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Mr. Know 세계문학 45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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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혹 당사자들은 너무 진지한데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에겐 그 상황이 너무나 우스워 보이는 일들이 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어리석은 인식 탓이기도 하고, 어쩌면 세상사 자체가 몽땅 그런 이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겉으론 진지하고 엄숙해 보이지만, 그 이면은 우스꽝스러울 뿐인 것이다.

 

 내게 체호프 단편을 읽는다는 일은 솔직히 힘에 겨웠다. 이미 현대적인 매체들과 현대문학등에 길들여진 내게 체호프 단편을 읽는 일은 설탕이 잔뜩 입혀진 도넛을 먹다가 갑자기 식빵을 물어뜯는 기분이랄까? 이미 달디단 입맛에 갇혀 있는 나는 더 강한 단맛이 아닌 맛에는 별 반응을 보일 수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미 난 배가 불러 있는 것인지도.

 

 흔히들 고전은 세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 오랫동안 사랑 받는다고들 알고 있다. (체호프의 단편들이 고전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는 없지만) 그렇지만 시대가 달라지면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지성과 인식, 가치관은 그런 고전들에 반발심 또는 세련되지 못하다는 인식을 불러 일으키기도 함직하다. 물론 모든 고전이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 체호프의 단편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체호프의 단편을 읽으면서 문득 고전에 대한 생각이 들었던 것 뿐이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극찬해 마지 않는 체호프의 단편의 정수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미묘한 죄책감을 느꼈던 것 뿐이다. 

 

 나는 체호프 단편을 읽는 내내 지루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이름들은 쎈소리들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고 세자리나 된 데다가 처음엔 성으로 지명하다가 다음에 미들네임으로 지명하기도 해서, 번번이 스토리를 놓치고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읽기 일쑤였다. 느린 이야기 전개는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익숙한 내게는 답답함을 주었고, 등장인물중에 내가 사모하게 될 만한 매력적인 인물은 전혀 등장해 주지 않아서 그것 또한 아쉬웠다. 

 

 하지만 각각의 단편들을 하나하나 읽고 나서 느껴지던 것 중 하나는 유머였다. 등장인물들에겐 너무나 진지하고 엄숙하고 또는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제 3자로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내게 느껴지는 것은 우스꽝스러움 이었다. 우스꽝스러움은 다른말로 유머라고 생각한다. 체호프는 이 세상이 사람의 삶이 유머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유머만이 인간의 본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동물들이 유머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여하튼.

 

 비록 체호프의 단편들이 내겐 그 명성만큼 깊은 감명을 주진 못했지만, 체호프의 문학사적인 위치는 결코 적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지성과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탓에 제대로 즐기진 못했지만, 언젠가는 체호프 단편들을 즐기고 감명받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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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찍는 뉴요커
김수린 지음 / 예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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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이 아름다운 이유는 한시적인 때문이라 생각한다. 100세 보장 보험까지 나온 지금, 평균 80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20대에서 30대까지의 20년간은 특별한 시기이다. 어린아이로서 사회적 보살핌에서 독립이 가능한 나이가 될 뿐만 아니라, 이때 하는 일들과 성취하게 된 일들이 거의 나머지 인생을 다 결정하게 된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이 시기에는 무리하며 인내하고 참아가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대한 입지를 다져 놓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일테다.

 

 그녀의 삶은 한국에 살고 있는 대다수 그녀 또래 사람들에겐 저 하늘 높이 반짝 거리는 별과도 같다. 반짝거리는 빛이 아름다워 갖고 싶지만 갖기엔 너무 먼. 모두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한다. 그 일이 돈까지 잘 벌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다는 생각을 하며 살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 시기 대부분을 대학입시 준비를 위해 바치는 우리나라의 아이들이 어린시절부터 하고 싶은 일을 깊이있게 파고들며 공부하며 성취하는 미국이나 유럽의 아이들과 경쟁하기엔 너무나 요원하다. 더욱이나 뉴욕이라는 공간은 20대 30대의 젊은 여성들에겐 판타지이며 동화이다. 그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치고 또 인정까지 받으며 살아가는 그녀에겐 미래엔 먹구름은 한 점도 없어 보인다.

 

 이 책을 읽는 몇몇은 그녀의 이야기에서 큰 희망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해서 성공하고 싶다는. 하지만 또 그 보다 많은 몇몇의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와 재능, 그리고 별 달리 하고 싶은게 없는 인생에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우리는 항상 '하고자만 하면 안 될게 없다.'라는 믿음을 주입받는다. 이 이야기는 학교 다니는 동안도 수없이 들어왔고,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보게되는 수기에서도 수 없이 반복되며, 심지어 텔레비젼 드라마, 영화, 소설등 거의 모든 매체를 통해서 반복되어 주입된다. 하지만 나는 안 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불만족스럽고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세상엔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족스럽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항상 멋지게 들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황이 좋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사회적 완충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사람의 인생 에세이를 가지고 너무 무겁게 받아들인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너무 재밌고 판타스틱하다. 비록 그녀는 너무 바쁘고 힘든 공부 과정때문에 영화나 텔레비젼에 나오는 것처럼, 친구들과 예쁜 까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수다 떠는 생활은 꿈도 못 꾼다고 하지만, 내겐 그 모든게 배부른 투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읽는 내내, 이 예쁜 책이 재밌고 사랑스럽기도 했지만 마음 한쪽이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의욕적으로 열심히 사는 재능있는 그녀에게 감탄하는 한편, 88만원세대로 불리고 있는 우리나라의 2,30대들이 자꾸 생각나서 안타까웠다. 세상은 그래도 발전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누구나 별다른 걱정없이 그녀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을 거라 믿는다. 그게 비록 내가 되지 못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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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책
박민영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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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있어서 책읽기는 놀이 이상의 의미를 가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학창 시절 과제를 위해 책을 읽던 경우를 빼고는 무슨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책읽기를 의무적으로 했던 적은 없었다. 책읽기는 그저 남들이 음주가무를 즐기고 시간 나면 어딘가 놀러 가고 싶어 하듯이 내겐 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놀이의 일종이었다. 더구나 어느정도는 내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던 내게는 마침 아주 적합한 놀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건 지금 영화나 드라마들에 몰두하는 취미생활과도 어느정도 부합할 것 같다.

 

 가끔 방송이며, 신문등 언론매체들은 책을 꾸준히 읽는 사람은 무언가 대단한 성공을 이룰 것처럼 떠들어 댄다. 하지만 나는 그저그런 평범한 사람이다. 나름대로 전문직에 발들이고 있지만 크게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는 입장이고, 사회적인 식견이 높아서 사회적 현상과 인류의 문제들에 토론할 수 있을 만 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남들보다 나아보이는 점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읽은 책의 양이 성공을 이루기엔 턱없이 모자란 탓일 수도 있고, 읽었던 책들이 그다지 양서들이 아닌 시시껄렁한 것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그 성공이란 것은 눈이 보이는것이 아닌 탓일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세번째것에 몰표를 주고 싶지만, 아마 그렇다고 한다면 독서인구는 반으로 똑 줄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성공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므로.

 

 여하튼, 아마 나는 책읽는 이유를 평생이 가도 못 찾아낼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이유를 찾을 생각조차 안 하고 지낼 것 같다. 여기 이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난 이런 자기 고백적인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 하더라도 아마 내가 책 읽기를 멀리하진 않을 것 같다. 그건 그냥 나의 놀이이니까. 아마도 더욱 즐겁고 몰두할 수 있는 놀이가 생긴다면 책읽기를 끊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수없이 많은 놀이중에 그런 놀이는 본 적이 없다.

 

 "책읽는책"은 습관적으로 책을 읽는 내게 책읽기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요새는 책읽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물론 인터넷 블로그나 동호회를 보면 책읽는 사람이 참 많긴 한데, 실질적으로 주변에서는 찾기가 힘들다. 사회에 처음 나왔을때는 그게 힘들었고 불만이었던 것 같다. 시시껄렁한 연예나 신변잡기적인 얘기가 아닌 좀 더 다른 얘기들이 하고 싶었다. 책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싶었고,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 대한 어른의 의견도 듣고 싶었고, 내가 모르는 현상들 그 원인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 보상이 아닌 꿈에 대한 얘기들. 그런 얘기가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의 얘기는 항상 표피에 머무른다. 깊이 없음. 책에 관한 책이 우리에게 매력적인 이유중 하나는 이런 인간관계에 대한 반작용이 아닐까 하고 생각되기도 한다.

 

 이 책은 책을 읽긴 하되 그다지 열정적이지 않은 사람들, 곧 금방이라도 다른 취미가 생긴다면 아주 오래도록 책 읽기를 잊어버릴 사람들, 책읽기에 지겨움을 느끼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이 책은 책읽기를 다시 돌아보고 더 큰 즐거움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어느 순간 책읽기가 지겨워지거나 왜 책을 읽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권해주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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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하나뿐인 병원
캐서린 햄린 지음, 이병렬 옮김 / 북스넛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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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라고 알려진 질병이 있다. 에티오피아의 여인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 출산을 경험하면서 "누"라는 질병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서른이 넘어서까지 결혼하지 않고 사는 여자들이 많은 남반구의 잘 사는 국가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병이지만, 가뜩이나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에티오피아의 어린 여자아이들은 몸이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갖은 아이가 몸속에서 사산되는 경우가 많고, 적절한 의료조치를 받지 못하고 사산된 아이를 몸안에 계속 가지고 있다가 방광이나 직장의 섬유조직이나 세포가 손상되어 "누"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경우, 여인들의 대소변을 자신의 의지로 조절하지 못하고 흘리게 된다. 몸에서는 지독한 악취가 풍기고, 가족들도 그녀를 버리는 경우가 많고, 사람들도 그녀를 가까이 하지 않으며, 심지어 놀리고 욕설을 퍼 부으며 쫓아내기도 한다. 그녀들 대부분은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할 생각도 하지 못하며, 평생을 혼자서 고통속에서 외롭게 보내야 한다. 에티오피아의 조혼 풍습과 너무나 부족한 의료서비스가 부른 비극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의사인 캐서린과 레그 부부는 에티오피아에 의료 봉사를 갔다가 "누"에 걸려 평생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임산부들을 보고, 백방으로 뛰며, 기부금을 만들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지구에 하나뿐인 "누"환자들을 위한 무료 병원을 만든다.

 

 이 책은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약하면 단 몇 줄로 줄일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이야기지만, 실제적인 현실에 맞부닥쳐서 풀어 나가야 할 문제들은 오백만가지도 더 되었을 것이라는게 뻔히 짐작된다. 더구나 선진국에서 잘 살아가던 두 부부가 자식까지 데리고 에티오피아에 가서 평생을 바치며 살아간다는 것은 일반 사람으로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들 부부가 신의 소명을 받았다는 믿음과 굳은 의지가 없었다면, 지구에 하나뿐인 이 병원은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자신들의 선행을 자랑하려고 책을 썼나?" 하는 삐딱한 생각을 하다가도 그 어려움과 힘듦이 눈에 선해서 생각을 고쳐 먹게 된다. 나로서는 할 수도 없는 일을 한 사람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것이 얼마나 옹졸한 짓인지 부끄러워 하면서.

 

 현재 남편인 레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캐서린은 혼자 남겨졌고, 이 책은 남편을 위해서 그리고 "누"로 고통받고 있는 에티오피아의 여인들을 위하여 씌어졌을 것이다. 평생을 그런 가엾은 여인들에게 정상적인 삶을 돌려 주고 싶어했고 지금도 그러기 위해 애쓰는 그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바치고 싶다. 그리고 내 사후가 될지라도 언젠가는 헐벗은 가난한 나라의 그녀들도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부를 나눠 가질 수 있게 되길 바란다.

 

** 이런 책들은 참 불편하다. 고통받고 힘들게 사는 그런 사람들을 딛고 우리가 안락한 삶을 사는건 아닌지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결국 우리의 안락함은 누군가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약한자를 보호하고 돌보는 인간의 봉사정신은 분명 위대하게 추앙되기에 부족합이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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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비키 마이런.브렛 위터 지음, 배유정 옮김 / 갤리온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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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려동물과의 감동적인 정신적 교감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굳이 신문이나 책, 방송, 영화등을 찾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도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쉽게 찾을 수 있을것이다.

 

 사람은 모든 살아있는것 뿐 아니라, 생명이 없는 물건까지도 의인화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얘기중에 "규중칠우쟁론기"라는게 있다. 규중의 부인들이 사용하던 바느질 도구들을 의인화하여 세상사를 풍자한 글인데, 인간적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은 바늘, 자, 골무 등을 통해서도 인간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하물며, 인간과 비슷한 구조의 이목구비와 유사해 보이는 신체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동물에게서 인간적인 모습을 찾지 않을 리가 없다. 어쩌면 이런것에서부터 동물에 대한 인간의 애정이 생겨나지 않았나 하는 상상을 멋대로 해 본다. 여하튼 이러저러해서 개나 고양이는 타 동물보다도 더 인간과는 가까운 동물들이 되었다. 우리는 종종 개나 고양이와 인간에 대한 우정에 관한 놀랄 만한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 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듀이'가 유난히 특별한 이유는, 단지 한사람과의 우정이 아닌, 아이오와주의 스펜서 마을의 모든 사람과 우정의 관계를 맺은 때문이다. 책의 저자인 비키 마이런은 '듀이'와 자신의 관계는 여느 다른 사람과의 관계보다 보다 더 특별하다고 언급하긴 하지만, 여하튼 '듀이'는 스펜서 마을 도서관의 마스코트이면서,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정을 나눠주던 반려동물이었던 것이다.

 

 우연히 도서 반납함에 버려져 '듀이 리드모어 북스'라는 이름을 갖게 된 오렌지색 고양이의 존재가 한창 경제 위기를 맞고, 팍팍한 삶 속에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을런지는 의심스러운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도 종종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일이나 물건들로 좌절하거나 상처입은 마음을 덜어 낼 수 있듯이 '듀이'도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고, 절망적인 일들을 더 쉽게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되어 주었다. 비키마이런, 그녀도 '듀이'로 인해 싱글맘으로서의 자신과 딸의 관계에 '듀이'가 얼마나 큰 힘을 줬는지 감격스럽게 회상하곤 한다.

 

 아마 어떤 이는 '듀이'가 아닌 다른 고양이가 반납함에 버려졌더라도 '듀이'처럼 똑같이 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듀이'의 독특함이 아닌 상황의 독특함이 '듀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냈다고. 하지만 '듀이'의 특질을 지니지 않은 다른 고양이가 이 도서관에 살게 되었다면, '듀이'만큼 스펜서 마을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지 못했을 거란 생각도 든다. 도서관을 홍보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꼿꼿히 고개를 들고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고(책 표지에도 보이듯이) 사람을 좋아하고, 상처받은 사람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위로라도 하듯 찰싹 달라붙어 있을 수 있는 '듀이'였기에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것일테다.

 

 사실 애완동물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져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실제 '듀이'를 만난다면 좋아하게 될 지 잘 모르겠다. '세상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고양이랑 나랑만 남는다면 그때나 애정을 갖게 될까?'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사실 반려 동물이라는게 점점 각박해지고 실리만을 따지게 되는 인간의 이기적인 심리변화에 기인한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있다. 더 이상 인간에게서 순수한 우정을 기대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안이 반려동물이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굳이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우리와 다른 종이 있을거라는 생각도 해 본다. 그게 '듀이'처럼 척추동물일 수도 있고, 조류 또는 파충류가 될 수도 있고, 또는 식물이나 광물(?)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어쨋든 세상은 아직도 우리의 이해범위 밖에서 움직이는게 많으니까.

 

 그러고보니, 이 책을 읽고서 쓴 이 글의 결론이 참 생뚱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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