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안에서 진정한 자리가 주어지지 않은, 이름도 지어지지 않은 흉칙하나 힘센 생명체. 자신에게 저주의 생명을 준 존재, 죽어가는 창조주(아버지/아담/이브) 옆에서 눈물 흘리는 나약한 존재. 메리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흉하다는 표현을 쓴 건 세간의 평을 의식해 미리 장치한 발언이었을 것이다.

남성 작가들의 전유물이었던 문학 세계에서 글을 쓰고 발언하는 여성은 조롱의 대상이었던 시절 메리 셸리는 18세에 <프랑켄슈타인> 초판을 무명으로 낸다. 서문은 연인이자 훗날 남편이 되는 퍼시 셸리가 쓰도록 했다. 낭만주의적 상상력과 바이런적 악마성에 여성의 출산에 얽힌 상처와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메리의 독창성이 압도적으로 발휘된 이 작품을 1831년 다시 내면서 직접 서문을 쓰고 자신의 이름을 내걸었다. 어머니 사후 “어머니 천사”를 그리워하는 고아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신지식을 갈망하는 열정에 휩싸여 온갖 혐오스러운 것들을 “다락방”에 모아 스스로 창조주의 자리에 들어가나 자신의 창조물에 사랑을 주지 않았고 책임지지 않았으며 이름을 지어주지도 않았다. 스스로 명명할 수도 없는 괴물같은 자아의 상징이었다.

실제로도 어머니를 일찍 잃은데다 저항적이었던 어머니 이름을 그대로 받고 문학적 고아의 환경에서 기죽지 않은, 창작자로서 메리는 자신의 아바타 격으로 프랑켄슈타인과 그의 피조물에 이중의 여성성을 부여하고 괴물화한다. 언어를 배우고 우정을 알아갔으며 친구를 갖고자 했던 무해한 그 괴물은 기이한 외적 형상으로 인한 배척과 편견에 내몰려 복수심으로 무장한다. 얼음벽이라는 세상의 극한에서 그 불꽃을 태워 올리며 자신의 창조자이자 아담이자 이브와 함께 자멸한다.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과 밀턴의 이브는 지식의 열매가 있는 곳에 천착하여 끝내 열매를 맛보고 죄를 불러들였다. 이들은 진정 공포를 부르는 쌍둥이였을까. 그럴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고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면, 그들의 가능성을 억압한다면. 대서양 건너 뉴잉글랜드의 에밀리 디킨슨은 물론, 우리 시대에 이르러서는 모든 상대적 약자에게 해당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말살하는 것이 여성성을 띤 모든 괴물의 마지막 복수인듯, 메리 셸리의 <최후의 인간> 문장이 이 장의 마지막에 인용된다.


저명한 망자들에게
바침
그림자들이여 깨어나 그대의 몰락을 읽어라!
최후의 인간의 역사를 보아라.

_ 다락방의 미친 여자 456쪽, <The Last Man> 339


캐네스 브래너의 <프랑켄슈타인> 1995년 영화 강추. 원작의 주요한 맥락과 이미지, 괴물의 서사까지 강렬하게 살려내었다.


- 7장 공포의 쌍둥이

실낙원을 흉내 낸 이 소설에서 빅토르와 괴물은 둘 다 다른 부차적인 인물들과 함께 모든 신성서적인 역할(이브의 역할을 제외한 모든 역할)을 반복한다. 그러나 밀턴에 관한 이 ‘여자의책‘에서 이브에 해당하는 인물이 제외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생략과 이 이야기가 암시하는 거의 노골적인 성적 요소들, 그리고 앞에서 우리가 논했던 밀턴의 악령에 대한 분석은 메리 셸리에게 이브의 역할이란 모든 역할이었음을 말해준다. - P429

우리는 자신의 미학적 활동에 불안을 느끼는 여성 예술가의 예로서 메리셸리를 손꼽을 수 있다. 메리 셸리는 자신의 ‘끔찍한 자손‘을 예의 바르게 소개하면서 자신이 불결한 창조물을 만들어내는 고립된 다락방에서 문학적인 낙태나 유산에 견줄 수 있는 ‘기형적인‘ 책을 출산했다고 명백하게 말한다. ‘어린 소녀였던 내가 어떻게 그토록 무시무시한 생각에 이르렀으며, 그것을 확장시킬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셸리가 기록한 (솔직하진 않더라도)핵심적인 질문이다. 우리는 셸리가 확장이라는 단어를 유희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P434

동시에 괴물의 서사는 ‘영혼‘이나 역사 없이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명상이며, ‘움직이고 말하는 추악한 덩어리‘, 물체, 타자, 제2의 성을 가진 존재가 된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가에 대한 탐색이다. 프랑켄슈타인을 미친 과학자의 원형으로만 강조하는 비평가들과 영화 제작자들은 이 사실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지만, 괴물의 쓰라린 자기 현시가 메리 셸리의 가장 인상적이고 독창적인 성취인 것처럼, 이름 없는 괴물의 독백이 드러내는 과감한 시점의 이동은 아마도 <프랑켄슈타인>의 가장 뛰어나고 기술적인 묘기일 것이다. - P437

여성의 나르시시즘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괴물성은 많은 여성이 자기 육체의 특징이라고 배워온 글자 그대로의 괴물성과 비교해보면 포착하기 힘든 ‘기형성‘이다. ‘괴물의 모습을 한 여자/여자의 모습을 한 괴물‘이라는 에이드리언 리치의 20세기식 묘사는 단지 여자들이 자신을 괴물로 정의하는 긴 역사의 도정 중 가장 최근에 속할 따름이다. - P445

메리 셸리가 괴물의 육체적 ‘기형‘으로 이브의 도덕적 ‘기형’을 상징하듯, 괴물의 육체적 추함은 사회적 위법성, 잡종성, 무명성을 나타낸다. 메리 셸리의 괴물은 셰익스피어의 에드먼드처럼 (그는 불결한 여성성과 관련이 있다. 이는 육체적/모성적 자연의 여신에 대한 그의 헌신과 더불어, 더러운 여자인 고너릴과 리건의 연애에서도 드러난다) 음란하고 비겁하게 ‘어둡고 사악한 곳’에 ‘갇혀’ 있다. 사실 괴물의 비열한 위법성 때문에 그는 ‘이름 붙이기 어려운’ 흉측한 장소를 육화하는 듯하다. 나아가 괴물이 가부장적 사회의 여자처럼 이름이 없다는 (결혼하지 않은 채 위법적인 임신을 했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도『프랑켄슈타인』을 썼던 시기에 자신에게 이름이 없다고 느꼈을것이다)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 P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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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1-29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저보다 한발 앞서 계시네요. 7장을 앞두고 있습니다. 올려주신 감상평이 근사해 몇 번이고 읽었어요^^

프레이야 2022-11-29 17:54   좋아요 1 | URL
화가님 어휴 7장 이후 일주일 정도 지났는데 이래저래 뭘 못 읽고 있어요. ㅠ 너무 많은 생각이 오가는 장이었어요. ^^

scott 2022-11-29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이야님
메리 셸리 작품 낭독 리스트에 사알짝 ^^

프레이야 2022-11-29 22:26   좋아요 0 | URL
고전이라 녹음도서가 이미 나와 있을 확률이 높은데 한번 물어봐야겠어요 ^^

2022-12-15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5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