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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개조론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07년 7월
평점 :
유시민은 늘 자유주의자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 책에선 더이상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이제 우파 신자유주의자이고, '대한민국 개조'를 우려하는 '전체주의자'가 되어버렸다.
비판의 시선으로 날카롭던 '항소이유서'의 저자인 유시민과 이 책의 저자 유시민 사이엔,
민주화 투쟁의 시기와 한미 FTA 시기의 한국만큼이나 큰 강물이 이미 자리잡았다.
한 마디로 이 책은 FTA 예찬론이다.
그가 장관 하면서 생각한 것들을 적었는데, 정부는 잘 하니깐, 국민은 믿어라... 이거다.
처음에 '대한 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공화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이런 전제들에 이어 '결국 대한 민국의 왕은 국민이다.'는 결론을 내리며 글을 시작한다.
난 유시민이 이제 맛이 갔다고 느꼈다. 대한 민국은 공화국이 아니다.
토지의 52%를 1%도 안 되는 인간들이 소유한 사유 천국이다.
결국 국민은 왕 노릇을 못하는 걸 무시하고, 너 왕이니깐 이런 거 잘 들어... 하는 고위직 공무원을 역임한 직급을 참칭한 협박이다.
그가 드디어 박정희의 후예가 되었다. 박현채를 욕하고 박정희를 칭찬한다.
민주화 투쟁의 법정에서 '역사가 우리를 판결할 것'이라던 용기는 멍청했던 시기의 치기였던 모양이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지면 사람이 <어른스러워> 진다고 한다.
유시민, 많이 어른스러워졌다. ㅎㅎㅎ 욕인줄은 알까?
"쥐 잘 잡는 고양이를 원하신다면 털 색깔은 따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회 서비스 시장화 전략이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이라면 그것이 우파적이든 좌파적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119)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그는 확실히 맛이 갔다.
백묘 흑묘 논쟁이 불거졌던 중국의 개방 정책과 한미 FTA를 유사한 환경이라 보는 것 자체가 오류다. 백묘 흑묘 논쟁은 우파와 좌파의, 공산주의의 자본주의화를 이야기하는 논쟁이 맞았지만, 한미 FTA를 추진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우파의 노선이 맞지만, 그 파장을 걱정하는 것을 좌파로 매도하는 것은 그가 어른이 된 증거인 모양이다.
정말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이라 착각하고 있는 걸까?
일용직 아르바이트 자리를 수천만개 만들어 과연 국민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
사뿐사뿐 행보를 옮기는 유시민을 생각하니, 그 발걸음이 과연 고양이 같단 생각도 든다.
책임성 없는 진보, 일관성 없는 보수...라고 민노당과 한나라당을 비판하고 있는 대목도 있는데, 과연 그가 민노당을 책임성 없다고 밀어붙일 자격이 있는가? 정말 노무현 최측근인 그는 노무현과 함께 한미 FTA를 책임지고 갈 건가? 한나라당을 보수라고 띄워주는 것도 유시민의 날카로움이 무뎌진 부분으로 읽게 된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는 이의 입에서 '귀중한 그 무엇이 공짜로 제공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나왔다. '무상 의료는 정책이 아니다.'는 말도 한다. 물론 무상 의료의 빈틈을 노린 돈벌이를 하려는 종족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들을 벌주어야지, 귀중한 그 무엇을 그럼 유상으로 돌린다고? 의료 민영화가 그토록 바라는 바인가? 인간을 '목적'으로 다루지 않고 '인적 자원'인 수단으로 취급하는 그의 사고가 잘 드러나 있다.
서울대 출신이고, 학생 운동에서도 늘 앞서 활동했으며, 말도 잘 하고 돋보이는 인물이었던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인간됨'을 모르는 것 아닐까? '잘 난' 1%가 머저리 99%를 끌고간다는 명언을 남기고 싶은 건 아닐까?
한나라당은 의료에 대해 아무 견해가 없어서 비판을 할 수가 없단다.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정당, 그러면서도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한나라당, 정말 행복한 정당, 신이 내린 정당... 이라고 말하는 유시민을 보면서, 이게 반어로 비꼬는 건지, 아니면 내심 정말 부러워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된다. 내 독해력 부족의 탓이리라. 적어도 유시민은 반어로라도 이런 말 해선 안 되는 거 아냐?
그의 공무원 예찬론은 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자부심, 충성심, 열심히 조사 연구.. 학습 능력도 뛰어난 영리한 공복... 공무원들은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도구'로 쓰이는 집단에서 '인간은 목적'이 되기 어려움을 그는 보지 못한 걸까? 아니, 애써 보지 않으려 한 걸까...
악마의 유혹인 '술'에 대한 반응도 미덥지 못하다. 개인적으로 술을 즐기지 못하는 것을 너무 쉽사리 일반화해버리는 게 아닐까? 이 나라의 물장사는 모두 조폭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그는 진정 모르는 걸까? 물장사 없이는 그 많은 모텔들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물장사가 없다면 어마무지하게 많은 여성들이 실업자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유시민에 대해 지나치게 막연한 애정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이 한권으로 유시민과 결별하게 되어버리게 될 예감을 얻는다.
그는 역시 가진 자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장관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언 발에 오줌 누기가 급하지, 일의 전말을 섬세하게 따져 보고, 국민들을 위무하고, 설득시켜 나가는 차근차근함에는 눈을 돌리기 어렵다는 사실도 알았다.
국민 연금이든, 의료 보호든... 선진 통상 국가든, 사회 투자 국가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차근차근 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불신이 좀더 누그러들텐데... 하는 무식한 생각이 든다.
노무현이 한 게 뭔가.
탄핵과 총선 국면에서 '국가보안법' 없앨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노동자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너무도 많이 보여주었고,
'비 전투병'을 안전한 지대로 보낸다는 핑계로 파병하고, 연장하였다.(비전투병이라도 일단 왕창 지원해 주면 미국놈들은 더 전투에 전념할 수 있다는 뻔한 논리를 국민은 다 안다.)
노무현이 좋아하던 '대화'로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유시민의 '단성소 운운' 한 이번 책도 신하가 임금에게 올린 상소가 전혀 아니다.
잘난 전직 장관이 무지한 백성들에게 한 소리 지껄였을 따름이지.
이런 국면을 정면으로 타개해 보겠다는 것이 FTA였던 모양인데...
노무현의 실정들을 감싸안아보려는 유시민 전직 장관의 이 책이 대한민국 개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