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너 루스벨트 아이세움 지식그림책 22
바버러 쿠니 지음, 이상희 옮김 / 아이세움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같은 출판사의 여성인물이야기 시리즈 <엘리너 루스벨트>(박정희 글, 정병수 그림)를 읽은 게 다섯 해 전이다. 그 책은 4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고 큰딸도 당시 무척 좋아하며 거듭 읽었던 책이다. (이 시리즈의 여성인물이야기는 모두 권하고 싶다.) 작년에 아이세움 지식그림책 시리즈로 나온 <엘리너 루스벨트>는 미국의 유명 그림책 작가 바버러 쿠니가 글과 그림을 담당한 그림책이다. 3학년 아이들이 읽기에 적당하다.

 3학년 작은딸에게 이 책을 소개했다. 두 번 보고 나더니, 재미있다는 반응을 하지 않고 그림도 좋아하지 않아서 의아했다. 아이가 어떤 관점에서 그런 반응을 보인 건지 궁금하여 물어보았다. 이야기가 긴 창작동화를 좋아하는, 아이 개인의 취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아이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데 그림조차 별로 잘 그린 것 같지 않다고 말해서 정서의 차이인가 싶다. 아이들은 그림책 속의 아이들 얼굴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그림책 속의 그림은 얼굴이 별로로 그려져 있다. 이목구비나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게다가 침울한 표정이다. 이 그림의 포인트는 전체적으로 깊은 색감과 자연의 풍경속에 들어가 있는 인물, 장면마다 섬세하게 표현된 디테일에 있다. 아이는 그런 것에 그다지 끌리지 못하는 것 같다.

 이 그림책은 엘리너 루스벨트의 어린시절, 그러니까 엘리너가 성숙된 한 사람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일들에 초점을 맞춘다. 행복하지 못했던 유년의 기억과 열등감과 두려움을 극복하기까지의 일들, 그리고 인생의 스승이었던 의미있는 타인을 만나는 대목까지가 이야기의 내용이다. 엘리너 삶의 구체적 연도는 그래서 중요하지 않다 싶었는지 전혀 표기되어있지 않고, 백악관에 들어간 이후 약자들을 위해 펼쳤던 구체적인 업적에 대해서도 생략되어 있다.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은 나약하고 억눌려있던 한 여성이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하여 세계의 주목할 만한 여성으로 활약하였는지, 결과보다는 그렇게 되기까지의 어린시절의 인상적인 일들, 그 과정에서 만난 작지만 잊지 못할 일들이다. 불완전하지만 가능성을 품은 어린이의 '자라나는 마음'에 바짝 다가가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책의 엘리너는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의 영부인으로서 인물이 아니라, 세상의 위대한 여성으로 성장할 묘목인 지금의 여자 어린이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1884년에 태어난 고유명사 ‘엘리너’가 아니라, 시대를 막론한 일반명사 ‘엘리너’인 셈이다.

 그래도 엘리너의 삶을 소개하는 글로 읽으려면 군데군데 설명을 좀 곁들여주어야 할 부분이 있다. 아이들이 그 시대적 배경과 의미를 모르고 지나치기 쉬운 부분들이 다소 걸린다. 자료를 많이 찾고 썼다고 하는데 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과 사소하지만 좀 다른 부분도 있다. 하지만 이 그림책의 의도는 구체적 인물 소개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것 같아 따지지 않기로 한다. 그보다 다른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인데, 한 어린이가 환경과 성격의 온갖 어려움을 이겨 내고 훌륭한 어른이 되는 과정을 조명하려고 한다. 후기에는 다소 구체적인, 엘리너의 업적이 간단히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연보 정도는 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못 생기고 말이 없고 책읽기를 좋아한 어린 엘리너는 너무 진지하기만 하고 겁쟁이라는 말을 듣고 심지어 엄마에게 '할머니'라고 불리기까지 한다. 그녀가 상대적 열등감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감 있고 따뜻하며 스스로의 생각과 의견을 밝힐 수 있는, 능력있는 여성으로 발돋음하기까지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이 소개된다. 아버지와 수베스트르 선생님이다. 이 책에는 아버지가 알콜 중독자였다는 사실은 안 나오고 그늘에 묻혀서 산 어린 엘리너에게 항상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진심으로 사랑을 준 존재로 그려진다. 아버지만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하늘이 주신 기적'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집을 떠나 있는 날이 많았던 아버지에게서 받은 편지들을 오래도록 소중히 간직하였다고 하는데 마지막 장에 그려진 편지다발이 인상 깊다. 파란 리본으로 묶어둔.

 시선보다 중요한 건 시각이다. 한 사람을 보는 데에도 각도에 따라 다른 평가가 내려진다. 당시의 고루한 시각에서 비껴서서 엘리너의 참모습을 발견한 수베스트르 선생은 인생의 가장 값진 스승이다. 자신의 참된 가치를 알아 봐주는 사람이야말로 인생의 빛 같은 존재가 아닌가. 안타깝게도 아버지도, 수베스트르 선생님도 엘리너가 주목할 만한 여성으로 성장하는 걸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엘리너는 여성을 꽃으로만 보려던 시대의 편견과 자신의 불우한 어린시절 환경을 긍정적으로 딛고 당당하게 피어난 사람꽃이다. 세상의 선입견에 맞서 자신의 능력을 기르고, 무엇보다 소외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구체적 도움의 손길을 주는 사려깊고 온기있는 '어린 마음'을 만날 수 있다. 경제적으로는 어렵지 않게 살았던 어린 엘리너가 세상의 아이들이 모두 호화롭게 사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여섯살 적 추억의 장이 가장 인상적이다. 과장되지 않은 차분한 글과 사실적인 그림이 돋보인다.

 바버라 쿠니의 그림은 하나하나 세밀하게 보면 읽을 게 많다. 스케치도 그렇지만 색감이나 명도가 무척 섬세하다. 불운한 시절을 보내는 어린 엘리너의 마음을 대변하듯 엘리너는 늘 침울하고 작게 그려져 있다. 그림마다 아이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우울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엘리너와 상반되게 다른 아이들은 즐겁게 놀고 있는 모습이다. 굴렁쇠를 굴리고 연을 날리고 사방치기를 하면서. 아니면 엄마의 양 옆에 앉아 엄마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두 동생들과는 달리 엘리너는 저 뒤에 숨은 듯 음울하게 서 있다.

 “엘리너는 어둠을 저주하기보다는 촛불을 켜는 사람이었어요.”

후기에 적힌 이 말은 혹여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사는 아이들이 있다면 스스로 촛불 하나 밝히라는 바람으로 읽힌다. 또한 세상 어두운 곳 구석구석에 촛불을 켜는 사람으로 성장하면 좋겠다는 소망이다. 이 책은 자신감이 없고 두려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줄 수 있고, 엘리너 루스벨트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더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그림책이다.  3학년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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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6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26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7-10-26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딸아이도 그림이 마음에 안 들면 쳐다도 보지 않는 책이 있는데 댁에도 그런 딸이 있군요. 저라도 한 번 봐야겠네요.

홍수맘 2007-10-26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는 모르겠고 제가 좋아라 하는 작가의 그림책이네요.
제가 보면 되죠. 뭐!

뽀송이 2007-10-26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만 봐서는 이야기가 어려울 거라는 선입견이 들었어요.^^;;
책이 꽤 조근조근 할 것 같아요.^^
리뷰를 읽다보니 오히려 제가 한 번 읽어 보고 싶군요.^^

프레이야 2007-10-26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전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데 아이들 눈은 좀 다른지, 좀더 자극적인 색감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싶기도 하구요. 색감이 풍부하고 진지한 느낌이에요. 섬세하구요.
애들 고집 은근히 있지요. 근데 함께 독후수업을 하면서 엘리너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꽤 호감이었어요. 좋은점을 부각한 것이니..

홍수맘님, 바버라 쿠니 좋아하시는군요. 전 처음 알았어요.^^
저학년 그림책이니까 아이들 보기에 괜찮구요, 엄마가 좀더 곁들인 이야기를 쉽게
해주면 더 도움이 될 거에요.

뽀송이님, 이야기는 어렵지 않아요. 3학년 정도가 읽기 좋구요.
글은 조근조근해요. 그러니 아이들을 확 끌어당기는 글은 아닐 수 있어요.
엘리너가 주목받는 여성으로 성장하기까지, 태어나서 18세까지의 삶이 압축되어
있어요. 남들이 단점이라고 생각한 점이 어떻게 아름다운 덕성으로 진가를 발휘
하게 되는지에 초점을 두어요.^^

비로그인 2007-10-26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책에대한 정보..혜경님통해서 많이 배우네요.^^
아직 미혼이지만...언젠가 두루쓰일 유익한 정보..고맙습니다.

프레이야 2007-10-27 09:13   좋아요 0 | URL
클로버님~ ^^
20살 이후 읽은 동화 모음 봤어요. 모두 저도 좋아하는 책들이었어요.
늘 밝게 사시는 것 같아서 좋아요.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아름다운 꿈 2007-11-02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읽어도 ....
참 책을 어떻게 봐야 되는지 아시는분 같아요
다시 읽어 봐야 겠네요

프레이야 2007-11-02 17:37   좋아요 0 | URL
아름다운꿈님,
이 그림책은 자꾸 볼수록 그림이 많은 걸 조용히 말해주고 있어요.
분위기가 느껴져요. 마치 엘리너의 품성 같은 그런 분위기가요.^^
좋은 이야기,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