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 센스 - 당신의 크리에이티브 감각을 깨우는 역발상 비주얼 에세이
정철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선배의 블로그에 갔다가,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몇년 전 카피라이터 과정을 밟으며, 5시간 강의를 들었던 정철 선생님.
그 분이 책을 내셨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이게 아니다, 별로다, 라는 부정적인 말씀을 하지 않으셨던 분으로 기억한다.
강의를 하시는 분들 중에는, 만만하게 생각할 직업이 아니니 애초에 안 될 것 같으면 다른 길 찾아가라고, 어떤 아이디어는 한심한 투로 말하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사실, 그때 내겐 카피라이터란 직업은 생소하면서도 도전해보고 싶은 길이었던 반면,
갈등과 고민도 많았던 길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자가 남들보다 좀 늦게 준비를 시작하려니
헤매고 버벅되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탁정언 선생님의 추천으로 사보편집 회사에 입사하면서
미래의 도약을 꿈꾸며 한 발 물러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두 아이의 엄마이며, 졸업 후 2년의 공백은 나에게 치명타가 되었고
면접을 보는 광고 회사마다 날 거부했다.
이력서를 보내면 한 번 보자는 회사는 많았지만, 한 번 보고서 마는 회사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철야와 야근이 밥먹듯인 광고회사에서 두 아이의 엄마를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나보다.
거의 최종까지 붙었던 두 회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즈음 탁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전진 씨 사보일을 하다가 잘나가는 카피라이터가 된 사람들도 많아요."라면서.
무언의 응원이셨다는 걸, 알았다.


비전이 있어 가고 싶었던 회사는 사장이 마음에 들어 했지만, 실무자는 반색했다.
실무자 또한 한 아이의 엄마였고 친정 엄마에게 아이를 맡겨 놓고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아이 때문에 일을 잘 할 수 있겠냐며 재차 물었다.
아마 그녀가 느꼈던 어려움을 나 또한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선뜻 좋다고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꽤 컸던 한 광고회사는 실무진들은 좋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가장 높으신 분은 아이가 있어 힘들어 보인다고 보이콧을 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황송하게도 이사님이 전화를 하셔서 미안하다고 몇 번을 말씀하셨다.
잘 본 면접에 조금 들뜬 마음으로 쇼핑을 하다가 절망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말고도 수도 없었던 면접이 있었다.

 
그리고, 난 그때 알았다.
자유롭고 생각이 트인 광고회사도 별 수 없구나.
사회의 편견은 어쩔 수 없구나.
내가 별로여서 였을 수도 있다. 실제로 보니 별로였을 수도.


장충동에 있었던 한 광고회사 팀장은,
슬림하지 못한 나의 몸매가 나태해 보인다며
광고회사에 들어올 생각이라면 다이어트를 먼저 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때 자리를 박차며 화를 내지 않았는지 내 자신에게 화가난다.
난 번번히 거절당하는 통에 많이 지쳐있었던 것 같다.

 
그랬다. 그때는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자꾸만 조건에서 밀린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제 생각하니 책 속의 정철 선생님의 말처럼 시간이 지우개인 것 같다.
시간이 지나니, 그때의 고통이 지금은 피식 웃을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되고
살아가는 힘을 주는 삶의 이야기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봤던 면접에서 내가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두 아이의 엄마라고 가정과 회사의 일을 다 소화하기 힘들거라는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지 말아 주세요.
뒤집어 생각하면 아이들이 있기에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습니까?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하기에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 생각할 수도 있고,
주부의 마음에서 생각할 수도 있고, 시댁식구들과의 고충에서 관계에 관해 넓게 볼 수 있고
제게 다른 신입들과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떨어지긴 했지만, 그때 실무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즐거워 했었다.

 
무좀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신 정철 선생님은 센스 만점이다!
인생은 친구가 있는 것 만으로도 된 거다. 맞다.
긍정을 사랑하는 사람이 좋다.
그런 글을 읽는 게 좋다.
지독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부추기는 글을 스트레스를 받는다.
활자의 고마움은 이럴 때 느끼는 거다. 그런 거다.
그리고 또 힘을 얻는 거다.
오늘 하루 난 또 힘을 얻었다.

힘을 주는 글, 센스 만점! 세븐 센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이삼촌
현기영 지음 / 창비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기륭전자 비정규직, 아니 파견직 노동자들의 눈물을 보고 마음이 찡했다.
잔업, 특근, 휴일도 없이 철야로 일하고 겨우 백만원을 받으면서
언제 잘릴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그들은,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기도 하고
터무니 없는 이유로 내몰리기도 했다.
그 찬란한 디지털단지에 우글우글 파견직 노동자들은
갈 곳을 잃고 헤매이기도 하고, 비인간적인 처우에 눈물짓기도 한다.
잊어서는 안 될 일들이 자꾸만 잊혀져가고, 나도 내 일이 아닌 듯
그저 가슴만 아파하고 짠한 마음이 들 뿐인건, 내가 그들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도 4.3항쟁.
그것도 나의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억해야할 역사이고, 돌아봐야 할 일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조차 하지 못해 망각의 길을 걷고 있다.
제주도 출신 작가 현기영이 제주도에서 일어났던 슬픔과 아픔의 역사를 끌어내어 그들의 화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한 번도 고발되지 않은 그 일. 하지만, 고통받고 죽어간 사람들.
2백명을 찾아내기 위해 5만명을 죽인, 구덩이를 파 아무렇게나 묻어버리고
방치된 시체는 까마귀의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야 했던 4.3항쟁.

 
비단 제주도의 아픔 뿐만 아니라, 눈가리고 아웅했던 그 시절의 여공의 고통과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서 차곡차곡 이야기하고 있는 현기영의 소설집 순이삼촌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 그리고 기억하려 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 꾸지람을 하고 있는 듯했다.
건국 60년으로 짧게 치부해버리려는 저들의 꿍꿍이 속에서
이것 저것 자기들 필요한대로 역사를 지워버리고, 없애버리고, 왜곡하려는 계략을
우리는 피부로도 마음으로도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간다.

 
그들은 말한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복잡한 이야기 하지 말고 편리한대로 살자.
경제만 살리고, 돈만 많이 벌면 되는 거 아니냐.
가진 자의 권력을 함부로 넘보지 말아. 우리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들인지.

 
복잡한 이야기 싫어하는 세상이 되어버려,
과거의 일은 과거로만. 자기들 편한대로만 역사를 바꾸고
고통당한 이들의 울부짖음에 귀를 막는, 무관심한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도 반성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어린 아이와 아녀자들의 죽음을 좌익 무장폭동으로만 치부해버리려는 저들의 속마음 속에
가슴이 아리도록, 몸이 부서지도록 눈물의 한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순이삼촌은 왜 죽었는가?
그녀가 시체가 즐비했던 그 자리에 곱게 누워
죽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도 쓰다듬고 보듬어주지 않아 썩어 문드러져간 마음을 헤아려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란의 다카포
호란 지음, 밥장 그림 / 마음산책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친구와 바에서 술을 마시며, 김윤아가 너무 좋다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바 안에서 물끄러미 컴퓨터를 하고 있던 주인장.
"호란도 멋있지 않아?"
친구 왈, "호란은 '섹'한 면이 강하잖아요. 너무 섹시해요."
김윤아는 그냥 멋있다는...


섹시한 여자에 대한 경계일까? 아니면, 고정관념 때문일까?
사회적인 통념상 섹시한 여인은 단지 섹시할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여인은 섹시함에 지적인 의미까지 부여하고 말았다.


연예인이 쓴 책은 잘 읽지 않는 나로서는, 호란의 책에 왜 손이 갔는지 모른다.
작년에 구독했던 맨즈헬스에서 호란이 자기만의 서평을 기고하곤 했었다.
자세히 읽어보지도 않고, 휙휙 넘기면서 이 여자 글도 쓰는구나라고 지나쳐 버렸다.
그런 글들이 모였다.


한마디로, 멋진 서른을 달리고 있는 여자이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한 문장 한 문장이 예사롭지 않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생활과 성격이 들여다 보인다고 했던가.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며, 열정을 사랑하는 그녀는 숨기지 않고 말한다. 언젠가는 칠푼이 같은 화장도 벗어 던질 것이라고. 섹시한 이미지를 뒤집어 쓰고 사는 그녀는 분명 세상의 시선이 불편한 것이다. 그녀는 똑똑하고, 글도 잘 쓰고, 책도 많이 보고, 자신이 하는 일에 당당하다. 뭇 여성들이 부러워 하는 조건을 갖춘 그녀의 피땀 어린 노력도 글 행간행간에 숨겨져 있다.


의사 부모를 두었지만,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었던 엄마를 펭귄이라고 놀리던 자신을 되돌아보며 후회하고, 섹시한 이미지의 뿔을 쓴 채로 정작 자신이 보여줘야 할 것들은 감춰지고 있지 않는가 생각한다. 한글과 한복을 사랑하고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를 좋아한다.


사람은 들여다보고, 만나보고 겪어 볼수록 알 수 있다.
단번에 그 사람이 다 알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만의 도돌이표로 시작하고 또 시작하고 또 시작한다.
끝날 줄 모르는 그녀의 인생과 열정은 계속 되겠지.


자신의 생각과 꿈을 당당히 표현하는 이 여자.
멋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다리 - 제1회 문학의 문학 5천만원 고료 소설 공모 당선작
우영창 지음 / 문학의문학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골드미스의 삶과 그녀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사회상과 생활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영업을 하거나 고객을 만나서 씨름하는 사람이라면, 상황들에 절대적으로 공감할 만한, 동료이면서 적인 서로의 의중을 살피는 날이 선, 대화는 사실적이다. 작가가 증권계에서 날리던 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증권계에서의 생활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녀의 삶은 자유분방하다. 자유분방함 속에도 그녀만의 원칙은 존재한다.

직장 상사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성 애인이 따로 있다.
사랑이라고 감히 말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을 담아 주는 그녀는, 강하면서 여린, 여리지만 강해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의 직장인이다. 주가에 울고 웃는 삶을 사면서도 냉철함을 잃지 않고 중심을 유지하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욕망에 빠져들다가는 자신이 파멸할 것이라는,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녀는 욕망에 발을 담그다가 적절한 순간에 발을 빼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유지한다.

성과 돈은 가장 기초적인 욕망이며,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그 사이를 오가며 줄타기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전혀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자신의 감정을 잘 포장하고 숨길 줄 아는 그녀이지만, 가끔 등장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그녀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사학과를 나와 회사에서 이른 명퇴를 당한 후, 별 볼일 없이 전전긍긍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그녀에게 던진 말은 꼭 경제학과를 가라는 것이었다. 경제학과를 가야 성공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말은 그녀의 가슴에 박혀 지금까지 그녀를 지배하고 있다. 성공은 그녀에게도 크나큰 성취였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이루어 주고 싶은 꿈이었을 지도.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들여다 보면 대부분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소설 안의 삶들은 우리의 삶과 같다.

돈과 욕망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성과와 실패를 오가며 낙오되고 살아남는다. 위를 바라보고 오르다 보면, 아래로 내려와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가끔 우리가 그렇게 좇던 것들이 죽음이라는 허무한 이름으로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그 슬픔 속에서도 세상은 어떻게든 굴러가고 빈자리는 누군가가 채워가기 마련이다.

삶의 굴레를 증권세계의 한 여자를 통해서 밀도있게 전하고 있는 하늘다리는 오랜만에 호흡을 길게 만드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형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것이 적으면, 사랑하는 것도 적다.'

 
아는 것이 적으면, 쓸 줄 아는 것도 적다,
아는 것이 적으면, 할 말도 적다,
아는 것이 적으면, 즐거움도 적다,
무궁무진하게 만들어지는 말들.
어쨌든, 레오나르도 다빈치 형님은 정말 멋진 분이다.
그리고 난, 형님의 말처럼 멋진 작가를 발견했다.
 

오랜만에 좋아질 것같은 작가를 발견.
그의 상상력과 예상치 못한 소재와 스토리에 깜짝 놀랐다.
음악을 많이 알고, 음악을 많이 사랑할 것만 같은 <악기들의 도서관>에 담긴 단편들.
그속에서 뜻하지 않은 감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생각을 주는 글은, 정말 좋은 글이다.
단편이 끝나고 마침표까지 읽고 나면, 생각의 공간 속에 잘 모셔다 준다.
한쪽만으로 치우쳐 생각지 말라는 그의 속삭임은 달콤하고 유혹적이다.

 
질리게 면접을 보고 질리게 면접에 떨어졌다면 <유리방패>를 읽으며 유쾌해질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으며, 어떤 우연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고, 지금 나의 행동과 일상은 뜻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단 몇 분만에 온전한 자신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모순 속에서도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두 남자의 이야기. 언제나 함께 같은 길을 걸었지만, 이제 갈림길에서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하는 두 남자의 암묵적인 합의는 어릴 때 단짝친구와 다른 대학에 가야하고, 다른 과에 가야했던 아쉬움과 씁쓸함을 기억나게 해준다.

 
일상 속에서 배우고 싶은 것들이 한가지씩은 있다. 하지만, 시간과 돈으로 망설이기만 한다.
한 번 시도는 해 봤는데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쉽게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다시 시도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B>에서는 단순한 이야기지만, 진짜 이야기를 한다.
"좋아한다면 두세 번은 시도해봐야지. 계속 시도하다보면 어느 순간 정말 좋아지거든."(201p)
나의 도전은 몇 번으로 끝났던가.


<메뉴얼 제너레이션>, <악기들의 도서관>, <비닐광시대>, <자동피아노>는 다른 내용이지만,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 그렇지 않은 것, 새로운 것, 해야 하는 것, 하고 있는 것들에서 우린 낯선 상황과 마주치게 될 지도 모른다.
그 낯섬이 내 것같지 않고, 잠깐 의문과 생소함을 가져다 줄지도.
어떤 사건, 혹은 어떤 일들은 나른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내가 하는 일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되돌아봄의 긍정으로 돌아올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109p)"라는 문장 때문에 악기들의 도서관을 차리게 된 주인공처럼, 메뉴얼을 쓰면서 돈을 벌었던 나에게 메뉴얼 하나가 삶의 행로를 바꾸게 한 것처럼, 나에게 두려움과 정신적 강박을 주게 한 사건이 나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해 준 <비닐광 시대>의 디제이처럼, 괜찮은 피아니스트로 생각하고 살던 삶에 한 이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방향을 돌린 <자동피아노>의 피아니스트처럼 살아가는 것은 익숙한 일만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언제든 어떤 일이 튀어나와 처음과는 다른 곳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말하고 있다.


엇박자로 고교시절 축제를 망쳐버렸던 친구가 등장하는 <엇박자 D>. 아이러니하게 그가 콘서트를 기획하겠다고 연락해 오고 그를 통해 수십년에 지나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불쑥, 나타난 친구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 불쑥 사라진 엄마가 등장하는 <무방향 버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이 한 줄로 연결되는 순간, 삶이 바뀐다. 그 줄을 길게 늘인 것이 한 인간의 삶이 아닐까."(112p)

<악기들의 도서관>의 중심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단편 하나 하나가 이 메시지를 중심 주제로 담고 있다.


낯선 일들로 나는 살짝 내 항로를 다시 조정한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나, 나를 찾아온 그 낯선 일들은 우연이 아니었다.
익숙하지만 낯설게, 때때로 삶은 그렇게 변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7-24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