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신의 <생각이 나서>를 낭독하다가, 에이즈로 요절한 미국 사진 작가 Peter Hujar의 사진 제목이 나와,

녹음을 잠시 멈추고 바로 검색 들어갔다. '그로테스크하다'는 표현을 썼길래 하도 궁금해서...

 

 

 

 

Candy Darling은 트랜스젠더 여성이었던 모양이다.

죽음을 앞두고 짙은 눈화장에 진한 립스틱을 바르고 새하얀 시트에 싸여 텅빈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얼굴.

그 뒤로는 하얀 국화, 그 왼쪽 앞으로는 병에 무심히 꽂혀있는 한 다발 야생화. 그리고 그녀 앞에 헌사된 (마른) 꽃 한 송이.

흑백의 강렬함에 절묘한 구도!!!   캔디가 응시하는 곳은 죽음 저 너머의 곳일까. 아무곳도 아닌 그 어디일까.

 

우리영화 '헬로우 고스트'에는 호스피스 병동이 나온다.

며칠 전 우연히 티비채널을 돌리다 이 영화가 나오는 걸 잠시 보다가

몇 해 전 크리스마스 이브에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본 기억이 새록새록.

호스피스 병동은 상대적으로 명확해진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가 모여있고 정말이지 매일 죽음이 있고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말이 그저 관념이 아니라 일상인 곳이겠다 싶었다.

호스피스 병동은 가보지 못했지만 올봄 언젠가 노인요양원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엔 50대에서 90대까지 병든 노인들이 계셨고 부지런히 움직이며 노인들을 돌봐주는 요양사들이 일하고 있었다.

각 병실엔 6-8명 정도의 침상이 있고 화사한 이불 아래 거동이 힘든 노인들이 천장을 그저 보고 누워 있거나

모로 누워있거나 요양사의 도움으로 물리치료실로 이동하기 위해 휠체어로 옮겨 앉고 있거나

(전적으로 요양사에게) 용변처리를 도움 받고 있었다. 각 병실의 문앞에는 명패처럼 이름표와 나이가 붙어있어서

침상의 그것에 맞춰 남녀 노인들을 눈으로 찾아보았다. 뭐라 말하기 쉽지 않은 게 목울대를 치고 올라왔다.

나는 요양사 한 분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좀 들었고, 순전한 봉사는 아니어도

이런 일에 자신의 몸과 시간과 마음을 나누는 그분들이(대개 4-50대 여성) 달리 보였다.

한 분 요양사가 4-6명 정도의 노인을 돌보고 있었는데,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까 단련되어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뭐든 자발적으로 즐겁게 하는 일이면 몸은 조금 힘들다해도 마음은 가벼운 거지.

바깥 햇살이 그분들 표정만큼이나 밝은 날이었다. 

 

 

 

 

 황경신의 <생각이 나서> 중, 99장 "죽음 또는 삶의 기록"에는

죽음의 사진, 그러니까 죽기 직전과 죽은 직후의 얼굴 사진이 실려있다.

독일의 한 사진작가와 저널리스트가 호스피스 병원을 찾아가

죽음을 앞둔 스물세 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 삶과 죽음의 기록을 남긴 것.

이 책에는 어느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을 담은 사진과 6세 남아의 사진을 대조적으로 실어놓았다.

 

사람은 눈을 뜨고 있는 모습과 감고 있는 모습이 참 다르다.

눈동자에 담긴 빛과 어둠, 눈가의 주름, 눈언저리 표정, 눈썹의 모양까지 다르다.

물론 눈을 감으면 눈동자는 덮힌다. 고요히, 평화롭게.

그리고 눈을 감으면(엄밀히 말해 눈이 감기면) 입모양도 달라진다.

눈 아래 그림자 모양까지 달라보인다.

 

 

 

황경신은 엉뚱하게도, "나도 죽은 다음에 누가 사진을 찍어주면 좋겠다"고 말한다.

주위 반응이 어이없다는 얼굴이 되니, "됐어. 셀카로 찍을래. 죽기 직전이라도, 라고 말했다네. ^^

 

이 장의 마지막 줄 문장,

 

죽음도 삶의 일부고, 삶도 죽음의 일부다. 삶을 나눠 가진 우리는 서로의 일부다. (1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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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5-17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도 삶의 일부다...
아 졸려서 깊게 생각을 못하겠어요.
으윽, 그래도 문장은 참 좋다. 으윽.
프레이야님 안 졸려요? 저는 이제 자야겠어요.
안녕히 잠자리에 드셔요 ^___^

프레이야 2012-05-17 23:51   좋아요 0 | URL
벌써 그런 생각 깊게 하실 필요 있을까요 ㅎㅎ
나중에 나이 더더 먹어가면 안 하려고해도 자꾸 하게 될 걸요.
소이진님 저도 졸려서 이제 자려구요.^^ 굿나잇~~~

다락방 2012-05-18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저는 죽음도 싫고 사진 찍는것도 싫은데요, 이 페이퍼에서 황경신의 말을 읽노라니 저도 죽은 다음에 누가 제 사진을 찍는것은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약간 무섭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건 괜찮을 것 같아요.

좋은 아침입니다, 프레이야님! (위에 소이진님과는 밤인사를 나누셔서 저는 아침인사로. 흣)

프레이야 2012-05-18 09:5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좋은아침이에요!!!
저도 저 문장 읽을 때 마음속에서 반짝, 누가 제 마지막 눈 감은 순간의 사진을 찍어주면 좋겠단
생각을 했어요. 모든 건 내려놓은 평화의 얼굴이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