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무더운 여름날입니다.
앞산에서 매미들이 참~~~하게 찌~~~소리를 내고 있답니다.
매미들은 더위를 보고 가을의 끝을 느끼면서 짝을 찾는 저 소리를 낸다지요.
매미들도 생각하는 가을을 우리도 생각해보면 좀 시원해 질는지요. ^^
뭘 떠들었나 봤더니, 뭐, 삶과 죽음, 존재의 본질, 이런 데까지 왔으니, 이제 뭘 할까요?
오늘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아니, 강은교의 '사랑법'을 통해서, 사랑이란 도대체 어떻게 생긴 놈인지,
형상화될 수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 볼까 합니다.
우선, 강은교의 <사랑법>을 한번 낭송해 보세요~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강은교, 사랑법>
뭐, 사랑에 대해서... 모르시는 분은 없잖아요.
다들 잘 아시죠. 사랑.
그런데, 이 시의 제목은 사랑법,입니다.
영어로 하면, Art Of Love 정도 되려나...
'사랑의 기술', '사랑하는 법' 이런 말이라니, 좀 딱딱해 보이지만,
왜 그런 프로그램 있잖아요.
생활의 달인.
어떤 기술에서 완벽한 경지에 이른 달인의 몸짓이나 동작을 보면, 그건 예술이죠.
캬, 예술이다.
그런 거 아닐까합니다.
사랑에도, 햐~~ 예술이야... 이런 경지가 있을까요?
제가 이 시와 어울리는 사진을 찾으려했는데, 위에 석굴암 본존불 사진을 올렸습니다.
이 시에서 제가 주목한 단어는,
바로 '실눈'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실눈.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이미지 검색을 했는데,
제 마음에 꼭 드는 부처님 실눈을 올린 사진은 못찾았습니다.
저 사진으로 대략 이해만 해 주시길...
왜 자식 길러 보면 잘한 일에는 무작정 칭찬을 아끼지 않지만,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모든 사건을 야단치지 않잖아요.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보자... 이러면서.
그러다 보면, 또 자식이 제 자리로 오기도 하구요.
그런 부모 마음 비슷한 것이 '실눈으로 보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통일 신라시대의 부처님은, 가장 화려한 불교 융성기의 표현입니다.
이 시대의 부처님은 지존의 위치에서 불행의 도탄에서 허우적거리는 중생을 내려다 봅니다.
깨달은 분으로서의 부처님은 직접 도와주시진 않죠.
그저,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바라보시는 건데,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매일 욕심에 끄달리고, 그 욕심이 집착을 낳고, 집착이 어리석을 행동을 하게 만들고...
그 인간을 두 눈 뜨고 도저히 볼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부처님의 사랑법은, 실눈으로 보기, 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에 이른 겁니다.
천 개의 손으로 그 중생을 도와주라고 보내신 분이 바로 천수관음보살이죠.
우리의 현세를 돌보신다는 관음보살님.
관음..이란 말에는 또다른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너희의 어리석은 일, 불쌍한 일은 내가 모두 보고 있다.(觀)
그리고 너희 마음아픈 일, 가슴 찢기는 소리를 내가 모두 듣고 있다.(音)
너희의 평안한 삶을 이루기 위하여 내가 끝없이 도와주고 기원하겠다. 천 개의 손으로...(千手)
참고로, 미래불은 '미륵'이고, 저승을 돌보는 부처는 '아미타불'이 되겠습니다.
강은교의 사랑법을 제각기 해석할 수 있겠지만,
저는 부처님의 저 반개한 눈처럼,
실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입장바꿔 생각해 보자는 <역지사지>가 되기도 하겠지요.
내 눈을 바라봐, 넌 할 수가 있고, 이런 건방진 태도를 부처님이 어떻게 보실까요? ㅋㅋ
잘못한 건 대충 봐 넘겨주고, 좋은 건 칭찬 대따 하고... 이렇게...
잘못한 거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는 사람, 참 까칠하잖아요. 아무리 그가 옳다 하더라도...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것/ 침묵할 것
떠들지 말고, 침묵하면서 보고 있는 것.
다 알면서 조용히 있는 것. 이것이 사랑일까요?
꽃, 하늘, 무덤... 존재와 이상과 죽음에 대하여... 아는 체하지 말라는 말일까요?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대 살 속의 날개... 이미 오래 전에 굳어버린 그 날개.
아, 나는 그것이 마음 아픕니다.
내 살 속의 무한한 가능성, 그 날개를 어디서 잃어버린 것일까.
마기님, 당신의 살 속의 무한한 가능성의 날개는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요.
또 우리의 마음은 쉽게 망상에 빠지는 꿈에 잠기고, 어디로 자꾸 흐르고, 욕심에 끄달리고 마는 것인지요.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네가 부처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양철나무꾼님, 부처님 맞으시죠?
근데, 니가 부처야~ 이런 말 많이 들으셨지만, 양철나무꾼님, 제 특강 들으면서 그러시죠?
글샘은 참 훌륭한 국어샘이시구나! ㅋㅋ 대단한 지식인인걸~(완전 자뻑에 빠져 살고있는 중...)
근데, 난 왜 시라곤 이렇게 아는 게 없냐~ 에효 =3=3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는 구절에서 저는 부처님의 시선을 느낍니다.
그대 등 뒤에서 보는 시선.
뭘까요?
그것은 바로 '나의 시선'이 아닌가요?
내가 보는 시선.
내 등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는 납량특집괴기 시리즈 말구요. ^^
내 등 뒤에서 저 하늘을, 저 꽃을, 나의 꿈을 바라보는 시선.
그것이 부처님의 시선이 아닐까...
상당히 주관적인 해석인 줄 저도 압니다만,
실눈 뜬 사랑,
그대 등 뒤의 가장 큰 하늘...
이런 것들을 엮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는 이야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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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렇다면, 강은교는 <사랑>을 무엇으로 형상화한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실눈,입니다.
보이지 않는 '사랑'이란 추상을,
떠올릴 수 있는 '실눈'이란 구체로 형상화한 것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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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러면 보통 플라토닉 러브... 뭐, 이런 말도 있고, 좀 낮은 건 에로틱한 러브... 이런 거도 있죠.
플라톤은 <국가>라는 책을 쓴 그리스의 철학자인데,
플라톤 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죠?
바로 이데아 인데요.
데미우르고스(조물주)가 이데아(이상적 형상)에 따라 세상을 창조했다고 해요.
이데아는 '완벽한 형상'으로 상정된 것이랍니다.
이데아와 상반된 것이 '감각'적인 세상이죠.
그런데, 플라톤이 인류 문명에 끼친 가장 큰 공적이라면, 역시 세상을 둘로 나누는 방법을 체계화했다는 것입니다.
좀 어려운 말로 이분법. ㅋㅋ 안 어렵죠?
그의 국가는 바로 세상을 둘로 나눈 거죠. 국가와 안 국가, 국민과 안 국민, 내국인과 외국인, 식민지시대 국민과 말 안 듣는 국민. 그래서 만든 학교가 <국민 학교> 천황 폐하의 뜻을 받드는 국민을 만드는 학교였죠. 우리가 다 다닌...
플라토닉 러브...란 이상적인 사랑이고, 이성이 지배하는 사랑이란 의미일 텐데요.
우리는 몸뚱아리를 지닌 감각적인 존재이므로 이런 사랑을 하기는 쉽지 않겠지요. 바람직한 거도 아니구요.
플라토닉이란 말 그대로, 사랑을 이렇게 둘로 나누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기도 하죠.
조정래의 아내인 김초혜 시인의 <사랑굿 1>도 유명한 시입니다.
그대 내게 오지 않음은
만남이 싫어 아니라
떠남을
두려워함인 것을 압니다
나의 눈물이 당신인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체
감추어 두는
숨은 뜻은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얻을래야 얻을 수 없는
화염 때문임을 압니다
곁에 있는
아픔도 아픔이지만
보내는 아픔이
더 크기에
그립고 사는
사랑의 혹법(酷法)을 압니다
두 마음이 맞비치어
모든 것 되어도
갖고 싶어 갖지 않는
사랑의 보(褓)를 묶을 줄 압니다. <김초혜, 사랑굿 1>
글쎄요. 김초혜 시인이 이 시에서 다룬 사랑은 조금 마음아픈 사랑이기도 하네요.
그렇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이 무상한 것이라면, 모든 사랑은 이별이 예정되어있다는 '회자정리'도 이해가 가겠지요.
사랑은 우리 마음에 '버릴래야 버릴 수 없고, 얻을래야 얻을 수 없는 화염'을 던져주기 때문이라네요.
불경에도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고 했지만, 사랑을 '화염'이라고 표현한 것은 참 멋지지 않습니까?
그립고 사는 사랑의 혹법.
히야~ 그리워하면서 살아가는 사랑의 혹독한 법리.
이 시인이 조정래랑 살면서 다른 남자 생각을 하면서 썼다면 좀 유치할 수 있지만,
혹시 이 시인은 조정래랑 살면서,
조정래의 영혼 세계에 다가서지 못하는 자기의 마음을 쓴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저는 소름이 다 오싹 돋는데요.
네가 곁에 있어도
나는 네가 그립다 <류시화>
이런 경지가 아닌가 해서요. ^^
모두를, 당신의 모두를 가지고 싶은 큰 사랑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서 아무 것도, 당신의 아무 것도 가지지 않기로 마음 먹은
그런 마음, 그런 사랑이 바로
시인의 <마음의 보자기>입니다.
그런 마음의 혼란을 겪으면서, 시인은 <사랑법>이란 단정하면서도 과묵한 용어 대신
<사랑굿>이란 좀 혼란스러우면서도 흥청거리는 용어를 골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 poetry>를 '세계의 자아화'라는 말로 풀어쓴 사람이 있습니다.
시는 세계에서 일어난 모든 고통스런 일, 즐거운 일, 기억할 만한 일들을,
자아 속에서 녹여내어,
자기의 언어로, - 독백으로- 풀어낸 것이란 말이지요.
세계의 자아화 하니깐 어려워 보이지만,
세계의 일을 자기의 말로 풀어본 것, 하면 별거 아니죠. ^^
지난 시간에 조삼모사 수법을 가르쳐 드렸지요?
좀 복잡한 시 읽고 나면, 소화도 잘 되는 말랑한 시를 읽어야 하는 법입니다. 조삼모사 ㅋ
사랑시 하면 역시 김남조의 <너를 위하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건 교과서에도 오랫동안 실려있던 노래입니다.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 한다
가만히 눈뜨는 건
믿을수 없을 만치의
축원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 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너를 위하여, 김남조>
이분 우리 대학 선배님인데요. ㅋㅋ 대학 다닐 시절부터 연애깨나 하셨다더군요.
연애시의 달인이시죠.
이런 시는 다들 이해가 가시죠?
아침에 눈을 뜰 때의 '축원'
'환한 영혼의 내 사람' ... 위험한 짐승 말구요. ㅋㅋ
저는 이 사람의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보는> 시선이 또 눈에 잡힙니다.
제가 뭘 생각했을까요?
어떤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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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실눈,
입니다. ^^
청맹과니의 두 눈 번히 뜨고 있으면서도 앞에서 일어나는 일도 알아채지 못하는 어리석은 눈 말구요.
실눈.
가느스름 뜨고 있으면서도,
볼거 다 보는 그런 눈이요.
모르는 체 하면서, 다 아는,
마기님이 이야기하신 <진짜>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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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그 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진한 사랑은 뭘까요?
남녀 간의 사랑을, 유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기 복제를 위한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유전자의 입장에서 자기 복제품을 지키기 위한 노력일 것이구요.
어떤 것이 더 클까요?
당연히 부모의 사랑이지요.
자기 복제품을 지키지 못하면, 대체불가능한 상황이니까요.
이성간의 사랑은... 유전자가 아무리 마음아파 하더래도, ㅋㅋ
대체 가능성이 열려 있지 않나요?
어떤 영화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이런 대사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유전자한테 물어보면 답해 주겠지요. ㅎㅎㅎ
대체 가능성 때문이란다...
그럼 자식의 부모님에 대한 사랑은, 과연 어떤 걸까요?
우리가 흔히 효,라고 하는 덕목 말이지요.
식물도 수분이 이뤄지고 나면 급격히 시들듯이, 인간도 자손을 낳고 나면 급격히 노화가 일어납니다.
뭐, 텔로미어... 이런 거가 짧아진다나요?
유전자가 볼 때, 자식이 부모를 사랑해야 할 의무는 별로 없어 보입니다. ^^
낡은 개체는 빨리 노화시키는 게 유전자의 업무이니까요.
그래서 불교나 유교에서 강박적으로 '효'를 강조하는지도 모르지요. ^^
우리 몸 속의 DNA는 디옥시리보 뉴클리어 애시드의 약자입니다. 디-는 2구요, 옥시...는 옥시크린 할때의 산소... 뉴클리어 애시드는 '핵산'이라 하죠. 저는 이 용어의 '산'에서 새콤한 맛을 느끼는데요.
사랑의 새콤한, 또는 짜릿한 전율 같은 것은 유전자 속에 원래 담겨있던 거 아닌가 싶네요. ^^
제가 실업계 고등학교에 한 3년을 근무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좋은 시절이었어요.
종일 책도 많이 읽었구요.(1년에 400권 이상 읽은 적도 있습니다.) 피아노도 배울 정도로 여유가 있었지요.
아쉬운 점은,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가고 싶던 '산티아고 가는 길'을 못 가본 거지만요. 기회는 언제든 오겠죠.
아들 녀석이 공부를 잘 안 해서,
제가 직접 가르친 적이 있었습니다.
근데, 맨날 싸우는 거예요. 저랑 아들이랑.
아니, 싸우는 게 아니라 제가 일방적으로 아이를 비난하는 상황이었지요.
그래서, 아, 이건 아니다...
나는 집에 가면 아빠로서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아이에게 선생님의 <페르소나>를 함께 보여주면, 서로 될 일이 아니다.
이러고, 좋은 학원을 수소문해서 거기로 보내고 말았답니다.
'페르소나'는 가면,이란 뜻이었는데,
그 사람의 역할에 따라 필요한 가면같은 인격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엔 실눈뜨고 보기, 를 잘 하고 있답니다.
실감나더라구요. 실눈뜨고 보니깐 아들에게 아빠가 될 수 있는데, 교사로서의 페르소나를 같이 가지고 있으려니 참 못할 짓이더라구요.
아, 오늘은 사랑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한 것이
뭐, 부처님 이야기도 한참 했고...
예수님 이야기는 안 했군요. ^^
예수님의 사랑이야말로, 혁명가의 그것이 아닐까요?
실눈조차 뜨지 못하는,
자신의 온몸을 바쳐 지키는 소신.
'교수대로부터의 리포트'라는 책이 있는데 말이죠.
거기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오늘이 혁명의 마지막 밤이고, 그대가 혁명의 마지막 전사가 될 지라도, 혁명에 앞장서겠는가?
그런 자만이 진정한 혁명가다.(뭐, 대략 비슷한...)
예수님이야말로, 자신을 다 바쳐 사랑을 구현한 존재가 아닐까...
제가 리뷰에 간혹 인용하는 구절로 '허니가이드'란 것이 있습니다.
"꽃들을 보면, 대여섯 장의 꽃잎의 특정한 꽃잎에 특정한 점들이 쿡쿡 찍혀있다.
그 점들을 <허니 가이드>라고 하는데, 그 점들은 대개 수술의 위쪽(햇볕이 비치는 쪽) 꽃잎에 자리잡고 있다.
곤충들이 보기에, 허니 가이드는 자외선의 영향으로 번쩍번쩍 빛을 내게 되어있다고 한다.
그래서 꽃들이 한창 에너지를 붉은 빛깔에 쓰고 있을 때, 곤충들이 허니 가이드를 따라 날갯짓을 하면서 꿀을 빨아들이는 동작에 따라 그의 날개와 다리들에 수술에서 꽃가루가 묻어 암술머리에 붙게 된다고 한다. 꽃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수술과 암술들은 한결같이 허니 가이드를 따라 휘영청 구부려져 있다. (김규항의 예수전 리뷰에 내가 쓴 글 재인용)"
제가 쓰는 글들이,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에게 '허니가이드'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이창동 감독이 쓰려고 했던 <시 poetry>란 것 안에는,
인간다운 삶의 '그림자'가
지난 시간에 다룬 '존재의 본질'에 투영되어 있는 법이거든요.
인간들이 세계에서 감각적으로 느낀 것들을,
센스가 뛰어난 작가들이 느낀 세계를,
그들의 언어로 형상화한 시들.
이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세계의 <자아화>에 선뜻 다가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제가 허니 가이드라면, 저를 따라와주신 여러분은 꿀벌, 모기, 나비, 날파리...(하나 고르세요. ㅋㅋ)
결국 저와 여러분 사이에서 열매맺는 것은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씨앗'이 되고,
더욱 열심히 광합성하는 여름을 지나서 '열매' 맺는 가을로 가는 길목이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저더러 잘도 끌어오고,
잘도 이어 붙이는 '인용의 달인' 훈장을 수여하시겠다면 기꺼이 받겠습니다. ^^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란 영화가 있었는데요.
어려서부터 엄청 영화를 많이 보던 어떤 감독이 만든 명작 영화를 두고 비판하죠.
야, 너의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들의 '부분부분 조립품'에 불과한 거야...라구요.
저는 애초에 예술을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여러분과 함께, 예술품을 감상하자는 의도에서 시도한 것이구요.
우연히 마기님의 시와 어우러져서 6회나 되도록 이끌려 온 거네요. ^^
동박새 좇아, 동박새 좇아
어제는 하루 종일 산을 헤매고
할미새 좇아, 할미새 좇아
오늘은 하루 종일 들을 헤맸다.
산은 산으로 깊기만 하고
들은 들로 아득만 한데
제풀로 피어나는 패랭이 하나
파랑새 좇지 말고 살라고 한다.
풀꽃으로 한 목숨 살라고 한다.
산에서 놓친 동박새,
이 아침 창가에서 울고
들에서 놓친 할미새,
이 저녁 사립문에서 울고. <오세영, 풀잎의 노래>
전에 <모순의 흙>으로 만났던 오세영 시인의 '풀잎의 노래'입니다.
이 시의 동박새, 할미새, 파랑새는 모두 이상, 이상향, 꿈... 같은 거겠죠.
그런데, 산으로 들로 헤매고 다녀도...
산은 깊고 들은 아득해요... 밑줄 긋고... 거리감, 쓰세요. ^^
현실세계에서 기쁨을 찾으라는 패랭이의 충고에 따라,
화자는 오늘 아침 창가에서 '동박새'를 발견하구요,
바로 이 저녁 사립문에서 '할미새'를 본답니다.
아, 그냥,
유레카!!! 아닐까요?
이 노래를 부른 이는 누구일까요?
오세영 말구요.
제목을 보세요.
네, 나는 풀잎이었습니다.
풀잎이, 깨달았죠. 이 아침 창가에, 이 저녁 사립문에,
내가 바라는 모든 행복과, 기쁨과, 간절히 기도하는 모든 영광이 거기 있다구요.
달나라에 갔는데, 그 돈많은 사장님이, 우주선 고장을 깨달았답니다.
그 사람이 제일 간절히 요구한 상품이 무엇이겠습니까?
산소죠. 산소.
내가 지금 배불리 숨쉬는 이 흔한 산소.
산소같은 하루 보내세요~~ (납량특집, 그 산소 아닙니다. ㅠㅜ)
산소같은 노래 하나 링크할게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오백가지 멋진 말이 생각나는 법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