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잘 알려진 작품이지만 펼쳐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으로 와 닿는다.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작품을 쓰는 작가만의 시선과 굵은 터치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조화가 맛깔스럽다. 에니메이션으로 제작될 것을 생각하고 이 그림책을 작업하였다고 들었는데, 정말 이 그림책이 비디오로 나온다면 당장 사고 싶을 것이다. 외국 비디오에 더 길들여져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토속적이고 친근한 우리만의 캐릭터(강아지 똥, 흙덩이, 참새, 병아리, 흰둥이)가 등장하는 비디오를 보여 주고 싶어진다.초등학교 1학년인 큰 아이는 이 책을 보고나서,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해야겠다고 독서기록을 했다. 자신이 만약 강아지 똥이라면 코스모스를 피우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코스모스는 예쁘고 약해 보이니까 라고. 아이의 느낌이 신선하고 대견했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 저마다의 가치를 지니고 태어나고 그만큼 소중하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애정을 가지고 대한다면 세상 좀 더 의미있고 귀한 것으로 다가 올 것이다.강아지똥이 비에 잘게 부서져 흙 속으로 녹아 드는 장면, 그리고 이듬해 봄 어여쁜 민들레 꽃으로 피어나는 장면. 아낌없는 희생으로 피워내는 새 생명과 자연의 섭리. 자신의 삶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드는 눈물겨운 노력. 이런 주제들이 일시에 떠오르며 동시에 우리 민족 특유의 강하고 질긴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구수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는 이 그림책을 나도 아이도 두고두고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디오 보기를 좋아하는 세살바기 작은 아이에게 뭔가 좋은 걸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이 비디오를 발견했다.에릭 칼 특유의 시각과 스타일에 대한 기대로 소포 포장을 뜯자마자 아이와 함께 보았다. 약간의 설명을 곁들여 주며 보여주었는데, 이후로 이 비디오를 너무 좋아해 애벌레 틀어달라고 야단이다. 케이스에 그려져 있는 애벌레를 좋아해 잘 때는 케이스를 손에 쥐고 잔다. 다섯편의 그림책이 영상으로 펼쳐지는데, 독특한 스타일과 색채의 화려함이 아이들의 상상력은 물론이고 잠자고 있는 어른의 상상력에 까지 현란한 날개를 달아줄 것 같았다. 무한하고 아름다운 색의 향연에 초대된 기분이다. 마지막의〈I see a song〉에서는 귀로 듣는 음악이 무한한 모양과 색채로 끊임없이 변신하며 펼쳐진다. 내 아이에게도 어떤 음악을 듣고 그림으로 표현해 보도록 유도해 보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전편에 흐르는 배경 음악도 잔잔하면서 심오한 진리를 지니고 있는 내용들에 잘 부합되는 느낌이다. 어쩌면 무거울 수 있는 삶의 진리를 아이의 시각으로 잘 이해되게 풀어 놓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이와 눈높이를 맟춘다는 건 이런게 아닌가 싶다.유아에겐 그들 정도의 시각에, 초등 저학년 정도의 아이에겐 생태학적 지식과 연계하여, 소중한 삶의 진리까지 느끼게 하며, 환상적인 색의 여행을 떠나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청각장애아의 일상을 아주 특별한 애정으로 보고 그린 언니의 마음이 나의 마음을 시리게 만든다. 잔잔한 문장에 글 전체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시각이 장애아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바로 잡게한다. 단지 몸이 아주 불편한 거라고. 무작정 동정심보다는 그 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이해하고 자그마한 도움의 손길이라도 뻗을 수 있다면. 소리를 듣지 못하는 동생은 언니의 눈에서 말을 읽고, 불빛이 없는 깜깜한 밤에는 울보가 된다. 천둥이 내리치고 바람이 아무리 요란히 불어도 무서워 뜬눈으로 밤을 새는 언니 옆에서 동생은 새근새근 잘도 잔다. 아주 작은 소리 대신 아주 작게 흔들리는 풀잎도 볼 수 있다.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소리의 느낌으로 피아노도 친다.몸이 불편한 동생을 아주 특별한, 너무나 사랑스런 동생으로 자랑하고 있는 언니의 마음이 참으로 예뻐서 가슴 한 편이 두근거리며 나를 부끄럽게 하는 책이다.연필 스케치로 정성껏 그려 놓은 그림이 마치 오감 중 하나를 잃어버린 동생을 그려놓은 것 같다.
왜 그런지 정말 궁금해요 시리즈 중의 하나인 이 책은 생생한 고구려의 고분 벽화를 뜯어보는 작업을 하게 한다. 33가지의 질문이 어떤 연계성을 지닌다기 보다는 벽화의 내용을 보고 질문을 만들어 가며 대답하는 형식이다. 궁금하기만 한 당시의 생활상과 가치관을 벽화를 보며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가 솔솔하다.초등학생이 쉽게 봐 나갈 수 있게 짧은 문장과 비교적 쉬운 용어로 풀이해 놓았다. 한 지면에 너무 많은 것을 실으려 해서인지 벽화화 삽화의 배치가 다소 어수선했다. 몇군데 만화풍의 삽화는 장중한 느낌의 고구려 고분 벽화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이 책과 이어 읽고 싶어지는 책이 많아 질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제대로 보고 비판, 수용하는 자세를 제대로 익히려면 말이다. 옛 것을 알고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 작업. 쉽지는 않지만 반드시 해야 할 우리의 과제라 생각된다.
왜 잠잠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 늘 졸고 있는 것 같은 나른한 모습에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흔히 '개미와 베짱이'를 이 이야기와 비교한다. 땀 흘리고 있는 개미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우리의 '베짱이'는 생각해 볼 여지도 없이 '게으르다고' 손가락질 당한다. 적어도 그렇게 배웠다. 앞만 보고 피땀 흘려 노동하는 개미들에게만 가치를 두는 'O / X'의 논리를 더 이상 추종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할 일 없이 뒹굴고 있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재촉하고 윽박지른 경험은 엄마라면 모두 있을 것이다. 방과 후에도 학원에, 학습지에, 숙제에. 바쁘게 휘둘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햇볕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을'틈이 있을까? 이제 아이들에게 게으름을 권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겠다. 일의 가치는 육체적인 것으로만 얻어지는 건 아니다. 오늘도 우리의 정신세계을 한차원 올리고, 마음에 위안과 더 귀한 무언가를 심어 주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성난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요즘, 배부른 소리라고 치부해버려도 할 수 없다. 네마리의 들쥐처럼 또 개미처럼 일만 하다 지쳐 쓰러지신 그 분들께 어디서 멋진 프레드릭이라도 나타난다면 아주아주 작은 위로가 될까, 감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