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제목 때문에 득도 실도 있을 것 같다. 어찌 보면 도발적인 제목에서 잠정구매자의 호기심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그 제목에서 걸리는 몇 개의 단어들이 오해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게된다. 제목에서 기대했던 어떤(?)것과 다르다고 다소 실망했다는 말도 들을 수 있는 책이다. 뭘 기대했는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목에서, '나는'이라는 단어는 저자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자신의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이야기들로 행복론을 풀어간다는 뜻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있어야 삶이 행복하다는 책의 내용과 맞닿는 단어다. '아내'는 세상의 모든 인간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다할 수 있는 배우자, 그러니까 혈육을 제외한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에 놓여있는(또는 놓여있어야하는) 사람을 대표한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에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로 사람이 살면서 행해야하는(혹은 행할 수밖에 없는) 어떤 일이나 인생의 중대한 사건을 의미한다. '후회한다'는 인간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자기반성이나 자기반영에 다름아닌 단어가 된다. '나는 남편과의 결혼을 후회한다'라고 제목이 바뀌어도 전하는 메시지는 하등 다를 게 없다는 말이다.

저자는 40대 후반의 남자다. 하지만 그것에 한정되어 이 책의 부제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이라는 말에 경도될 필요가 없는 책이다. 이 책은 남자, 여자에 관한 책도 아니고, 남자만 영원히 철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여자는 더할 수 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철들지 않을 확률 99.9%다. 이 책은 흔하디 흔한 말, '행복'에 관한 솔직담백하고 본질적인 이야기, 인생을 사는 목적과 그 과정의 중요함에 대한 이야기, 다시 말해 '어떻게 살면 행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보다 세밀한 이야기가 된다. 틈틈이 문화심리학자다운 전문용어와 철학자의 이름이 나오고 학자다운 서술이 충분히 의미있지만, 전체적으로 아주 쉽고 대중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웃으며 공감할 수 있게 서술해 놓았다. 의도적으로 무게잡지 않는 쪽으로 간다.   

최근 삶이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과 한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았다. 극명한 대조였고 놀라운 부분도 있었다. 나로 말하자면, 아주 가끔 행복하지만 대개는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분명 행복하고 싶은데 왜 행복하지 않지?, 라는 어리석은 질문에 이 책이 명쾌한 답이 된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정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한마디로 말해 저자가 내리는 답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재미는 어디서 어떻게 생기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 있다.  

부사적인 삶과 맥락을 바꾸는 삶, 즉 유쾌한 마디가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와닿는다. 독일 유학을 했고 슈베르트를 좋아하고 여자의 풍만한 가슴과 망사스타킹에 흥분하는 배울만큼 배웠고 여리고 섬세한 감성의 저자. 그가 열광하는 문구류, 특히 만년필 중 대나무 만년필이 있다. 대나무의 마디를 물리적으로 또 은유적으로 끌어들여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속도에 대한 상실감과 삶의 허망함, 도무지 재미가 없는 삶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그것은 삶을 즐겁게 하는 '축제'와 '의식'(ritual)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축제가 없는 삶, 마디가 없는 삶, 리추얼이 없는 삶, 스스로 맥락을 바꾸지 못하는 삶이 행복에 대한 기갈증을 유발해왔는데 자신은 그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 젊은애들처럼 무슨무슨 날을 억지로라도 만들어 까불어대는 것을 저자는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역시 관점의 차이다. 소실점을 낳은 '원근법'과 '관점'이 같은 단어 perspective로 표기되는 것을 들어, 주관적 관점이 창조하는 삶의 의미와 재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과는 상극의 관점이다. 내가 주체적으로 만드는, '즐겁게 반복되는 리추얼'을 통해 감정을 나누는 '정서의 공유'가 없다면 진정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고 '함께' 행복하기란 어렵다. 저자는 문화도 정서의 공유 의식으로 본다. 하지만 의식을 그리 거창한 것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루하루 조촐하고 소소한 의식으로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데 그런 것의 가치를 소홀히 하기 쉽다.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잊고 사는 것이다. 행복을 만들고 느끼는 일도 일종의 습관이다.

너무 평범하고 뻔한 이야기일 거라 생각드는 책이지만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다르다. 쉽게 쓰고 말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 곳곳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들이 많다. 관념적이지 않고 구체적 이야기로 풀어준다는 게 장점이다. 자부심 강한 문화심리학자다운 해석도 곳곳에서 번득인다.  

그가 말하는 행복론을 대표하는 문장으로 이런 게 있다. 행복은 구체적으로 정의되어야 하고 반복설명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좋은 것은 항상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불행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면의 억압과 집착, 부자유함, 존재미확인 등이 크다. 억압과 집착을 누르려고만 하기보다(누를수록 커진다) 다른 자극을 받아들여 서서히 작아지게 하는 방법이 현명하다. 부자유는 내가 속한 공간적 자유와 크게 관련된다는 말에도 공감된다. 그래서 차를 마셔도 답답한 실내공간보다는 바람을 마실 수 있는 공원의 벤치를 택하라고 권한다. 공간적 자유의 의미는 떠났다 돌아오는 여행의 리추얼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존재증명은 몸을 괴롭혀 자학적으로 하기보다는 상호작용을 통해 즐겁게 하라고 권한다. 특히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여 내 안의 항상성을 유지하라는 말도 유용하다. 내가 아닌 것들, 내 밖의 것들에 의해 나의 안을 무너지지 않게 하라. 내 본질을 사랑하라는 말이다. 내 본질은 사회적 위치도 아니고 재산도 아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았지만 명예퇴직한 사람들이 뒤늦게 삶이 후회스럽고 이제부터 재미있게 살고싶다고 때늦은 소리를 하는 것은 사라질 것들에 가치를 두었기 때문이다.   

서술이 일목요연하지 않고 내용이 간혹 중복되는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유쾌한 대중강의를 듣듯 긴장 풀고 읽는다는 마음이면 편하다. 마지막 장은 앞에 했던 이야기들의 최종정리와도 비슷하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짧고 강하다. 충분히 의미있고 공감된다. 칸트의 '숭고함'의 철학을 끌어들이고 엄마와 아기의 감정소통방식을 말하며 우리가 삶을 사는 목적을 간단하고도 본질적으로 정의했다. 그것은 식욕과 성욕보다 앞서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규정한다. "우리는 **하려 산다."  **은 내 호의의 표현이고 따스한 감정이 소통되며 공유되는 방식이다. 그것으로 인해 내 존재의 증명을 받는 셈이고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술창작의 욕구도 그것을 받고 싶고 하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나로서도 **을 얼마나 하고 사는지 의문이다. 언제 가슴 깊이 우러나는 **을 해보았던지.. 그것은 진심에서 환하게 웃으며 맞장구치는 것과 같은 일인데 그런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앞으로론 **하는 일을 스스로 많이 만들어야할 것 같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 더 행복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가끔 후회하는 사람(저자)과 가끔 만족하는 사람(저자의 아내)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셈이다. '나의 이야기'가 없고 공허한 '남의 이야기'로 밤을 새며 술을 마시고 알 수 없는 분노와 적개심으로 그 분풀이 대상을 찾고 있는 사람에게 조금의 해답이 될 수 있다. 어떤 게 행복한 삶이고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는 (교과서적으로) 누구나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저자 서문에 밝혔듯 "문화심리학적으로 한국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는 게 재미없는 남자들'이다. 온갖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구호 뒤에 숨겨진 적개심, 분노, 공격성의 실체는 '재미없는 삶에 대한 불안'이다."라는 문장은 또다른 오해의 소지가 약간 있지 않을까.  

아무튼 저자의 말대로, 이래도 후회, 저래도 후회라면, 후회도 현명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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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7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28 0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8-28 08:02   좋아요 0 | URL
전설의고향과 예술의전당, 엄마가 뿔났다.. 이 얘기 이 책에도 나와요.ㅎㅎ
아침프로그램에 나오는 걸 전 한번도 못 봤네요.
재미있게 사는 분 같아요.~~
책 속에 직접 찍은 사진들도 몇 들어있는데 좋더군요.

穀雨(곡우) 2009-08-28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이 구체적으로 정의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애써 해 본 적이 없네요.
막연함에서 오는 즐거움만 보려 했나 봅니다. 그러니 행복보다는 불행에
더 기울여 질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같구요. 이 책이 이런 내용인지
이제사 알았네요. 좋은 리뷰 공감하며 추천 꾹~~

프레이야 2009-08-28 18:59   좋아요 0 | URL
구체적 정의, 책에선 하얀침대시트로 얘길 시작하는데 가벼운 듯 유쾌해요.
반복되는 자신만의 의식ritual이 있어야 지속적인 행복이 이뤄질 것 같아요.
추천, 고맙습니다.^^

같은하늘 2009-08-28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말씀처럼 제목 때문에 눈길이 갔던 책입니다.
그런데 인생 행복론에 대해 얘기하는 책이였군요...
삶이 힘들고 지친다고 생각하는 제가 보아야 할 책인데요...^^

프레이야 2009-08-29 09:57   좋아요 0 | URL
제목이 도발적이죠? 하지만 누구나 후회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겠지요.
후회도 현명하게 하자구요! ^^

맥거핀 2009-09-01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은 구체적으로 정의되어야 하고 반복설명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 말이 저도 와닿네요. 무라카미 하루키도 수필집에서 비슷한 것을 이야기했던 것 같고 말이죠. '작지만 확실한 행복' 뭐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죠. 저도 간명하고 소소한 행복이 좋아요. 드러누워 좋아하는 영화보면서 맥주 홀짝거리는 것, 뭐 이런 거도 거기에 들어갈까요? 하하. 지금도 프레이야 님의 좋은 글 보는 것도 행복입니다.

프레이야 2009-09-01 09:03   좋아요 0 | URL
9월의 첫날 아침입니다.
'간명하고 소소'하면서 피부로 느끼는 구체적 행복,
그걸 구하기에 가을은 적절한 계절같아요. 바람이 벌써 다르네요.
제 글이 행복을 준다는 말에 덩달아 행복해집니다.
그런데 제 글 중, **로 표기한 두음절의 단어가 무얼까, 아무도 안 물어보시네요.^^

맥거핀 2009-09-02 00:00   좋아요 0 | URL
하하..저는 답을 알 것 같네요.

프레이야 2009-09-02 18:35   좋아요 0 | URL
헉? 대단하십니다.
힌트 드리자면 ㄱ으로 시작합니다. 맞을까요?

맥거핀 2009-09-03 02:02   좋아요 0 | URL
아..제가 생각한 게 아니었나 봅니다.
(역시 괜히 아는 척을 하면 안됩니다.^^;)

프레이야 2009-09-04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잉~ 이주의 마이리뷰 오랜만에 선정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