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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한글
김미경 지음 / 자우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조금 맘에 안 든다. 한글은 대한민국의 글자가 아니다. 북조선의 글자이기도 하고,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글자이기도 하다. 그건 나중의 문제라 치고...
이 책의 지은이는 국문학도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책을 과감하게 내놓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학계라는 데는 뭔지 모를 케케묵은 보수성과 애국심을 띤 이들로 가득하기 때문인지도...
영문학도에게서 이런 책이 나올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이 아쉬울 따름이다.
한글의 창제는 기록적인 일이었다. 물론 그 이전의 '금속 활자'도 마찬가지고.
그렇지만, 이 외따로 떨어진 중국 문화의 부속 국가에서 한글을 사용한다는 것은 너무도 큰 저항에 부딪혔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조자와 창제 원리, 창제 의도가 기록되어있는 문자인 한글의 한계를 잘 파헤친 책으로 보인다.
조선 초기, 세종이란 임금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그 이전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살육을 일삼은 살인마들이었다. 역사책에 기록된 왕권 강화의 미명은 살인의 연속이었고, 결국 태종의 아들들은 다음 임금 자리를 고사하기에 이른다. 셋째 아들이면서 임금 자리에 오른 세종의 가장 큰 숙제는 '정치적 정당성 부여'를 위한 '세뇌작업'이었을 것이고...
그래서 의식은 고려 사람이던 당시 사람들에게 '불교'를 무시하지 않음을 보이기 위해 새 불경을 간행하고,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알리기 위해 '용비어천가' 같은 책을 만들어야했다. 그에게 한자 아닌 <우리 문자>의 필요성은 그만큼 절박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종, 문종, 단종, 세조에 이르는 한글 쓰기는 <연산군>의 잘못을 지적하는 벽보 사건을 기화로 하여 한글로 된 책을 불사르는 등 한글 사용 탄압이 시작되었다.
한글은 만든 지 560년 된 글자지만, 실용화된 것은 해방 이후일 것이고, 그것도 해방 이후에도 각종 신문이나 학술 서적에서는 한문의 사용이 '가진 자들의 잉크 표식'처럼 사용되다가, 1988년 한겨레신문의 창설 이후 점차 학술 서적들도 한글 전용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10년 전, 인터넷 세상은 영어 세상이란 착각을 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쓰는 인터넷 세상엔 영어가 없이도 잘만 돌아 간다.
한글의 뛰어남은 현대 언어학자라면 부인할 수 없다.
우선, 자음의 생김이 조음 기관을 본딴 문자라는 뛰어난 점.
또 자음이 너무 많지 않고, 비슷한 음운은 가획의 원리로 창제했다는 점.
그리고 모음은 천지인의 세 부호를 이용했다는 점(그런데 외국인들에겐 가로세로 선으로 보이나보다.^^),
무엇보다도 <음절> 단위로 표기하게 했다는 점(무식한 사람들은 한자를 본따서 네모칸 안에 표기한 것이 단점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등 그 우수성은 대단하다.
그 우수성이 현대 한글 문화를 꽃피웠을 것이다. 창제된 지 수백년간 잠재되어있던 문자가 어느 날부터 활짝 꽃피운 문자도 참 드물 것이다.
한때 우스개인지 폄훼하는 말인지 세종이 변소간에서 창호지 찢어진 모양을 보고 만들었단 소리도 있었지만, 그만큼 한글의 자형이 쉽다는 뜻도 되겠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한글이 없었다면 이 사회의 민주화와 <학구열>이 이만큼 일어날 수 있었을까? 도구에 불과하긴 하지만, 문맹과 해독자 사이의 간격은 어마어마한 역사와 철학을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못가지는 차이를 가질 수도 있다.
한자라는 문자가 가진 난독성과 엘리트주의적 속성을 가진 문자에 오랫동안 얽매였던 과거를 과감하게 부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있다. 그러나 곧 그들은 무덤으로 갈 신세라 별로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더 두려운 것은 역사의 가변성을 믿지 못하고 오로지 영어만이 살 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한국의 저자들이 그간 살핀 이야기들이 소개되지 않은 것들이다. 특히 '에필로그'를 '프롤로그'로 적어 놓은 것은 '한글'로 쓰긴 했지만, 우리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어난 우스운 결과가 아닐까 생각하면 쓴웃음만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