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말하는 복이란 뭐지? 내게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애." 그녀는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자유지. 정신의 자유. 우린 두 번 다시 맹목적으로 숭배하거나 복종하지 않으며 두 번 다시 유치하고 경솔한 짓은 하지 않아. 이것이 행복이 아니고 뭐겠어? 그리고 말이지. 우린 얼굴 가죽도 옛날보다는 훨씬 두꺼워져 있어."
그녀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린 다음에 말했다.
"얼굴 가죽이 두꺼운 것도 행복이야?"
나도 웃으면서 말했다.
"커다란 행복이지. '행복 중의 행복'이란 거야. 인간의 자존심과 인격은 언제 상처받게 되른지 모르는 것이지만 그럴 때에 얼굴 가죽이 두꺼우면 자존심과 인격을 지킬 수 있잖아. 지식인의 얼굴 가죽 같은 것은 앏은 법이야. '체면' 때문에 '긍지'를 버리는 일도 있어. 그러나 인간으로서는 '긍지' 쪽이 '체면' 쪽보다 중요한 거야. '긍지'가 인격과 존엄이라면 '체면'은 허영에 불과해. 갖가지 재난, 특히 이번의 10년 동란 덕택에 거의 모든 지식인이 냉혹한 시련을 견뎌냈어. 그 시련의 성과 중의 하나가 얼굴 가죽이 두꺼워졌다는 거지. 덕택에, 비난을 당해서 체면을 엉망으로 만드는 일 같은 건 이제 하나도 무섭지 않아. 그리고 그럼으로써야말로 사람들이 진리를 지킬 용기와 의지를 강인하게 할 수 있는 거지. 비판할 건가? 좋지요! 목에 표찰을 걸 거야? 뭐? 안 건다고? 급료도 공제하지 않고? 그거 참 한참 봐 주는군! 얼마나 행복해! 하하하!"
- 사람아 아, 사람아!, 중(다이허우잉 지음, 신영복 옮김) / 다섯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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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가죽이 두껍다는 표현은 대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체면도 염치도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경우이다. 하지만 위의 인용문에서 얼굴 가죽이 두껍다는 의미는 정반대로 해석되어 있었다. 중국 현대 휴머니즘 문학의 기수인 다이허우잉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사람아 아, 사람아!>를 낭독하다가 오늘 마음에 걸린 대목이다. 체면 때문에 긍지를 버리지는 말자는, 체면을 차리고자 하는 얇은 얼굴 가죽 대신 체면 따위는 버리더라도 긍지를 지키기 위해 보다 넓은 안목으로 자존감을 지키는 두꺼운 얼굴 가죽을 하자고. 얼핏 들으면 명분보다 실리가 우선이란 말 같지만, 어떻게 보면 실리에 눈 밝히기보다 명분을 지키고자 하는 인격을 연마하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수한 싸움과 갈등을 하며 살아간다. 개인의 역사는 집단의 역사 속에 묻혀 흘러가고 또 그것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개인의 역사를 말할 때 집단(사회, 국가)의 역사를 따로 떼어놓고 말하기란 어렵다. 갈등은 개인이든 역사이든 하나의 동력이 될 수 있다. 수레바퀴를 굴려가는 에너지, 그 갈등이 어느 날 자신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들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여야할까. 진정 얼굴 가죽이 두꺼워지는 것도 지난한 과정과 계기를 통한 훈련이 알게모르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고통 받고 그 상처가 아물 즈음이면 조금씩 두꺼워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