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c2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옮김, 한창우 감수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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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 그것은 어쩌면 유한한 삶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내심 생각해 오고 있었다. 인간의 삶에 무한성이 보장된다면,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굳이 애쓰지 않으며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무진장 많고, 미뤄두기는 우리의 특기 아닌가? 갑자기 이런 얼토당토 않는 얘기를 해 대는건, 이 책이 E=mc2을 다루는 방식 때문이다. 이 책의 컨셉은 E=mc2의 일대기를 전기의 형식을 빌려 얘기하는 것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전기는 많이 보고 듣지만, 물리학 공식을 주인공으로하는 전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난생 처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공식도 그 자신의 삶이 마감지어질 것이며, 그 이전에 무언가를 이루려는 노력을 할까? 공식에 의도라는게 존재 할거라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또 모르는 일 아닌가? 세상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수백, 수천, 수만, 수억가지일테니까.

 

 데이비드 보더니스는 잡지에서 본 카메론 디아즈의 인터뷰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프리미어]라는 잡지에서 여배우 카메론 디아즈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기자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디아즈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말했다. 디아즈의 대답은 이랬다. "글쎄요, E=mc2이 도대체 무슨 뜻이죠?" 그리고는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디아즈는 "농담이 아닌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사실 "E=mc2"은 위와 같다. 모두들 이 공식을 들어보았고, 어디선가 (가령, 물리 교과서 같은 책에서) 한번쯤은 보았다. 그리고, 현재 이 지구상에 이 공식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의심스럽다.

 

 질량은 c2=448,900,000,000,000,000 mph(mile per hour)이라는 숫자를 상수로 갖는 에너지로 변경될 수 있다는 이 공식은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아인슈타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과학계의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던 아인슈타인은 별다른 실험도 아닌, 깊은 사색을 통하여 이 공식을 만들어 냈고, 이 공식은 자체적으로 힘을 가지고 성장해, 일본의 두 도시에 떨어져 인류 최대의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이끌어냈다.

 

 사실 지난 세기에는 E=mc2이란 공식이 가장 핫hot한 아이템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공식으로 인해,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었고, 우리는 잠재적으로 지구상에 모든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를 깔고 앉아 있는 꼴이 되었으며, 효율성 높은 에너지원을 갖게 되었으며, 동시에 그로 인해 방사능 유출의 문제점 또한 갖게 되었다. 또 그 동안 궁금하게만 여겼던 우주 생성 과정에 대한 실마리를 밝혀냄과 동시에 또, 우리 지구의 최종적인 종착지에 대한 추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공식은 지극히 간단했지만, 그 공식이 내포하고 있는 힘은 우리 세계를 너무나도 혁신적으로 변화시켰다.

 

 과학이라는 것은 어린시절부터 내겐 동경의 대상이었다. 알아듣기 어려운 전문 용어들은 마법의 주문 같은 여운을 남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과학적 재능은 그다지 갖고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과학이란 분야와 과학을 잘 아는 사람에 대한 동경은 가지고 있었지만, 이해는 잘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사실 이 책은 여느 과학책들과는 달리 이해하기 쉬웠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책을 읽고 있던 당시는 모든 내용들을 훤히 꿰뚫을 수 있을 만큼 알고있다 자신했지만, 읽고 난 후에 기억은 모두 흐릿해졌다. 지금도 책을 읽던 당시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서 두뇌의 모든 뉴런들이 아우성치는 듯 하였지만, 지금은 에너지와 질량의 관계와 빛의속도제곱의 상수만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내게 큰 성과일런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E=mc2으로 추측되어진 우주의 형성과정에 대한 설명에 나름대로의 나의 상상을 더해 본다.

 태초에 에너지의 장으로만 이루어진 우주가 있었다. 불안전한 에너지의 흐름은 군데군데 강하게 압축되어 질량을 가진 물질들을 만들어 냈다. 그것들은 행성이 되었다. 그 중 하나는 태양이 되었고, 유난히 수소가 많았던 그 별은 얼마 후 수소를 분해하여 에너지를 내며 밝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빛을 받아 여러 별들도 변화를 겪기 시작하였다. 지구도 내부적으로는 말랑말랑한 유동체를 품고, 겉으로는 딱딱한 대륙의 껍질을 가지고 군데군데 웅덩이를 만들며, 어느 순간 생명체가 탄생했다. 그 중에는 직립보행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는 인류가 탄생하였다. 태양은 수소란 연료를 모두 다 사용하고, 다시 압축과 폭발을 계속하다 다시 헬륨이란 연료로 불타오르기 시작했고, 그만큼 질량이 작아진 태양은 더이상 인력이 세지 않아, 몇개의 행성을 놓아버리게 되었다. 운이 나쁘면 지구는 태양과 멀어져 온통 꽁꽁 얼어붙은 행성이 되던지. 아니면 결국은 헬륨마저도 다 사용해버리고 압축하다 블랙홀이 되어 버린 태양의 구멍으로 흡수되어 버리던지. 결국 우주의 모든 별들은 블랙홀로 빠져들어, 세상은 다시 에너지의 장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에너지 장이 과거와 같은 과정을 다시 반복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인류는 이런 우주의 일생에 있어 너무나 작은 일부분을 차지하지만, 어쩌면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는 끈질긴 DNA와 언어의 전달로 우주 형성의 비밀을 어렴풋이 깨달은 최초의 생명체 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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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 - 일리노이 주립대 학장의 아마존 탐험 30년
다니엘 에버렛 지음, 윤영삼 옮김 / 꾸리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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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화된 문명이 지구의 대부분을 잠식해 버린 현재. 원시사회의 원형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현대인들은 멸시와 동경의 감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한편에서는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하고, 작은 질병에도 속수무책으로 생명의 위협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그들의 문화를 거부하고, 한편으론 자연과 동화되어  과도한 경쟁과 업무에 시달리지 않으며 평화롭게 자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부러워 하면서. 그렇다고 그 사회를 멸시하는 사람들이 그들 모두를 현대 사회로 이끌어오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마찬가지로 현대화된 삶을 살고 있던 사람들이 아무리 그들의 사회를 동경한다 해도 그 삶 속으로 뛰어 들기 또한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이런 이중적인 인류의 감정이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결정 짓는것인지도 모르겠다. 한편에서는 그들을 현대화 시키기 위해 애쓰고, 한편에서는 그들의 삶을 보호하자고 주장한다.

 

 다니엘 에버렛은 아마존 내 마이시강 유역에 살고 있는 피다한족들을 선교하려는 목적으로 그들의 세계에 들어간다. 현재는 400명 가량 남아있는 피다한 족들은 현대문명을 접하면서도 절대 현대화되지 않고,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평화로운 원주민들이다. 사실 그들의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전혀 다르고, 그들의 생각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동안 인류학에 대한 관심은 수 많은 원주민들에 대한 흥미로운 자료들을 세상에 내 놓고 있지만, 피다한 족은 그 동안 알려진 그 어느 부족과도 달랐던 것 같다. 인류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고 알고 있는 죽음의 의식도 피다한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다. 창조주나 세상의 시작에 대한 인식 또한 이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직접 경험하지 않는 사실들은 믿어주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는 그들은 그래서 앞날을 걱정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갈 뿐이다. 혹자들은 이런 자세가 행복지수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현재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자족하면 살아가는것.

 

 이런 피다한 족들에게 다니엘의 선교활동이 잘 통할리 없다. 그들의 언어를 어렵사리 배워 마가복음을 번역, 녹음 하지만 피다한족들의 신념은 변함이 없다. 사실 원죄의 개념과 내세의 지옥에 대한 두려움으로 교인을 개도하는 기독교의 원리가 피다한족에게 애초부터 통할리가 없다. 자연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그들이 죄악의 개념을 갖고 있을리도 없거니와 설령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들 자체의 걸름망인 추방으로 그들은 가혹한 벌을 받는다. 게다가 미래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지 않는 그들에게 내세에 대해 지옥 갈까 하는 두려움은 어불성설일 뿐이다. 거기다 더하여 직접경험한 것만을 가치롭게 쳐 주는 그들의 인식은 누구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성경의 이야기들을 믿지 않는다.

 

 다니엘 에버렛은 피다한족과 함께 살며, 자신이 살아 온 환경과 체화한 문화에 따라 가치관과 인식방법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책 곳곳에서 지적한다.

 비록 그들과 거래를 하며 살아가는 까보끌루들은 피다한족을 인간이 아닌 미개한 유인원으로 여기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다니엘의 시선은 애정을 넘어서 동경과 존경으로 변해간다. 결국 선교를 목적으로 피다한족을 찾았던 그의 인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신론으로 돌아서게 된다. 기독교 안에서 공고했던 그의 가족은 그로 인해 해체되지만, 그의 정신은 한층 성숙해졌다는 느낌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것을 하나의 가치관 안에서 묶으려 드는 종교 앞에서  피다한 족들은 당당하게 자신들의 가치관만을 받아들임을 선언할 줄 안다.  책 뒷장에 나온 광고 문구처럼 신도 없고, 진리에 대한 강박도 없이 자유롭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피다한족들. 그 안에서 보고 듣고 느끼며 살아가던 다니엘이 무신론으로 돌아선 건 어찌 보면 정해진 수순처럼 보이기도 한다.

 

 삶은 유한하다. 이 견고한 진리에 대한 강박때문에 우리는 그토록 붙잡고 싶은 것들을 많이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것을 놓아버릴 수 있을때, 마침내 삶은 우리에게 행복을 선사해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피다한족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들던 생각들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다른 사람의 삶에, 다른 종족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 또한,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피다한족들의 사람은 대부분의 시간을 불행하게 보내는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커다란 하나의 메시지인것 같기도 하다.

 

** 이 책의 상당부분은 언어에 대해 할애되어 있다. 세상 어느 언어와도 비슷하지 않은 피다한어를 배우기 위한 다니엘의 노력과 그 언어들에 대한 설명. 언어로 따로 분류된 장에는 피다한 언어가 다른 언어들과 전혀 다름으로 인해 발생하는 언어학적 이론의 논쟁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언어학 이론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그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에 더 많은 관심이 갔던 게 사실이다.그리고, 이 책의 제목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의 의미는 책을 읽기 전에 가장 궁금한 대목이었는데, 피다한족 사람들이 잠자기 전에 "잘 자.", "내꿈꿔."하는 것처럼 하는 밤 인사라고 한다. 아마도 밤에 너무 깊이 잠들면 위험해지는 삶을 사는 피다한 족 사람들의 문화속에서 탄생한 인사일거라는 저자의 추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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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
데이비드 로지 지음, 공진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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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런 책들이 있다. 큰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은지 얼마 안 되어 아주 지루한 느낌이 든다. 한동안은 계속해서 읽을까, 그만 둘까를 심각하게 고민한다. 시간이 아까운 기분이 들기도 하고, 재미 없어서 좀이 쑤시기도 하고. 그렇게 질질 끌면서 전반부를 읽고 나면, 갑자기 조금씩 흥미가 돈다. 그러다가 마지막은 그 동안 읽은 페이지가 날 격려하고, 전반보다는 훨씬 흥미롭고 궁금해져서 속도가 나는 책.

 

 이 책이 내게는 그랬다. 알 수 없는 영문학 이론을 주워 섬기며 전 세상을 캠퍼스 삼아 학술대회를 다니는 교수들의 이야기는 그다지 흥미로울것이 없는듯 했다. 그들은 일반인이 보기엔 별 시덥쟎아 보이는 이론들로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를 원하고, 남들보다 더 강한 인상을 남기기를 원하며, 그것과는 별도로 일상과 다른 비일상을 접하며, 모헙을 즐기기를 원한다. 겉다르고 속다른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파티들과, 가정을 두고서도 비일상성 속에서 벌이기를 원하는 은밀한 로맨스의 욕망등이 사실 많이 불편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 와중에서도 흥미를 갖게 했던 것은 퍼스와 안젤리카 그리고 릴리의 이야기. 참 세릴도 빼 놓을 수 없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결정판을 보여주는듯한 퍼스. 하지만 그 사랑이 착각이었을뿐이라고 느껴졌을때의 허탈함이란. 다른 사랑을 찾아 다시 시작하는 그의 모험이, 내게는 그들 모든 이야기중 가장 흥미로웠다.

 

 "안젤리가, 그거 생각해본 적 있어요? 달과 태양이 우리의 눈에 거의 같은 크기로 보인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말예요."

 "아뇨,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

 "그렇기에 많은 신화와 상징주의는 우리의 하늘에 있는 두 원반의 크기가 동일하다는 것에 기대고 있어요. 하나는 낮을,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밤을 관장해요. 마치 쌍둥이처럼. 그러나 그건 단지 원근상관관계의 착각일 뿐이죠. 달과 태양의 상대적 크기, 그 둘과 우리 사이의 거리. 그리고 그 둘 사이의 거리가 빚는 소산일 뿐입니다. 우연히 발생해서 그와 같은 상태가 될 확률은 몇백 억에 하나예요."

-91쪽

 

  처음에는 지루하던 얘기들이 중반에 접어들고 후반으로 갈수록 흥미로워지는게 이 책의 미덕이 아닌가 싶다. 힘들고 지루한 전반을 견뎌내면, 흥미롭고 즐거운 나머지를 보낼 수 있다는 이런 깜찍한 인생철학을 적용하다니.

 

** 참, 끝이 창대하였다기 보다는 비유적인 의미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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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올레 여행 - 놀멍 쉬멍 걸으멍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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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고 있다고 얘기하면 혹자들은 제주도에 갈 계획이냐고 묻는다. 글쎄. 사실 난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란걸 요 몇 년 사이에 깨달았다. 그 전에는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당연한 취향인 줄 알았다.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항상 긍정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니, 여행을 남들만큼 소망하진 않는게 나인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낯설고 새로운 곳들로 떠나고 싶은 마음은 갖고 있긴 하다. 현재 삶이 답답하고 지루할때,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느 사람들처럼 열망에 사로잡혀 여행계획을 세우거나 그 꿈을 위해 많은 것을 투자하진 않는다. 그래서 내가 가게 된 여행들은 내 스스로 애쓰며 가기위해 노력했다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가게 된 경우가 대다수다. 어쨋든 그런 나에게도 가끔씩 여행 책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비록 발품 팔아 내 자신이 그 장소에 서 있지는 못하지만 누군가 조근조근 얘기해 주고, 보여주는 여행서들이 귀챦아하고 힘들기 싫어하는 나의 단순한 삶에 풍부한 색채를 입혀 주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여행서라고 하긴 조금 그렇다. 그보다는 언론계에서 일하다 직장을 그만 두고 산티아고 순례를 나섰다가 그 길에 감명받아 제주도에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씨의 자서전이라고도 할 수 있고, 현재는 유명해진 제주올레길의 탄생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또 산티아고 순례 여행서일수도 있고, 제주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포착일수도 있겠다. 종합선물 세트 같은 이책.

 

 나에게 있어 제주올레길의 큰 미덕은 간세다리(제주도 방언, 게으름뱅이란 의미)를 위한 곳이란 점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경쟁과 속도에 지쳐가는 현대인들 속에 간세다리 또는 간세다리이고자 하는 사람은 환영받지 못하고,비주류가 되어야 한다. 현대사회는 주류만을 인정하고 굳이 인정받고 싶지 않다 하더라도 환경에 떠밀려 우리는 경쟁하기 위해 뛰는 사람들이 되어 간다. 후회는 항상 느지막이 몰려온다. 심각한 일중독자들이 모든걸(청춘, 사랑, 가족등등) 잃은 후, 일에 취해만 살아 온 자신의 인생을 후회로 되돌아보는건 단지 드라마나 소설속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시대에 간세다리가 환영 받는 제주올레는 얼마나 가슴을 찡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 내내, 길을 걷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스팔트 깔린 단단하고 까맣고 곧은 길이 아닌, 사람들 발이 수없이 오고가며 다져진 보드랍고, 양옆으로 풀들이 무성한 한적한 길. 가끔 자연이 부려놓은 놀랍고 신기한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바다까지 보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자동차 매연같은것은 보이지도 않고, 꽃내음, 풀내음 나는 길. 혼자 걸어도 심심하지 않을 길. 그리하여 여행에 '그다지'라는 부사를 습관처럼 붙이고 다니는 나라도 배낭을 꾸려 간세다리여행을 떠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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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프랑스 책방
마르크 레비 지음, 이혜정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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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살아가는 모습은 너무도 다양하다. 하지만 그 다양성을 인정하게 된 건 불과 얼마 되지 않은것 같다. 아직도 고지식한 사람들은 FM이 아닌 삶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싱글파파로 살아가는 앙트완과 마티아스의 삶이 저들의 나라에서는 보편적인 모습일지 아닐지, 나로서는 잘 알 수는 없지만, 여하튼 우리 기준의 눈으로는 좀 특별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어린시절부터 친한 친구였던,세심하고 예민하고, 책임감 강하며 속내를 잘 표현해 내지 않는 듯한 앙트완과, 외향적이고 유머러스하며 한편으론 무언가 모자라 보이는 듯한 마티아스의 조합은 그 너무 다름으로 인하여 부조화 스럽기도 하다가 또 그 너무 다름으로 인하여 서로의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는 천생연분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고보면, 사람들이 평생 간직한 판타지 중 하나는 자신의 반쪽을 찾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함께하고 나눌 수 있는 소울메이트에 대한 갈망은 현재 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도 유효한 환타지이기도 하다. 아마 모든걸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소울메이트는 자신안의 또 다른 자아 외에는 없지 않을까? 간혹 소울 메이트를 만났다는 사람을 보긴 하지만, 그들의 말이 100퍼센트 믿기지 않는게 사실이다. 100미터 밖에선 나와 영혼의 쌍둥이처럼 보일지라도 모든 사소한 일상생활을 같이 하게 되면, 생각이 틀려지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혼자야, 앙투안. 여기에서건 파리에서건, 아니 어디에서건 말이야. 우리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뭐든 하지. 그래서 이사도 하고 어떻게든 고독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거야. 그건 변하지 않아. 하루 일과가 끝나면 누구나 각자 집으로 돌아가지. 커플로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행운아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 그들은 달랑 접시 하나에 담아 먹던 저녁식사를 까맣게 잊고, 주말이면 반복되던 고통을, 전화벨이 울리기를 간절히 바라던 지루한 일요일을 다 잊어버려. 세계 어떤 나라의 도시에서건 수백만 명의 사람이 다 똑같아. 단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라는 거지."

-62쪽

 

 그들이 신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때론 비난하지만, 때론 칭찬해 주기도 하고, 아픈 단점을 매섭게 꼬집기도 하지만,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도 하는..그런것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아닌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은 응당 그래야 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고 반응을 하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제 마티아스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진짜 사랑을 찾아낼 것이며, 앙트완 또한 깨닫지 못하며 지나쳐 왔던 일상의 사랑을 찾아낼 것이다. 그들이 함께 산 삶은 영원하지 못하고 짧은 시간에 그쳤지만, 그 짧은 시간이 그들 남은 인생의 대부분을 결정지었다고 보인다.

 

 비록 이 책에서는 위대한 문학적 수사나 깊이를 발견할 순 없지만,대신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존경을 발견할 수는 있다. 누구나 사정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이해받길 바라는 외로운 현대인들에게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을 갖는 다는것은 축복일 것이다. 철이 없는 어른들이 철이 들고 깊어지는것. 그래서 난 이 이야기가 동화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공주님과 왕자님이 등장하는 보편적 동화의 플롯을 지니진 않지만 그들은 시련을 겪고, 힘을 합쳐서 그 시련을 이겨내고, 해피엔딩을 맞는다. 그들의 삶이 그 뒤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기를 바래본다.

 

**그러고 보니, 이 책에 '프랑스 책방'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것 같아 아쉽다. 마티아스가 책방이 아닌, 문구점이나 레코드 가게를 했어도 크게 이 이야기가 틀려질것 같지는 않는 기분이랄까? 책방이 조금더 낭만적이긴 하지만.

 그런데, 나는 사실 제목만 보고 골라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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