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정치 - 김어준의 명랑시민정치교본
김어준 지음, 지승호 엮음 / 푸른숲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어준은 뛰어나다.
그의 뛰어난 점은 여러 가지겠지만,
나는 꼼수다, 란 프로그램과 이 책을 통하여 보게 된 그의 가장 큰 정치적 장점은,
한국 사회의 정치가들이,
특히 진보 정치가들이 국민이 알아먹지 못하는 자기들만의 방언으로 주절거린다는 한계를 가져 대중성을 잃을 때,
김어준은 '무학'의 정신으로 누구나 알아먹을 수 있는 말로 풀어주고 요약해준다는 데 있다. 

그의 무학은 그 자신이 학력이 부족함을 뜻하진 않는다.
그는 배운 사람의 용어로 국민을 '계몽'하려는 진보 정치가들에게는
왠지 '재수없음'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싸가지 없다는 소릴 듣는 유시민과 진중권이 그런 케이스일 거다. 

김어준의 코멘트야 말로 예의 범절이나 표준과는 거리가 멀다.
씨바, 졸라는 정겨운 감탄사와 부사로 승화되었고,
방송의 절반은 컥컥거리고 웃는 소리로 때운다.
그렇지만, 그의 방송의 최대 장점은,
옆에 앉은 게스트나 정봉주, 주진우의 장황한 설명을
적절한 대목에서 '스무 자 이내'로 요약해 내는 데 있다. 

이적지 이렇게 '무학의 설명'을 간명하게 내린 정치학자는 없었다.
그가 내세우는 내용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다.
한겨레 21이나 시사IN 같은 취재보도 주간지들에 늘상 등장하는 것인데,
이런 진보잡지들의 가장 큰 약점은 그 매체를 볼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나 읽고 앉았다는 데 있다.  

인간이 없는 진보가 어떻게 진보야, 진보도 강박이 되면 진상 되는 거라고...(212) 

정치는 연애와 같다.
진보 정당의 방식은 이런 식이다. 

처음 만난 상대 앞에 재무 계획서, 신혼방 설계도를 딱 꺼내놔.
그리고 입주할 주택의 입지 조건과 구입할 차량의 대출 조건 및 주변 교육 환경의 우수성에 대해
부동산과 금융, 교육 전문 용어를 섞어 진지하게 프레젠테이션하지.
그런 다음 건조한 표정으로 바로 결혼하재.
만약 나와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이 속물이라 더 큰집과 더 큰 자동차에 넘어간 방증이라며. 

그걸 당한 상대는,
당신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당신 패션부터 좀 후줄근한 것이 촌스러운데다,
자료는 열심히 준비는 한 것 같지만 뭔 소린지 알아듣지 못하겠고,
결정적으로 내가 당신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게
왜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일이냐며 일어나 떠나버려. 

남겨진 진보군은 자기 프러포즈가 실패한 원인을 열심히 분석하다가
입지조건과 대출조건의 우수성을 다른 경쟁자들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못했기 때문이라고
혼자 결론내리지.

그렇게 연애한번 못해봤으면서
꼭 결혼할 거라고, 혼자 다짐하지. 20년 후에. 아, 슬퍼~

더 슬픈 건 뭐냐.
욕심 많고 잇속 빠른 보수 군이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진보 군이 책상 위에 남기고 간 계획서와 설계도를 집어와서는
표지만 엄청 화려하게 바꾸고 총천연색 컬러로 인쇄해서,
자리를 박차고 떠난 국민 양을 찾아가 계획서를 다시 내 놓는다는 거.
하지만 그 내용은 읽어주지 않아.
휘리릭 페이지만 넘기면서
대신 장미 한 송이 안겨주고 레스토랑으로 데려가서 엄청 맛있는 스테이크를 시키지. 

그들은 그렇게 연애를 시작해 버리네.
그런데 레스토랑에서 나올 때야 국민 양은 알게 되지.
그 장미는 플라스택이고, 그 밥값은 자기가 내는 거였다는 걸. 

노회찬은 "삼겹살 굽는 불판을 갈아야 한다."는 대중언어를 구사한 진보정치인이었다.(213)

김어준은 현실 정치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게 해준 가카께 무한 감사를 느낀다.
그렇지만 현실 정치에 끼어들 틈입 지점을 누구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리기만 하는 시대의 아픔을
라디오 방송이라는 그것도 스티브 잡스의 은혜를 입은 아이폰의 시대를 틈타서,
나는 꼼수다라는 희대의 인기 프로그램을 창조하게 된 것이다. 

나꼼수는 언론 통제의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알기 쉬운 언어로 정치의 맥을 짚어주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 안의 다양한 계파와 인맥이 보여주듯,
한국 사회의 구조는 역사의 물결이 흔적을 남겨 놓았다.
70년대 유신의 잔재부터, 80년대 개발독재의 잔재까지...
80년대 저항의 문화와 90년대 혼란의 문화가 오롯이 흔적으로 남은 것이
21세기 한국 정치의 지형인 것인 바,
박영선, 박원순, 홍준표도 찍소리 못하고 까라면 까고 죽으라면 죽는 방송.
그렇지만 정말 궁금한 것은 파헤치고 마는 방송. 

이것이 나는 꼼수다의 최대 특장이다.
닥치고 정치가 계속 1위를 하고 있는데, 어쩌면 그것은 부가적 기능밖에 못한다고 본다.
일단 방송에 입문한 사람들은 계속 자가 발전을 하여 정치에 관심을 가진 존재로 진화할 것이고,
김어준, 김용민, 정봉주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책을 통하여 조금 더 맥락을 깊게 읽을 정도의 보조 교재로 보인다. 

5개월 남은 총선과 12개월 남은 대선에서 어떤 꼼수가 등장할지,
그 꼼수를 어떻게 해석하면서 <쫄지 말아야> 이길지,
국민에게 들려줄 수 있는 매체를 가졌다는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심지어 그 방송이 근엄하거나 비장한 맛은 하나도 없고,
유쾌하고 경쾌하고 통쾌하고 명쾌한 방송이니 그 방송의 힘은 무궁무진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유수 대학원들에서 특강까지 잡혀있다고 하는데,
정봉주 전 의원의 여권을 안 내주는 웃기는 꼼수까지 등장한다.
국제적으로 인권을 탄압하는 표본이 되는 사건이 되시겠다.  

눈을 깔고 있는 김어준의 모습과 검은 넥타이(노빠로써의 근조란다.)도 포스가 느껴지지만,
일단 읽고 보면 김어준의 논리적 전개의 배경에는 치밀한 사실들이 배경으로 깔려있고,
소설처럼, 사건의 인과관계를 엮어내는 그의 힘은,
저들이 그토록 감추고자 하는 사건들의 고리를 일거에 명약관화하게 드러내는 파워가 있다. 

제목도 '닥치고 정치'라니 참 잘 지었다.
우석훈처럼 명랑을 입에나 달고 사는 사람들에 비하자면,
박원순처럼 권위를 팽개친 지식인이거나,
김어준처럼 애초에 권위따윈 없었던 지식인이 인기를 끄는 시대를 산다는 것에 희망마저 느낀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까지 묻는다.
"선생님, 최효종이 고발당했다는데요..."
아, 강용석, 그 사람 웃긴 사람인데, 그 배경을 나꼼수를 통해 알고 있으니 재밌게 이야길 나눌 수도 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일반적으로 '혐오감, 피로감'으로 남기 쉽다.
디테일한 뒷이야기들을 모두 찾아 읽고 나만의 구도로 사고를 정리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
디테일한 이야기들을 모아서 유쾌하게 쌈빡하게 정리해주는 방송, 무궁하길 바란다.  

---------------

208. 군산복합체를 '군사복합체'로 쓴 곳이 있습니다.
김용민 피디님, 주국을 조국으로 바꾼 거만 방송하지 말고 이거도 고쳐 주세요~^^ 

212. 동변상련... ㅋㅋ 똥이 같으면 서로 안타깝나?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잘라 2011-11-18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글샘님, 마지막 한 줄 때문에 아침부터 웃음보터져서
꺼이꺼이꺼이 거의 흐느끼다 갑니다요. ^^

글샘 2011-11-18 17:12   좋아요 0 | URL
음, 알라딘 수준이 동변상련 정도군요. ㅋ
그동안 제가 너무 수준높고 심도있는 리뷰를 올린 것 같아 반성하고 있습니다.

pjy 2011-11-18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변상련~ㅋㅋㅋㅋㅋ어쩌란말입니까^^

글샘 2011-11-18 17:13   좋아요 0 | URL
글쎄요, 정말 어쩌라구요. ㅎㅎ

saint236 2011-11-1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닥정의 가장 큰 장점은 재미있다는 거죠. 만화책 읽듯이 술술술...마지막 줄은...ㅋㅋㅋ

글샘 2011-11-18 17:13   좋아요 0 | URL
수정하면 김용민 목사아들돼지 피디님이 말해 주시겠죠?

마녀고양이 2011-11-18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제목 참 잘 지었어요...
최근에는 방송도 못 들었는뎅... ㅠㅠ.

이 책 지난번에 만지작거리다 스케줄에 밀려 못 샀는데, 오늘 나가는 길에 사서 봐야겠어요.
알라디너 몽땅 한번씩 읽으시는 책인듯~

글샘 2011-11-18 17:14   좋아요 0 | URL
저도 조금씩 방송 듣는데, 끊어가며 들어도 재밌더군요.
요즘 이 책이 인기가 좋습니다. 읽어 보세요~!

순오기 2011-11-18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며칠전 받았는데 나꼼수 매니아인 남편이 먼저 읽는다고 챙겨갔어요.
처음 몇 장만 봤는데도 빨려들었어요.
꼼꼼한 글샘님한테 걸려들었군요, 동변상련~~~ ㅋㅋㅋ

글샘 2011-11-18 17:15   좋아요 0 | URL
닭, 꼬꼬!
치고, 퍽@ㅜ@
정치...
저한텐 왜이리 오타가 잘 뵈는지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