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 철학그림책
홍성혜 옮김, 소피 그림, 라스칼 글 / 마루벌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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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주간지 표지 제목으로 <입양! 출산보다 성스러운...>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부모를 필요로 하는 아이 7000명 중 해외 입양이 2000명, 국내 입양이 1500명 정도라고 한다. 그러면 나머지는?

이 책에는 사랑이 많은 한 부부가 나온다. 전쟁으로 인한 궁핍함때문에 아이를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 바다 저 쪽으로 떠나 보낸 친부모와 그 아이를 키우며 사랑의 세월을 낚는 양부모. 기사에서 본, 사랑이 많은 사람들을 이 책에서 그려놓았다. 고통과 절망의 순간까지도 품어들이는 거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

기사에 따르면 비밀입양이 고아수출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고 한다. 이 책의 양부모는 문이에게 모든 사실을 이야기해 준다. 문이가 이것으로 느끼는 감정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것이다. 비오는 창 밖을 턱을 괴고 앉아 보고 있고 자주 바닷가에 나가 바다 저 쪽을 바라보고 서 있다.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고 극복하는 과정이겠지.

그러는 동안 친부모의 사랑도 깨닫고 어릴 때 좋아했던 모든 것을 대나무상자에 담아 바다 저 쪽으로 멀리멀리 떠나 보낸다. 코끝이 찡해졌다.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깨닫고,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심성을 잃지 않는 문이와 그럴 수 있게 키워낸 양부모 모두가 나의 마음에 강한 울림을 주었다.

이 책의 그림을 그린 소피도 우리나라 해외입양아라고 한다. 상자에 담긴 작은 눈을 가진 아이, 문이. 어쩌면 아직도 불명예를 벗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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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이 된 풍선 - 연필과 크레용 22
류재수 글.그림 / 보림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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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이야기>를 보신 분은 이 그림책이 류재수의 작품이라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지 모르겠다. 그 이미지가 너무 강하여 생긴 선입견일 것이다.

이 책은 글자없는 그림책이다. 속지에는 웃고 있는 초승달 위에서 도토리를 들고 놀고 있는 다람쥐 두마리가 있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놓쳐 비틸길을 막 뛰어내려가는 모습은 풍선을 손에서 놓쳐 안타까운 얼굴로 쫒아가는 주인공 아이를 연상하게 한다.

놓쳐 버린 풍선과 함께 자연스럽게 장소가 이동되면서 책을 보는 아이의 마음도 두둥실 여행을 떠난다. 파란 하늘로 올라가 둥그스럼하게 생긴 비행기도 만나고, 구름 사이를 지나 별과 달, 우주비행가와 우주비행사, UFO, 토성 이런것들이 한꺼번에 보인다. 그 순간 별의 뽀족한 끝에 풍선이 찔려 터지고 만다. 그 바람에 놀란 달이 재채기를 하고 구름을 건드려 눈을 쏟아지게 만든다.

눈은 그냥 하얀색이 아니라, 푸른 회색빛 바탕에 알록달록 동그란 눈송이들이다. 나무 위에 있던 다람쥐가 도토리를 떨어뜨리고 산비탈을 굴러내려가며 커다란 눈덩이가 된다. 결국 주인공 아이의 집마당에 떨어져 커다란 눈사람이 되고. 온동네 아이들이 나뭇가지와 이파리등으로 멋진 눈사람으로 꾸민다. 다음날 해가 나오고 다 녹아버린 눈사람 속에서 나온 도토리를 손에 들고 갸우뚱한 얼굴로 앉아있는 아이가 있다.

아주 단순하게 그린 표정들이 재미있다. 풍선을 놓쳐 안타까운 아이의 마음이 눈사람을 만들며 금방 풀어진다. 아이들의 마음이 잘 드러나 보인다. 이 세상 모든 건 그렇게 돌고돌아 오고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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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 비룡소의 그림동화 12
에즈라 잭 키츠 글.그림, 김소희 옮김 / 비룡소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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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그림책은 그림이 특이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가난한 작가는 물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그림을 표현했다고 한다. 꼴라쥬 기법으로 대담하고 색다른 분위기를 주는 그림에 눈이 먼저 간다.

속표지의 찍기로 표현한 듯한 눈의 결정체들. 마치 어여쁜 꽃송이들을 보는 것 같다. 크게 작게 오려 붙인 색종이, 물감 흩뿌리기, 솜을 띁어 붙여 놓은 것 같은 휘날리는 눈송이들. 이 모든 게 하얀 눈 위에서 대비되는 짙은 갈색 얼굴의 피터가 입고 있는 빨간 외투만큼 인상적이다.

피터가 눈 위에서 하는 놀이는 참 재미있다. 뽀드득 뽀드득 여러가지 모양 발자국 만들기, 발 끌며 가기, 나무막대로 선 그으며 가기, 나무막대로 눈옷 입은 나무 건드리기, 눈사람 만들기, 눈천사 만들기, 눈미끄럼타기. 특히 눈 위에 누워서 팔을 아래 위로 흔들어 만든 눈천사는 정말 근사하다.

눈을 내일 가지고 놀려고 한 줌 한 줌 꼭꼭 뭉쳐 주머니에 넣는 피터. 집에 돌아와서도 즐거웠던 시간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피터. 작가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실제 흑인 아이와 함께 살면서 그 아이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했다고 들었다.

다음날, 피터는 옆집 친구와 함께 아침부터 놀러 나간다. 마지막 장은 이 들이 손잡고 수북이 쌓인 눈 속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있다. 이 아이들은 또 얼마나 신나게 눈 오는 날의 모험을 즐길까? 올 겨울엔 꼭 아이들이랑 신나는 눈놀이를 하고 싶다. 그냥 아이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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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모든 것은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8
브라이언 멜로니 글, 로버트 잉펜 그림, 이명희 옮김 / 마루벌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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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제목으로는 다소 철학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책에 선뜻 손이 갔다. 속표지 한 장을 넘기면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생명의 시작과 끝에 대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볼 수 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어떻다는 거야?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대목이다.

- 살아 있는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단다.
- 그 사이에만 사는 거지.

책장을 넘기면 시처럼 잔잔하게 들려주는 글과 아주 사실적이며 섬세한 그림이 잘 어우러져 시화를 한 폭씩 보는 것 같다.

죽어 있는 게, 나비, 작은 벌레의 사실감 있는 그림들이 생명의 끝이란 걸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또한 늙은 포도 등걸에서 나온 새싹, 들에서 살아가는 토끼와 쥐, 꽃과 채소, 버섯 위에 앉아 쉬는 나비, 호주의 쿠카부라새와 이뮤굴뚝새의 그림을 보면 생명이란 결국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놀라 도망치는 멸치떼를 보면 약육강식이란 생태계의 원리까지 자연의 섭리라는 걸 알 수 있다.

- 그럼 사람은?
- 살아 있는 모든 것들처럼 사람도 수명이 있지.

죽음도 탄생과 마찬가지로 삶의 한 과정이고, 조용히 맞아들여야 하는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거부감없이 심어준다. 시작과 끝 사이에만 사는 모든 생명있는 것들에 대한 애정을 역설적으로 불러 일으킨다.

마지막 장의 그림은 표지의 그림과 동일하다. 수명이 다한 물건들 - 부러진 안경, 멈춰버린 시계, 녹슨 장식품 등. 아끼던 물건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됬을 때 느끼게 되는 감정또한 생명있는 것의 죽음에 대한 것만큼이나 애통한 것이다. 결국 세상 모든 것의 '끝'이라는 현상을 차분히 관조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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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와 그림책 - 그림책을 선택하는 바른 지혜 행복한 육아 15
마쯔이 다다시 / 샘터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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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 부쩍 관심이 많아지면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여러가지 그림책들을 접하면서 이거다 싶은 것들이 있었는데, 바로 이 책에서 명쾌하게 풀어놓았다.

지은이는 시종일관 주장하고 있다. 그림책은 지식이나 도덕을 가르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아이에게 즐거움이며 기쁨 그 자체가 되어야한다고. 아이를 품에 안고 읽어 주는 한 권의 질 좋은 그림책으로 인해 아이와 엄마간에 생기는 신뢰와 일체감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귀로 듣는 친근한 목소리의 언어가 아이의 언어적 잠재능력을 키우는 데 있어 필수 항목이며, 그것은 좋은 그림을 통해 풍부하게 가지를 벋어나간다.

그림책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로 망설이고 있거나 헛수고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를 아이 엄마들께서 이 책을 읽어 본다면 실질적인 도움이 될 줄 믿는다. 적어도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잘 된 그림책은 꼭 사서 읽어주고 싶어 질 것이다.

그림책을 읽어 부고 난 뒤 곧바로, 괜한 질문공세로 그림책의 세상에서 아직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아이를 괴롭힌 적은 없는지? 이것저것 말도 안되는 아이의 질문으로 피곤해 본 적이 있다면 아이의 심정을 알 것 같다. 당장 아이에게 내가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한 성급한 질문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

옛이야기에서 다루는 한가지 주제인 '권선징악'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나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허물었다. 천편일률적인 결말이 아이의 사고를 경직시키지 않나 하는 건 앞질러가려고만 하는 어른들의 기우였다. <착하고 바른 것이 최후의 승리를 얻는다는 감각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지혜>라고 피력한다.

그리고 재화(rewrite)되지 않은 유럽 옛이야기는 꽤나 잔인하다고 알고 있어 꺼려지던 나의 생각도 바뀌게 되었다. 나쁜 등장인물의 잔인한 결말에서 아이들은 무서워하고 잔인하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깔깔대고 웃어버린다고 한다. 이것은 아이들이 건강한 웃음과 밝은 유머를 이해하고 느낀다는 증거라고 한다.

이 책은 쉽고 간략한 문장으로, 아이의 내면세계를 풍부하고 아름답게 키워줄 수 있는 그림책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더불어 아이들의 마음과 심리를 좀 더 알 수 있게 한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내가 먼저 많이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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