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모퉁이 행운돼지 즐거운 책방 1
김종렬 지음, 김숙경 그림 / 다림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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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정서에 ‘돼지’는 이중적으로 다가온다. 복을 주는 동물이기도 하고 동시에 태만하고 추악한 악덕을 비유하는 생명체이기도 하다. 이 책의 돼지는 행운을 주기도 하고 다시 빼앗기도 하는 이중성을 띈다. 그런 점에서 악마성이 엿보인다. 행운은 또한 모순적이다. 우리가 누구에게 “행운이 참 많군요.” 라고 말한다면 중의적이고 다분히 악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소망하지만 나는 그것을 실재하는 그것을 아직 본 적이 없다. 행복의 세잎 클로버가 우리 주위엔 훨씬 많이 돋아있다는 것을 알고도 우리는 네잎 클로버에 목을 단다.

 ‘모퉁이’는 길이 가다 꺾어지는 곳, 하나의 전환점이다. 우리는 모퉁이를 돌 때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곳을 돌아 눈앞에 펼쳐질 세상은 미처 알고 있지 못하는 별세계일 수도 있고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낭떠러지일 수도 있다. 모퉁이를 돌 때면 몸과 마음의 중심을 잘 잡아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 ‘길모퉁이 행운돼지’는 이 모든 의미를 함축하여 지은 듯하다. 어딘지 불길한 느낌을 주는 책표지의 붉은 색과 기괴한 느낌의 삽화가 내용과 잘 어울려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이 책에 대해 유머러스한 판타지라는 말은, 하나의 텍스트가 관점이나 보는 이의 스키마에 따라 어떻게 다른 프리즘을 그려내는지 새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4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모두들 무서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도 음침한 분위기에 긴장과 스릴이 함께 하는 이야기를 따라 다소 공포감을 느꼈다. 무서웠다는 아이들은 자신들의 내밀한 욕망을 솔직하게 마주할 정도로 진지하기 때문일 것이고, 유쾌하게 읽었다는 독자는 내면에 이러한 욕망이 상대적으로 적은, 희망찬 사람일 확률이 높다.

 <길모퉁이 행운돼지>는 사람의 욕심을 정면으로 들고 나와 실컷 조롱하고 욕심이 과한 사람에게 죄값을 치르게 한다. 욕심은 필요악이다. 발전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마음이지만 지나쳐서 절제의 도를 넘어서게 되면 악을 부른다. 인간의 욕심이 낳은 악행과 악습과 악연의 고리가 얼마나 길고 질긴지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도 명백하다. 이 책은 초등 중학년 정도의 눈높이에 맞춰 사람의 헛되고 과한 욕심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돼지를 통해 형상화하여 명백하게 보여준다. 삽화가 그에 맞게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책장의 색깔까지 침침한 회색이라 불길함을 더한다. 콜라주를 이용한 부분이 여러 군데 있고, 글자의 배열을 특이하게 배치한 삽화와 조화롭게 두어, 마치 그림책 <작은집 이야기>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연상하게 하는 재미가 있다. 

 주인공 ‘나’는 진달래 마을의 초등학생이다. ‘꼬치꼬치 기자’, ‘다잡아 경찰관’처럼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하나같이 기발한데 주인공 남자아이의 이름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여러 가지 해괴하고 두려운 일들을 보고 ‘나’는 진실을 말하고 싶지만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같은 반장 ‘소심해’뿐이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 진실을 보지 않는 사람들,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차츰 추하게 변해가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공포심을 자아낸다. 결말은 열어두었는데 희망의 빛을 조금 느낄 수 있다. 도식적인 결말을 유도하지 않은 점이 가장 돋보인다.

 아이들과 독후활동으로 뒷이야기를 써보았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문제를 유쾌하게 해결하는 ‘나’를 읽을 수 있었다. ‘나’의 이름을 생각해보고 뒷이야기에서 밝혀보아도 좋겠다고 했더니, ‘똑똑해’, ‘진실해’, ‘무서워’ 같은 재미난 이름이 나왔다. 아이들은 한 번 얻은 행운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과 불운이 행운으로 전화위복 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행운돼지는 진달래마을 사람들에게 어쩌면 오래오래 행운을 가져다 준 돼지일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모든 건 독자의 몫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이다.

 

 아이들은 아무리 어두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라도 그 안에서 빛을 찾고 눈을 반짝이면 다른 가능성을 모색한다. 아무리 무거운 이야기도 가볍고 밝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으로 담아내는 것 또한 아이들 특유의 천성이다. 아이들은 때때로 어른보다 오히려 진실을 보는 눈이 밝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마주할 때면 시시때때 두려운 것이다.

 

 

 살면서 행운이 몇 번 올지는 모르겠지만, 행운이 왔다고 자만하지 말고 불운이 왔다고 좌절하지도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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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10-19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훗...^^
이 책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기발하고, 개성있는 글과 그림이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지요.^^

프레이야 2007-10-19 11:11   좋아요 0 | URL
정말 기발하고 재미있었어요.
우리들 마음의 어두운 면을 아이들도 바로 볼 수 있어야겠지요.
행운을 얻었다고 자만하지도 불운이 왔다고 좌절하지도 않아야겠어요.^^

비로그인 2007-10-1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앞의 현실을 저는 직시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누추한 현실.. 일부는 두렵기도 하고요. 하하
예정보다 일찍 서재 문을 다시 열었답니다. 혜경님
이젠 더 자주 뵙지요.


프레이야 2007-10-19 19:40   좋아요 0 | URL
누추한 현실, 직시하기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겠지요. 저도 못 그러고
살지만요.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는 일은 없도록 깨어있어야겠구요.

홍수맘 2007-10-19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먼저 읽어보고 싶네요.
나 역시 '눈앞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핑크빛 미래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문득 해 봤어요.

프레이야 2007-10-19 19:42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자라면서 함께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많아지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일 거에요.^^ 지금 노력하는 만큼의 대가만 바란다면 좋을 텐데
그 이상으로 많은 걸 바라면 판단력을 잃게 될 거라고 이 책이 말하더군요.
아이들에게도 진지한 생각을 해보게 하는 좋은 동화였어요.

봄나무 2014-03-22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음주에 이 책으로 5학년 학생들 수업합니다. 프레이야님의 서평이 도움이 되네요. 감사^^

프레이야 2014-03-2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나무님 반갑습니다 오래전에 수업한 책인데 아직 이책이 읽히는군요 좋은책은 수명이 없지요 닉이 참 싱그러워요 봄나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