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의 메리 스튜어트]의 서평을 써주세요.
슈테판 츠바이크의 메리 스튜어트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이마고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영국의 역사에서 가장 슬픈 싸움이었던 스코틀랜드의 가톨릭과 잉글랜드의 개신교 사이의 갈등.
그 사이에서 엘리자베스와 메리는 튜더와 스튜어트 가문의 혈통을 안고 맞선다. 

메리 스튜어트의 죽음 이후로 유럽을 휩쓴 혁명의 열기는 왕들의 목을 뚝뚝 떨구기도 하는...
메리 스튜어트의 전기로 보기에는 너무도 유려한 문체와 탄탄한 구성이 마치 잘 짜여진 소설을 한 편 읽는 느낌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읽긴 했지만, 그의 문체가 어떤지를 알 수는 없었던 것 같은데, 이 책을 다 읽고난 지금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문장력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물론 번역가의 땀방울 역시 그 실력과 함께 어우러진 것이겠지만, 이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글에서 느낄 수 있는 매끄러움을 최대한 발휘한 저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이 이야기를 <북해의 별>을 그린 김혜린의 이미지로나 <베르사이유의 장미>나 <올훼스의 창>으로 유명한 이케다 리요코 같은 작가의 만화로 만난다면 또다른 맛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읽었다. 

얼마 전, 야하다는 소문이 무성하던 '쌍화점'이란 영화를 보았는데, 
영화속의 인물들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도 갖게 되었다.
영화속의 임금은 원나라 공주인 왕비와의 사이에 자식을 갖지 못하는 처지라서, 가장 총애하는 심복과 합궁을 시키고, 왕비와 무사는 사랑하는 사이로 전락한다는 이야긴데...
이거, 메리 스튜어트랑 많이 비슷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기 몸에 대하여 전혀 배우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던 어린 아이가 결혼을 하고, 나중에 몸이 느끼는 자유로운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영화는 정말 좋았는데, 거기 꼭 남자배우들끼리의 몸섞기나 남자 배우의 엉덩이를 과도하게 반복해서 노출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더랬다.  

작가도 이야기했지만, 메리와 엘리자베스의 죽음 이후로 임금이 된 메리의 아들이 후원한 작가가 영국의 문학을 만들다시피한 '셰익스피어'임을 생각한다면, 그의 햄릿이나 맥베드 같은 작품에서 숱하게 메리와 엘리자베스의 대립 구도가 반복되었을 것임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눈길을 주며 읽어야 할 구절이기도 하다.

절대 군주로서의 '왕 또는 여왕'의 사고 방식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태양조차도 자신을 위해서 운행하기를 바라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메리의 단 하나뿐인 혈육, 제임스 5세의 즉위식을 알리는 대목에서,
성문마다 민중이 환호하고 축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큰 횃불들이 온 나라에서 타올랐다. 한순간 - 언제나 오직 한순간 뿐이다 - 다시 기쁨과 평화가 스코틀랜드를 지배하였다.(354)
는 글을 읽으면서, 오직 한순간..이라는 평화를... 메리는 그 한순간 마저도 맛보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짠한 마음과 함께 인생의 덧없음을 스치게 해 준다. 

우유부단한 엘리자베스와 똑부러질 듯 하면서도 늘 잘못된 운명의 키를 누르는 메리의 성격을 슈테판은 이렇게 쓰고 있다.
결론적으로 보면 엘리자베스와 메리 스튜어트 사이의 승부를 결정한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엘리자베스에게는 언제나 행운이 따랐고 메리 스튜어트에게는 언제나 불운이 따랐다. 이 두 사람은 힘으로 겨루거나 인물로 겨루면 거의 비슷했다. 그러나 그들은 운명의 별자리가 달랐다. (425)

아, 나는 이런 대목을 읽으면, 모차르트를 바라보면서 한숨짓는 살리에리. 그리고 <유리 가면>의 마야를 보면서 늘 질투의 분통을 터트리는 아유미의 처지를 생각한다. 

행운은 무엇이고, 운명은 무엇인지...
왜 비슷한 인생을 이토록 다른 길로 인도하는 것인지...
엘리자베스는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의 기틀을 놓은 여왕이 되었지만,
훨씬 혈통으로나 성격으로 보아 여왕의 기품에 가까운 메리는 어두운 성 안에서 어린 나이부터 운명의 밧줄을 고르고 당기다가 젊은 나이에 온갖 불명예를 다 끌어안고, 결국 나와 비슷한 나이에 꼿꼿한 모습으로 죽음에 '여왕'의 자리를 바친다. 

맨 앞에 등장인물의 도해가 죽 적혀 있어서 겁을 조금 먹었는데...(나는 외국 사람들 이름 나오면 엄청 헷갈리는 편이다. 특히 1세, 2세, 주니어도 없는 백년 동안의 고독 같은 소설은 젬병이다. ㅠㅜ) 슈테판의 능력으로 마치 연속극 만화 영화를 보듯 즐겁고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글을 읽게 된다. 

500페이지 이상의 글이 마치 50권짜리 만화를 빌려 두고 야금야금 읽어나가는 것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너무 많아서 부담스럽기보다도 줄어드는 것이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고전에서 읽을 수 있는 인물들의 면모를 생각하려면, 그 당시의 역사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아, 나는 도저히 조선의 '왕'을 훨씬 능가하는 절대 왕정 시대의 귀족들의 삶을 상상하기 힘들다. 마르세유 궁전의 정원을 보면서 마치 큰 도시만 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거기 갇혀 사는 사람들의 답답한 마음까지 생각할 순 없었는데, 이런 작품을 통하여 시대를 넘어 그들의 사고 방식에 접근하는 태도도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마음이 얼마나 쉽게 바뀌는 것인지 말이다. 

<이 책은 서평단 도서로 받은 책이다>
그렇지만, 나는 서평단 도서로 받았다고 해서 주례사 비평을 늘어놓지는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러나, 또한 생각해 보면, 공짜라고 생각하면 조금 너그러워질 수도 있겠다.
그치만, 이 책은 별을 더 주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권해주고 싶은 사람 : 역사물을 좋아하는 독자(세종대왕 같은 책보담도 훨 재밌다.)
  세계사를 어려워했던 사람(나는 세계사 엄청 못했다. ㅠㅜ 이런 책 봐야 한다.)
  베르사이유의 장미나 올훼스의 창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하는 독자라면... 아니면 캔디나 북해의 별, 유리가면 같은 만화처럼 선이 섬세한 만화들... 유럽의 궁중 무도회 같은 것이 등장하는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홀딱 빠져서 읽을 만 하다. 

이 책과 함께 읽기를 권하는 책 : 같은 저자가 지은 <마리 앙투아네트>, 그리고 <발자크 평전>(은 내가 읽고 싶은 책)
  그리고 역사를 읽는다면 반룬의 <인류이야기> 등 

이 책의 매혹적인 부분... 은 도저히 고를 수가 없다.
이 책 전체가 한 편의 대하 드라마고, 오십 권짜리 쫄깃한 만화책과 같고, 우아하고 유려한 언어들의 조직이 독자를 이렇게 행복하게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마지막 대목에서 메리는 죽고, 70이 넘도록 산 엘리자베스가 죽는 대목을 그린 마지막 페이지...(524) 작가는 그 죽음을 이렇게 산뜻하게 적는다. 

창문 아래에는 스코틀랜드 상속자의 심부름꾼이 말에 안장을 채워놓고서 초조하게 약속된 어떤 표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리자베스의 시녀 한 사람이 엘리자베스의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 창문을 통해서 반지 하나를 떨어뜨려 주겠다고 약속을 했던 것이다... 마침내 3월 24일 창문이 덜컹거리더니 여자의 손 하나가 밖으로 나와 반지 하나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이렇게 엘리자베스도 죽는다.  

아, 산다는 건 허망하다. 그렇지만, 이런 책을 읽는 일은 삶을 아름답게 꾸며주기도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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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1-19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슈테판 츠바이크는 역사를 정말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쓰더군요.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또 사놓고 안 읽은 츠바이크 책들이 떠오릅니다. ㅠ.ㅠ

글샘 2009-01-19 09:28   좋아요 0 | URL
네, 정말 흥미진진하면서도 문체가 우아하고 아름답더군요. 서술을 어쩜 그렇게 재미있게 하는지... 사놓고 안 읽은 츠바이크 책... ㅋㅋ 뭘까요?? 워낙 많아서... 저는 요즘엔 사놓고 안 읽은 책이 점점 드뭅니다. ^^ 맨날 빌려다만 보니깐...

파란여우 2009-01-19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와 안인희는 완벽한 커플이지요. 그 중에서 [발자크 평전-푸른숲]은 쵝오!

그나저나 이 메리여왕은 보관함에 담아둔 책으로써 심히 배 아프옵니다아~

글샘 2009-01-20 01:31   좋아요 0 | URL
아, 저 둘이 커플이었군요. 발자크고 읽어보고 싶네요.
올해는 건강하시랬더니... 배가 아프셔서 어쩐담~ ^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