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 추억

                                                                   윤 동 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가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스파피필름님 서재에서 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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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릴케 현상 > 교육비 공포가 피임을 부른다

교육비 공포가 피임을 부른다

성차별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자 대학입시전쟁과도 깊이 연관된 출산파업… 엘리트층의 명문대 출신 독식을 제어하도록 ‘경쟁의 병목현상’ 뚫어줘야

▣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일제 말기에 일제는 “낳아라! 불려라! 길러라!”라는 표어를 내걸고 10명 이상의 자녀를 낳은 가정에 대한 표창식을 거행하며 출산을 장려했다. 해방 뒤 이승만 정권도 다산 여성에 대한 표창을 계속했다.

‘3·3·35운동’에서 ‘1·2·30운동’까지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1962년부터 가족계획 사업을 국가 시책으로 실시했다. 국가 시책으로서의 가족계획 사업 채택은 인도와 파키스탄에 이어 한국이 세 번째였다. 가족계획 사업은 전국의 모든 군에 보건소가 설치된 65년부터 본격화됐다. 이른바 ‘3·3·35운동’이 벌어졌다. “3명의 아이를 3살 터울로 35살 이전에 낳자”라거나 “3살 터울 셋만 낳고 35살 단산하자”는 구호를 내건 운동이었다.

1970년대 가족계획의 목표는 둘로 줄었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루 앞선 가족계획 십년 앞선 생활 안전”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와 같은 구호들이 외쳐졌다. 80년대는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뀌었다.


△ 2006년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는 1.08명으로 세계 최저를 기록했다. 저출산 재앙은 아이 낳기가 두려운 우리의 모순된 현실의 반영이다. 서울의 한 병원 신생아실 풍경.

그러한 구호 뒤에 숨은 치열한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했다. 정관수술 받으면 예비군 훈련 면제해준다고 유혹하던 것도 눈물겨웠지만, 자식에 대해 다다익선이라고 여기는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일도 눈물겨웠다. 소현숙이 쓴 <너무 많이 낳아 창피합니다: 가족계획>이라는 글에 따르면, “가족계획 사업 초기만 하더라도 마을에 들어간 가족계획 지도요원들은 마을 할아버지들이 지팡이를 들고 쫓아나와 도망나오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렇게 보수적인 분위기 때문에 여성들은 남편이나 시부모 몰래 피임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1973년까지만 해도 남편 몰래 피임한 여성들이 57.4%나 되며, 시부모가 모르는 경우가 55.4%나 된다.”

그런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출산력은 1960년을 정점으로 해서 빠른 속도로 감소하다가 80년대 후반엔 재생산 수준 이하로까지 떨어졌다. 90년대 들어선 더욱 낮아졌다. 60년대 초 3%였던 인구증가율은 90년대에 이르러 1% 미만으로 감소했으며 출산율로는 1.6명으로까지 떨어졌다.

이런 출산율 감소의 주요 원인은 산업화로 대변되는 사회구조 변동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선 자녀의 교육 문제가 출산을 억제하는 최대 요인으로 등장했다. 2004년 12월 전북여성정치발전센터가 전주에 거주하는 20~40대 여성 5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교육비 무서워 자녀 못 낳는다”고 답한 사람이 42.1%로 나타났다.

2005년 3월28일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가 출산억제 기관에서 출산장려 기관으로의 변신을 선언하면서 ‘1·2·30운동’을 시작했다. 결혼 뒤 1년 내에 임신을 해서 2명의 자녀를 30살 이전에 낳아 잘 기르자는 의미였다.


△ 전국적으로 뿌려진 1960~80년대가족계획 포스터들.

2005년 8월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 출생·사망 통계 결과’에 따르면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합계출산율)는 1.16명으로 전년보다 0.03명이 더 줄었다. 1.16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미국(2.04명·2003년), 영국(1.79명·2004년), 일본(1.29명·2004년) 등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었다. 언론은 이를 ‘1.16 쇼크’라 부르면서 위기의식을 고조시켰다.

특정 도의 인구 감소는 ‘재앙’ 아닌가

<중앙일보>는 “이러다가 우리는 17년 뒤부터 사망자 수가 출생자 수를 웃돌아 절대 인구 수가 감소하는 이른바 ‘죽음에 이르는 사회’를 맞게 된다”고 했고, <조선일보>는 “답답하고 한심스러운 것은 일본식으로 표현하면 ‘유사 이래의 재난 사태’라 할 인구의 감소를 눈앞에 두고 이 정부가 딴전만 부리고 있는 것이다”고 했다.

2006년 5월8일엔 ‘1.08 쇼크’가 찾아왔다. 통계청이 발표한 합계 출산율이 1.08로 세계 최저를 기록한 것이다. 언론은 또 한 번 ‘재앙의 도래’를 선언하고 나섰다. <중앙일보>는 ‘국가적 재앙’으로 규정하면서 “서두르지 않으면 나라가 저출산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고 했고, <조선일보>는 ‘비상 상황’을 선포하면서 “이렇게 가다간 경제는 주저앉고 복지는 부도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저출산 재앙’에 대한 반론도 있지만 그건 극소수고, 다른 언론과 대부분의 지식인들도 ‘1.08 쇼크’에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나라의 인구 감소가 ‘재앙’이라면, 특정 도(道)의 인구 감소는 ‘재앙’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여러 도가 해당될 것이나, 가장 대표적인 전라북도의 경우를 살펴보자. 1966년 전북의 인구는 252만 명이었다. 당시 한국 인구는 2900만 명이었다. 그간의 인구증가율을 따진다면, 전북 인구는 오늘날 417만 명이 되어야 한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얼마인가? 178만 명이다! 다른 도들처럼 무슨 광역시가 떨어져나가 그런 게 아니다. 전북엔 광역시가 없다. 먹고살 길이 없어 무작정 다른 지역, 특히 수도권으로 빠져나간 것이다.


△ 1973년 한 호텔에서 ‘낳는 것은 여자가, 안 낳는 것은 남자가’라는 가족계획 세미나 광경이다. 애를 낳지 말라는 국가주의적 구호는 30년이 지난 오늘 애를 더 낳자는 구호로 변했다.(사진/ 연합)

우리 언론이 지방 인구 준다고 걱정해준 적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국제경쟁력을 앞세워 수도권 규제를 풀지 않는다고 아우성치면서 정부 욕하기에만 바빴다. 무슨 대안을 제시하면서 욕한 것도 아니었다. 맹목적인 폭격이었다. 그런 폭격 받다가 헷가닥한 건지는 몰라도 노무현 정권은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 기록될 뻔했던 ‘지방 살리기’ 프로젝트를 스스로 다 망쳐놨다. 노 정권의 업적은 정반대로 수도권 신도시 개발과 수도권 공장 신·증설 허용이 될지도 모른다. 수도권에 국내 대기업 공장 신·증설이 허용되는 것은 10년 만이라고 하니, 이 얼마나 거룩한 업적인가.

나라의 인구 감소하는 게 ‘재앙’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방 인구 감소 문제에 대해서도 눈을 돌려야 한다. 그게 정상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할 일이다. 또 하나 주목할 건 출산율이 감소하는 이유다. 그 이유도 규명하지 않은 채, 출산율 감소를 부추길 정책을 고집하면서 출산율 감소를 재앙으로 보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희진은 “저출산의 주원인은 가임 적령기 여성이 결혼 자체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평균 출산 연령이 서른 살에 육박하는 29.7살이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여성(41.5%)이 남성(19.9%)보다 두 배 이상 부정적인 결혼관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여성 출산 독려는 ‘불가능한 임무’

“이제까지 한국이 과도한 군사비 지출에도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은, 사회복지 비용을 전혀 부담하지 않고 이를 가족 내 여성의 성역할 노동으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여성들은 더는 이러한 이중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며, ‘현모양처’와 ‘커리어우먼’ 사이에서 분열과 고통을 감수하지 않는다. 저출산은 그간의 성차별에 대한 여성들의 조용하지만 격렬한 저항이다. 가부장제 사회가 던진 부메랑인 것이다. 저출산은 전통적인 여성 억압의 기제였던 출산을 저항의 무기로 삼은 여성들의 정치적 선택이다.”

이어 정희진은 “여성의 출산을 독려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대책이기 이전에, ‘불가능한 임무’다. 국민과 노동자의 개념을 바꾸고 인종적, 성적, 연령적 다양성을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안이다”고 말했다.

동의한다. 다만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작게는 사교육비, 크게는 대학입시 전쟁의 문제다. 앞서 거론한 전북여성정치발전센터 조사 외에도 여러 조사 결과 사교육비 부담 문제가 출산율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네 성적에 잠이 오냐?” “쟤 깨워라” “30분 더 공부하면 남편 직업이(마누라 몸매가) 달라진다” “10분만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 “끝없는 연습만이 살길이다. 10시간: 서울대, 8시간: 연대, 7시간: 이대”

일부 고교 교실의 급훈들이다. 지난 3월 교육부가 비교육적이라며 전국 시·도 교육청에서 장학지도를 통해 해당 학교장들이 재검토할 수 있도록 당부해달라며 예시한 것들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비교육적 급훈들이야말로 대학입시 전쟁의 진실을 말해주는 건 아닐까? 이즈음 사이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죽음의 트라이앵글: 누가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가’라는 제목의 동영상은 2008년 대입이 내신-수능-대학별 고사로 이뤄진 ‘최악의 삼각형’이라고 주장하면서 “친구를 짓밟고 적으로 만드는 것이 창의적 인재인가”라고 물었다. 그 동영상을 만든 학생들은 “우리 가슴속의 분노와 피해의식, 그 모든 것은 바로 당신들이 키웠다”면서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했다.


△ 대학입시를 목표로 하는 사교육비 부담은 출산율 저하의 주범이다. 묻지마 교육비 투자를 불러온 입시 전쟁의 해법 없인 출산율 저하에 대한 해법도 없다.(사진/연합)

이 동영상이 말한 ‘당신들’은 정부·학교·학원·대학 등이었지만, 기성세대는 누구도 그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2003년 대학입시 전쟁으로 인해 자살을 하는 어린 학생들이 속출했으며, 그 연령대가 초등학교 5학년 학생으로까지 내려갔을 때, 언론은 자살 사건들을 개탄하듯이 보도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한국형 약육강식 시스템을 사실상 옹호했다.

대입 입시 전쟁 자체를 없앨 수는 없지만 그걸 정상적인 ‘경쟁’의 수준으로 완화하는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그건 부모의 책임으로 간주되는, 10대 후반에 한 번 치르는 입시전쟁으로 평생을 결정하게 만드는 기존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엘리트층의 대부분이 지금처럼 서너 개 또는 대여섯 개 대학 출신이 독식하는 한, 그 그룹에 끼고자 하는 전쟁은 사라지지 않게 돼 있다.

보수언론이여, 진정한 국가주의자가 돼라

따라서 기존 학벌의 ‘경로 의존’에 변화를 주는 게 필요하다. 기존 명문대들의 정원을 대폭 줄여 소수 정예주의로 가게 하면서 그들의 엘리트층 독식을 제어하고, 수십 개 대학 출신이 엘리트층 다수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한다면, 지금과 같은 경쟁의 병목 현상은 크게 완화될 수 있다. 일단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 다시 한 번 경쟁을 해볼 수 있고 대학 졸업 뒤에도 경쟁이 가능하게끔 하자는 것이다. 자녀의 생존경쟁 책임을 부모가 지지 않게끔 해주자는 것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보자면 지금과 같은 ‘고교 평준화’ 정책은 올바른 대안이 아니다. ‘고교 평준화’ 철폐는 더더욱 아니다. 엘리트층의 명문대 출신 독식은 이미 오랜 ‘경로’로 설정돼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경로를 바꿔주지 않는 한 그 어떤 입시정책 변화도 하나 마나 한 짓이다. 그럼에도 그런 하나 마나 한 짓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입시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은 물론 정부 밖에서 교육운동을 하는 사람들조차 기존 경로의 기득권자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아예 그런 문제의식이 없을 수도 있다.

이러한 경로 변경 주장이 무조건적인 학벌 타파로 오해받은 측면도 있다. 진정 변화를 이뤄내고자 한다면, 교육운동가들도 학벌 타파는 불가능한 목표라는 걸 인정하고 경쟁의 병목 현상을 뚫어주자는 현실적인 목표로 이동하면 좋겠다.

보수언론에도 당부하고 싶다. 비판이 아닌 호소를 하고 싶다. 담론상으론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에선 국가주의는 비판의 대상이지만, 과연 한국에 진정한 국가주의자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보수언론이 부디 진정한 국가주의에 충실해주면 좋겠다. 진정 국가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앞뒤가 맞는 주장을 하고자 한다면, ‘출산율 재앙’의 주요 원인이 대학 입시 전쟁에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기존 대학 입시 전쟁을 무조건 옹호하거나 더욱 가열찬 전쟁을 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일만큼은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

보수언론이 대학 입시 문제를 다룬 지면을 보라. ‘평등주의’니 ‘포퓰리즘’이니 ‘하향 평준화’니 운운하는 이데올로기 공세가 난무한다. 입만 열었다 하면 그 소리인지라 신물이 날 지경이다. 보수언론이 원하는 대로 대학 입시 정책이 이루어진다면, 출산율은 더욱 감소할 것이다. 자신들이 믿는 어떤 ‘재앙’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이 믿는 또 다른 ‘재앙’을 자초하는 그런 어리석은 게임을 언제까지 계속할 셈인가?

보수언론이 진보 진영을 향해 쏟아내는 독설 중엔 타당한 것들이 많다. 그런데 비극은 그런 독설이 자기들에게도 해당된다는 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역설 같지만, 이는 그들이 진정한 국가주의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야는 국가에까지 뻗어 있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협소한 당파적 범주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총장은 서울대만 생각할 것인가

서울대 총장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총장쯤 되면 대한민국 교육 전체를 생각하는 발언을 할 법도 한데 여태까지 그런 총장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서울대 기득권 지키기에만 일로매진했다. 서울대가 잘되면 무조건 한국이 잘된다는 그들의 신앙은 자기 재벌그룹이 잘되면 그게 곧 한국이 잘되는 거라는 재벌 총수들의 신앙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처럼 국가주의자의 씨가 마른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국가주의자는 없는데 국가주의 비판이 난무하는 한국의 모습은 보기에 처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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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국경을넘어 > 월드컵의 나라들 -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월드컵이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의 나라들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메소아메리카


멕시코(Mexico) '군신 메히크틀리‘


메소 아메리카의 나라. 그 수도를 멕시코 시티라 부른다. 멕시코라는 지명은 처음에는 이 도시에 붙여진 지명이었다. 1521년 스페인 귀족 코르테스가 이끄는 군대가 이 지역에 있었던 아즈텍 왕국의 도읍을 파괴하고 이 폐허에 노바이스파니아 식민지의 중심도시를 건설하였다. 이 중심도시는 용맹한 원주민 아즈텍족의 신앙이었던 군신 메히크틀리(Mexictli)의 이름을 따서 Mexico라 불렀다. 영어로 읽으면 멕시코이다.

1820년대 노바이스파니아 식민지가 본국에서 독립하여 멕시코 시를 중심으로 하는 지방이 멕시코 공화국으로 되고 수도는 멕시코 시티로 불리게 되었다.




코스타리카(Costa Rica) ‘부유한 해안’


메소아메리카의 공화국. 스페인어의 코스타 ‘해안’과 리카 ‘부유한’을 합성한 지명. 이 지명은 1502년 콜럼버스가 여기에 상륙하여 코스타델오로(Costa del Oro) '황금의 해안‘이라 이름붙인 데서 유래한다. 콜럼버스가 본 인디언은 황금을 가지고 있어서 이 지역은 황금의 산지라 생각하고 이와 같이 이름을 붙인 것이었으나 이 황금은 다른 지역의 것이었다. 황금해안이란 이름은 ’풍부함‘을 연상하게 하고 식민지로 되자 코스타리카 ’부유한 해안‘이란 지명을 낳아 카리브해 서안지방의 광역지명으로 되었다. 19세기에 이 지방을 중심으로 해서 국가가 형성되고 코스타리카로 부르고 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Trinidad and Tobago) ‘성령강림절의 첫 번째 일요일과 토바고’


메소아메리카의 조그만 섬 나라 공화국. 중심 섬은 트리니다드 섬. 이 섬 이름의 어원은 다음과 같다. 1498년 3회째 항해에 나선 콜럼버스는 성령강림절의 첫 번째 일요일에 이 섬을 발견하였다. 이날은 스페인어로 트리니다드로 불리기 때문에 섬도 트리나다드섬이라 명명했다. 또한 이 지명이 선택된 또 하나의 이유는 섬의 지형때문이라고 한다. 콜럼버스가 섬을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세 개의 봉우리가 보여 세 개의 섬인 것 같은데, 가까이에 이르면 하나의 섬이라는 것이다. 이는 삼위일체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트리니다드 ‘삼위일체와 강령절 첫 번째 일요일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1926년 트리니다드 섬은 토바고 섬 등 다섯 개의 섬과 함께 석유를 자원으로서 독립하고 공화국으로 되었다.




남아메리카



에콰도르(Ecuador) '적도‘


남미의 공화국. 15세기말 이 지방은 잉카제국령이었고 1532년 피사로의 스페인군이 잉카제국을 멸망시키고부터 300여년의 시간동안 스페인 식민지였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다른 식민지와는 격리된 상태에 있어서 독립지향이 강하였다. 1830년에 독립하여 에콰도르공화국으로 불렀다. 에콰도르는 스페인어로 적도를 의미하고 국토가 적도에 걸치고 있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파라과이 ‘파라과이 강’


남미의 공화국. 파라과이는 1811년까지 스페인의 식민지 지방인데 파라과이천 유역지방을 중심으로 독립하여, 강 이름을 따서 파라과이공화국이라 불렀다. 파라과이 강의 어원은 인디언어 para '물, 강‘과 guay ’샘, 강’이 합쳐진 것이다.

우루과이라는 나라 이름에서도 과이(강)가 등장한다. ‘(우루)과이강 동쪽 지방’이라는 의미이다.




아르헨티나(Argentina) ‘은의 나라’ 또는 ‘라플라타강의 나라’


남미의 공화국. 1526년 이탈리인 탐험가 세바스찬 가보트가 남미 대륙을 남하하는 대하천을 답사하고 라플라타강(Rio de la Plata) '은의 강‘이라 부렸다. 이것은 그가 탐험 중에 만난 인디언이 그의 소지품과 은을 교환했다고 한데서 유래한 것인데 카보트는 이 유역에서 은이 생산된다고 추정하고 ’은의 강‘이라 불렀던 것이다(실제로는 은의 산지는 아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고 이 하천 연안의 비옥한 대초원은 스페인령 라플라타 식민지로 되고 많은 이주자를 맞이하게 된다.

1810년 식민지에 대한 스페인 본국의 착취에 반대해서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1826년에는 독립국이 탄생하였다. 새로운 나라 이름에는 옛 이름 라플라타 ‘은’을 대신하여 다른 스페인어 형용사 Argentina ‘은의’를 사용하였다. 현재 이름 아르헨틴은 이것을 영어화한 것으로 직역하면 ‘은의(나라)’인데 내용적으로는 ‘라플라타 강의 나라’를 의미한다.




브라질(Brazil) '붉은 나무‘


남미의 공화국. 붉은 색 염료의 원료목인 브라질 나무에서 나온 지명. 포르투갈인이 이 나라의 한 지방에 상륙했을 때, 브라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새빨간 붉은 색을 띠고 있던 이 나무를 보고서 브라질 ‘붉은 나무’(포르투갈어의 brassa '붉게 타오르는‘에서 온 말)로 이름 붙였다. 곧 이것이 지명으로 되어 식민지명으로 되었고 나라 이름으로 되었다.




아프리카



튀니지 - 튀니스(Tunis)시 '타니트흐신‘


아프리카 대륙 북부 튀니지 공화국의 수도. 이 도시는 기원전 수세기에 페니키아인에 의해서 건설되어 카르타고의 수도로서 번영을 누렸다. ‘튀니스’의 어원은 이 도시에서 제사지내어지던 이 도시의 수호신인 페니키아의 신 타니트흐(Tanitkh)이다. 도시의 오래된 이름은 타니트라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현재의 이름 튀니스로 되었다.

국명 튀니지는 이 튀니스에서 만들어졌다. 튀니스에 라틴어의 지명 접미사 이아(-ia)를 붙여 튀니지로 되어 ‘튀니스시(를 중심으로 하는) 나라’의 의미로 쓰여진 것이다. 1958년에 독립하였다.




코트디부아르 ‘상아 해안’


서아프리카의 공화국. 이 지명은 상아해안을 의미하고 영어로 표기하면 Coast of Ivory이다(Coast ‘해안’과 Ivory ‘상아’의 합성) 15세기경부터 포르투갈인이 내항하여 상아 교역을 했기 때문에 이 해안지방은 상아해안으로 불려졌다. 20세기 초두에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에 편입되어 1960년에 공화국으로 되었다. 식민지 시절 경험 때문에 프랑스어의 국명을 정식명칭으로 되었다.




가나(Ghana) '가나 제국‘


영국 식민지 시대에 황금해안으로 불렸던 아프리카 공화국. 가나는 독립하여 4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서해안에서 번영한 강대한 흑인 제국 가나의 이름을 새로운 나라 이름으로 하였다. 고대 가나는 이 황금해안과는 떨어진 지방에 영토가 있었고 부족적으로도 관계가 없었지만 독립운동의 지도자 당쿠아가 이것을 새로운 나라의 이름으로 할 것을 강하게 제창하였기 때문에 국명으로 되었다. 고대 가나의 의미는 명확치 않다.




토고(Togo) '토고 호(湖)‘


서아프리카의 공화국. 여기에 있는 토고호에 따라 붙여진 지명이다. 토고의 어원은 밝혀져 있지 않다.




앙골라(Angola) '응골라 왕국‘


중앙 아프리카의 공화국. 1482년 포르쿠갈인 디에고 카오가 콩고강 하구 지방에 도착, 이 지방에 있었던 흑인 왕국 반투 응골라(Bantu Ngola) 즉 ‘반투족 응골라’의 응골라를 이 지방의 지명으로 하였다. 응골라는 왕의 칭호였고 그 영토를 의미하였다고 생각된다.

당시 응골라 왕국은 포르투갈과 대등한 국교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곧 식민지화되고 1559년에 포르투갈의 초대 총독이 부임한다. 지명 응골라도 포르투갈어화하여 앙골라로 되고 하구 지방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식민지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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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고정희

 

무덤에 잠드신 어머니는

선산 뒤에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말씀보다 큰 여백을 걸어두셨다

석양 무렵 동산에 올라가

적송밭 그 여백 아래 앉아 있으면

서울에서 묻혀온 온갖 잔소리들이

방생의 시냇물 따라

들 가운데로 흘러흘러 바다로 들어가고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것은 뒤에서

팽팽한 바람이 멧새의 발목을 툭, 치며

다시 더 큰 여백을 일으켜

막막궁산 오솔길로 사라진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나도 너로부터 사라지는 날

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

네 사립에 걸린 노을 같은, 아니면

네 발 아래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

그 아래 네가 앉아 있는

 

-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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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자림 > 파블로 네루다의 '시'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고 있었어,

열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그림자,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그림자,

휘감아도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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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7 2006-06-17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블로 네루다의 몸속에 이런 말들이 알알이 들어차 있다가 한꺼번에 다 쏟아져 나온것 같네요. 와 시란 이런거군요.좋은시 잘 읽고 갑니다 잘 퍼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