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뚱보 아니야 - 파란마음 001
마리 끌로드 베로 지음, 양진희 옮김 / 함께자람(교학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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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단지 생명을 잇기 위한 수단으로만 먹는다면 과식을 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식욕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지만 이 욕구가 지나칠 때에는 심리적인 요인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우리집 작은 딸과 나이나 체중이나 아주 비슷한 주인공 여자 아이, 마리는 그냥 마리가 아니라 ‘달덩이 마리’라고 불린다. 이 아이는 평범하고 다정한 가족들과 별 문제 없이 사는 10살 아이다. 오빠는 집에선 뚱땡이라고 놀리지만 남들 앞에선 자기를 비호해 준다. 언니는 아주 예쁘고 날씬한 외모를 가져 마리가 닮고 싶은 대상이며 마리의 눈이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상냥한 언니다. 하지만 바깥에서의 언니 태도는 돌변하여 마리를 창피해 하고 곁에서 사라져주었으면 하고 면박을 준다. 언니의 이중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마리는 언니를 좋아하고 오빠는 든든하게 생각하는 마음 넓은 아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마리는 우리집 작은 딸을 닮았다. 이 책을 권해 주었긴 하지만 다 읽고 났을 때 보이는 반응을 보고 마음이 안쓰러웠다. 평소 다른 아이들보다 많이 나가는 체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아이라 마음이 더욱 쓰였다. “엄마, 마리네 가족들처럼 우리 가족도 내가 살을 빼는 데 협조를 좀 해 주세요. 먹는 것들은 눈에 안 보이는 데 두고.” 이렇게 시작한 아이의 반응이 조심스러웠다. 간혹 짓궂은 남학생이 놀리는 말을 할 때면 우울한 표정으로 언니는 날씬한데 자기만 왜 통통하냐고 글썽이는 목소리를 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우리집 아이의 식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도 아픈 적이 별로 없고 먹은 건 모두 소화 잘 시키고 또래보다 키나 체중이 많이 나간다. 고도비만은 아니지만 배 부분이 통통한 편인데 먹고 싶어하는 걸 내가 잘 막아내지 못하는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조금씩 줄여가자고 약속은 했지만 밖에서 나 몰래 과자를 사먹고 다니는 것까지는 어쩔 수가 없어 고민이다.


이 책은 마리의 비밀일기 같은 이야기다. 마리가 동생을 얻게 되기까지의 이야기인데 그 과정에서 마리가 느낀 고민과 그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부분이 의미 있다. 마리는 생각이 많은 아이다. 자신만의 꿈도 야무지게 갖고 있고 남자친구에 대한 생각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현명한 아이다. 선생님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알고 친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되지도 않을 거짓말을 늘어놓는 일이 얼마나 한심한 지도 스스로 깨닫는다. 때로는 진실을 이야기 하는 일이 거짓을 꾸미는 일보다 힘들다는 사실도 아는 슬기로운 아이다. 문제는 식욕을 자제하지 못하는 것인데, 이런 욕구는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이기보다 자신이 사랑과 관심을 줄 대상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과도하게 생성되었던 것이다. 역시 어느 싯구처럼 사랑 받는 것보다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했다고, 자신을 사랑하게 된 마리가 훗날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랑을 주는 마음도 먼저 사랑을 받은 사람이 나눌 수 있는 것이다. 마리는 학교에서 울고 싶은 심정이었던 일이나 의사선생님에게서 듣게 되는 듣기 싫은 용어들, 일일이 다 말 못할 사연들을 모두 들어줄 친구를 꿈꾸었다. 어느 날, 그 대상이 나타났는데, 아주 의외의 동물이다. 다락 높은 곳에서 두 눈을 빛내고 마리를 쳐다보는 그에게 마리는 ‘뽀송이’라는 다감한 이름을 지어준다. 마리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 이 친구는 의외로 사납지 않고 목깃의 털이 유난히 부드럽다. 모든 걸 조건 없이 다 받아주는 이 친구에게서 마리는 위로를 얻고 다락으로 그를 만나기 위해 기어올라가면서 살도 좀 빠지기 시작한다.

 

좋은 일도 나쁜 일처럼 한꺼번에 일어난다고, 어느 날 동생이 태어날 것이라는 소식에 자기도 동생에게 뽀송이 같은 대상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마리는 자기가 받은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푸는 아이가 아니라 그 반대로 오히려 삼가는 아이다. 타인에게 분노를 풀지 못하는 이 아이는 천상 선한 아이다. 타인에게는 관심과 배려만을 베풀려는 아이는 속으로 쌓이는 화를 식욕으로 풀었던 것이다. 마리는 동생에게 자랑스러운 언니가 되려고 마음먹고부터 오히려 자신의 몸을 사랑하게 된다. 동생을 돌볼 준비물들을 미리 챙기고 점점 체중이 불어나는 엄마와 함께 병원을 같이 가서 체중계 위에 올라가는데, 엄마와는 반대로 점차 몸무게가 줄어드는 게 마리는 신기하다. 정말 무언가 몰두하는 일이 있고 마음의 허전함이 없이 사랑을 쏟아 부을 대상이 있다는 게 중요했던 것이다. 식욕은 사랑 받고자 하는 욕구이기 이전에 사랑하고자 하는 욕구임에 틀림없다.


사랑이 많은 작은 딸을 다시 생각한다. 아이가 품고 다 말하지 못하는 게 있을지 생각해본다. 아이가 다 풀지 못하는 분노가 있을지 생각해 본다. 아이가 아직도 인형을 좋아하고 잘 때면 꼭 인형을 안고 자는 것도 어쩌면 사랑을 주고 싶고 관심을 쏟아 붓고 싶은 대상을 안고 자는 행동인지 모르겠다. 매일 운동도 한 시간 정도 하고 있지만 배가 쉽게 들어가지는 않는다. 운동 선생님이 신경 좀 쓰셔야한다고 늘 말하니까 옆에서 보기에 마음 쓰이지만 사실 난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아이가 왜 자꾸 배가 고프다고 느낄까, 하는 점이다. 헛헛한 기분, 그런 기분이 들 때면 나도 먹어대는 습관이 있는데...  아이에게서 내가 채워줄 수 있는 것들을 좀 생각해야겠다.


<나 뚱보 아니야>는 아이의 식욕과 관련하여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통로를 제공한다. 어른이 읽어도 열쇠를 얻을 수 있지만 동화이니 물론 대상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어떤 신체적, 성격적 특성이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면 좋겠다. 마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것이라 아이의 마음을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동생의 탄생과 함께 더 이상 뽀송이에게서 위로를 얻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마리는 점점 뽀송이를 잊어간다. 여자동생이라 더 마음에 들어한다. 뽀송이보다 더 뽀송뽀송한 동생이 생겼다. 아기의 솜털을 떠올려보면 이 이름이 정말 잘 어울린다.

 

다락에서 만난 비밀친구 뽀송이. 날개의 색깔도 그 부드러운 털의 촉감도 기억에서 희미해져가고, 어쩌면 환상이었을지도 모르는 기억 속의 벗이다. 하지만 마리의 여동생이 마리만큼 자라서 비슷한 고민으로 울적해하고 먹는 것만 신경 쓴다면, 그때 얼마나 적절하고 따뜻한 충고를 귀띔해 줄 수 있을지, 흐뭇한 상상이 가능하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다락이 불러오는 기막힌 판타지를 떠올려본다. 뭔가 마술 같은 기쁨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키낮은 방. 그곳은 하늘에 좀더 가까이 닿아있었던 유년의 로망이지 않던가. 구름이라도 손에 잡을 듯 다락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을 딛으면 아이든 어른이든 행복해진다. 요즘 아이들이 다락을 모를 줄 알았는데 3월에 3학년이 될 아이들과 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할머니집에만 가면 다락에 올라가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한 아이가 있어 무척 반가웠다. 다른 아이들도 눈을 반짝이며 다락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했다. 


마리 끌로드 베로는 자신의 체험을 소재로 초등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주로 쓴다고 한다. 아마 이 책 속의 마리는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이 아닌가 싶다. 자기의 외모에 대해 민감해 지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즈음의 아이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좋아하라고 가르치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이들의 마음은 생각보다 깊고 넓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동화다. 마리의 헤어스타일이 아주 독특하고 귀엽다. 삐삐 롱스타킹과 비슷하면서 조금 다르다.

- 초등 2,3학년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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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02-16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_*
크큭~^^
아니!! 뽀송이^^ 라면 전데요.~^^;;;
전... 사람이예요.^^;;;
'뽀송이'가 '마리'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그 위로가 자신의 뚱뚱한 몸을 사랑하게 되고,
태어 날 동생을 위하는 마음으로 발전 한다는 것과,
드디어!! 비만에서도 벗어난다는 결말이...
참!! 인상적이네요.^^*
저도 한 번 읽어볼께요.^.~

프레이야 2007-02-17 0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송이님, 그 뽀송이가 구체적으로 어떤 동물인지 알아맞히셨어요? ^^
뭘까요? 행운을 가져다주는 야행성동물이라는데요, 마리에게.

뽀송이 2007-02-17 0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잉~~^^;;
"의외로 사납지 않고 목깃의 털이 유난히 부드럽다."
도대체 뭐예요???
저... 시댁 가요...^^*

진주 2007-02-17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어린이들도 살빼기가 심각한 고민이더라구요.
제가 만나는 애는 발레를 하고 있는데, 발레, 요것이 사람 잡아요~
이제 중학교 올라가는데 한창 먹고싶은 나이에 음식조절하느라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정말 안쓰럽더군요.
희령이 정도면 우리가 볼 때 귀엽고 이쁘기만 한데, 애들도 세상풍조를 따라 몸매에 관심을 많이 두겠네요...뱃살 빼는데는 줄넘기와 훌라후프가 괜찮던데^^

프레이야 2007-02-18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맛난 것 많이 드셨어요? 전 지금 거동이 불편할 정도랍니다. ㅎㅎ
훌라후프와 줄넘기가 뱃살을?? 아이에게 권해야겠어요. 줄넘기는 간혹 하긴
하는데 먹는 걸 워낙 더 좋아하다보니 잘 안 빠지는 것 같아요 ^^
희령이도 얼마전 피겨 2급 승급에 성공하여 이제 공중 2회전 정도 하려면
체중을 좀 빼야하는데 아이에게 자꾸 말하기도 스트레스 될 것 같고 ㅜㅜ

뽀송이 2007-02-20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_*
어머!! 님^^ 따님이 피겨 하나봐요? ^^;;
제가 참 좋아하는 종목이거든요.^^*
와~ 멋져요!!!

2007-02-21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우아 2007-02-21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빼기는 아이나 어른이나 공통된 문제이지요. 요즘 저는 아침에 운동해서 그런지 이번 명절에 고생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서울까지 올라오는데 시간이 초과한 것 빼놓고는 말입니다^^

프레이야 2007-02-2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송이님, 김연아선수 참 예쁘죠? 저도 그 종목 좋아해요. 특히 남자선수들이
더 멋지던걸요.^^

속삭인 ㅎ님 /그리 달덩이로 보이지 않던데요 뭘.. 사실 복스럽고 좋지요^^

오우아님/ 아침마다 운동하시는 것 쉽지 않지요. 뭐든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데
참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건강한 삶을 위한 운동, 필요한 일입니다.
명절에 먼 거리 차로 다니시느라 고생하셨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