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안에 붕어가 없듯, 시 '정말'은 이정록 시인의 시집 <정말> 안에 없다.
하지만 그의 말은 '정' '말'이다.
말말말... 실존도 형체도 없는 그놈의 말이 사람을 수시로 희롱하고 배신하는 시간,
그의 '정말'이 한 사발 막걸리 같다. 참말로 '정'하고 또 '정'많다.
그의 시는 하나같이 걸쭉한 언어로 녹슬고 얼어붙은 가슴을 때리고 산발한 머리를 친다.
가령, 아래의 시 '아버지의 욕'은 내 아버지의 그 옛날 잊히지 않는 욕을 떠올린다.
아침잠 많던 무결한 착한 딸에게 던졌던 해서는 안 되었을 욕을 떠올려주고,
세상에서 제일로 부지런하게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 일만 하고 살아오신 듬직했던 당신의 등을 떠올려주고, 
세월의 강물을 따라 정처없는 나, 마흔여섯의 나에게 그 욕의 예언성을 확인해준다.
뭐한거야, 뭐하고 산거야, 라고. 

 

 

아버지의 욕  

 

- 이정록 

 

"운동화나 물어뜯을 놈" 
어릴 적에 들은 아버지의 욕
새벽에 깨어 애들 운동화 빨다가
아하, 욕실 바닥을 치며 웃는다.


사내애들 키우다보면
막말하고 싶을 때 한두 번일까마는
아버지처럼, 문지방도 넘지 못할 낮은 목소리로
하지만, 삼십년은 너끈히 건너갈 매운 눈빛으로
'개자식'이라고 단도리칠 수 있을까


아이들도 훗날 마흔 넘어
조금은 쓸쓸하고 설운 화장실에 쪼그려 제 새끼들 신발이나 빨 때
그제야 눈물방울 내비칠 욕 한마다, 어디 없을까
"운동화나 물어뜯을 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나는
"광천 쪽다리 밑에서 주워온" 고아인 듯 서글퍼진다


"어른이라서 부지런한 게 아녀
노심초새한테 새벽잠을 다 빼앗긴 거여"
두 번이나 읽은 조간신문 밀쳐놓고 베란다 창문을 연다
술빵처럼 부푼 수국의 흰 머리칼과 운동화 끈을
비눗물방울이 잇대고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caru 2011-10-31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정말 잘 읽었습니다. 아삼삼해지네요 ㅎ 꼭 이정록 시인이 고등학교 때 한문선생님이셨기 때문은 아니구요 ㅎㅎ

프레이야 2011-10-31 17:38   좋아요 0 | URL
이카님, 아삼삼해진다는 말씀, 어떤 느낌이 옵니다.ㅎㅎ
고등학교 때 한문샘이요? 멋진 인연이네요. 이런 멋진 시인을 스승으로^^

하늘바람 2011-10-3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문선생님이셨군요. 이정록시인이. 또 다른 느낌이네요.
이정록 시인 참 좋아요

프레이야 2011-10-31 19:32   좋아요 0 | URL
정말 좋더군요. 충청도 방언을 실감나게 쓴 싯구들도 너무 좋아요.
다른 시집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팍팍 드는 시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