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되는 법] 서평단 알림
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되는 법 작은거인 14
오카다 준 지음, 김난주 옮김 / 국민서관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중학생 교복을 맞추던 오래 전의 그때가 아스름하다. 영화 ‘스윙걸즈’에서 여고생들이 입고나온 검은색 세일러복이 당시 우리들의 교복이었다. 무릎길이의 플리츠 스커트에 상의의 세일러 깃에는 두 줄의 흰색 선이 산뜻했던 교복이다. 일제의 잔재이긴 하지만 당시 입을 때에는 꽤 우쭐한 기분으로 입었다. 입학 당시는 커서 우장 같은 교복이 졸업할 무렵엔 딱 맞았던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문제는 초등 졸업을 앞둔 무렵과 중학 입학 전까지의 어정쩡한 시간에 대한 기억이다. 그것은 세일러교복만큼 산뜻하지도 선명하지도 않다. 무료하고 황당하고 불안했던 기억으로만 어렴풋하다.

 <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되는 법>에서는 딱 그 즈음의 시기를 보내야하는 두 명의 남녀학생이 등장한다. 아이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가는 사춘기의 시절, 뭔가 알 것도 같고 모르는 건 더 많은 세상,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 잡다한 꿈은 있으나 명쾌하지는 않고, 아예 꿈이 없거나 그리고 이성 친구에게 생기는 ‘어색하고 서먹한 감정과 긴장과 가식으로 뭉쳐진(p91)’ 묘령의 감정으로 혼란스러운 시절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배반하는 건지 그때의 일상 사건이란 얼마나 단순하였던가. 뭔가 신나는 일이라도 일어나면 좋겠는데 눈을 뜨면 여지없이 그 기대를 깨고도 남을 정도로 단조롭고 지루하게 이어졌던 것이다.

 그런 일상을 대변하듯, 이 책은 인물의 구도나 사건이 간결하고 전제적으로 내용의 군더더기가 없다. 선명한 플롯과 명료한 대화의 힘이 종결부까지 이어지고 여운은 오래간다. 세월이 지날수록 분명해지는 오래된 날들의 기억처럼. 오카다 준은 생활 속의 판타지를 그려내는 재주가 놀랍다. 그가 그리는 판타지는 ‘미끄럼틀 아래’에서건 ‘빈 교실’에서건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화려한 판타지 스토리나 기상천외한 모험담을 기대한다면 기쁘게 실망할 준비를 하는 게 낫다. 그렇다면 그럴싸한 기사는 과연 나올까?

 생활 속 판타지는 식사 후 깨무는 한 알의 박하사탕 같은 것이다.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을 살면서 살만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혼자 꾸는 꿈과 그것으로 인한 희열이 타인에게도 전해질 때이다. 그리고 교감될 때이다. 이 작가는 모자랄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내면에 숨어있는 모험에 대한 기대감과 자신의 한계를 넘고 싶은 갈망을 잘 이해하며, 해결해 줄 방법을 고심한다. 그에 무기가 되어주는 건 주위에 널려있는 소도구들(후추병, 연필깎이, 삼각자 등...)과 어느 순간 눈앞에 나타난 묘한 환상의 경험이다. 그건 자신들이 갈망해오던 것의 현신이 아니고 무엇인가.

용은 혼자 있을 때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둘 이상이 있을 때 나타나는 용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필요악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것은 때로는 귀엽기도 하다. 책 속에 그려진 전형적인 용의 그림처럼 어쩐지 때려잡기엔 왠지 안타깝기도 한 그런 존재다. 낯선 환경과 낯선 인간관계가 우리에게 가하는 압력은 개인차가 있지만 누구나에게 스트레스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도 제안할 만한 건, 상대에게 먼저 베푸는 배려의 손길과 다가가는 용기다. 극복하는 자에게만 영광의 시간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혼자보다 둘이면 쉽지 않은가. 이 책은 그런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았다.

 중간중간에 고딕체로 격언 같은 구절들을 대화로 심어놓았는데 다소 문어체 같다는 느낌은 들어도 이야기를 읽는데 방해꾼이 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기사'라는 중세적인 분위기의 단어와 잘 어울려 고풍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또한 초등 5-6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이야기 전체의 은유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등장인물로 내세운 two-top으로 남학생과 여학생의 무게를 어느 한 쪽에도 두지 않고 정서적 역할에 균형잡힌 안배를 한 점도 돋보인다. 책의 두께나 활자의 크기로는 4학년 이상이면 무리없지만 내용의 두께로는 고학년에 적합하다. 이 책의 삽화는, 대개의 판타지 이야기가 자랑삼아 내세우는 현란함을 배제한 것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물체만 단순하게 그려놓고 독자로 하여금 상상을 더 하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일상의 판타지를 즐겨보라.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힘든 시간 중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눈과 두려움을 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카다 준에 의하면, 남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보는 아량에서 출발한다.

 우리에게 완성은 없다. 15년 후 그들은 다시 만난다.
 “그래 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되었니?” 
 “응, 돼 가고 있어.”
 나는 썩 괜찮은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p93) 
 

결미가 마음에 든다. 우리는 오늘도 ‘돼 가고 있’다. 그것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다.
그리고 그것이면 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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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8-01-20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딸이 좋아할 만함 이야기네요~.ㅎㅎㅎ
근데 저는 그럭저럭 되가구 있어,,,,라는 말은 싫어해요~.ㅎㅎ

프레이야 2008-01-21 07:4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럭저럭'은 아니고 그냥 '돼 가고 있어'에요.
철학적인 아이라면 좋아할 만한 이야기에요.
화려한 스토리는 결코 아니구요. ^^
(그리고, 님, 보낸건요.. 그냥 제맘이에요.ㅋㅋ)
받아주삼~

네꼬 2008-01-21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활 속 판타지는 식사 후 깨무는 한 알의 박하사탕 같은 것이다.

아. 이토록 적절한 비유라니. 제 생활 속에는 어떤 판타지가 숨어 있을까요? 그런 걸 잊지 말고 살자고 다짐해보는 아침입니다. (나름 뭉클한 기분이 되어 쓴 건데 쓰고 보니까 교과서에 있는 말 같아요. 제가 그렇죠 뭐. 킁-)

프레이야 2008-01-21 09:10   좋아요 0 | URL
네꼬냥 굿모닝~~~
저도 오늘 아침 박하사탕 한 알 깨물고 나설래요^^
교과서에 있는 말이 진부한 것 같아도 오래 묵혀서 공감을 얻는 말이니
나쁘진 않지요.ㅎㅎ 뭉클^^ 네꼬 님, 오늘 여긴 비가 와요.
거긴 눈이 많이 오진 않았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