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안의 공원 주변에 온통 눈꽃이 피었다. 대낮에도 등불을 밝혀둔 것처럼 천지가 봄햇살처럼 화사하고 따스하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살폿살폿 내리는 눈꽃송이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가볍다. 얄궂은 봄바람의 입김을 거스르지도 않고 괜한 어깃장을 부리며 투정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날리다 바닥으로 떨어져 앉은 눈꽃송이를 난 감히 밟지 못한다. 발소리도 안 내고 그 옆을 가만히 걸어간다.
눈꽃송이들은 시시각각 다르게 보인다. 이른 아침에 이들은 막 잠에서 깬 듯 조용하다. 고요함으로 정지하여있다. 조심스럽게 하루를 열고 싶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수줍어하며 또롱한 눈망울을 굴리는 아이의 얼굴을 닮아있기도 하다. 어느 어머니가 식구들 깰까 물소리도 조용히 얼굴을 씻고 앉아 기도의 싯구를 읊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4월을 알리는 봄비가 내리던 날, 눈꽃송이는 젖고 젖어서 참 겸허해보였다. 자신에게 오는 차가운 물줄기를 피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받아들여서, 자신을 피워올려주는 줄기에, 뿌리에 자양분으로 내려보낸다. 비가 그친 후, 그토록 청아하게 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눈꽃송이를 하염없이 올려다보았다. 눈꽃송이는 햇살을 받아 더 영롱하다.
아직은 커다랗지 않다. 올망졸망한 얼굴로 까르르 웃으며 모여있는 눈꽃송이는 유치원 셔틀을 기다리고 섰는 아이들의 얼굴을 닮아있다. 아이들이 좋아하여 냄비가득 튀겨낸 팝콘 같기도 하다. 토닥토닥 냄비안에서 나는 소리는 경쾌하다. 아마 눈꽃송이도 그런 소리를 내며 앞다투어 터졌을 것이다. 얼마나 밝고 귀여운 소린가. 소리가 멈추고 숨을 죽여 뚜껑을 열면, 고소한 내음을 풍기며 뽀얗게 피어나있다.
어제 저녁, 아이들 이모집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오랜만에 잠깐의 나들이를 했다. 아, 하얀 가로등불이 비춰주는 벚꽃송이들은 잠시 온 천지에 눈이 내렸나 착각을 불러왔다. "와아, 엄마, 눈꽃이다.~ 길에도 눈이 많이 내렸어." 황홀하여 쳐다보고 섰는 나를 아이들이 흔들어 깨운다.
요즘은 어딜 간들 이보다 못할까. 전국이 봄나들이하러 나온 사람들로 몸살을 앓고 있을 텐데. 봄을 그렇게 떠들썩하게 만나는 것보다 나만의 느낌으로 은밀하게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이의 손을 잡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 그 길지 않은 벚꽃길이 날마다 나에겐 새롭다. 오늘은 어떨까 설레며 만나면 기껍다. 꽃은 아무 말이 없는데 나의 간사스러움이 날마다 다른 말을 걸고 싶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