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조 가족>을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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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조 가족 ㅣ 카르페디엠 17
샤일라 오흐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9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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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이에 도달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난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또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늘 미성년자로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늘 우리 위에 군림할 것이다.(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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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대지의 소금과 멍청한 양'에 비해 번역제목은 참 단순하다. 원제의 은유적 느낌을 싹둑 자른 이 제목은 책장을 넘길수록 더욱 별로라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한 인물과 사건으로 스토리가 이어지는 이 책은, 전체적으로 보아 또 부분적으로 보아 그 이상으로 시적이라 할 수 있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읽어야할 맛깔난 대사와 문장이 자주 나온다.
실제로 할아버지는 손녀의 첫사랑 절름발이 이르카의 어떤 질문에 "얘는 머리도 절름발이니?" 라고 농담조로 쏜다. 그렇다. 2인조 가족으로, 生을 유들유들하게 농담처럼 사는 두 사람이 나온다. '농담에 익숙해지면 생이 참 즐거워진다'는 대사를 소설 '악기들의 도서관'에서도 읽었다. 이 책은 할아버지와 손녀로 이루어진 한 가족의 이야기로 읽기에는 가볍지만은 않은 매력이 있다.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과 세대간 관계에 대한 유머러스한 성찰, 근대의 유전자가 이어져온 현대의 인간과 세상사, 등에 대해 곳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꽤 기억하고픈 구절들이 빛난다.
인생이 뭐냐고?, 물으면 "내가 바로 인생이다."라고 당당하게 외치고도 남을 할아버지는 16세 사춘기 소녀 야나에게 있어서 '운명'이다. 인생의 비밀이라는 실타래를 풀어줄 실마리를 쥐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야나의 이런 생각은 '나는 어디서 왔나?'라는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질문에 가깝다. 이 질문은 대부분의 성장소설에 주제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 무게잡고 읽을 필요가 없다. 아주 가볍게 모든 걸 날려줄 두 사람을 만나 히히덕거리며 읽어도 무방하다. 그러다 곳곳에서 아름다운 문장에 잠시 눈길을 멈추기도 하면서 로맨틱한 감정과 뭉근한 인간애를 느끼게도 된다.
야나가 알고 싶어하는 출생의 비밀, 반전에 대한 복선이기도 한 구절이 할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우리 모두에겐 오직 어머니 한 분, 대지 어머니 한 분만 있다는 것. 야나는 혈육을 거슬러올라가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어 안달하지만 결국 그것이 크게 의미있다고는 보지 않는 것이다. 우리 모두 대지 어머니의 후손이라면 우리는 근친상간을 하고 거대 가족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확대과장해석이 가능할까. 그렇지는 않다. 다분히 이 책은 할아버지와 손녀의 위트있는 대사와 밀란쿤데라에게서 수업을 받았다고 하는 작가 샤일라 오흐의 통찰을 통해 삶을 좀더 당당하고 여유로운 시각으로 살게 하는 힘이 있다.
유머, 그것은 마음의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당당함이 없이는 어렵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처지와 상황들에 옥죄어있을 때 더욱 힘을 발휘한다. 또한 유머는 이전과는 다른 어떤 것을 시도함으로써 발생되는 것이다. 자기안의 혁명이 없이는 유머를 창조할 수 없다. 할아버지와 야나는 어떤 일을 추진함에 거리낌이 없다. 가난해도 궁상스럽지않고 자신의 판단과 지각을 믿는다. '내일 일어날 일이라면 오늘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다'가 할아버지의 신조인 것처럼.
가벼운 읽을거리만 오려진 폐신문과 버려진 철학서적들로 지식을 두루 섭렵한 고물상 할아버지의 고집불통이 밉지 않은 건, 가슴 밑바닥에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삶의 의미와 특수한 세계 질서에 대한 생각'을 주위에 외치는 할아버지는 고독한 지식인 같은 면도 있다. 게다가 '사랑은 너무나 많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사실은 가장무도회에 지나지 않는 것(155쪽)'이라고 믿으면서도 '사람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바로 그건데(38쪽)'라고 말하는 할아버지는 얼마나 낭만적인가. 그리고 야나, 문학에 심취해 세상 사랑의 모든 모습을 관음증 환자처럼 봐버려 세상을 훨씬 더 많이 산 기숙사 사감보다 사랑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아는 그녀는 얼마나 조숙하고 사랑스러운가. 럼주가 든 초콜릿을 입천장에서 혀로 눌러 퍼지는 그 맛을 느끼며 이렇게 말한다. - 음탕한 줄 알면서도 도저히 그만 두지 못할 가치가 있는 맛. 아무래도 이 아이, 고고한(^^) 문학작품을 너무 많이 읽은 거다. 복권이 당첨되었다고 자랄 걸 예상해서 샴쌍둥이의 머리통같은 95C컵의 브래지어를 사오고 아무리 네가 좋아도 근친상간을 할 생각은 없다고 농담하는 할아버지와 죽이 잘 맞는 손녀다.
이들은 이미 알 건 다 알고 있지만 아는 걸 다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산다. 특별한 2인조 가족에 손녀의 남자친구, 이들 삼각관계의 감정싸움이 재미를 살짝 부추긴다. 영화관 데이트 때의 소동이 가장 우스웠다. 특이한 문체로 웃음을 불러준다. 물론 할아버지의 염려가 담긴 이상행동이었고 그걸 야나는 '운명의 평범한 장난' 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유머러스한 구절이 이 책의 매력이다. 야나가 이르카와의 감정을 통해 날로 성장하는 대목이 살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할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함께 따뜻하게 느껴진다. 청소년 성장소설에 노인이 대개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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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른이 되어 더 이상 사람들이 훗날을 기다리라는 말로 우리를 위로할 수 없을 때, 도대체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지루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그런 삶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많이 느끼게 될까? 아니면 즐거워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소소한 지루함을 많이 느끼게 될까? 도대체 누가 나에게 무엇을 내밀 수 있고, 또 나는 그에게 무엇을 내밀 수 있을까? 뭐랄까, 내 안에서 이르카에 대한 고마움이 새록새록 솟아올랐다. 그 아이가 내게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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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도덕적인 게 가장 비도덕적일 수 있다는 것, 그 역의 문장도 참이 된다 걸 공공연히 보여준다. 스스로 자신을 '불량한 양심'이라고 부르는 할아버지는 법을 수시로 어기고 궤변을 늘어놓으며 공무를 방해하고 젊은여자에 대한 흑심도 숨기지 않는다. 그런 할아버지의 평소 가르침대로 야나는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할아버지에게 아주 독창적인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수많은 삶의 방법들 중 한 가지, 마음이 아플 때는 화를 내라는 말을 떠올린 것이다. 재미있다. - 할아버지는 용접해서 붙여놓은 인간이야! 정신에 박힌 인생의 도끼야! 바람에 흩날리는 장난질 대장이야! (128쪽)
야나의 말처럼 세상은 내게 속한 세상과 내게 속하지 않은 세상으로 구분된다. 그 경계선 주위의 어느 곳에서 어슬렁거리며 어느 세상에도 속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때로 조바심도 난다. 그 어디에 속하든 본질은 어차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고 아무도 '나'를 제대로 알 리 없다. 이 책은 도시의 가난한 약자인 2인 가족 - 그것이 혈연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 과 사회보장정책의 약점, 국민적 영웅에 대한 허상을 살짝 꼬집는다. 어디에든 진실은 있고 또 어디에든 진실은 보이지 않는다. 야나가 말한 가슴과 위장 사이, 할아버지가 말한 영혼이 머물러있는 곳, - 영혼이란 게 보이진 않지만 영혼이 머물러있는 곳은 실제로 있는지도 모른다. 나도 마음이 아프면 가슴과 위장 사이 명치가 쑤시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니 - 에 조용히 집중해볼 일이다. 그곳이 바로 꿈과 현실의 경계, 우리가 선 곳과 갈 곳의 경계인지도 모를 일이다.
야나 :우리가 누구야?
할아버지 : 우린 이 대지의 소금이야. (192쪽)
* 오자 : 그곳은 실내를 통틀어 유일하게 맨살이 들어난 나의 무릎 위로 바람이 세게 부는 곳이다. ( ---> 드러난, 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