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여
슬픔이여,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 물은 적 없었던
슬픔이여
찬물에 밥 말아먹고 온 아직 밥풀을 입가에 단
기쁨이여
이렇게 앉아서
내 앉은 곳은 달 건너 있는 여울가
내가 너를 기다린다면
너는 믿겠는가, 그러나
그런 것 따위도 물은 적이 없던
찬 여울물 같은 슬픔이여,
나 속지 않으리, 슬픔의 껍데기를 쓴
기쁨을 맞이하는데
나 주저하지 않으리
불러본다, 기쁨이여,
너 그곳에서 그렇게 오래
날 기다리고 있었는가,
슬픔의 껍데기를 쓴 기쁨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
나는 바라본다, 마치,
잘 차린 식사가 끝나고
웃으면서 제사를 지내는 가족 같은
기쁨이여
- 허수경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중
눈을 본 지 아주 오래다
내일모레 설날에도 눈을 보기 어려울 거다
아주 오래 해 전 3월에 폭설이 내렸다
세상은 순식간에 낯선 곳이 되고
어안이 벙벙한 나는 발 둘 곳 몰라 허둥거리다
아이의 작은 발자국을 따라갔다
그 옴팡한 시간 속에 고스란히 나를 담는 일만 있는 듯했다
눈을 본 지 아주 오래다
그러고 보면 아주 오래된 것들이 적지 않다
어제 그저께도 아주 오래 전의 일만 같다
때론 시간은 역순이 아닌가 싶어 나는 작은 씨앗이 되어 눈발마냥 흩날린다
거슬러갈 수만 있다면
3월에 눈이 오고,
봄은 멀고 겨울은 끝나지 않았는데
차라리 겨울의 겨울로 거슬러갈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