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친구 요켈과 율라와 예리코 일공일삼 3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에디스 쉰들러 그림, 김경연 옮김 / 비룡소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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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반은 여자, 반은 남자라고 공공연히 말하면서 그들이 가지는 것은 어쩌면 공평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상을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남자와 여자라는 영원한 친구가 진정 아름다운 관계로 살아가려면 최소한 어떤 모습이라야할까 라는 물음에 쉬운 예를 보여주며 대답하는 이야기이다.

요켈과 율라. 이들은 서로 닮아있고 남과 같은 것을 싫어하는 성격도 비슷하다. 한 눈에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끌리는 것도 아주 자연스럽다. 서로 다른 쪽 발이 짝짝이라 불편한 신발을 서로 바꾸어 신고 기뻐한다. 둘은 뭐든 서로 도와가며 해결하려들고 가진 것은 뭐든 나누어 갖는다. 사랑스런 개, 예리코와 햄스터, 요켈의 부모님까지도.

남자라서, 내지는 여자라서 라는 어투는 이야기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율라는 결코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가 아니'다. '바라는 것이 있으면 달라고 요구'하고 '요구하는 대로 해 주지 않으면, 왜 안 해 주느냐고 묻'는다. 순종과 인내만이 여자의 미덕이라고 가르치는 답답한 이야기가 아니다. 또 율라는 신이 나면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자신의 감정을 유쾌하게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있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의 절반은 서로의 것이다. 평등하게 나누어 가지는 것의 의미와 즐거움을 알고 있다.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도 이런 즐거움이 평생 따라다니기를 바란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고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라는 이름의 영원한 친구이기를 바란다. 요켈에게 없는 것들을 율라에게서 얻을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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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랄다와 거인 비룡소의 그림동화 27
토미 웅거러 / 비룡소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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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웅게러는 다소 혐오감을 주는 대상에게 평범한 본성을 되칮아주는 데 관심이 많은 듯하다. 그래서 결론은 언제나 흐뭇한 안도감을 준다. 그의 작품 <세 강도>에서도 받은 느낌을 <제랄다와 거인>에서도 받을 수 있다.

어린 아이들만 골라 잡아 먹는 거인은 외모도 성미도 별나고 괴팍하여 혼자 외로이 살고 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제랄다는 음식 솜씨가 뛰어나다. 거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제랄다는 너무 굶어 허둥대다 다친 거인을 보살피고 맛있는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워준다. 어린 아이보다 훨씬 맛있는 음식를 맛본 거인은 제랄다와 함께 살며 어린 아이를 잡아 먹으려는 욕심따윈 잊어버린 채 산다. 세월이 흘러 아름다운 처녀가 된 제랄다와 수염도 깍고 보기 좋아진 거인은 서로 사랑하게 되고 여러 명의 아이들도 낳고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산다.

모두가 피하는 무서운 거인이 허기로 허둥대다 바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장면에서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는 거인을 연상하기 어렵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스꽝스럽다. 모두에게서 외면당하는 혐오의 대상이 친근한 대상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은 진정한 마음으로 그를 대하는 순수함, 즉 어린이다움으로 인해서다.

식욕은 본능이다. 본능에 충실한 아이들의 마음이 어쩌면 거인으로 형상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본능을 아름답고 절제된 행위로 즐기면서 충족하는 법을 무의식 중에 배울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제랄다의 멋진 요리들을 맛보면서 말이다. 이제 거인은 아이들에게 막대사탕을 나누어줄 줄 아는 이웃집 아저씨가 되었다.
더 이상 외롭지도 않을 것이다.

마지막 장의 그림에서 재미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제랄다가 안고있는 갓난 아기를 바라보고 있는 거인의 한 아이가 손을 등 뒤로 하여 쥐고 있는 포크와 나이프. 첫 장에서 거인이 들고 있던 날카로운 칼이 떠오른다. 이 아이도 자신의 파괴적인 본능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차츰 엄마인 제랄다의 음식을 먹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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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일공일삼 6
페터 헤르틀링 지음, 페터 크노르 그림, 박양규 옮김 / 비룡소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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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당당해서 아름다운 할머니를 만났다. 늙음을 안타까와하며 노후를 의지할 자식에 연연해 할 수 없는 할머니를 만났다. 아니, 그런 형편이 되었다해도 결코 그런 나약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 것 같은, 칼레의 할머니이다.

67세에 부모잃은 손자를 혼자서 키워내야할 의무를 안게 되는 할머니의 이름은 에르나 비텔. 당당하게 문패를 만들어 붙여두는 할머니다. 어린 손자와는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함께 광고용지를 돌리고 생활보조금을 억측스럽게 타내어 누구보다 씩씩하게 살아간다.

자기연민에 빠져 슬퍼할 겨를도 없고 생활고에 시달려 허덕이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무기력한 신파조의 삶을 사는 할머니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서 샘솟는 활기를 느꼈다. 신선한 삶의 그림이었다. 삶을 자신의 양어깨로 당당하게 떠받치고 사는 노인의 모습이야말로 어린 칼레를 성숙하게 하는 말없는 가르침이다.

그렇게 강하기만 한 할머니가 2주간 병이 난다. 서로에게 놓인 60년이란 엄청난 세월의 강을 단숨에 뛰어넘어 이 두사람은 강한 끈으로 묶여있음을 발견한다. 혈육의 끈, 서로에 대한 사랑과책임감의 끈이다. '그저 지금처럼만 살게 되기를' 바라며, 할머니는 '칼레의 부모가 살아있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을텐데' 라고 생각한다. '아무렴 날 위해서는 아니고말고', '어쨌든 손자를 위해서'라고 못박는다. 독자는 할머니의 속마음을 읽는 재미가 솔솔하며, 겉으로는 강해보이는 할머니의 약간의 갈등과 자책을 엿보며 할머니의 진심을 이해하게 된다.

이 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생각도 에르나 비텔 할머니와 비슷해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효자식이란 소리를 듣게될까? 그것 이전에, 자신의 존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세상에 당당해 질 수 있다면, 그래서 스스로의 가치를 놓치지 않는다면, 소외니 외로움이니 따윈 먼거리의 얘기가 되지 않을까? 먼 훗날 할머니가 될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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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명탐정 개 동화는 내 친구 4
테란스 딕스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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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주인공으로 하는 동화는 거의 아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듯하다. 이 책에는 순하게 보이는 커다란 덩치의 골리앗이라는 개가 등장한다. 먹을 것만 밝히고 천방지축인 골리앗이 가장 자신있게 잘하는 것은 죽은 척하고 꼼짝않고 엎드려 있는 것이다. 이 한가지 장기로 나쁜사람들을 물리치고 '망아지 친구를 구한 명탐정 개'라는 기사로 신문을 장식하는 유명인사가 된다. 사실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말이다.

말을 훔쳐 몰래 외국으로 내다 파는 악당들에 용감하게 맞서는 데이비드는 이 말썽꾸러기 골리앗 덕분으로 위기를 모면한 셈이다. 데이비드는 '골리앗 녀석만 유명해졌네' 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가장 아끼는 골리앗이 무사히 돌아왔고 이제야 제대로 된 휴가를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가슴을 졸이게 하는 사건과 함께 골리앗의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사람의 생각대로 개가 하는 행동을 해석해 버리는 부분도 우스꽝스럽다. 데이비드와 골리앗이 악당을 해치우는 과정과 또 그런 믿음이 가는 결말이 기분을 좋게하는 신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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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모는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나? - 3단계 문지아이들 7
다니엘 페나크 지음, 장 필립 샤보 그림,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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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해외펜팔을 했던 기억이 난다. 영어로 씌어진 그 글을 이해하기 위해, 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쓰기 위해, 영어사전을 열심히 찾곤 했던 그 때.

<까모는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나?>는 책장을 넘길수록 묘한 분위기를 느끼며 긴장하게 한다. 마지막의 반전도 근사하다. 결국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열망만이 우리의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라고 말하고 있다.

영어 점수가 엉망인 아들을 위해 영리한 엄마가 짜낸 방법은 아주 기발하고 유용하다. 펜팔의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영어에 매달린 까모는 펜팔인 캐시의 편지내용을 모두 외울 정도가 된다. 캐시에게 사랑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편지에서 세기를 초월한 기묘한 분위기를 읽은 친구와 까모는 <폭풍의 언덕>이 그 편지의 배경이었다는 걸 알게된다. 풍부한 상상력이 활개치는 문학의 세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문한 셈이다. 그것은 전염병과도 같이, 다른 친구들에게 이미 만연해 있다.

사춘기에 앓게되는 사랑의 열병. 이 새대에 살고 있지도 않는 사람에 대한 타오르는 열정. '입을 다물고 있을 때조차도 할 말이 많은' 그런 사랑의 에너지를 향기로운 문학과의 만남으로 승화할 수 있다면, 풍요로운 사춘기를 보낼 수 있는 한가지 방식이 되지 않을까? 글쓰기는 직업이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이라고 작가는 말한 바 있다. 내 삶을 보다 풍성하게 하기 위해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지혜로운 엄마라면 아이와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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