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오늘 배캠의 철수씨는 촌철시인 김경주를 모시고 시와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경주가 대학시절 손으로 적어서 책상 앞에 붙여놓고 외곤 했다는 시는 김중식 시인의
'이탈한 자가 문득'이다. 나는 처음 들은 시인인데 당시 이 시는 상당한 호평을 받고
젊은 층의 입에서 입으로 많이 불렸던 시라고 소개한다.
우리가 상정하고 벗어나지 못하는 궤도, 혹은 사회적으로 주어진 궤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잣대로 판단되는 성공과 실패, 우월과 열등, 도덕과 부도덕, 이 모든 것에서 탈주할 수 있기가
쉽지 않지만 그런 자유를 꿈꾸는 자는 그래도 반은 이탈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시선과 타인의 평가로부터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가장 행복한 방식으로 사랑하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김중식 시인은 이 시집이 처녀작이자 그 후속 시집은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