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시스라는 비극의 역할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기장수 우투리>에 모아놓은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마음이 한없이 씻겨내려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잘 먹고 잘 살았대'로 끝나는 대부분의 우리 옛 이야기들과는 다르게, 이 책에 실려있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슬프다. 슬프다는 것. 이건 공감이고 나누어 갖는 것이다. 산다는 것의 고단함과 슬픔을 그래도 참아내고 살아나가는 우리민족의 이야기를 보면 질기고 끈끈한 생명력 같은 것을 잡을 수 있다. <남편을 기다리는 민들레>에서 민들레의 그런 생명력이 어디서 온 것이었나를 알 수 있다. 한가지 염원이 붙들어 매어주는 사람의 의지. 그건 함부로 할 수 없는 질긴 생명과도 같은 강한 무엇이다.쉬 변하지 않는 사랑과 신뢰가 이 슬픈 이야기들에는 담겨있다. 그래서 더 애끓는다. 끼니도 잇기 어려운 가난이 없었다면, 슬픈 이야기도 좀 적었을까? 그런 이야기가 단지 이야기로만 피상적으로 이해될 요즘 아이들. 아이들에게 어려운 이웃을 알게하고 도움의 손을 줄 수 있게 하려면, 먼저 나부터 가족 이기주의를 벗어나야겠다. 사이버세상을 사는 요즘 아이들이 슬픈 이야기를 읽고 눈물 흘릴 줄 아는 따스한 가슴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 옛이야기의 가치는 충분한 것이 아닐까!
먼저, 보급판으로 나온 이 책의 종이부터가 소박하여 좋다. 밤에 불을 꺼놓고 한 이불에 발을 넣고 둥그렇게 앉아서 듣는 이야기다. 무섭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여 손에 땀을 쥐며 듣다가 모든게 잘 해결되고 끝이 나면 '휴우'하고 숨을 내쉬게된다.구수한 입말로 옛이야기를 잘 들려주시는 서정오님의 글이 맛깔스럽고 편안하다.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은 옛 이야기 보따리 시리즈 10권 중 제2권으로 '참 신기하고 무서운 이야기'를 모아서 들려준다. 우리나라 호랑이가 더 이상 무서운 동물이 아니라 선한 동물로 된 이야기, 천 년 묵은 여우가 사람으로 둔갑하여 사람을 해치는 이야기등 간담이 서늘해지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이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선하고 소박한 심성은 힘든 삶의 무게를 견뎌내고 승리로 이끄는 열쇠이다. 복은 그저 처음부터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남에게 선을 베풀어 얻는 상과 같은 것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지나친 욕심은 결국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허무함만 남기며, 자책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옛 이야기에는 자연에 있는 모든 것들, 동물, 식물, 하찮은 물건 하나에 까지도 품을 수 있는 애정이 늘 그려져 있다. 어린이는 본능적으로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는다고 하던가?옛 이야기가 들려주는 소박한 심성과 지혜가 살아가면서 아름다운 마음의 양식이 될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역시 우리의 정서에 맞는 우리 옛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든다.
얼마 전 자연을 주제 또는 소재로 한 그림책을 고르던 중 유일하게 찾아낸 우리 작가의 그림책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이는 꼭 우리 아이의 얼굴이다. 오동통하고 둥근 아이의 얼굴이 너무 귀엽다. 각 장마다 아이의 표정이 참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다 싶었더니 <내 짝꿍 최영대>의 정순희 님의 그림이다.엄마와 함께 만든 예쁜 초록색 연을 옆에 두고 놀이터에서 모래장난을 하며 놀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연을 데려간다. 아이는 그 연을 잡으려고 온 동네를 따라간다. 무심한 어른들, 바람에 날려온 풍선, 심술꾸러기 남자아이들, 바람에 비치는 숙녀의 속옷. 마침내 연은 웅덩이에 빠지고. 물에 젖어서 축 늘어진 연을 들고 서 있는 아이의 표정이 안스럽다. 금방 닭똥같은 눈물이 떨어질 것 같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는 얼굴로 '그래, 맞아! 조심조심......' 아이는 무얼 하려는 걸까요? 빨래줄에 연을 널며 '펄럭펄럭, 바람이 연을 잘 말려 줄 거예요' 연을 널기 위해 동그란 의자를 딛고 발 뒤꿈치를 들고 선 뒷모습이 참 예쁘다.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해하는 얼굴이 사랑스럽다.주인공 아이의 옷과 운동화 그리고 초록 연을 빼고는 연한 수채화 느낌이라 맑고 편안한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표정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범람하는 외국 그림책들 중에서 왠지 손이 가는 우리 그림책이었다.
옛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어낼 때는 더욱 많은 고심이 있어야 한다고 들었다. 이야기를 들을 때 그릴 수 있는 무한한 상상의 그림들을 책에서 아주 잘 살려내야하기 때문일 것이다.<반쪽이>는 한국적 요소가 다분히 잘 살려져 있는 소박한 책이다. 한국적인 분위기의 그림으로 유명한 이 억배님의 그림이 이야기의 맛을 구수하게 잘 살려주고 있다. 특히 반쪽의 잉어를 먹은 어미 고양이에게서 난 새끼 고양이가 반쪽의 모습으로 형제들의 한 곁에 서 있는 모양이 웃음을 자아낸다. 세부적인 데까지 신경 써서 그린 그림이라 더 정겹다.'3'이라는 숫자가 주는 리듬감과 안정감은 전체의 이야기를 한층 운율적인 것으로 만든다. 옛이야기에 흔히 쓰이는 '3'이라는 장치는 반복적이면서 안정적인 구도를 잡아주어 이야기 전체에 어떤 흥을 준다.<반쪽이>에서는 요즘이면 장애아인 반쪽이의 선한 심성과 소박한 지혜가 결국 자신의 삶을 행복한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신나게 그려져있다. 선은 자신의 삶을 승리로 이끄는 열쇠라는 불변의 진리를 슬그머니 던져준다. 한바탕 배꼽을 잡고 웃고나면 이 열쇠가 옆에 떨어져 있을 것이다.
남과 북으로 가시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사는 우리의 현실이 이 하나의 그림책에 너무 잘 그려져있다. 어른들의 이데올로기가 빚어낸 가시 울타리의 아픔을 어린이들에게 완곡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전해준다.서로 신랑 신부가 될 거라며 친하게 노는 금강이와 초롱이.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나고 '우리 편이 아닌 곳에 사는 초롱이'에 대해서는 이야기도 꺼내서는 안되는 세상이 된다. 전쟁은 너무 컸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았으며, 굉장한 소리를 내며 모든 것을 부숴버렸다. 전쟁이 끝난 후의 황폐한 모습은 새까맣게 타버린 들판 위의 잿더미 건물과 나무 그리고 한 쪽 다리를 잃고 부상당한 몸으로 돌아오는 금강이 아빠로 그려진다.그렇지만 시냇가의 가시 울타리는 여전히 쳐 있고, 아빠는 전쟁을 영원히 쫓아 버릴 순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 잠자고 있는 전쟁을 깨우는 건 아이들이 아니다. 전쟁으로 굶주리고 상처입는 아이들이 지금 이 순간도 지구 한 편에 널려있다. 초롱이는 가시 울타리에 구멍을 내고 시냇물을 건너온다. 하아얀 눈 위에 금강이와 초롱이의 코를 맞대고 마주 선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초롱이가 목에 두르고 있는 빨간 목도리만큼이나 빨갛고 앙증맞은 꽃이 가시 울타리를 따라 피어있다. 무엇이 가시 울타리를 없애버리지 못하게 하는 걸까? 사람들 사이에 쳐진 마음의 가시 울타리도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고 얘기 나눌 거리를 던져줄 수 있는 예쁜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