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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선생님의 고백으로 시작된다.
"우유를 다 마셨으면 차례대로 자기 번호가 적힌 케이스에 종이팩을 갖다놓고 자리에 앉아요. 다들 마신 것 같군요. '종업식 날까지 우유야?' 라는 소리도 들리던데 우유 시간도 오늘로 끝입니다. 고생 많았어요. '내년에는 없나?' 없습니다. ....(후략).....' 으로 시작되며, 교사직을 그만둔다고 말하는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준다. 섬뜩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사건은 이미 일어났다. 그리고 범인도 알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일이 전개된다는 것일까? 범인을 찾아가던 추리 방법은 이미 식상해진지 오래다. 작가들은 그 이상을 이야기하려 한다.
성직자, 순교자, 자애자, 구도자, 신봉자, 전도자.
성직자는 선생님의 독백, 순교자는 학생 B를 좋아했던 학급 반장, 자애자는 학생 B의 엄마, 구도자는 학생 B의 이야기, 신봉자는 학생 A의 이야기, 전도자는 다시 선생님.
각각의 이야기에 주체가 바뀐다. 그 주체를 기준으로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삶의 과정 등 인물에 대한 이해를 이끈다. 하지만,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이해가 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사건이 있고, 또 다른 변수가 작용한다.
선생님의 고백으로 모두가 정신적인 공황 상태를 겪는다. 의도한 고백으로 모두가 상처를 받는다. 사건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아이를 잃은 선생님의 복수는 심리전을 방불케 한다. 범인 학생 A와 B. 죽어버린 선생님의 딸, 사라져버린 선생님. 담임 선생님 아이를 죽게 한 사람이 같은 반에 있다는 걸 알게 된 학생들은 동요한다. 잔인하고 냉정한 성격의 A는 태연하게 학교를 나오고, B는 집에 틀어박혀 또 다른 증오를 키운다. 그들은 하나의 사건에 이리저리 얽혀있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한 학급의 아이들을 가장 큰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은 선생님이 고백 시작 전 아이들에게 먹였던 '우유'였다. 그 우유에는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고, 자신의 아이가 죽게 된 이야기와 범인들에 이야기를 하며, 마지막으로 범인들에게 먹인 우유에 '아주 특별한' 것이 들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 고백으로 또 다른 사건들이 일어난다.
새로운 담임이 오게 되고, 명석하고 차갑고 잔인한 A는 여전히 우등생으로 제 자리를 지키며, 아무일 없다는 듯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B는 학교에서 자취를 감춘다. A는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학급 반장은 선생님과 함께 매주 B의 집에 방문하게 된다. A는 아이들에게 심한 따돌림을 받게 되고, 집단 따돌림에 관여하지 않았던 반장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받게 된다. 반장과 A는 친구가 된다.
B는 정신적으로 병약해져 간다. 진짜가 아닐지도 모르는 진실에 몰두해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집에 찾아오는 새로운 담임도 싫고, 반장도 부담스럽다. 엄마의 행동도 싫다. 엄마는 자신을 이해하는 척하지만, 언제나 자신을 부끄럽게 여겼다고 느낀다. 학교에서 B가 두드러지지 않고, 다른 학생들이 공개적으로 칭찬을 받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학교에 항의를 하는 건 B의 엄마다. 그 때문에 B는 고통스러웠다. 이번에 일어난 의도된 살인에 대해서도 진실을 알고 있지만, 덮고 넘어가려는 것은 엄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을 대하는 엄마가 B는 무겁다. B는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리다, 결국 엄마를 죽게 한다.
B의 엄마의 죽음 뒤에는 감추어진 것이 있다. 그것은 B의 엄마 일기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B의 엄마의 죽음이 어떻게 일어나게 된 것인지, 그녀의 뒤틀린 자애가 낱낱이 드러난다.
명석하고 잔인한 A. 그는 엄마를 신봉한다. 엄마의 명석한 두뇌, 유명한 대학에 교수로 살 수도 있었던 엄마. 엄마는 그녀의 신세를 한탄하며 A를 매질했고, A에게 자신의 뇌를 물려받았으니 똑똑해야 한다고 강요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를 신봉하고 살았던 A는 엄마에게 주목받고 싶어 잔인한 계획을 세운다. 엄마는 자신 곁을 떠났지만, 언제든 A가 필요할 때 나타나겠다고 했다. A는 엄마가 나타나게 하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결국 살인을 엄마와 만날 수 있는 무대로 삼는다.
스토리 사이사이 흔적들을 잘 뒤져야 한다. 어디서 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선생님의 고백으로 작은 진동이 길고 넓게 퍼져 나간다. 한 아이가 계획했던 것들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너무 큰 사건이 되어버리고, 자취를 감추고 떠났던 선생님은 아이들이 고통 받고 있는 내내 어떤 조종을 하고 있었다. 자식이 죽었다는 상실감, 깨끗하게 떠난 듯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복수는 계속 되고 있었다. A에게 불쑥 나타난 선생님은 다시 고백을 시작한다. 그 고백은 첫 번째 고백보다 더 잔인하다.
누구의 탓일까? 과연 선생님의 복수는 정당한 것일까? 부모의 맹목적인 관심과 사랑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부모의 방치와 학대는 또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고백>은 끝나고도 많은 의문을 남긴다. A의 잔인함, B의 소심함, 아이들의 집단 따돌림과 잔혹함, 학생에 대한 이해보다 자신의 의무를 중시하는 선생님, 무조건 자기 아이가 잘났으면 하는 부모의 사랑, 자식이 잘못해도 모든 걸 감싸주려 하는 부모의 사랑, 자신이 선택한 삶을 아이 탓으로 돌리는 부모, 선생님의 의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유기적으로 얽혀있고, 꼬여있으나 그 출발점은 찾을 수 없다. 이 살인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각 인물이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가 잘 설명되어 있지만, 하지만 과연? 이라는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모든 인물은 <고백>을 시작한다. 자신의 입장에 서서 고백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국 자신의 입장에만 서서 고백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도, 어른도, 고백을 하지만 자신의 입장이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자신의 입장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섬뜩한 고백들. <고백>이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