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화장법
아멜리 노통브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11월
구판절판


내가 적의 존재를 믿는 것은, 밤낮 할 것 없이, 내 삶의 길목마다 그것과 마주치기 때문입니다. 적이란 내부로부터 파괴할 가치가 있는 것들은 무엇이든 파괴해버리지요. 그는 각각의 현실 속에 내재하는 조락의 기운을 드러내 보여줍니다.-33쪽

인간이란 하나의 성채城砦이고 감각들은 그리로 드나드는 문들이라고 했습니다. 청각은 그러니까 가장 방비가 허술한 입구인 셈이지요.-42쪽

나는 극도의 형식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엄격한 화장법에 의거해 행동하는 셈이죠.

그래 그 '법'으로 대체 어디가 얼마나 아름다워지셨소?

화장법이란 보편적 질서의 학문이자 이 세상을 결정하는 지고의 도덕률이라오. -113쪽

자아라는 종교는 이상도 하구만. '나는 나입니다. 나일 뿐이고, 나 이외에 다른 아무도 아닙니다. 나는 나이기에, 나는 내가 앉아 있는 이 의자가 아니며, 내가 바라보고 있는 저 나무도 아닙니다. 나는 세상 다른 모든 것과 뚜렷이 구별되며, 내 육체와 정신의 경계 안에 한정됩니다. 나는 나입니다.-130쪽

3백년 전의 어느 대단한 철학자가 자아란 가증스런 거라고 말할 수 있고, 지난 세기의 위대한 시인 하나가 나는 곧 타자라고 말해도 되는 건, 다 그래서야. 그건 마치 심심풀이 땅콩처럼, 살롱의 안락의자 속에 푹 파묻혀서 나누는 대화에나 써먹기 좋은 거지. 각자 자신의 자아에 죽치고 눌러 앉아, 나는 나고 너는 너라는 우리의 든든한 확신에는 눈곱만치의 영향도 주지 않으면서 말이네.
-131-132쪽

누구나 자기 내부의 적을 너무 오랫동안 입막아두고 있으면 이렇게 되는 법이라네. 그러다가 일단 마이크를 붙잡게 되면 절대로 놓지 않으려 드는 거지.-132쪽

나는 아무것도 잊어버리는 법이 없는 자네의 일부일 뿐이거든. 모르는 것과 잊는 것은 아주 다르지. 만약 사람들이 모든 기억을 잃지만 않는다면 전혀 모른다고 생각해온 주제에 관해서도 얼마든지 서로 의견을 나눌 수가 있는 거라네.-133쪽

난 자네 자신을 파괴하는 자네의 일부분이야. 거대해지는 모든 것은 자기파괴능력을 배가시키는 법이지. 내가 바로 그런 능력이고.-136쪽

가장 심각한 사랑에 빠진 남자조차도 - 아니, 특히 그런 남자일수록 - 언젠가는, 비록 일순간이나마, 자기 여자를 죽이고 싶다는 욕망이 드는 법이라네. 바로 그러한 순간, 그게 바로 나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그 감춰진 모습을,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믿을 정도까지 무마시키고야 마네. -141쪽

물질적인 증거라는 것은 너무도 투박하고 멍청해서 확신을 굳혀주기보단 오히려 그걸 약화시키기 마련이라네.-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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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10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통 작품을 이걸 읽고 반했다가 살인자의 건강법에서 실망했답니다 ㅠ.ㅠ

프레이야 2006-02-10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둘다 '살인'이 등장하네요.. 전에 읽었던 것들에 밑줄 친 것 올려봅니다.^^

하늘바람 2006-02-11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멜리 노통좋아요

프레이야 2006-02-11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바람님, 그러고보니 앙테크리스타, 와도 비슷한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