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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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을 들었다.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책을 선물했다.

어떤 뜻이 있었을까. 많은 뜻이 있었겠지.

내심, 쓰윽, 마음에 무엇인가가 훑고 지나갔다.

 

<82년생 김지영>은 또박또박 힘주어 쓴 글이었다.

"김지영 씨는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이다. 3년 전 결혼해 지난해에 딸을 낳았다."로 시작되는 소설은 한 여자의 삶을 꾹꾹 눌러 쓴 르뽀 같았다.

바꾸어 써 보았다.

 

"나는 우리 나이로 서른일곱 살이다. 14년 전 결혼해 삼남매를 낳았다."로 <81년생 나>를 써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디테일한 삶은 다르지만, 울컥 거렸던 감정들은 다를 것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여자, 엄마, 그리고 꿈을 꾸는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김지영 씨는 작은 홍보대행사에 다니다 출산과 동시에 퇴사했지만, 나는 아이를 낳은 후 광고회사에 문을 두드려봤지만, 유부녀 그리고 어린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 당하기 일쑤였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최종 면접에서 들어야 했던 말은

 

"정말 뽑고 싶었는데요. 야근이나 철야가 많아서 아이 때문에 다니기 힘드실 거에요. 다른 좋은 자리에서 뵈었으면 좋겠어요."

 

경험담을 비슷한 직종의 카페에 올렸더니, 회사 이미지가 있으니 글을 삭제해 달라는 요구도 받았다. 자기도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래 직원까지 아이가 있으면 본인이 곤란하다는 여자 상사도 있었다. 10년도 넘은 이야기지만, 꽤나 진한 서러움으로 남아 있다.

 

친정엄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찌감치 경력단절녀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살림과 육아를 반복하는 하루하루를 지내다, 김지영 씨처럼 혼이 탈출하는 일이 반복되었을 지도 모른다. 매번 취업의 문터에서 미끄러질 때마다, 울곤 했다.

 

'나는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거절당해야 하는 것인가. 아이가 있다는 것은 내가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말인가. 왜 아무도 나를 허락하지 않는가.'

 

많은 시간, 외로웠다. 남편과 친구들의 응원과 위로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물론 아이들까지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철저하게 이기적인 삶, 회사가 원하는 삶을 살고 나서야 나를 인정해주는 사회가 야속했다. 아이가 있는 여자라서 변명이 많다 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밤낮 없이 일하고 나니, 아이러니하게 아이 있는 여직원들이 불편해하는 일도 생겼다. 너무 열심히 해도, 적당히 열심히 해도 이상한 굴레에 빠지는 것 같았다.

 

10년 만에 셋째를 갖게 되면서 3개월 출산휴가를 냈을 때도 가장 바쁜 시기에 낸다고 눈총을 받아야 했고, 2개월 만에 출근하면 안 되느냐는 전화도 받았다. 육아 휴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복귀해서는 아이가 없는 것처럼 일을 해내야 했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지만, 언제나 눈치가 보였다. 아이를 낳은 게 죄를 지은 것 같았고, 그런 마음이 들수록 더 아무렇지 않게 일했다.

아이가 있는 상사는 "나는 애가 없느냐"라는 말을 종종하면서, 힘들다는 말도 꺼낼 수 없게 입을 막았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던 대표는 종종 아이를 픽업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면서도, 임신을 준비하는 직원에게 가장 바쁜 연말을 피해 아이를 낳으라는 말을 농담처럼 던졌다.

여자 비율이 높아 '여성기업'으로 인증받은 회사의 현실이 이랬다.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내 삶은 나의 엄마의 희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내가 살아내기 위해서는 마음 한쪽 구석에 죄책감을 키우며 버텨야 했다.  

 

친할머니에게는 "여자가 시집 잘 가는 게 남는 거다"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남자 잘 만나야, 여자 팔자가 피는 거다"라는 말도 들었다.

"여자가 잘 들어와야, 집안이 잘 되는 거다"라는 말도 들었다.

 

결혼을 했더니 시어머님이 그런다.

"아들이 잘 되야, 가족 모두 편안하다"

"장손이 잘 되야, 다른 애들도 다 잘 된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오는 거 아니다"

라는 이상한 말들을 주문처럼 들어야 했다.

 

2005년생 삼남매 중에 둘째로 태어난 딸은 6살이던 어떤 날 엉엉 울었다.

"왜 할머니는 오빠만 더 사랑해?"

때때로 일어나던 차별의 말과 행동들이 아이의 마음을 할퀴고 할퀴어 눈물로 터졌다.

친정 엄마가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기집애가 말이야"라는 말에 화를 내는 게 습관이 되었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기 살아야 한다.

이상한 논리를 강요받는다.

왜 차별 받아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면, 기가 세다거나 드세다는 이상한 말을 듣는다.

 

2005년생인 딸은 내가 겪었던 세상에 살지 않길 바란다.

1982년생 김지영이 살아온 삶과 조금 달랐으면 좋겠다.

꿈을 쫓기 위해 아이나 결혼을 포기하거나, 결혼을 했기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삶은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워야 해서 경력을 단절되고, 독박육아를 하느라 우을증에 걸리고, 일로 돌아가려하니 자리가 없는 그런 이상한 나라의 여자가 되지 않길 바란다.

이런 상황들이 자연스럽지 않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세상에 살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 겠다"

 

새드엔딩으로 끝나는 이 문장이, 해피엔딩으로 바뀌는, 그렇게 기록되는 날이 오길 바라며.

쓸쓸하고 서럽게, 오늘의 81년생, 나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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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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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을 읽고 나면 기억이 조각조각 흩어진 듯한 기분을 느낀다. 잊게 되는 것도 있고, 마음 속에 각인되어 한동안 생각나는 인물들도 있다. 좋은 작가가 쓴 이야기는 감정이입의 농도가 훨씬 높다. 내가 주인공인 된 것처럼 아픔, 기쁨, 슬픔, 상처까지도 샅샅이 느껴진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런 느낌이 든다.

 

김애란 작가가 세상과 이야기하고, 사람을 느끼는 방법은 특별하다고 생각해왔다. 그 특별함이 무엇일까 매번 곰곰히 생각하곤 했는데, 언제나 답을 내리는 것은 '디테일'이다. 누군가의 삶을 엿본 것 같은데, 그 안 어딘가 내가 했던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들이 숨어 있다. 일상 속에서 무심하게 지나치고, 습관처럼 해온 행동들이 이야기 속 어디에서 문득 튀어나온다.

 

'아, 나도 그랬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일상의 언어 안에 숨겨진 고통을 들여다 보고 있자면 가끔, 가슴을 움켜쥐게 된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다. 나는 자꾸 되씹는다.

 

'단편의 제목은 생각나지 않아도, 그 여자 얼마나 아팠을까. 그 아이 얼마나 허망했을까. 그 남자 참 세상 더럽다고 생각되겠지.'

 

<바깥은 여름>, 한 여름이 일찍 다가와 무덥던 어떤 날 펼쳐든 책이었는데, 책을 덮고 나니 서늘하다. 단편들을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상황도 시간도 다른 '상실감'이 한 번에 찾아든 것 같다.

시간이 정지된 듯 어이 없고, 기가 막혀서 입 밖으로 내뱉을  수도 없는 일.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 얼얼하고, 숨이 턱 막히다가 기운이 쭉 빠져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일. 그런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다.  

 

죽음, 위선, 외면, 무관심, 상처 위에 한 번 더 나는 상처.

 

대출로 마련한 집에서 행복을 꿈꾼 단란한 가정에 찾아든 아이의 죽음. 아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어린이집에서 무심히 보내온 복분자액이라니. 그 액이 온 집을 덮어버리다니. 피칠갑을 한 마음에 피바람이 한 번 더 몰아치고, 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그런 마음이 오롯이 전해져 가슴을 파고드는 '입동'

 

어느날 죽어 돌아온 남편을 가슴에 품고 떠난 스코틀랜드. 슬픔을 폭발하지 못한 채 묵묵히 안으로 끌어안은 여자에게는 온몸에 분홍색 반점이 퍼진다. 마음의 고통이 온몸을 점령하고 돌아온 집에 도착한 편지. 인정할 수 없었던 죽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터져나오는 주인공의 눈물에 왈칵 눈물을 쏟고 만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

아주 오래된 연인들이 멀어지는 감정의 과정을 동의할 수 밖에 없었던 '건너편'

 

유기견이었던 친구 에반에게 평온한 죽음을 선물하고 싶었던 찬성이의 감정의 변화를 사실적으로 포착한 '노찬성과 에반' 에반의 안락사를 위해 전단지 배포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지만, 순수한 욕망에 타협하며 에반의 죽음을 조금씩 뒤로 미루는 아이의 감정의 변화가  너무도 이해되서 마음이 아팠던 이야기.

 

가리는 손, 풍경의 쓸모, 침묵의 미래까지.

 

일상에서 어느날 갑자기 찾아든 사건들로 평온한 삶은 산산히 조각나지만, 쓸어담고 추스려야 하는 건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사건이 벌어지고 나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긴 힘들다. 누구도 내가 느낀 상실감을 모두 알 수 없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겪은 상실감은 무엇이었던가. 혹은 내가 타인에게 상실감을 준 적은 없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부당한 편견을 보고도 침묵한 적은 없었나.

소중한 이들에게 상처준 적은 없었나.

결국, 나도 김애란 단편들의 어떤 곳에 앉아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방관, 무관심, 외면, 위선

 

어느 것 하나 자유로울 수 없다.

나도 쉽게 고개를 돌렸고, 쉽게 모른척했다.

어떤 날은 '입동' 안 어딘가에 있었고, '건너편'의 주인공이었으며,  '노찬성과 에반'의 찬성이이기도 했다.

 

김애란 작가는 또 이렇게 내 마음 어딘가를 두드린다.

일상 어딘가에서 내가 저질렀을지 모르는 어떤 일들을. 어떤생각들을. 어떤 합리화를. 모른척 마음 안에 봉인해 버린 어떤 사건들을.

어디론가 흩어져 버린 내 삶의 한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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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3
캐서린 패터슨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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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쓰레기 더미에서 잠을 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미 인간답게 산다는 말을 버린지 오래다. 그저 고된 노동과 매서운 폭력을 피할 수 있는 어떤 공간을 원할 뿐이다. 얼어 죽는 게 무서운 게 아니다. 아버지에게 맞아죽는 것이 두렵다. 폭력이 두려워 인간답게 자는 것을 포기한 제이크. 이 아이가, 또 다른 한 아이를 만난다. 구두를 잃어버린 로사. 아니 새로운 구두를 원하기에 쓰레기 더미에 구두를 버리고 갔던 아이. 이 둘의 만남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죽어버리면 날 대리지도 못할 거고, 술 마시려고 내가 번 돈을 몽땅 훔쳐가지도 못할 거고, 그리고 돈을 더 벌어오지 않는다고 또 때리지 못할 거야. - 8p  
   

제이크의 생각이다. 그를 때리는 것은 아버지. 그는 아버지의 술값을 대기 위해서 일을 한다. 일을 해도 굶주림에 시달리고, 씻지 못하고, 맞고.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일상에서 파업이 시작된다. 얼떨결에 참여하게 된 파업. 그 속에서 아이는 또 다른 고통을 경험한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언니와 엄마는 공장에 다니는 로사. 그녀는 공부만이 새로운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교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선생님에게 주입된 신념은 파업은 나쁜 것이라는 것. 하지만, 엄마와 언니는 파업을 한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모른 상황에서 주입된 신념은 그녀를 혼란에 빠뜨린다. 무조건 파업을 반대하고 나선다. 파업을 하면, 가족 모두가 배고파질 거라는 생각, 파업을 하는 자체가 나쁜 거라는 생각.

   
  "제발, 엄마. 엄마랑 애나 언니는 파업하면 안 돼요. 다칠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폭도들이 난폭해질 거라고요."
로사는 차마 자신의 진짜 생각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우린 뭘 먹어요? 집세는 어떻게 내고요?
"로사 알겠니? 저들은 주급에서 두 시간만큼 임금을 깎겠다는 거야. 그건 우리에게서 빵 다섯 덩어리가 사라진다는 소리야. 일을 해도 내 자식들이 배를 곯고, 파업을 해도 내 자식들이 배를 곯지. 내가 뭘 하든, 우리는 굶주리는 거야. 일하고 굶느니 싸우고 굶는 게 낫지 않겠니, 응?" - 42p
 
   

엄마와 언니는 일을 하고도 굶주리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것이다. 온몸을 바쳐 일하고도 공장주만 배부르는 세상에 사는 것이 너무나 신물나는 것이다. 하지만, 로사는 이해하지 못한다. 굶주림을 걱정하면서도 새로운 구두를 갖고 싶은 로사. 그녀에게 '빵과 장미'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그런 삶을 꿈꾼다는 것을, 로사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깨닫게 된다.

제이크는 파업이 길어지면서 돈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도둑질을 하게 된다. 거리를 떠돌게도 된다.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집에 들어가면 술에 쩔은 아버지의 매질만 기다리고, 밖을 떠돌면 춥고 배가 고플 뿐. 어떤 현실적인 대안도 없는 제이크는 사회의 피해자다. 도움을 요청할 이도, 도움을 줄 이도 없는 절망적인 상황. 성당에서 도움의 손길을 받고도, 그 돈으로 아버지에 술을 사는 종속적인 삶. 그렇게 살아왔기에, 어떤 대안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기에 어린 아이는 부모의 노예가 되었다. 제이크는 탈출하고 싶다. 그리고 마침,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파업이 장기화 되면서 아이들을 '뉴욕'으로 보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노동자일 뿐, 노동자의 아이가 아니다. 이 참담한 삶을 벗어나고 싶은 제이크는 떠나고 싶어 한다. 그 순간,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고 모든 것이 자신이 사다준 술 때문이라고 자책한다. 아이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 로사의 뒤를 밟아 기차에 올라탄다.

그들이 당도하게 된 것은 버몬트. 첫 번째 목적지와 다른 곳. 제이크는 어떻게든 뉴욕으로 가 새 삶을 살겠다고 하지만, 버몬트에 도착했을 때부터 쉽게 떠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가정 안에서 다른 삶이 시작된다. 거짓말로 많은 것을 숨겨야 하는 로사와 제이크의 생활은 위태위태 하지만, 행복해 보인다. 따뜻한 말, 따뜻한 잠자리, 따뜻한 위로. 결국, 상처받은 제이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 하지만, 거짓말이 탄로나면 쫓겨나고 큰 일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제이크. 그런 제이크를 안쓰럽게 생각해 거짓말을 자꾸 해주게 되는 로사. 그들의 우정 사이에, 제르바티 씨가 있다. 아들을 잃고 상처받은 제르바티 씨는 제이크를 통해 새로운 삶을 살 희망을 얻는다. 제이크 또한, 행복을 누릴 권리를 선물 받는다.

'파업'이라는 소재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 고통받는 아이, 가족들. 그들은 인간다운 삶을 원했을 뿐이다.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원했을 뿐, 근근히 버텨가는 삶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삶을 원했을 뿐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하지 않은가.

서로를 돕고, 서로에게 힘을 주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얻고. 이루어내는 과정 속에서 그들은 '빵과 장미' 모두를 얻을 수 있었다. 힘을 합하다. 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그 과정. 인간과 인간이 연결된 끈까지도 느낄 수 있다. 

100년 전의 파업. 파업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 안에서 풍기는 따뜻함. 희망. 이런 것들 이외에도,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빵과 장미의 싸움을 돌아보게 한다. 시대가 흐르고, 예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게 더 나은 삶이 아님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빵을 구하지 못해 굶주리는 일은 계속 되고 있으며, 장미향을 맡을 여유나 희망조차 없는 이들은 많다. 우리는 제이크와 로사, 버몬트 마을 사람들, 제르바티 씨처럼 서로 연대해야 한다. 상처를 쓰다듬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해야 하며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것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빵과 장미'의 싸움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용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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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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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와 나는 팔 년 만에, 그는 수화기 저편에 나는 수화기 이편에 있다. 시간은 언제나 밀려오지만 똑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젊은 날에 인식하고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누군가는 작별하지 않고 누군가는 살아남았을지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또다른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 11p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정윤의 독백이다. 윤교수님이 위독하다는 전화를 명서의 전화를 받은 정윤. 정윤은 침묵과 아무렇지 않은 통화 사이에서 어슴프레 떠오르는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아니, 그것은 어슴프레 떠오르는 기억이라기 보다, 그녀 가슴이 박혀 절대 빼낼 수 없는 시간들과 기억들이다. 시작할 이야기에 대한 복선은 정윤의 독백 여기저기에 깔려 있다. 그녀의 한 마디는, 알고 보니 아픈 회한이었고, 기억이었고 상처였으나 이제 그녀를 지탱하게 해주는 의미이기도 하다. 

   
 

 살아보지 않은 앞날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앞날은 밀려오고 우리는 기억을 품고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기억이란 제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속성까지 있다. 기억들이 불러일으킨 이미지가 우리 삶 속에 섞여 있는 것이지, 누군가의 기억이나 나의 기억을 실제 있었던 일로 기필코 믿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고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면 나는 그 사람의 희망이 뒤섞여 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그렇게 불완전한 게 기억이라 할지라도 어떤 기억 앞에서는 가만히 얼굴을 쓸어내리게 된다. 그 무엇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의식들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기억일수록. 아침마다 눈을 뜨는 일이 왜 그렇게 힘겨웠는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은 왜 그리 또 두려웠는지, 그런데도 어떻게 그 벽들을 뚫고 우리가 만날 수 있었는지. - 21p

 
   


기억, 그것은 너와 나의 기억, 우리들의 기억. 하지만, 다 각기 다르게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 기억. 정윤, 명서, 단이, 미루는 교차되는 기억을 공유하며 서로 돈독해진 사이다. 명서와 미루, 정윤과 단이가 각각 공유하는 기억과 그 시간 속에 살며 서로를 위로했던 기억. 정윤과 명서 사이의 미루, 정윤과 명서 사이의 단이. 그리고 미루와 단이의 소멸. 그 사이에 수많이 뿌려진 기억들. 어느 날, 전화벨이 울리고 그 기억들이 빵처럼 부풀어 올라 하나하나 떠오른다. 명서의 기억과 정윤의 기억은 그렇게 교차되며 그들의 청춘, 청춘 속의 그들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시작은 죽음의 그늘로부터 비롯된다. 그들의 청춘에 큰 자리를 차지했던 윤교수님의 위독함은 그의 죽음을 예상하기 충분하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언급들, 기억에 대한 이야기, 정윤의 독백 속에는 갖가지의 슬픔들이 내포되어 있다.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은 그녀에게 고통이면서도, 그녀를 성장하게 한 또 하나의 이유다.

   
 

 인생은 각기 독자적이고 한 번 뿐이다. 모두들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려 하고, 사랑하고, 슬픔에 빠지고, 죽음 앞에 가까운 사람을 잃기도 한다. 지금 병원에 누워 있다는 윤교수도, 팔 년 만에 전화를 걸어온 그도, 나도, 그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단 한 번, 그럴 것이다. 우리에게 청춘이 단 한 번만이 아니었다면 오늘 이렇게 내 책상 위의 전화벨이 울려 팔 년 만에 그의 목소리를 드는 일도 없을 것이다. - 23p

 
   


팔 년 동안 봉인했던 기억을 깨운다. 모질게 잊고 지낸 시간이었다. 그 시작을 깨운 전화벨, 그리고 윤교수의 위독함. 결국, 죽음이 기억의 봉인을 해제한다. 그리고, 기억의 시작에는 죽음이 있다. 엄마의 죽음. 정윤은 엄마가 죽고, 도시로 나온다. 엄마의 죽음을 견디기 위해 도시로 나와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혼자만의 시간 말이다. <말테의 수기> 첫 문장,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 도시로 모여드는 모양이다(33p)에 정윤은 눈물을 떨어뜨린다. 정윤은 엄마가 죽고, 살아보기 위해 도시로 왔다. 그 다짐, 외로움, 슬픔이 한 번에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혼자 도시를 걷고, 책을 읽고 외로움과 싸워가면서 그녀가 찾은 윤교수님의 수업. 그곳에서 윤교수, 미루, 명서, 정윤이 만난다. 책 속에서 정윤의 존재는 하나의 다리처럼 느껴진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정윤.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상처와 고통도 함께 치유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정윤이다. 

우.리.는.숨.을.쉰.다  

글자 사이 사이의 숨결들. 숨쉬지 못하는 청춘들. 숨쉬고 싶은 청춘들. 암울한 시대적 배경 속에 놓인 청춘들은 지극히 사적인 일들이 시대의 사건들과 맞물려 새로운 고통을 만들어 낸다. 미루의 화상이 바로 그런 것이고, 미루의 화상을 넘어 미루가 쫓는 것을 바라보는 명서의 고통이 바로 그런 것이고, 단이의 의문의 저항이 그런 것이고, 청춘들을 붙잡아 보려 했으나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기력한 고통을 느낀 정윤의 슬픔이 바로 그런 것이다.  

정윤은 미루의 고통의 비밀을 듣게 되고, 명서의 고통을 마음으로 이해한다. 단이의 고통을 쓰다듬지만, 결국 모든 것이 자신의 고통으로 돌아온다. 정윤을 중심에 두고 쏟아내는 그들의 고통. 정윤이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려 할 때, 자신이 더 힘겨워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저, 그들의 고통을 감싸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나는 갑자기 윤미루에 대해 격렬하게 솟구치는 나의 궁금증이 두려워졌다. 그렇게 알게 되는 것들은 그와 나 사이를 가깝게 할까, 멀어지게 할까?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것.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가깝게 해준다고 여겼던 적이 있었다. 가까워지기 위해서 내키지 않는 비밀을 털어놓은 적도. 혼자만 간직하고 있던, 말로 꺼내기 어려웠던 소중했던 비밀이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어 다른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의 상실감.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가난해지는 일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도 같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은 오히려 침묵 속의 공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 111~112p 

 
   


타인에 대해 더 알고 싶으나, 알고 난 뒤 느끼게 될 두려움. 정윤은 그녀에게 일어날 일들을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비밀을 듣게되면서 가까워지긴 했지만, 그 가까워짐 때문에 큰 고통을 떠안게 되기도 한다. 그들과 함께 고통의 숲을 걸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 대책없이 무너져버리는 모래성처럼 스르르 소멸하고 말았던 이들.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의 경악과 추억 속에 갇힌 그들에 대한 사랑. 그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 일들. 

미루의 가슴 아픈 고백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고, 미루가 정윤에게 다가오면서 함께 잘 싸워낼 수 있을 거라고 여긴 순간도 있었다. 미루가 가진 죄책감, 그 안의 슬픔, 상흔. 미루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 한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을 하나씩 통과해나가는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찾아온 미루의 죽음 앞에서 그녀는 또 다른 고통을 맞이했고, 단이의 죽음 앞에서는 기억과 현재를 혼돈하며 고통받기도 했다. 그 고통 속에서 교수직을 사표 쓰고 낙향한 윤교수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어떤 가르침을 듣게 된다.  

   
  자네들보고 잊으라고 하지는 않겠네. 생각하세,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더이상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생각해. 이 부당하고 알 수 없는 일에 대해 질문하고 회의해. ...(중략).... 인간은 불완전해. 어떤 명언이나 교훈으로도 딱 떨어지지 않는 복잡한 존재지. 그때 나는 뭘 했던가? 하는 자책이 일생 동안 따라다닐걸세, 그림자처럼 말이네. 사랑한 것일수록 더 그럴 거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절망할 줄 모르면 무슨 의미가 있겠다. 다만...... 그 절망에 자네들 영혼이 훼손되지 않기만을 바라네. - 341p  
   

기억은 명서의 기억, 정윤의 기억으로 나뉜다. 정윤의 기억 속에는 또 다른 명서의 기억도 있다. 둘의 기억이 교차되는 지점도 분명히 있다. 그들은 커다란 폭풍을 지나왔고, 시간이 흐르자 그 폭풍은 잠잠해지고 폭풍은 가슴에 묻게 된다. 팔 년 동안 정윤과 명서는 각자의 삶을 산다. 한 때는 함께 살려고 마음을 먹었으나, 그것은 그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직감하고, 이별을 감행한다. 그 이별은 슬픈 이별이 아니라, 다시 만나기 위한 이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고통이 휘몰아치던 그 순간, 그들이 함께 했다면. 잊혀지지 않는 고통 때문에 서로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내며 서서히 망가져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명서는 또 다른 기다림을 택했고, 기다림 뒤의 조우에는 윤교수님의 죽음이 있다. 윤교수님이 소멸하면서 봉인된 청춘의 시간들은 아름답게 묻힌다. 팔 년은 많은 것을 변하게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명서와 정윤의 성장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아왔다는 것. 아이들에게 윤교수님식 강의를 하며, 웃음짓는 정윤. 시위대 속에서 카메라를 들고 다니던 명서는 낯선 나라에서 포옹하는 사람들을 찍어 전시를 열기도 한다. 서서히 치유된 고통은 그들의 또다른 성장을 만들어냈다. 

상처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치유하기 위해 애를 쓰고, 타인의 고백에 마음 아파하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 하려하던 그들은 그 시간 속에서 자신들을 채워나간 것이다. 다시, 함께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새로운 기억을 걸었던 팔 년.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며, 나를 찾는 전화벨은 우리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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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별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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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은 은유를 헤아릴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사만엔 칼로 자른 듯 선명한 두 개의 세계 외엔 없다. 빛과 어두움. 그러니, 운명의 모호함에 질린 사람이라면 누구든 중독될 수밖에 없는 거지. - 23p

 
   

 승, 보라, 바바, 로랑은 각자의 운명에서 지그재그로 만난다. 운명과 욕망, 알 수 없는 이끌림 사이에서 서로의 삶을 걷고 있다. 누군가를 '찾기' 위해 사는 승, 그 '찾음' 때문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보라, 아름다운 보라를 곁에 두기 위해 그녀가 원하는 것을 '찾는' 바바, 아름다운 것을 소유하기 위해 '찾아' 다니는 로랑. 그들은 빛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아프리카의 사막에서 생존하고 있다.

   
  불가능할 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 149p  
   

자신이 찾는 것을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승'과 '로랑'. 그 사이에 끼인 두 아이 '보라'와 '바바'. 아름다움을 찾다고 죽음에 이르는 '로랑'과 그 아름다운 욕망을 돈으로 바꾸고, 그 돈으로 아내와 친구를 찾는 '승'. 그들이 찾는 것은 결국, 그들의 삶이 되어 버린다. 삶을 좀먹는 '찾음' 속에서 존재 이유가 '찾는 것'이 되어 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 멈출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단 한 가지를 위해 달리지만, 그것이 그만큼 소중하고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는 상황.


   
  인간은 결국 원하는 걸 갖기 위해, 그걸 선택한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갖은 핑계를 만들어내곤 하지. 우선 자기부터 설득해야 하니까. - 218p  
   


결국, 로랑은 로랑대로 승은 승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사막을 헤매는 것도 돈을 쏟아 붓는 것도, 딸을 방치하는 것도 합리화한다. 불법 거래도 혈육의 아픔도 원하는 하나 때문에 다 합리화 되는 것이다. 사막이 감추고 있는 것들은, 그들의 욕망만이 아니다. 그들이 제대로 봐야 하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감정마저 감춰버린다. 그들이 진정 '찾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에게 없는 것. '위로'. 일상을 순식간에 파괴해버린 무엇은 위로 하나 남기지 않고 눈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위로',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선물해줄 수 있는 '위로'를 찾기 위해 사막을 헤매는 그들.

'보라', '바바'도 위로가 필요한 아이들이다. 엄마를 잃은 아이는 아빠의 손에 이끌려 아프리카로 흘러왔다.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하고, 혼자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아빠. 그 곁에는 '바바'가 있다. 아빠의 매질과 너무 어릴 때부터 알아버린 '노동'. 그 고통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어디선가 온 '보라'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어떤 물건 때문에 알게 된 보라, 바바, 로랑. 로랑은 그 물건을 감추는 수단으로 바바를 택하고, 그 대가로 로랑의 정원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된 보라와 바바. 보라와 바바는 길바닥 삶과 다른 그의 삶의 배경에 놀라워하지만, 결국 아름다움을 탐하다 죽어버린 로랑에게 연민을 갖는다. 

   
  신문 기삿거리가 될 만큼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그와 있는 동안 좀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나누었을 텐데. 사소하지만 나누는 순간엔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 252p  
   

이런 보라의 독백은,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를 하는 듯 가슴이 아리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들을 나누어본 것이 언제인지. 외로움 안에 갇히면서, 사막에 홀로 갇힌 듯 외로워진 보라. 그런 보라가 누군가의 손목을 붙잡고 어설픈 타투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자신을 위로하는 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물건 때문에 보라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바바. 바바는 그 추하지만 아름다운 것을 짊어지고 사막으로 향한다. 자신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다. 보라가 사라지는 것은 바바의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고, 바바는 보라를 찾아 헤매고 싶지는 않다. 곁에 두고, 서로를 위로하며 하루하루의 시간을 함께 채우고 싶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이렇게 그의 갈망과 나의 갈망이 부딪치는 순간이 있구나. 장소가 아니라 시간이라고 말하지만, 그 시간이란 어떤 장소 속에서의 기억을 말하는 것이겠지. - 233p  
   

바바의 독백은 보라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을 보여주지만, 승과 로랑의 '찾음'에 대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부를 얻고 싶었던 승의 갈망, 승을 유혹해 부를 얻고자 했던 친구의 갈망, 승을 버리고 친구와 떠나고 싶었던 아내의 갈망, 애인을 보내고 싶지 않았던 로랑의 갈망, 엄마를 찾고 원래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보라의 갈망. 그 갈망 속에는 시간, 시간 속의 장소가 있다. 잊혀지지 않는 고통. 그 고통은 사막의 빛과 어둠만큼이나 극명하다.

그들이 '찾기' 위해 '쫓았던 것들'. 사막의 신기루처럼 스르르 사라지는 것들. 그들의 욕망은 결국, 사막을 이기지 못했다. 사막의 태양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욕망들은 결국 잡히지 않은 채 사라졌다. 승이 살아남기 위해 죽도록 찾아다닌 것은 허상이었을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으니. 보라의 기다림은 바바와 함께 사라지고, 아무리 가져도 채워지지 않는 아름다움에 대한 로랑의 욕망은 숙명처럼 사막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삶에서 독한 황폐를 겪은 그들은, 각자의 사막에 중독되어 사막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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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o 2010-12-16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아프리카의 별을 읽고 있어요, 책이 무지 읽고 싶은데 오늘 책을 안가져와서, 잠시나마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해서 리뷰들을 읽어 보고 있어요, 님의 리뷰 넘 감동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책이 더 읽고 싶어 지네요, 빨리 집에 가야겠어요 *^^*

청춘의반신상 2010-12-17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재밌게 봐주셔다니 고맙습니다. ^ ^ 개인적이로 정미경 작가를 좋아해요. 좋은 감동 느끼셨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