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정미경의 소설 읽기는 겨우 두 번째다. 2002년도, 그녀의 비교적 초기작이라 거칠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은데 세련되게 정제된 것보다 이런 느낌이 나는 더 마음에 든다. 그러나 거칠다는 느낌과는 다른 거침없다는 표현이 맞겠다.

 6편의 단편들 속 인물들은 삶의 주변부에서 고통을 감내하며 상실감을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하기보다 그 속에 미치도록 침잠해서 그걸 극복하려는 사람들이다. 깊이 내려앉았다가 제대로 바닥을 치고 올라올 것 같은 희망을 넌지시 암시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도덕적 결말을 강요하거나 삶은 이러저러 해야 한다는 부담을 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두 시간이면 끝나는 영화’와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삶은 다르고 그래서 ‘방금 물이 빠진 갯벌 위에 선 것처럼 자꾸만 내 발바닥을 지그시 잡아당기는 어떤 힘에서 발을 빼내는’ 사람의 현실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지켜봐주는 식이다. 인물들은 소리 없이 울고 있고 분노하고 있고 삶에 적개심을 품고 있는데 그 울분에 응대해 주는 이런 방식이 독자에게 오히려 힘이 될 수도 있다. 그점에 끌린다. 그리고 위안 받는다. 이야기마다 허를 찌르는 반전과 신산한 삶을 쓴물이 올라오도록 씹는 문장들에 매료된다.

{나릿빛 사진의 추억}

 여름이면 아무 곳에나 피어나는 나리꽃 주황빛의 방만함처럼 추억이 현재와 미래의 삶에 바로미터가 되어줄 수 있을까. 주인공은 그렇다고 대답할 듯하다. 그러나 그를 협박하러 온 해결사는 하찮은 진실 따위엔 눈감고 힘을 확인하고자 하는 자의 바람대로 해주어버리라고 말한다.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게 인생이잖아. 안 그래요?”(p36)  이 단편은 사진찍기와 찍히기의 관계처럼 나와 타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진실의 오도를  ‘길지도 않은 생에 피사체와 용도가 다른 사진들을 무수히 찍어온' 한 남자의 비루한 타협을 통해 보여준다.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볼 뿐 대상의 진실과 속울음에 가까이 가본 적이 없는 우리가 안아야할 슬픔이다. 나와 대상 사이에 그놈의 기물이 있기 때문일까. 추억도 사진도 기만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호텔 유로 1203}

‘갈망과 특별함에 대한 집착과 사물에 대한 욕정도 뜨거울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집착이나 욕정보다 더.’(p50) 이 문장에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비애가 묻어난다. 사랑에도 직업에도 물질적인 면에서도 박탈감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 라디오작가가 등장한다. 말을 더듬지 않아도 늘 더듬는 인상을 주는 남자를 떠올리는 여자는 그녀의 생이 그렇게 더듬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그가 더욱 싫었던 것일까. 명품에 중독되어 숨을 쉬듯 도벽을 일삼고 밤 아홉시에 약속된 호텔을 찾아가는 그녀는 ‘인간에 대한 집착이나 욕정’에 코웃음 친다. 환멸조차 사랑의 일부분이란 걸 알고 상처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한다. 누군가와 진짜 사랑을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그녀, 세 번째 우려낸 차처럼 담백한 관계 같은 그 지점에서 멈추고 싶어 하는 그녀. 사람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아이러니한 초상에 욕망의 공허함이 배어있다. 스산하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

 2년 연애, 7년 결혼생활을 한 남자의 갑작스런 죽음 후 열정의 윤리로 살아온 그의 이면을 보게 된다면?  '전등사를 보지 못한 그날을 전등사 갔던 날로 이름 지었듯 뭔가가 빠져 있는 그대로 그냥 사랑이라고 불러주는 거지.' (p136)  배반감을 극복하고 그녀가 모자란 사랑을, 피투성이의 잔혹한 연인을, 받아들이는 결말을 통해 파도처럼 맨살을 난타하는 잔혹한 삶을 끌어안으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모든 연인은 더 사랑하는 자에게 잔혹한 존재이니까.’라는 혼잣말은 삶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지, 그래서 언제까지나 자신을 물어뜯으면서라도 자신의 곁에서 자신을 사랑해달라는, 삶에의 애착이다.

 최승자의 시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가 떠올랐다.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오   (일부)

 여자는 살면서 일어날 수 있었던  ‘어떠한’ 일들에 하나하나 딜리트delete 키를 누르고 죽지 않을 정도의 가려움증까지 견뎌보려는 것이다. 긍정적 기운이 느껴지는 이야기이면서 신산한 바람이 동시에 느껴진다.

{성스러운 봄}

 어린 딸의 오랜 투병과 죽음으로 생의 노래를 잃고 우주의 빛을 잃고 가정의 단란함마저 잃은 남자가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 삶은 스스로 완벽하다는 것, 그걸 또 늦게 깨닫는다. '살아있다는 것은 제 스스로 빛을 내는 경이로움이라는 것을(p168).' 우리가 힘겹다고 생각하는 삶에서 천상의 음률을 들을 수 있는 삶의 절정은 언제일까. 이미 지나갔을 수도 앞으로 올 수도 있겠지만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아닐까. 교과서적인 답을 해보지만  마음은 늘 모래를 씹는 듯 서걱거리고 마음속에 들어앉아있을 봄도 도무지 기지개를 켜지 않을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난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유리잔처럼 깨어져 어지럽게 흩어진 생에 대해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 그에겐 다행일 것이다. 봄이면 꽃망울이 터지듯 그렇게 진즉에 터뜨려야 할 것을. 주인공의 현재와 과거, 대과거의 내적 오버랩이 인상적이었다. 한편의 영화로 탄생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비소 여인}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산다는 것은 조금씩 죽어가는 것이라는 명제를 확인이라도 하는 듯 우리들 먹고 마시고 호흡하는 것들에 미량으로 들어있는 비소, 정확히는 비소 화합물. 그것의 음험한 작용과 중독성을 빌어 생을 모질게 사랑한 한 여자의 이야기다. 일몰의 광경을 담담히 지켜보듯 존재의 소멸을 지켜보며, 소멸해가는 존재가 자신의 보살핌에 감읍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비로소 생의 허기를 채웠던 여자. 그녀에게 어떤 것도 묻지 않고 품고 쓰다듬어주는 남자 또한 생의 회의나 존재감 따위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개미처럼 ‘살아가는’ 것으로 생의 만복감을 느끼기를 바라는 것이다. 살아가는 일은 먹어도먹어도 끝없이 배고픔을 느끼는 것이지도 모른다. 단지 어제의 허기를 기억의 회로에서 지우면서 오늘을 맞이할 수밖에. 비소 여인처럼, 누가 나를 용서해주지?, 스스로에게 용서의 말을 뇌까리며.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영화 ‘말리와 나’속의 존 그로건은 자신의 존재를 소중하고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다른 존재로서 가족을 재발견했다. 19년이라는 길거나 짧은 생을 통해 빛나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아름다운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 이 단편에서는 어느 골목길의 ‘지독히 일상적인 삶의 풍경’을 영화를 공부하는 남자의 카메라를 통해 그린다. 인간 군상이 그리는 그 일상적이랄 수 있는 풍경이 과연 일상적일까. ‘하긴 누가 누구에게 이 생을 거짓 없이, 착각 없이, 헛된 사랑 없이, 백일몽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말해 줄 수 있을까.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할 수 있을까 (p232)' 일상을 견디는 힘은 비일상적인 걸 꿈꿀 때 가능하지 않을까. ‘싸구려 픽션보다 더한 굴곡을 이면에 감추고’ 빛이 감추어주는 이면의 것들에 눈감고 살아가기. 달처럼 우리 존재도 스스로는 빛날 수없는 것, 달이 둥글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는 때로 풍만한 만월이 되고 낙천적인 반달이 되고 예민한 그믐달도 되고 연약한 초승달도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비추어 줄 수 있을까요?” 승우의 마지막 물음에 “모르겠어요”로 응대한 정은. 그녀가 질퍽하고 노곤한 갯벌에서 발을 빼고 한 편의 영화보다 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뒷모습이 가볍지 않다.  그 어깨는 단단하고 때론 유연할 것이다. 정미경 소설이 그렇듯이. 그리고 그 속의 인물들처럼 생을 사랑하는 방법에 왕도는 없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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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9-02-2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서 풍기는 강렬함에 압도당하는 분위기입니다. 삶, 사랑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존재들이지만 깊이 생각할 수록 고뇌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소재들이기도 하죠.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이 싯구에서는 사랑의 간절함, 처절한 소유욕까지 느끼게 되는 데....저만의 생각일까요?

프레이야 2009-02-26 17:07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엔 그 제목이 참 강렬하다 느꼈는데 읽고보니
그게 그것이더군요. 사랑이 깊어질수록 상실감도 크다고 하더군요.^^

hnine 2009-02-28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도서관에 갈때마다 찾아보는 책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인데 아직도 기회가 안 닿았어요. 이 작가 팬들이 참 많더군요. 부군이 그림 그리시는 김 병총님 맞지요? 혜경님 리뷰 읽고나니 기필코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레이야 2009-02-28 22:02   좋아요 0 | URL
네, 김병종님요^^
저도 어느분의 강추로 구입해서 뒤늦게 읽게 되었어요.
정미경, 상당히 매력적이더군요.

맥거핀 2009-03-13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서재에 글 남기고 가셨었는데, 제가 좀 게을러 이제서야 들러봅니다.^^
정미경 작가님은 예전 이상문학상 수상작 <밤이여 나뉘어라>로 관심가졌었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네요. 인간의 감정을 잘 드러내보였던 작가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실 덧글 달 생각을 한 건 최승자 시인 시가 있어서요. 좋은 시지요.
오랜만에 시집을 읽고 싶은 생각이 났네요.

프레이야 2009-03-13 07:39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 오셔서 반가워요.
영화 리뷰를 통해 알게 되어 기뻤는데요..^^
정미경 작가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