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빈 2 - 독방(獨房)



 칠성여인숙에 들어섰을 때 문득, 돌아 돌아서 獨房
으로 왔다는 것을 알았다

 한 칸 방에 앉아 피로처럼 피로처럼 꽃잎 지는 나를
보았다. 천장과 바닥만 있는 그만한 독방에 벽처럼 앉
아 무엇인가 한 뼘 한 뼘 작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흘
러 나가는 것을 보았다

 고창 공용버스터미널로 미진양복점으로 저울집으로
대농농기계수리점으로 어둑발은 내리는데 산서성의
나귀처럼 걸어온 나여.

 

 몸이 뿌리로 줄기로 잎으로 꽃으로 척척척 밀려가다
슬로비디오처럼 뒤로 뒤로 주섬주섬 물러나고 늦추며
잎이 마르고 줄기가 마르고 뿌리가 사라지는 몸의 숙
박부, 싯다르타에게 그러했듯 왕궁이면서 화장터인
한 몸

 나도 오늘은 아주 식물적으로 독방이 그립다

 



<<가재미>> 문태준시집 중 /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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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 넷,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여인숙에
홀로 묵었던 단 한 번의 기억은 부유하는 먼지 같다.
지나가버린 구름조각 같은 것이라 여겼는데 그것도 아닌가 보다.

 

 문태준 시집의 이 시를 읽다 ‘칠성여인숙’에 붙박인다.
그해 가을, 강릉시외버스터미널 바로 앞, 낡고 초라한 여인숙 방에 작은 몸을 누였다.
토요일 오전근무를 마치자마마 일곱 시간 정도 남에서 북으로 달려간 길을 함께 누였다.

 

 

 독방이었다.

 작은 방 한 구석에 냄새나는 이불이 있었고 나는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모로 누워 잠을 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속초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고 군부대로 들어가
면회신청을 해야 하는 일만 남겨두고,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왕궁이면서 화장터인 한 몸’은 독방에 누인 ‘독방’이나 다름없다.
그곳에 하룻밤 머물기 위해 나는 그때
허름한 ‘숙박부’에 내 이름을 적었다.
극빈한 이름 석 자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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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인생. 2007-07-14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저는 님이 누구를 면회가셨는지 다 알지요..ㅎㅎ
내일아침을 생각하면 설레이기도 하면서 아무도없는 여관방에서 겁도 나셨을것 같아요.
모로누워 잠을 자는 모습을 상상하니 애처롭기도 하면서. 그런 추억을 가지고 계신 님이 부러워요... 저도 오늘 문태준의 시집 맨발을 하루종일 읽었는데. 오늘 문태준을 매개로 님과 제가 또 통하고 있었나봐요.. ^^
주말이예요 여기는 비가 오다 안오다. 땅에서 올라오는 흙냄새를깊게 마시면서 주말준비를 하고 있어요. 좀 쓸쓸하면 어때요. 좋아요...
혜경님 희령이 곧있으면 방학이겠네요. 얼마나 신날까.. 아이 부럽다..^^
예쁜따님과 행복한 주말되시길 .. 혜경님의 춤인생드림^^

프레이야 2007-07-14 15:09   좋아요 0 | URL
님, 어젠 문태준으로 통했군요. ㅎㅎ
오늘 여긴 비바람이 쳐요. 문우들과 스터디 있어서 나갔다 왔어요.
나이 든 회장님의 말씀과 태도에서 늘 배워요. 나이들어 자신만의 생각으로
꽉꽉 막혀있기가 쉬운 법인데 그분은 한결같이 수용적이고 이타적이에요.
님 오늘도 빗줄기 가운데 우산 속, 하나의 '독방'같았어요. 그러네요,
결국 독방이에요.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은...

네꼬 2007-07-14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이런 여운이라니.

이러니 추천을 하지요, 추천을.

프레이야 2007-07-14 15:11   좋아요 0 | URL
네꼬님, 여운에 흔들리시나요.ㅎㅎ 여긴 우산이 뒤집힐 정도로 바람이 불어요.
태풍영향이겠죠. 빗줄기가 사방을 흩어지네요. 토요일 오후 편안한 시간
가지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