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물의 힘
이정록
느릅나무 향나무 노간주나무, 그 어떤 무쇠나무로 코뚜렐
만든다 해도 소 콧구멍에 주소를 둔 놈이라야 힘을 쓰는 겨
헛간 말쿠지에 몇해째 걸려만 있는 코뚜레는 지 몸 휘어잡고
있는 지푸라기 한 올도 끊덜 못혀
쇠전에 끌려나온 목매기송아지처럼, 오늘도 맘껏 울어
눈물 콧물에서 용쓰는 힘이 나오는 것인께
워쩔껴? 인연이란 게 다 코가 꿰인 울음보인 것을,
여덟 팔자 반토막 콧물 전 코뚜레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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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이정록의 '정말'에 실린 시들이 참 좋다. 하나하나 모두.
한 일주일 가량 콧물바람 하며 미열을 달고 감기를 맞았다. 지금은 목 아픈 거만 좀 남아 살만하다.
콧물의 힘! "인연이란 게 다 코가 꿰인 울음보인 것을, 여덟 팔자 반토막 콧물 전 코뚜레인 것을"
벗이 자신은 팔자랑 싸울 거니 나는 인연이랑 싸우라는 인사를 보내왔다.
와, 화두 중에서도 보통이 아닌 화두다.
인연이랑 어떻게 싸워야 이길 수 있을까. 여덟 팔자 반토막 콧물 전 코뚜레랑 어떻게 싸울까.
작년에 출간한 박범신의 에세이. 그냥 끌려 빌려온 책이다.
존재의 안부를 묻는 일곱가지 방법,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제목 뒤에 커다란 마침표를 찍어둔 게 눈에 띈다.
'은교'에서처럼 예순이 된 작가는 늙고 병들고 죽는
인간의실존과 그것을 딛고 존재하는 현명한 방법을 시원시원하게 풀어놓았다.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과 지혜가 공존하는 글이 생각보다 마음에 든다.
산다는 것은 병을 앓는 것이다,로 시작하는 서문에 우리의 오욕칠정이 병을 앓게
하는 것이라는 말로 부연한다. 즉, 병을 앓지 않는다면 사는 것도 아니란 말.
또한 삶이 교란되지 않을 정도로 쿨한 감정을 유지할 수 있는 신세대의 연애와
늙다리세대의 연애감정을 비교한 대목도 와닿는다. 감정의 기복을 무난하게 여미며
연애하는 젊은 그들이 부럽다는 얘기다.
특히, 이런 문장은 이순을 넘긴 '젊은' 작가의 통찰이 엿보인다. 옮겨보면...
내게 있어 연애는 여전히 평화보다 '투쟁'에 가깝다.
사랑은 합리성을 벗어난 비정상적인 감정과 다름없어서, 한번 연애에 돌입하면, 무슨 일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내부에서 끊임없이 추락과 상승이 반복되고, 주관과 객관이 전도되고, 이성적 판단과 감성적 선택의 경계가
무화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내부의 열망으로 모든 감각체계가 풍뎅이처럼 부풀어 매사에 균형과 안정감을
잃게 되는 것이다. 공부라고 뭐 다르겠는가. 특히 창작이란 비정상적인 감정의 반응을 포착하여 그 씨앗으로
얻어내는 과실 같은 것이라서, 심리적 균형은 경우에 따라 언제든 독이 될 수 있다. (66쪽)
평화보다 투쟁의 길인 줄 처음엔 모른다. 눈치채기도 어렵다.
합리성을 벗어난 비정상적인 감정과 투쟁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을 포착하여 창작의 열정에 씨앗내려 과실을 얻어내려면 지금 좀 더 현명해져야 하지 않을까.
겨울은 다가오고 헛헛한 마음을 빈숲에 좀 내려놓고 한줄기 햇살이라도 좀 받고 싶다.
그래야하는데 왠지 사방이 안개속, 겨울안개속이다.
그래도 글을 써서 열망을 터뜨리라고 격려하고 응원해 주는 한 사람의 벗이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생각은 내려놓으라 했는데, 또 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아무튼, 산다는 것은 여덟 팔자 반토막 콧물 전 코뚜레랑 싸우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