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세실 님과 마기 님을 위한 특강이라곤 했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깐, 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주제를 조금 바꿔서 가죠.
마기 님이 제 특강에 맞춰서 시를 한 편씩 지어 보시겠다고 하셔서,
마기 님의 시창작의 열정에 불을 지피기 위해서 억지로나마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
오늘은 오세영의 <모순의 흙>입니다. 일단 한 번 읽으세요. 소리 내서~
(세실님, 소리 안 내시네~ ㅋㅋ)
모순의 흙
오 세 영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그릇
언제인가 접시는
깨진다.
생애의 영광을 잔치하는
순간에
바싹 깨지는 그릇
인간은 한 번
죽는다.
물로 반죽하고 불에 그슬려서
비로소 살아있는 흙
누구나 인간은 한 번쯤 물에 젖고
불에 탄다.
하나의 접시가 되리라
깨어져서 완성되는
저 절대의 파멸이 있다면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흙, 그릇.
우선 제목부터 볼게요.
<모순의 흙>
모순의 뜻은 '하나가 성립하면 다른 하나가 절대로 성립할 수 없음'을 말하는 용어입니다.
초나라에서 창과 방패 파는 사람이 이 창은 어떤 방패도 뚫고, 이 방패는 어떤 창도 막는다고 너스레를 떤 데서 나온 용어죠.
시의 맨 끝에서 그릇을 모순의 흙이라고 했습니다.
그릇은 그릇이죠.
그런데, 그릇을 '모순의 흙'이라고 했으니까, 표현법은 A는 B다. 무슨법? 네. 은유법입니다.
은유의 기본이 지난 시간에 뭐라고 했죠? 유사성을 찾는 거라고 했습니다.
그릇 속에서 모순의 흙과의 유사성을 찾아야 합니다. 그걸 찾는 과정이 바로 시의 내용이죠.
1연에서는 '흙으로 빚어진 그릇'은 '흙이 되기 위하여' 빚어졌다고 했습니다.
순서를 바꾸니깐 순환이 보이시죠?
흙이란 재료로 만든 그릇,
다시 깨어져서 흙으로 돌아간다. 순환이죠.
인간으로 치면, 윤회거나...
그 접시가 깨지는 건, 죽음일 겁니다.
근데, 2연에서, 그 죽음은 '생애의 영광을 잔치하는 순간'에 일어난다고 했어요.
그러니깐, 그릇을 가만히 처박아 두면 안 깨지는 것처럼,
가만히 처박혀 살다 죽는 죽음을 두고 이야기하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삶을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살다가,
생애의 영광을 잔치할 나이가 되면, 월계관을 쓰고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을 나이쯤, 접시가 깨지는 사건이 발생하죠.
3연.
흙을 물로 반죽하고 불에 그슬리는 과정은,
인간의 성장과 성숙에 해당하겠죠.
어려서 귀여운 아이들은 성장하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럽지만,
사춘기 정도 되면 영혼의 성숙이 함께해야 올바른 삶이 될 테니까요.
시련을 겪고 성장하는 인간의 영혼. 불에 그슬리는 것처럼 힘든 일은 많으니까 말입니다.
통속적으로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깨어져서 완성되는 파멸이 있다면, 접시가 되고 싶다.
죽음에 대한 화자의 마음 자세가 드러나 있습니다.
접시는 구석에 처박혀 먼지쌓여갈 수도 있지만,
자신은 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완성을 향하여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자세를 견지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죠.
이것이 주제 아닐까요?
치열한 삶을 견지하고자 하는 굳은 의지.
마지막 연은 수미상응이죠.
죽음으로써 삶의 치열함을 드러내는 모순.
이제 이 시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기 위해서 다른 개념을 하나 가져오겠습니다.
과연 <삶>과 <죽음>은 어떤 관계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한 것입니다.
반의어라는 게 있습니다. 반댓말이라고도 하죠.
반의어는 '다른 요소들은 다 같은데, 하나가 다른 말'들 일컫습니다.
스피드 퀴즈할 때 잘 쓰잖아요.
남자 말고?
추운거 반대는?
육군,해군 말고?
끝의 반대는?
마기님, 피아노 말고?
답은... 여자, 더운거, 공군, 처음이나 시작, 마기님은 바욜린이라 하셨나요? ㅎㅎ
반의관계 1. 상보적 반의관계
남자-여자, 남성-여성, 이렇게 이것 아니면 저것인 경우, 즉 모순 관계인 경우.
하나에 속하면 다른 하나에 속할 수 없는 것을 이렇게 부릅니다.
보통 삶-죽음도 여기 넣어서 설명하죠.
반의관계 2. 정도 반의관계
덥다-춥다 사이에는 쬐끔 춥다, 엄청 덥다... 척도를 매길 수 있잖아요.
반의관계 3. 뱡향 반의관계
앞-뒤, 밑바닥 -꼭대기... 이런 거
반의관계 4. 상대적 반의관계
옛날엔 육군만 있다가, 해군이 생기면 육군 반대는 해군, 지금은 공군까지 있구요, 나중엔 우주군도 나올지도...
마기님께 피아노 말고? 하고 물으시면 요즘 바욜린을 배우시려하니깐 다른 악기보다는 바욜린이 생각나실 수도 있단 거구요.
적어논 걸 보니깐, 반의관계 1.을 설명하려는 거 같죠? ^^
저는 삶-죽음을 과연 남-녀처럼 모순관계로 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인간은 남자 또는 여자 라는 분류로 나눌 수 있는데요.
과연 세상엔 <산 사람>과 <죽은 사람>으로 나누어 지는가요?
삶과 죽음이 모순관계라면,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세상에 반반씩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아니면 <살아있을 때>와 <죽어있을 때>가 있든지...
삶과 죽음의 관계는
촛불과 어둠의 관계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새 초를 하나 밝혀 두면, 차츰 초가 타들어 가구요. 밑바닥에 촛농이 흥건히 고일 때쯤,
어느 한 순간,
심지가 파르르 떨다가 피시식~~ 소리를 내면서
매캐한 냄새와 함께 촛불은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 관계는 삶이란 것은 죽음과 병치될 수 없는 모순 관계가 아니고,
어쩌면 삶이란 것이 조금씩 호흡하면서 감소하는 지점이고, 그 호흡이 마칠 지점에서
드디어 등장하는 것이 <죽음>이란 하나의 사건일 뿐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어떤 유명한 분의 에스프리 한 구절을 인용해 보죠.
시작과 끝은 어딘가에 맞닿아 있지만
그들의 접점은 없다.
단지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고 있을 뿐이지.
죽음이란 것이
삶의 끝에서 갑자기 맞닿는,
그렇지만 그 접점을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삶은?
삶은 뫼비우스의 띠입니다.
시지프의 바윗돌처럼 날마다 밀어 올려지고,
다음날 아침이면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밑바닥부터 또 밀어 올려야 하는 것.
그렇지만, 무덤에 가는 그날까지, '어영부영 하다가 그리될 줄 아는 뻔한 것'이 삶이죠.
돌아도 돌아도 자기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운 뫼비우스의 띠.
자기 위치를 파악하는 순간은 단 한 순간.
뫼비우스의 띠가 절단되는,
그릇이 <바싹 깨지는> 그 순간이 아닐는지...
오세영이 삶과 죽음에 대한 사고에 집착하면서 남긴 글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모순의 흙>이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그의 <시월>을 더 좋아합니다.
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10월>
인생의 시월에 다가선 사람의 통찰력.
캘린더에 비유된, 시월쯤의 지점에 선 시선의 아름다움.
아홉 장쯤은 이미 떼어내어져 버렸고,
고작, 두 장의 앞날만 달고 있는 달력의 쓸쓸함.
그리고 그만큼 살아 내었다는 자부심.
시월쯤의 시선은 얼마정도 너그럽고, 그리고 자신을 잃어가는 연습을 해야함을 아는
지혜를 가진 시선일 것이라고 그는 되뇝니다.
오세영은 다른 시 <그릇>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깨어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그릇>
그릇이 깨어지는 일은 이적지 하나의 원형질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던 개체가,
깨어지면서 세상에 생채기를 줄 수 있는 존재로 전락함을 슬퍼한 시인데,
그래서 나는 오세영의 그릇론,에서 보이는 죽음에 대한 통찰보다는,
그의 시월에서 보이는 삶에 대한 관조와 의미 탐색 쪽이 더 마음이 가는 편입니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같은 당연한 명제는 열심히 살도록 재우치는 느낌을 주지 않지만,
<모순의 흙, 그릇>이라고 말하면, 아, 열심히 사랑하고 치열하게 살아야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거 같네요.
마기 님, 오늘은 시를 덧붙이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숙제 면제시켜주는 날도 있어야죠.
면제 사유는... 조 위에 한편 쓰셨으니깐 말이죠. ㅎㅎ
뭐, 좋은 글이 생각나시면 붙여 주시면 더 좋겠구요.
이 글 읽으시는 모든 분, 장마철의 눅눅함을 치열함으로 바삭하게 만드는 오후가 되시길...
8월의 크리스마스,란 영화가 생각나네요.
인생의 8월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아버린 한석규와 심은하가 아름다웠던...
아직 7월쯤의 나이지만,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을 상상하면서 동영상도 한 편 감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