼, 바람에 날린 소금을 먹어 힘을 쓰지 못하는 땅덩어리처럼 어딘지 모두가 힘들다 못해 비루하다. 시간 너머에 도달하지 못하고, 시간을 등에 업고 겨우겨우 살아간다. 하지만, 끝내 다투던 시간에 자신의 기운을 싣는다. 노목희는 북디자이너 과정을 배우러 스웨덴으로, 문정수는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오금자는 아들의 보상금을 받고 다시 살아보려, 장기매매를 했던 장철수는 그 돈으로 후에에게 약간의 자유를 선물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읽는 내내 팍팍하다. 우울한 바다 속을 헤엄친다고 할까? 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기에 꾹 참는다. 이 모든 것들. 우리는 잘 참아내고, 잘 이겨내고 건너가고 있다. 시간 너머로 달리고 있다. 우리는 종내 시간을 너머로 가기 위해 이렇게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럽게 살아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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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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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고백으로 시작된다.
"우유를 다 마셨으면 차례대로 자기 번호가 적힌 케이스에 종이팩을 갖다놓고 자리에 앉아요. 다들 마신 것 같군요. '종업식 날까지 우유야?' 라는 소리도 들리던데 우유 시간도 오늘로 끝입니다. 고생 많았어요. '내년에는 없나?' 없습니다. ....(후략).....' 으로 시작되며, 교사직을 그만둔다고 말하는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다. 섬뜩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사건은 이미 일어났다. 그리고 범인도 알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일이 전개된다는 것일까? 범인을 찾아가던 추리 방법은 이미 식상해진지 오래다. 작가들은 그 이상을 이야기하려 한다.

성직자, 순교자, 자애자, 구도자, 신봉자, 전도자.
성직자는 선생님의 독백, 순교자는 학생 B를 좋아했던 학급 반장, 자애자는 학생 B의 엄마, 구도자는 학생 B의 이야기, 신봉자는 학생 A의 이야기, 전도자는 다시 선생님.
각각의 이야기에 주체가 바뀐다. 그 주체를 기준으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삶의 과정 등 인물에 대한 이해를 이끈다. 하지만,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이해가 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사건이 있고, 또 다른 변수가 작용한다. 

선생님의 고백으로 모두가 정신적인 공황 상태를 겪는다. 의도한 고백으로 모두가 상처를 받는다. 사건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아이를 잃은 선생님의 복수는 심리전을 방불케 한다. 범인 학생 A와 B. 죽어버린 선생님의 딸, 사라져버린 선생님. 담임 선생님 아이를 죽게 한 사람이 같은 반에 있다는 걸 알게 된 학생들은 동요한다. 잔인하고 냉정한 성격의 A는 태연하게 학교를 나오고, B는 집에 틀어박혀 또 다른 증오를 키운다. 그들은 하나의 사건에 이리저리 얽혀있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한 학급의 아이들을 가장 큰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은 선생님이 고백 시작 전 아이들에게 먹였던 '우유'였다. 그 우유에는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고, 자신의 아이가 죽게 된 이야기와 범인들에 이야기를 하며, 마지막으로 범인들에게 먹인 우유에 '아주 특별한' 것이 들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고백으로 또 다른 사건들이 일어난다.

새로운 담임이 오게 되고, 명석하고 차갑고 잔인한 A는 여전히 우등생으로 제 자리를 지키며, 아무일 없다는 듯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B는 학교에서 자취를 감춘다. A는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학급 반장은 선생님과 함께 매주 B의 집에 방문하게 된다. A는 아이들에게 심한 따돌림을 받게 되고, 집단 따돌림에 관여하지 않았던 반장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받게 된다. 반장과 A는 친구가 된다.

B는 정신적으로 병약해져 간다. 진짜가 아닐지도 모르는 진실에 몰두해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집에 찾아오는 새로운 담임도 싫고, 반장도 부담스럽다. 엄마의 행동도 싫다. 엄마는 자신을 이해하는 척하지만, 언제나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다고 느낀다. 학교에서 B가 두드러지지 않고, 다른 학생들이 공개적으로 칭찬을 받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학교에 항의를 하는 건 B의 엄마다. 그 때문에 B는 고통스러웠다. 이번에 일어난 의도된 살인에 대해서도 진실을 알고 있지만, 덮고 넘어가려는 것은 엄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을 대하는 엄마가 B는 무겁다. B는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다, 결국 엄마를 죽게 한다.

B의 엄마의 죽음 뒤에는 감추어진 것이 있다. 그것은 B의 엄마 일기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B의 엄마의 죽음이 어떻게 일어나게 된 것인지, 그녀의 뒤틀린 자애가 낱낱이 드러난다.

명석하고 잔인한 A. 그는 엄마를 신봉한다. 엄마의 명석한 두뇌, 유명한 대학에 교수로 살 수도 있었던 엄마. 엄마는 그녀의 신세를 한탄하며 A를 매질했고, A에게 자신의 뇌를 물려받았으니 똑똑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를 신봉하고 살았던 A는 엄마에게 주목받고 싶어 잔인한 계획을 세운다. 엄마는 자신 곁을 떠났지만, 언제든 A가 필요할 때 나타나겠다고 했다. A는 엄마가 나타나게 하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결국 살인을 엄마와 만날 수 있는 무대로 삼는다.

스토리 사이사이 흔적들을 잘 뒤져야 한다. 어디서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선생님의 고백으로 작은 진동이 길고 넓게 퍼져 나간다. 한 아이가 계획했던 것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너무 큰 사건이 되어버리고, 자취를 감추고 떠났던 선생님은 아이들이 고통 받고 있는 내내 어떤 조종을 하고 있었다. 자식이 죽었다는 상실감, 깨끗하게 떠난 듯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복수는 계속 되고 있었다. A에게 불쑥 나타난 선생님은 다시 고백을 시작한다. 그 고백은 첫 번째 고백보다 더 잔인하다.

누구의 탓일까? 과연 선생님의 복수는 정당한 것일까? 부모의 맹목적인 관심과 사랑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부모의 방치와 학대는 또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고백>은 끝나고도 많은 의문을 남긴다. A의 잔인함, B의 소심함,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과 잔혹함, 학생에 대한 이해보다 자신의 의무를 중시하는 선생님, 무조건 자기 아이가 잘났으면 하는 부모의 사랑, 자식이 잘못해도 모든 걸 감싸주려 하는 부모의 사랑, 자신이 선택한 삶을 아이 탓으로 돌리는 부모, 선생님의 의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유기적으로 얽혀있고, 꼬여있으나 그 출발점은 찾을 수 없다. 이 살인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각 인물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지만, 하지만 과연? 이라는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모든 인물은 <고백>을 시작한다. 자신의 입장에 서서 고백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국 자신의 입장에만 서서 고백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도, 어른도, 고백을 하지만 자신의 입장이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자신의 입장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섬뜩한 고백들. <고백>이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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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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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슴 속에는 자기만의 '별의 바다'가 있다. 그 '별의 바다'를 찾기 위해서 일생을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찾았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별의 바다'가 아니었고, 못 찾았다고 생각했으나 '별의 바다' 속에 있었다.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계속되는 의문이고 싸움일지 모른다.

무의식에 갇힌 의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과부하가 걸리는 게 정신병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인간은 누구나 정신병이 있다. 그것이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식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 이들은 '정신병원'에 갇히지 않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고, 상처는 있다.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정신'을 피로하게 한다. 이길 수 없는 '정신'을 극복한다면, 세상 속에서 들어오는 일이 한결 수월해진다.  


"꿈을 꿔요. 창문은 통로죠. 희망은 아편이고요."
해석하면 이런 말이었다. 병원 창가에서 세상을 내다보며 퇴원을 꿈꾸고, 퇴원하는 날부터 퇴원을 꿈꿀 수 있는 병원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사람들이 병원 규칙에 열심히 순응하는 것은 퇴원 혹은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갈망의 궁극에는 삶의 복원이라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를 얻어 세상에 돌아가면 희망 대신 하나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것 말고는 세상 속에서 이룰 것이 없다는 진실. 그리하여 병원 창가에서 세상을 내다보며 꿈꾸던 희망이 세상 속 진실보다 달콤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기억의 땅으로 남을 뿐이다. 옛날, 옛날, 내가 한때 그쪽에 살았을 때 일인데...
- 291p 중에서
 
 
정유정의 다른 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에서도 상처받은 아이들의 탈출을 목격할 수 있다. 그들은 상처로부터 탈출을 원한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몸부림이 여행이라는 명목하에 탈출이 진행되는 것이다. 누군가로부터의 탈출은 결국 자신으로부터의 탈출이다. 감당할 수 없기에, 어떤 사실과 어떤 상황을 자신이 감당할 수 없기에 상황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돌아온다. 도망가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했을 뿐이다. '고래'를 목격한 그들은 희망을 발견한다. 그 희망을 토대로 삶을 다시 꾸려나간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는 기억의 한 조각에서 탈출하고 싶은 수명이와 병원에서 탈출하고 싶은 승민이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의식에 갇힌 무의식에서 탈출하고 싶은 수명은 결국 병원에 갇힌다. 아버지에 의한 것이지만, 거부하지는 않는다. 순응한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가위'는 그의 무의식을 깨우는 두려운 물체다. 그 물체에 담긴 그의 기억은 격렬하다. 그것에서만 벗어날 수 있다면 몸이 갇혀있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승민은 가족들의 암묵적인 동의에 의해 갇힌다. 아버지가 그에게 남긴 재산 때문에 갇히게 된다. 필사적으로 탈출을 원한다. 병원으로부터의 탈출. 번번이 좌절되면서도 끊임없이 시도한다. 깨지고, 갇히고, 약물이 투여되지만 끊임없다. 병원에서 탈출하고 싶다.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 그리고 날고 싶다. 

그들의 만남. 수명이가 승민을 바라보는 시선. 두 가지 다른 종류의 탈출. 수명이는 승민이를 통해서 자신을 본다. 부정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다.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그는 왜 탈출을 하려고 할까? 왜 그렇게. 끊임없이. 의식 속에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그들의 이상한 동거는 결국, 병원 밖의 탈출로 이어진다. 함께, 손을 잡는다.

눈이 어두워지고 있는 승민. 그는 자신의 통로가 닫히기 전에 '별의 바다'로 가고 싶어한다. 수명은 자신이 가고 싶은 '별의 바다'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어렴풋하게 자신도 '별의 바다'로 가고 싶어한다.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계속 이렇게 있는 게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이제 진짜로 평생 병원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자 '탈출'을 꿈꿔본다. 그것은 아직도 알 속에 갇혀 괴로워하는 자신을 깨부수고 나가려는 진짜 '탈출'이 된다.

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가는 게 두려웠던 수명. 자신의 의식에 갇힌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수명.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게 된 수명.
승민의 날갯짓은 수명의 날갯짓이었고, 승민의 탈출은 수명의 탈출이 되었다. 
수명의 진짜 '탈출'은 세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자신의 '별의 바다'를 찾기 위해 노력해 보는 것.
"왜 너는 탈출하려고 하지 않느냐?"라는 우울한 수험생의 물음이, 아버지의 죽음이, 승민이 끊임없이 탈출하려는 노력이, 그의 자발적인 행동을 이끌어 냈다.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은 거부와 강제의 공간이다. 억압과 강요 속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규칙대로 행동하는 '환자'들은 진짜 '환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 들어 앉으려는 노력을 다른 방법으로 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게 특출날지도 모르지만, 그게 폐쇄되어 버릴만한 행동은 아니다. 사회에서 어울릴 기회조차 박탈당한다면 그들은 어떤 삶을 꿈꿀 수 있을까? 창가에 서서 우두커니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이, 때때로 주는 약을 받아먹으며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만이, 그들의 의식적인 무의식을 진정시키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이겨내는 방법을 찾은 두 명의 청춘, 사라져 버린 듯 사라지지 않은 희망.
그들의 '탈출'을 도와준 '갇힌 사람들'
수명과 승민은 그들의 희망이 되었고, 수명은 삶의 희망을 찾았다.

외로움의 벽을 깨고 홀로 설 수 있었던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의 사람들처럼. 수명은 탈출하려 했던 세상으로 돌아왔고, 벗어나려 했던 진실 속에 안착했다. 승민은 하늘 어딘가에서 희망을 향해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가고 싶어했고, 찾고 싶어했던 '별들의 바다' .
우리가 꿈꾸는 그곳, 내 심장에 박힌 그곳은 당당하게 맞닥뜨릴 수 있는 나의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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