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럴 수가 있소? 당신에게 연민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내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나를 무해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거부하겠다는 거요? 유대와 사랑이 없다면 내게 남은 몫이란 증오와 악덕뿐이오. 하지만 다른 이를 사랑하게 된다면 내 범죄의 근원이 사라지고, 그러면 누구에게도 눈에 띄지 않는 존재가 될 거요. 강요당했던 지긋지긋한 고독 때문에 내가 그렇게 악했던 거요. 그러니 동등한 존재와 함께 산다면 미덕도 반드시 살아날 것이오. 다감한 존재의 애정을 느끼고, 그러면 존재와 사건의 사슬에 나도 엮이게 되겠지요. 지금은 이렇게 외면당하고 있지만" - P189

하지만 착한 정령도 내 발걸음을 따라다니며 길을 인도했고, 심하게 불평이라도 하면 넘지 못할 것 같은 곤경에서 돌연 나를 구해주곤 했습니다. 때로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지쳐 쓰러지면 사막에 먹을 것이 준비되어 있어 기운과 활력을 되찾게 해주었습니다. 시골 농부들의 끼니처럼 변변치 않은 먹거리였지만, 내가 도움을 청했던 정령들이 가져다준 것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온통 메마르고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어 목이 갈증으로 타들어 갈 때면 작은 구름이 나타나 하늘이 흐려졌고, 그후 몇 방울 떨어진 비가 내 목숨을 구하고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 P265

특별히 뛰어난 자질 때문에 강하게 움직이는 애정이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의 벗들은 나중에 성장해서 사귀는 친구들이 갖지못한 힘을 우리 마음에 발휘합니다. 그 벗들은 우리가 갖고 있던 어린시절의 성정을 잘 알고 있고, 그런 본성은 훗날 아무리 변한다 해도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지요. 게다가 어린 시절 친구들은 우리가 품은 동기가 진실한가를 훨씬 더 정확히 분별하고 우리 행동을 엄정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 P276

내가 저지른 끔찍한 짓들을 하나씩 돌이켜보면, 한때 숭고하고 초월적인 미와 장대한 선의 비전으로 생각이 꽉 차 있던 존재였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말은 사실입니다. 타락한 천사가 사악한 악마가 되는 법이지요. 하지만 신과 인간의 원수들조차 외로움을 나눌 벗과 동료가 있소. 그러나 나는 철저히 혼자요. - P289

나를 존재하게 한 이는 이미 죽었습니다. 이제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면 우리 두 사람의 기억도 금세 사라지겠지요. 태양도 별도 보지 못하고 뺨을 간질이는 바람도 느끼지 못하게 되겠지요. 빛, 감정 그리고 감각이 사라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행복을 찾아야 합니다. 몇 년 전 이 세상이 주는 이미지들이 내게 처음 열렸을 때, 여름의 쾌활한 열기를 느끼고 바스락거리는 잎사귀와 지저귀는 새 소리를 들었을때 그리고 이것들이 내게 전부였을 때는 죽는 것이 두려워 흐느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 죽음은 내게 남은 유일한 위로입니다. 범죄에 더럽혀지고 쓰디쓴 회한에 갈가리 찢긴 내가 죽음 외에 무엇으로부터 안식을 찾겠습니까?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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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1-22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프랑켄 슈타인은 2017년 이었나, 제 올해의 소설 이었어요. 정말 대단한 작품이지요? 크-

프레이야 2022-11-22 11:34   좋아요 2 | URL
여러 관점으로 새로 읽게 되니 괴물의 이야기가 특히 안타까웠어요. 괴물의 대사들 와닿는 게 많고요. 여러 갈래로 오래오래 이야기될 거물급 ^^ 현대지성 책 자체도 좋네요:)

레삭매냐 2022-11-27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이 가진 진정한 가치는
시대를 바꿔 가며 다양
한 해석이 나타날 수 있
다는 점이 아닐까요.

프레이야 2022-11-27 23:52   좋아요 0 | URL
네. 그러게요^^ 시간의 흐름 따라 몇번씩 읽어줘야 할 작품들요. 생각을 물고 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