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놀토다.
지지난 주부터 2주간 등교하는 토요일이었는데 말이야.
토요일이 쉬는 날이 되면 누가 손해를 볼까?
회사 사장님이겠지.  
쉬는 날이 많으면 놀러 다니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고, 
장사하는 사람들도 경기가 많이 풀리는 원린데 말야.
학교도 몇 년 후면 토요일은 쉬는 날이 되겠지. ^^
민우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면. ㅋㅋ 

오늘은 1950년대.
전쟁 이후의 각박한 시대에 쓸쓸한 시를 쓴 박인환이란 시인 이야길 좀 할게.
우선, 그이의 유명한 '얼굴'을 읽어 보자.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기를 꽂고 산들, 무얼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얼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 밤내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르는데……
가슴에 돌단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헤어져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 -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얼굴) 

수미상관으로 나오는 이야기.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유행가 가사에 이런 말이 있더라.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되어 버리는 사연...' 

사람의 관계는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지.
아는 사람도 '관심있는 사람'과 '별 관심 없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고...
<남>이란 건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보니,
'별 관심 없는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닐까 해.
근데, 모르는 사람이야 나랑 관계가 없는 거니깐...
관계를 맺으면서 <관심없는 사람>이 되지 말자... 뭐, 이런 거 아닐까? 

1940년대에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1950년대는 한국전쟁이 있었단다.
전쟁.
그 무서운 시대.
전쟁이 무서운 것은 <우리 편> 아니면 다 죽여버리는 일이기 때문이야.
바로 <남>이 그만큼 무서운 거지.
<남>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것이 전쟁이란다.  
전쟁 이전에는 <너와 나>보다는 <인간>이란 한 종족 안에서 함께라고 생각했는데,
큰 전쟁 이후에, <너>와 <나>는 남이지. 또 <너희 나라>와 <우리 나라>는 적대국이고. 

이런 시기에 유명해진 것이 <실존>이란 것이야.
일반적으로 <인간>은 이렇다... 말고,
바로 <지금 여기> 있는 <나>의 실제 존재.
살에서 땀냄새가 나고, 발고랑내도 좀 나고, 밥먹으면 입냄새도 나는... 그런 실존.
그러던 사람이 폭탄 한 방 터지면... 온기가 사라지는 시체 토막이 되어버렸거든.
그런 시대의 노래야. '얼굴'

기를 꽂고 사는 일.
깃발은 이편 저편을 가르는 표시잖아. 청군과 백군. 미국과 소련... 이렇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이념의 깃발이 다른 것.
그런 것이 인간 실존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느냐... 이런 생각이겠지.
기를 꽂고 산들 무엇하나. 

물빛(검은 색)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로운 학처럼 고상하게 살려고 해도 소용없어.
인간은 꽃처럼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야.
총알 한 방이면 차가운 시체로 누워버리는 존재니깐.

사랑을 아는 나이 이전부터, 기다림부터 배워버린 불쌍한 실존.
밤새 비가 내리고, 눈물도 흘러 내리고...

가슴에 쌓은 돌단은...
뭔가를 간절히 기도하고 바라는 마음인데,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단 한마디만 여운을 남기는데,
바람처럼, 신기루처럼, 아스라한 별처럼...
그대와 나의 관계는 허무할 뿐이었나봐... 

그래서 이 사람은 이런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어.
물음 : 도대체 왜 사람마다 다른 얼굴, 다른 표정을 갖게 된 걸까?
화자의 답 :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 -,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다음엔 아주 유명한 노래야. 박인환의 <세월이 가면> 한 번 읽어 보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세월이 가면)


이 노래도 수미상관이지.
이제 그 사람 이름은 잊은 것 같아도, 내 마음 속에 뚜렷이 남은 그 사람.
마지막에 <내 서늘한 가슴> 이렇게 촉각적으로 표현했구나.
서늘한 가슴~ 하니깐 어떤 느낌이 나니?
헤어짐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진 않지만, 왠지 모를 서러움에 가슴 아픈 느낌.  
1970년대에 박인희란 가수가 노래로 불러서 유명해진 노래.

한국도 전쟁 이전엔 농촌 사회였고 변화가 적은 사회였단다.
그렇지만 전쟁 이후, 만남과 헤어짐이 일상이 되어버린 그런 시대가 되고 말지.
도시적인 삶이 주는 상실감, 그리고 그 추억과 회상...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가슴에 남는 느낌을 '정서'라고 한단다.
이 시의 정서는 <상실한 것들을 가슴에 남겨 두는 그리움의 애상감> 같은 것이지.

모든 것이 떨어지는 가을의 벤치 가에서
헤어져버린 사랑을 추억하는 슬픈 노래.

이 노래는 명동 어느 술집에서 작가는 이 시를 읊었고,
친구 김진섭이 즉흥적으로 작곡하였다는 에피소드가 함께 노래로 잘 알려진 작품이란다.

전쟁 이후의 상실감, 그리고 떠돌이(보헤미안)의 피난 경험, 헤어짐의 허무함 등이 드러난 도시적인 시야.
전쟁의 상실감을 드러내주는 시를 한 편 더 보자.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 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 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 등대에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목마와 숙녀)

시의 제목은 '목마와 숙녀'란다.
목마는 <동화적인 순수한 꿈>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이고,
숙녀는 처음에 등장한 <버지니아 울프>란 작가라고 생각해 보자.
근데, 버지니아 울프는 전후의 불안과 절망으로 얼룩진 신경증으로 투신자살한 영국의 여류작가란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제목이 <To the Lighthouse 등대로...> 이런 책이야...
시에도 나오잖아. 그치?
그러니까, 순수한 꿈은 어디로 가고 전쟁 후의 불안과 절망만 가득한가... 이런 것으로 봐도 좋겠다. 

주제는 딱 나와있어. <페시미즘>, 비관주의, 허무주의, 허무함. 이런 것.
그런 전쟁 후 허무주의를 잘 드러낸 사람들에게 <다다이즘>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그 '다다'가 '목마'란 뜻이래.
어린 시절의 동화같은 아름다운 세상을 잃어버린 참혹한 전쟁 이후의 시대.
다다이즘의 시대, 페시니즘의 시대... 

허무하니깐 뭐가 나오지? 술~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별은 보통 무얼 상징할까?
희망, 꿈, 소망... 이런 거잖아.
허무로 가득한 술병에 소망이 떨어져 내린대... 슬픈 시대.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은 '남성의 성기'를 표현한 것이기도 하고,
원시적 생명력의 건강함을 뜻하기도 해.
동물적인 생명력만 남은 전쟁 이후의 허무한 시대.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 시절.
쓸쓸한 가을.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전쟁 이후의 시절.
술에 취해 쓰러뜨린 술병.
목메어 우는 삶. 

이런 힘겨운 인간 존재를 <실존 주의>는 그리고 있단다.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화자가 가치있게 생각했던 것이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리는 무서운 상황...

그런 무서운 상황을 수용해야하는 화자는 슬프겠지.
주제는 <전쟁 이후의 허무와 고독으로 가득한 인간의 실존>,
또는 <모든 떠나가는 것들에 대한 애상과 허무> 이런 것이 되겠다. 

'한 잔의 술, 버지니아 울프, 목마, 숙녀, 방울 소리, 가을, 술병, 별, 가슴, 소녀,
정원, 초목, 문학, 인생, 사랑, 진리, 애증의 그림자, 세월, 고립, 작별, 바람, 여류 작가,
등대, 불, 페시미즘, 희미한 의식, 바위, 청춘을 찾는 뱀, 잡지의 표지, 가을 바람 소리'

이런 시어는 부드럽고 감미롭지만,
시를 읽고 강한 서러움 또는 서글픔을 느낄 수 있는 시였을 거야.
그 당시 사람들이라면... 

지금도 살기는 팍팍한 시절이지만,
그래도 이런 전쟁 직후에 살지 않은 것만으로도
따뜻하고 배부른 우리 <실존>은 조금 더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살자꾸나. 

즐겁고 보람찬 주말, 행복하게 보내자~
사랑한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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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1-14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는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이 박인환 시인의 시를 가사에 붙인 노래인줄 알았답니다.^^;;
하지만 박인희라는 가수의 노래를 듣고 난 뒤에 알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글샘님이 소개된 두 편의 시는 우리나라의 명시 베스트에 손꼽을 정도로
유명한 시이지만, 요즘 문학 교과서나 문학 문제집에는 보기 드문 시인거 같습니다.
아마도 '실존' 이라는, 수험생들에게는 까다로울지 모르는 주제를 다룬다는 점과
내용이 허무주의적 분위기가 강하다보니 요즘 학생들에게는 생소한 시인과 작품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저는 이 박인환의 대표작인 두 시를 문학 수업 시간에 배워서 알게 되었다기보다는
우연히 국어 선생님이 소개하게 되어서 알게 되었답니다. 예전에는 문학 교과서에 자주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노래가사로 만들 정도로 유명한 시인데도 요즘 성적 위주의 입시 사회라서
학생들이 정말 시 감상다운 감상을 하지 못한게 씁쓸하기만 하네요.
주말에도 좋은 시 감상했고 글 잘 읽었습니다.

글샘 2010-11-14 21:10   좋아요 0 | URL
70년대는 가난과 낭만이 좌절과 희망 사이에서 나부끼던 시절이었죠.
그러던 시절에 어울리던 목소리의 박인희가 조금 떨리는 톤으로 읽어준 시들은 가슴에 깊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욕망과 가난의 간극이 갈수록 멀어지는 시대를 만나, 다시 박인희를 듣자니 가슴이 쎄~~합니다.

비로그인 2010-11-14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인환 시인 하면 아주 나이 드신 분들은 명동을 떠올리겠지만 제 또래는 아마도 가수 박인희를 떠올리지 않을까요? <세월이 가면>을 노래한데다 <목마와 숙녀>를 낭송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기도 하니까요. 덕분에 오랜만에 옛생각에 젖어보았습니다^^

글샘 2010-11-14 21:10   좋아요 0 | URL
그래요. 이런 시를 읽으면, 옛 생각을 않을 수가 없죠. ^^
벌써 나이가 들고 있다는 증거. 옛날 생각이나 하고... ㅋㅋ

gimssim 2010-11-14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은 박인환 시인의 주옥같은 시를 음미하게 되었군요.
학창시절, 무던히도 외웠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외람되게도 그럴듯한 연애편지를 쓰기 위해 한구절씩 슬쩍 인용했던 기억도 납니다.
특히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되기 싫은 까닭이다'를요.
가슴절절 끓었던 시절은 가고
인제는 정말 '국화 앞에 선 누님'의 세월 위에 서 있군요.
오늘 교회에 갔다와서 셀카로 이십여 장의 사진을 찍었드랬습니다.
화장을 하고 성장을 할 때가 주로 주일이어서...
적당히 살이찌고 주름진 아줌마가 프레임 속에 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만하면 됐다, 위로했드랬습니다.

글샘 2010-11-16 22:30   좋아요 0 | URL
ㅎㅎ
박인희의 그 목소리는 아직도 귓전에 청청하죠.
이제는 돌아와 국화 앞에 선 나이들이 되었지만,
옛 시절의 맑은 정신, 그 젊은 마음은 내 가슴에 남아 있죠. ^^

반딧불이 2010-11-23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박인희도 생각나지만 박인환이 죽었을 때 장례식장에도 안갔다는 김수영이 더 생각납니다.

글샘 2010-11-24 21:08   좋아요 0 | URL
ㅎㅎ 김수영 사진 보면, 역쉬 꼴통같이 생겼어요. ㅎㅎ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전 몰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