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일공일삼 6
페터 헤르틀링 지음, 페터 크노르 그림, 박양규 옮김 / 비룡소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너무나 당당해서 아름다운 할머니를 만났다. 늙음을 안타까와하며 노후를 의지할 자식에 연연해 할 수 없는 할머니를 만났다. 아니, 그런 형편이 되었다해도 결코 그런 나약한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 것 같은, 칼레의 할머니이다.

67세에 부모잃은 손자를 혼자서 키워내야할 의무를 안게 되는 할머니의 이름은 에르나 비텔. 당당하게 문패를 만들어 붙여두는 할머니다. 어린 손자와는 사사건건 부딪히지만, 함께 광고용지를 돌리고 생활보조금을 억측스럽게 타내어 누구보다 씩씩하게 살아간다.

자기연민에 빠져 슬퍼할 겨를도 없고 생활고에 시달려 허덕이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무기력한 신파조의 삶을 사는 할머니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서 샘솟는 활기를 느꼈다. 신선한 삶의 그림이었다. 삶을 자신의 양어깨로 당당하게 떠받치고 사는 노인의 모습이야말로 어린 칼레를 성숙하게 하는 말없는 가르침이다.

그렇게 강하기만 한 할머니가 2주간 병이 난다. 서로에게 놓인 60년이란 엄청난 세월의 강을 단숨에 뛰어넘어 이 두사람은 강한 끈으로 묶여있음을 발견한다. 혈육의 끈, 서로에 대한 사랑과책임감의 끈이다. '그저 지금처럼만 살게 되기를' 바라며, 할머니는 '칼레의 부모가 살아있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었을텐데' 라고 생각한다. '아무렴 날 위해서는 아니고말고', '어쨌든 손자를 위해서'라고 못박는다. 독자는 할머니의 속마음을 읽는 재미가 솔솔하며, 겉으로는 강해보이는 할머니의 약간의 갈등과 자책을 엿보며 할머니의 진심을 이해하게 된다.

이 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생각도 에르나 비텔 할머니와 비슷해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효자식이란 소리를 듣게될까? 그것 이전에, 자신의 존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세상에 당당해 질 수 있다면, 그래서 스스로의 가치를 놓치지 않는다면, 소외니 외로움이니 따윈 먼거리의 얘기가 되지 않을까? 먼 훗날 할머니가 될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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