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에레혼 > 그때 사랑이 시작된다

 

누가 암시해 주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을 느꼈으므로, 느낌을 표현하려는 생각을 버린다면,

그때 사랑이 시작된다.

언어가, 손이, 성기가, 입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가깝게 타인에게 다가간다면,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 파스칼 키냐르, <은밀한 생>

 

 

 

 

 

 

 

 

 

 

 

 

 

 

 

 

 

 

 

 

 

 

 

Jai Radha Madhav( from the album "Love is Space") : Deva Premal

 

매혹은 더 광범위하고 더 가차없는 본능적인 힘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그 개요는 스탕달이 밝힌 것과 마찬가지다 :

사랑은 과거에 대한 열병과도 같은 것이다. 이번 매혹은 이전의 매혹에서 유래한다.

사랑 안에서, 매복하고 있는 것은 과거 전체다.

자발적으로 이 열병에 걸릴 수는 없다.

지금 벌거벗은 후손들과 옛날 장면의 얼굴이 돌연 접촉하여 영혼과 불꽃 튀기듯 교섭하여,

육체를 타오르게 한다.

첫눈에 반하기에는 내밀함이 이미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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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떡 국시꼬랭이 동네 1
박지훈 그림, 이춘희 글,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그림책 시리즈는 기획의도가 마음에 듭니다. '언어세상'이라는 출판사에서 '잃어버린 자투리 문화를 찾아서'라는 의도로 연이어 내보내고 있는 그림책 연작 중의 한 권입니다. <고무신 기차>라는 그림책으로 먼저 이 시리즈를 만났는데, 우연히 <똥떡>을 만나게 되었네요.

그림이 주는 느낌은 둘다 비슷합니다. 한지느낌이 나는 종이에 그린 것 같은 그림은 눈을 편안하게 하는 채색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얼굴이라서 인물들도 보기에 정겹습니다. 작은 눈에 동그란 얼굴, 납작한 코, 누렁개 한 마리도 친근합니다.

이 그림책들은 '국시꼬랭이 동네'에 사는 아이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동네란 '아이들이 겪은 일과 놀이, 풍숩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과 눈물이 생생히 흐르고 있는' 마을이랍니다. 기획의도가 마음에 들어 책에 있는 그대로 좀 소개를 하자면, '크고 화려한 문화 대신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여서 지나쳐 버린, 자투리와 틈새 문화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정겨운 우리 동네' 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국시꼬랭이는 어머니가 밀가루반죽을 밀대로 밀어 칼국수가락을 만들고 난 끄트머리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이들은 아궁이에서 구워 바삭바삭 야금야금 먹었네요. 사실 전 이런 경험이 없지만 이런 경험이 있었던 어른들이라면 아이들과 이런 이야기도 나누면 호기심에 눈이 동그래질 것 같습니다.

<똥떡>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어린 시절 실수담이 나옵니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실수는 양변기에 볼 일을 보는 요즘 아이들은 하기 힘든 실수입니다. 뒷간에서 똥통에 빠지는 것이지요. 똥독을 없애고 아이의 자신감도 살려주는 의미로 액막이떡을 했네요. 우리 민간신앙에는 집안 곳곳에 신이 있습니다. 그만큼 조신하게 몸과 마음을 가지라고 금기도 많지요. 할머니와 엄마는 뒷간에 빠진 준호를 위해 똥떡을 얼른 만들어 뒷간귀신에게 먼저 드려야 한다고 합니다. 성질 나쁜 각시귀신을 먼저 달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귀신이 똥떡을 좋아하거든요.

뒷간귀신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얼굴은 불에 탄 듯 시커멓고 머리카락은 무지하게 깁니다. 무섭게 생긴 그 귀신이 나타나 똥떡을 먹으려고 다가오자, 누렁이도 겁이 나서 뒤로 물러납니다. 똥떡을 맛있게 먹는 뒷간귀신 표정이 참 재미납니다. 더 이상 무서워보이지 않네요. 이제 준호는 귀신에게 드린 똥떡을 이웃에 돌려야합니다. 이불에 오줌을 싸면 키를 쓰고 이웃을 다니며 소금을 얻어야했던 것과 비슷하지요. 아이는 자기의 실수를 감추거나 그냥 호되게 야단을 맞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좋은 기회로 삼게 됩니다. 조금은 창피하지만 '복떡을 가져왔구나' 하면서 실수한 아이를 반겨주는 마을사람들 때문에 아이는 성큼 자신감 있는 아이로 자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참 푸근해집니다.

누렁이랑 빈소쿠리를 흔들며 들판을 뛰어 집으로 가는 아이의 표정이 밝습니다. 황금빛 하늘엔 뒷간귀신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그려져있네요. 우리 조상들은 참 지혜로왔습니다. 똥떡을 만드는 방법은 그리 특별한 것도 없고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뭐든 나누고 작은 것으로도 마음을 담아 정성을 드렸습니다. 흔히 요즘은 민간신앙을 미신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에 담긴 소중한 마음과 지혜로움에 대해 아이와 눈높이를 같이 하여 이야기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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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9-16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구입하려고 마음 먹고 있는 책이어요. 추천~
 
 전출처 : 진주 > 間島에 대하여(간도는 조선땅지도 발견)

[조선일보]
두만강 이북 간도(間島)가 한국 영토임을 입증하는 지도가 발견됐다. 1909년 일제와 청나라
간의 간도협약 당시 제작한 ‘백두산 정계비 부근 수계(水系) 답사도’이다. 조선과 청나라
는 1712년 세운 백두산 정계비에 ‘西爲鴨綠 東爲土門 故於分水嶺上 勒石爲記’(서쪽은 압
록강이고 동쪽은 토문강인데, 그 분수령 위 돌에 새겨 기록한다)고 새겨, 동쪽은 토문강을
국경선으로 삼았음을 분명히 했다.

그 토문(土門)과 두만(豆滿·중국에선 圖們)이 발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후에 중국은 토문강
이 두만강을 가리킨다고 억지를 부렸고, 1905년 을사조약으로 우리 외교권을 강탈한 일본은
이런 중국의 억지 주장을 받아들여 남만철도부설권 푸순탄광채굴권 등 이권과 맞바꾸는 조
건으로 두만강 이북 간도땅을 넘겨준 것이 간도협약의 실상이다.

지도가 발견됨으로써 두만강 북서쪽에 정계비에서 말한 ‘토문강’이 확실히 존재하고 있
고, 그 사실을 협약 체결 당시 일본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해진 것이다.

토문강 동쪽, 지금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 지역을 가리키는 간도는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나 우리 땅이다. 고구려 발해 이후 이 황무지를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개척하고 거기서
실제로 삶을 이어온 것이 바로 한민족이었다.

고려 때 윤관 장군이 설치한 동북 9성 가운데 공험진이 두만강 북쪽 700리에 위치해 있었다
고 전해진다. 19세기 한국인들이 대거 이주했고 불과 1902년만 해도 대한제국은 조정에서
간도 관리사를 파견해 직접 관할권을 행사하기도 했다. 일제시대에도 간도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나 가곡 ‘선구자’ 무대이자, 한국인들에겐 중요한 삶의 공간이었다.

일본이 군대를 동원해 궁궐을 포위하는 강압과 협박 분위기에서 고종황제가 반대하는 가운
데 이뤄진 을사조약은 국제법적으로 무효라는 게 정설이다. 따라서 원천적으로 무효인 을사
조약으로 빼앗은 외교권으로 체결한 간도협약도 당연히 무효다. 더구나 중국과 일본은 1952
년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1941년 이전 체결한 모든 조약 협약 협정을 무효로 한다고 합의
까지 하지 않았는가.

영토문제는 국가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문제이므로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엄연한 내
땅이 강압과 불법의 과정을 거쳐 남의 나라 영토가 돼있는데도 침묵만 하고 있다면 주권국
가의 자세가 아니다. 통일 후는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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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9-15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 <백두산 정계비의 비밀>을 5-6학년 아이들에게 권합니다.
 
강아지가 된 앤트 보림어린이문고
베치 바이어스 지음, 마르크 시몽 그림, 지혜연 옮김 / 보림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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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쥐기에도 딱 좋은 이 얇은 동화책은 7-8세 정도의 아이들이 혼자 읽기에 무리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4-5세 정도로 뵈는 동생과 8-9세 정도로 뵈는 형이 나누는 알콩달콩한 대화가 엿듣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웃음을 머금게 하는 책입니다. 우리 어른들의 마음으로 보면 언제나 아이들의 마음세계는 미개척지 같기도 하고, 아무튼 연구대상(?)이지요. 한없이 이기적인 것 같다가도 아량있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인 것 같다가도 뭔가 꽉 찬 열매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심리를 따스한 시선으로 보듬고 예리하게 짚어내는 이런 류의 동화는 계속 등장하나 봅니다.

네 가지의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이 동화책은 앤트와 그의 형이 나누는 대화가 전부입니다. 형의 친구와 엄마가 아주 잠깐 등장하는 것을 제외하곤 두 사람의 일상적이며 짧은 호흡의 대화 속에 갖가지 이야기들을 담고 있습니다. 주로, 앤트가 말하고 '내'가 대답하는, 탁구공 튀는 것 같은 대화가 지루하지 않습니다.

웃음을 짓게 하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는 형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듣는 이야기는 형이 보는 동생 앤트에 대한 것이자, 형제에 대한 것입니다.  '나'에게는 요구가 많고 질문이 많은 남동생 앤트가 있습니다. 겁도 많은 앤트는 자기가 곰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겁이 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존심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형이 그러는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고 큰소리 뻥뻥 치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외부의 악당('나'의 친구)  앞에선 의기투합할 줄도 알고, 강아지를 사랑하는 마음도 둘이 닮아있습니다. 어디에서도 어른들이 간섭하고 중재하는 일이 없네요. 이 점이 마음에 듭니다. 아이들 스스로 부딪히고 느끼고 마음이 자라는 것이겠지요.

이층방의 유리창을 밤에 똑똑하고 두드리는 사람에 대한 앤트의 상상력과 농구선수가 그려진 삽화 앞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창가에 서 있는 나무만큼 키가 큰 사람!  사실 앤트는 형의 간절한 말을 받아들이고 나무에게 잘 자라고 '나지막하게 속삭이'고 잠을 들이지만, 그 농구선수처럼 다리가 긴 사람에게 말 걸고 싶은 눈치입니다. 꿈에서라도 악수를 나눌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머러스한 삽화는 또 이어집니다. 앤트는 소방관이 불을 끌 때 도끼로 무찌른다고 생각하는 아이랍니다. 도끼를 들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앤트!  앤트와 '나'는 장래의 꿈이 같습니다. 그것은 커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지요.  '어른'이 된 다음에 어쩌면 소방관이 될지도 모르고, 농부나 의사, 선생님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하네요.

여기서 '나'는 참 넉넉한 형입니다. 결코 잘난 체 하지도 않고 면박을 주는 일도 없습니다. 동생의 꿈을 한껏 희망적으로 치켜세워줍니다. 어릴 때는 어른이란 존재 자체가 다다라야할 꿈이었지 않나요. 엄마를, 아빠를, 선생님을 막연히 우러러보며 닮고 싶어하기도 하구요. 그렇게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다 될 것 같았던 생각, 아주 오래 전 우리들의 생각이기도 하면서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 품음직한 생각입니다.

<나무는 좋다>의 마르크 시몽의 삽화는 묘사 없이 간결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한결 풍부하게 만들어 놓습니다. 삽화가 없다면 이 책은 그저 밋밋한 반쪽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짙은 윤곽에 부드러운 채색, 간결한 선만으로도 개성있는 표정을 살려놓은 인물이 여백의 하얀색과 함께 산뜻합니다.

마지막 삽화는 형이 앤트의 낮은 어깨에 한팔을 두르고 걸어가는 장면입니다. 이 때 앤트는 고개를 한껏 올려 형을 쳐다보고 있네요. 아마도 놀이터에서 놀다가 아주 늦은 오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인가 봅니다. 발에 끌리는 그림자가 하나로 이어지며, 질문이 많은 동생과 넉넉한 품을 지닌 형의 이야기는 내일로 이어집니다. 이들에게는 하루도 신기하지 않은 날이 없을 것 같네요. 내일은 또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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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13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넉넉한 형이 되고도 싶고, 넉넉한 형을 키우고도 싶습니다.

프레이야 2004-09-1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나님, 저도 맏딸이자 맏딸이랑 사는 사람이라... 넉넉한 형도 되고 싶고 희원이를 넉넉한 형으로 키우고도 싶어요.^^ 게다가 맏며느리까지... 어쩔 수 없이(^^) 넉넉한 사람이 되어야겠네요.

2004-09-21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4-09-21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분, 맞사옵니다. 근데 님 실명은? 궁금해지네요.
 
 전출처 : 밥헬퍼 > 소파 방정환의 단편소설 '금시계'

*자료,염희경, '금시계'개작으로 본 방정환의 문학적 변모 (계간 어린이창비, 2003,.가을 통권 제2호,156-159쪽)

                                                         금 시 계

                                                                                                            방정환

  흥수는 잔디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몸은 피곤할 대로 피곤하였고 머리는 아까부터 무겁고도 흐리기 짝이 없다. 그의 입에서는 힘없는 한숨이 나왔다. 그는 고개를 숙여 석양에 비추이는 잡초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넘어가려는 저녁 해는 그의 몸을 비추어 잔디 위에 검은 그림자를 던졌다.


 

 

 

 

 

 

 

 

 

 

 

  이윽고, 그는 고개를 들어 창천(蒼天)을 쳐다보았다. 중천에 뜬 소리개는 느리게 원을 그리고 있다.  한숨을 휘-쉬는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다.

  가련한 고학생 김흥수는 갈 곳이 없는 청년이다. 저물어가는 하늘에 종잘거리는 것은 제 집을 반기는 새떼의 노래요,  멀리 뵈는 무학현(無鶴峴) 고개에 걸음이 급한 이는 귀가하는 촌인(村人)이로다, 아아 화락한 가정의 따뜻한 즐거움! 흥수에게는 그것이 없다. 

  저녁때가 되었다. 태양은 서산 너머로, 짐승은 숲속으로, 사람은 집으로, 세상은 어둠 속으로 제가끔 기어드는데 이 몸만 홀로 갈 곳이 없구나 생각하매 하염없는 눈물이 금할 새 없이 흐른다.

  그는 XX고등보통학교 3년생이다. 학력은 그다지 우승(優勝)치는 못하나 품행일는지 성근(誠勤)일른지 여러가지 방면으로 그는 전교의 모범적 학생이었다. 홀로 계신 모친은 외삼촌댁에 계시고 자기는 냉동(冷洞), 삼촌 댁에 부쳐 있어 통학하더니 그 삼촌이 사업에 실패를 당하여 작년 가을에 북간도로 옮겨가신 후 흥수는 자기가 스스로 주선하여 OO목장에 있어 우유배달을 하여가며 고학을 하던 터이다. 그 혹독한 작년 겨울의 추위도 능히 굴하지 않고 지내어왔다. 학교 교원은 물론이요 목장의 주인까지 그의 성실함에 감동하여 여러가지로 그에게 좋도록 편의를 보아주었다. 자력자급, 노동생활은 계속되었다.

  이와같이 고생스러운 통학을 하고 있는 흥수에게 일매(一枚))의 비보가 이르렀다.그것은 시골 외삼촌댁에 계신 모친의 병보(病報)였다.......빈한 집에 부쳐 계신 모친, 그 모친의 중병. 아아 약 한첩도 못 쓰실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흥수는 그날 밤, 또 그 이튿날 밤을 잠도 못자고 생각다 못하여 목장 주인에게 자세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두 달치 봉급을 미리 주시면 좋겠다고 청하였다. 흥수의 모친이 중병인 것과 그 외삼촌댁의 빈한한 것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주인은 두 달치 봉급을 미리 주면 그 두달 동안 봉급 없이 흥수가 고생할 생각을 하고 흥수를 위하여 거절하였다.

  기후(基後) 오륙일 후에 목장 주인의 부인이 순금반지를 경대 위에 놓았다가 잃어버렸다.

  금반지를 잃었다고 미친 듯이 날뒤는 부인은 벌써 흥수를 의심한다. 두 달치 봉급을 달라는 대로 주었더면 반지나 잃지 않았을 걸 하고 남편을 원망한다. 부인뿐이 아니라 목장 내 전부가 흥수를 의심하는 모양이 흥수의 눈에도  띄었다. 아아 무실(無實)의 죄명! 이것도 내가 빈한한 까닭이다. 가슴을 껴안고 부르르 떠는 그의 뺨에는 원한과 분노가 엉킨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그 자리에서 변명을 하고 싶었으나 누가 자기에게 직접으로 가져갔다는 이도 없는데 먼저 변명을 하면 도리어 그네의 의심을 두텁게 할 뿐이겠으니까 잠자코만 있었다.

  다른 사람은 다 아무리거나 주인은 결코 흥수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의 성실, 그의 인내, 그의 정직에 깊이깊이 감동한 주인의 가슴에 그렇게 용이하게 의심이 일어날 리도 없고 일으킬 수도 없는 것이다. 결국, 그까짓 변변치 않은 일로 소동을 일으키는 것은 자미(滋味)롭지 못하다 하여 그 일은 그대로 덮어버렸다.

  그때부터 일주일 후인데 이번에는 주인의 금시계가 없어졌다. 목장 내는 전보다 더 소동이 되었다.  그런데 의외에 기(基) 시계는 흥수의 책상 속에서 발견되었다. 그런면 그렇지. 흥수가 아니면 누가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금반지도 분명히 흥수의 짓일세, 그렇고 말고 흥수밖에 누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있나? 하고 의론(議論)이 분분한데 흥수는 이런 소동이 생긴지도 모르고 목장 뒤뜰에서 운동하는 소떼를 지키고  있다. 

 

뜰의 한모퉁이 돌 위에 힘없이 앉아서 손에 들고 있던 물리책 갈피에서 아까 풀숲에서 주운 종이를 꺼내 펴들고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그 종이는 순금반지 한개를 십오원에 전당잡힌 전당표이다. 전당잡힌 자의 이름은 최흥봉이라고 있는데 최흥봉이는 이 목장의 급사로 있는 아해이다. 지금 그 전당표를 주인에게 보였으면 자기의 변명은 훌륭히 된다. 그러나 흥수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흥수는 흥봉의 집 형편을 대강 짐작한다. 요사이는 흥봉의 집이 석 달치 집세 십삼원 오십전을 내지 못하면 집을 내놓게 되는 가련한 영편(影便)) [형편(刑便)의 오식인듯-편집자]에 있는 것도 안다. 흥수는 가련한 소년 최흥봉의 일을 자기의 신상에 비하여 생각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때 저곳에서 달음질하여 오는 소년은 주인의 명령으로 흥수를 부르러 오는 최흥봉이다. 흥수는 아무 말 없이 전당표를 흥봉에게 주었다. 흥봉이는 그 표를 보더니 얼굴빛이 노래진다. 한참이나 그 표를 든 채로 우두머니 섰더니 이윽고 그의 눈에는 두 줄기 눈물이 비오듯 한다. 아아 이것을 주인에게 고하지 않고 나에게 넌지시 주는 흥수의 아름다운 마음! 나는 이렇게 착한 흥수에게 죄명을 씌우고자 이번에 주인의 금시계를 흥수의 책상에 감추었구나......아아, 못할 짓도 하였다.......깊이깊이 뉘우친 흥봉이는 일체를 흥수에게 자백하였다......흥수는 주인에게로 갔다. ......

  흥수야 이 시계가 네 책상 속에 들어있으니 어쩐 일이냐. 나는 요전 금반지 일도 설마 네가 그러하였으랴 하였더니 이젠 너의 짓이 아니라고 할수 없다 하는 주인의 말에 흥수는 자기의 변명을 위하여 자세한 일을 고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또다시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아무 대답도 아니하였다. 주인은 암만하여도 이 일이 흥수의 짓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사실이 증명하는 이상에는 그것을 이유없이 부인하는 수도 없다.  그래서 체면상 그대로 둘 수 없으므로 본의는 아니나 흥수를 해고시켰다.      

  이렇게 하여 오늘 아침에 목장을 나온 흥수는 무실의 죄명으로 인하여 아무 곳에도 갈 곳이 없는 몸이 되었다.

  한학년에서 수학하는 학생의 집에서도 그를 반기지는 아니하였다. 반기지 아니할 뿐 아니라 흥 모범학생이지 저 꼴에......하고 비웃었다. 이러한 덧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흥수는 해가 아주 진 것도 모르고 여전히 잔디 위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만일 내가 그때 사실대로 주인에게 고하였던들 가련한 소년 흥봉이와 그 흥봉이의 보탬이 많은 빈한한 가정은 어찌 되었을까......이러한 생각을 하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흐른다. 그리고 그 눈물 고인 눈 속에는 자기가 목장 문을 나올 때 판장(板薔) 옆 오동나무 밑에 울고 섰던 흥봉이의 모양이 아련히 보인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집집에는 전등불이 반짝거리고 어두워가는 하늘에는 어린 별들이 우는 듯이 끔벅거리는데 갈 곳없는 흥수는 힘없이 일어서더니 어디로 가는지 굽어진 산길로 한걸음 두걸음 어둠 속으로 걸어간다.    1918. 10 소파생(小波生)      <신청년 창간호 1919년 1월호>


 

 

 

 

 

*그림 Shinobu Mat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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