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가치'를 읽으려니, 이런 불친절한... 푼크툼,이란 단어가 나온다.
마치, 이 단어도 모르면, 찾아보든가,
그럴 성실함 없으면, 이 책 읽지 마~
이런 느낌이 든다.
검색해 보니, 성실한 내용이 있어 옮겨 둔다.
신경숙의 '어나벨'에도 이 용어가 나온단다.
<있는 것과 있어보이는 것의 차이>라는 블로그인데, 이름도 멋지군.
고 밑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보려는 의지와 무관심의 차이입니다' 요런 말도 붙여 둠. ^^
결국, 보이는 것은 스투디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의지가 풀크툼인가?
사진의 두 가지 시각 - 스투디움과 푼그툼
스투디움과 푼그툼 생소한 단어다. 신경숙씨의 이번 신작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을 읽다 이 단어를 발견하게 됐다 .
이 두 용어는 사진을 찍는 방법 연구의 방법이란다. 마치 들은 듯도 생소한듯도 싶은 첫느낌이다.
이 이론들은 방대한 사진 연구 일부일 뿐이란다.
조금 어려운 듯 보이지만 사진을 보는 시각에 도움이 될듯 싶어 적어둔다.
스투디움은 쉽게 말해 '올림픽 스타디움'을 떠올리면 좋다.
많은 사람을 포용하는 사진의 시각을 뜻하는 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자연의 아름다움, 조형미, 인감의 감정 등 쉽게 느낌을 읽어 낼 수 있다.
그에 반해 '푼크툼'은 '타이어에 난 펑크'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작은 구멍을 뜻하는 말로 소수의 공감, 혹은 찌르는 듯한 느낌을 의미한다.
작가의 설명 없이는 이해하기가 힘든 철학적인 내용이 담기기도 하기 때문에 해석이 다양하고 또한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된다.
이 두 가지 사진의 시각을 구분짓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무엇을 찍는가이다. 만약 당신이 일출을 찍었다면 스투디움이라 볼 수 있고, 일출 앞에 울고 있는 꼬마를 찍었다면 푼크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생활도 보는 주체의 시각에 따라 달라보있 수 있다. 그것은 자기의 주관이 객관성을 유지하는듯 하지만 실제론 강한 주관이 내제 되있기때문이다.
똑 같은 상황을 어떤이는 스투디움으로 어떤이는 푼그툼으로 보는 것처럼....
신경숙씨 때문에 좋은 용어를 알게 되어 책을 읽고 그외의 부수적 덤을 누리게 되어 독서의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낀다.
(씨, 난 그런 말 쓰는 사람 좀 짱나는구만.... ㅠㅜ)
http://blog.daum.net/shagguer/55?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shagguer%2F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