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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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슴 속에는 자기만의 '별의 바다'가 있다. 그 '별의 바다'를 찾기 위해서 일생을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찾았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별의 바다'가 아니었고, 못 찾았다고 생각했으나 '별의 바다' 속에 있었다. 그것은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계속되는 의문이고 싸움일지 모른다.

무의식에 갇힌 의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과부하가 걸리는 게 정신병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인간은 누구나 정신병이 있다. 그것이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식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 이들은 '정신병원'에 갇히지 않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고, 상처는 있다.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정신'을 피로하게 한다. 이길 수 없는 '정신'을 극복한다면, 세상 속에서 들어오는 일이 한결 수월해진다.  


"꿈을 꿔요. 창문은 통로죠. 희망은 아편이고요."
해석하면 이런 말이었다. 병원 창가에서 세상을 내다보며 퇴원을 꿈꾸고, 퇴원하는 날부터 퇴원을 꿈꿀 수 있는 병원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사람들이 병원 규칙에 열심히 순응하는 것은 퇴원 혹은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갈망의 궁극에는 삶의 복원이라는 희망이 있다. 그러나 그토록 갈구하던 자유를 얻어 세상에 돌아가면 희망 대신 하나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것 말고는 세상 속에서 이룰 것이 없다는 진실. 그리하여 병원 창가에서 세상을 내다보며 꿈꾸던 희망이 세상 속 진실보다 달콤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기억의 땅으로 남을 뿐이다. 옛날, 옛날, 내가 한때 그쪽에 살았을 때 일인데...
- 291p 중에서
 
 
정유정의 다른 소설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에서도 상처받은 아이들의 탈출을 목격할 수 있다. 그들은 상처로부터 탈출을 원한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몸부림이 여행이라는 명목하에 탈출이 진행되는 것이다. 누군가로부터의 탈출은 결국 자신으로부터의 탈출이다. 감당할 수 없기에, 어떤 사실과 어떤 상황을 자신이 감당할 수 없기에 상황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돌아온다. 도망가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했을 뿐이다. '고래'를 목격한 그들은 희망을 발견한다. 그 희망을 토대로 삶을 다시 꾸려나간다.

<내 심장을 쏴라>에서는 기억의 한 조각에서 탈출하고 싶은 수명이와 병원에서 탈출하고 싶은 승민이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의식에 갇힌 무의식에서 탈출하고 싶은 수명은 결국 병원에 갇힌다. 아버지에 의한 것이지만, 거부하지는 않는다. 순응한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가위'는 그의 무의식을 깨우는 두려운 물체다. 그 물체에 담긴 그의 기억은 격렬하다. 그것에서만 벗어날 수 있다면 몸이 갇혀있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승민은 가족들의 암묵적인 동의에 의해 갇힌다. 아버지가 그에게 남긴 재산 때문에 갇히게 된다. 필사적으로 탈출을 원한다. 병원으로부터의 탈출. 번번이 좌절되면서도 끊임없이 시도한다. 깨지고, 갇히고, 약물이 투여되지만 끊임없다. 병원에서 탈출하고 싶다.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 그리고 날고 싶다. 

그들의 만남. 수명이가 승민을 바라보는 시선. 두 가지 다른 종류의 탈출. 수명이는 승민이를 통해서 자신을 본다. 부정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다.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그는 왜 탈출을 하려고 할까? 왜 그렇게. 끊임없이. 의식 속에 의문이 고개를 쳐든다. 그들의 이상한 동거는 결국, 병원 밖의 탈출로 이어진다. 함께, 손을 잡는다.

눈이 어두워지고 있는 승민. 그는 자신의 통로가 닫히기 전에 '별의 바다'로 가고 싶어한다. 수명은 자신이 가고 싶은 '별의 바다'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어렴풋하게 자신도 '별의 바다'로 가고 싶어한다.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었다. 병원에서 계속 이렇게 있는 게 상관없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이제 진짜로 평생 병원에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자 '탈출'을 꿈꿔본다. 그것은 아직도 알 속에 갇혀 괴로워하는 자신을 깨부수고 나가려는 진짜 '탈출'이 된다.

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가는 게 두려웠던 수명. 자신의 의식에 갇힌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수명. 자신을 이해하고 보듬게 된 수명.
승민의 날갯짓은 수명의 날갯짓이었고, 승민의 탈출은 수명의 탈출이 되었다. 
수명의 진짜 '탈출'은 세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자신의 '별의 바다'를 찾기 위해 노력해 보는 것.
"왜 너는 탈출하려고 하지 않느냐?"라는 우울한 수험생의 물음이, 아버지의 죽음이, 승민이 끊임없이 탈출하려는 노력이, 그의 자발적인 행동을 이끌어 냈다.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은 거부와 강제의 공간이다. 억압과 강요 속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 규칙대로 행동하는 '환자'들은 진짜 '환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갖게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 들어 앉으려는 노력을 다른 방법으로 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게 특출날지도 모르지만, 그게 폐쇄되어 버릴만한 행동은 아니다. 사회에서 어울릴 기회조차 박탈당한다면 그들은 어떤 삶을 꿈꿀 수 있을까? 창가에 서서 우두커니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이, 때때로 주는 약을 받아먹으며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만이, 그들의 의식적인 무의식을 진정시키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이겨내는 방법을 찾은 두 명의 청춘, 사라져 버린 듯 사라지지 않은 희망.
그들의 '탈출'을 도와준 '갇힌 사람들'
수명과 승민은 그들의 희망이 되었고, 수명은 삶의 희망을 찾았다.

외로움의 벽을 깨고 홀로 설 수 있었던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의 사람들처럼. 수명은 탈출하려 했던 세상으로 돌아왔고, 벗어나려 했던 진실 속에 안착했다. 승민은 하늘 어딘가에서 희망을 향해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가고 싶어했고, 찾고 싶어했던 '별들의 바다' .
우리가 꿈꾸는 그곳, 내 심장에 박힌 그곳은 당당하게 맞닥뜨릴 수 있는 나의 인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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