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작가 사전 파랑새 청소년문학 3
마뉘엘라 모르겐느 지음, 클레르 뒤부아 그림, 김주경 옮김 / 파랑새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 프랑스는 18세기 백과전서파가 활동했던 나라입니다. 백과전서파의 주축이었던 디드로, 볼테르, 루소 등은 감정보다 이성이 우월하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계몽하고, 구체제의 권위와 종교를 비판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펼친 백과사전 편찬 운동은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지요.(역자서문 9쪽)


역자서문에는 프랑스 백과전서파가 기여한 18세기 의식의 개혁이 간략히 서술되어있다. 21세기, 이 책은 백과사전에 대한 기존의 체계를 탈피하여 탄생되었다. 작가의 배열이 알파벳 순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제외하고, 백과사전의 전형적인 내용을 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작가의 탄생연도와 대표작 정도에 대한 코멘트도 역자가 우리나라 독자를 위해 넣은 친절이다. 논픽션에 분류되어 있는 청소년 책이지만 판타지 기법을 도입하여 읽는 재미를 주며 백과사전의 딱딱하고 권위적인 분위기는 느낄 수 없다. 날마다 독자는 쌍둥이 주인공의 한밤중 모험에 동참한다. 알파벳 26자의 이니셜로 시작하는 문학작가를 한 명씩 차례대로 골라 대표작품 속으로 이들의 모험이 펼쳐지는데, 다만 X와 Y는 묶어서 작자미상으로 처리한다. 방정식의 미지수 XY가 연상되어 독자로 하여금 해당되는 작가를 찾아보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Yeats는 시인이라 제외되었나. 이 책에서 XY편에 나오는 이야기는 작자미상의 <천일야화>다.


책의 후반에서도 쌍둥이들이 언급했듯이 여성작가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작가이다. 여성작가를 찾아 추적해보니 가명을 쓰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당시 훌륭한 여성작가들에 대해 작가는 쌍둥이의 입을 빌어 “가명 뒤에 숨은 작가들은 이미 모험을 한 거야. 그래도 사람들은 결국 그들을 찾아내지만 말이야.” 라고 말하고 있다. 글쓴이는 프랑스 출신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의 국적은 그것에 구애되지 않고 다양하다. 부끄럽게도 내가 처음 들어보는 작가도 있었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혹은 외국문학을 읽기 시작하는 중학생들에게 귀설은외국문학작가들의 이름이 어느 정도의 호감을 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행여 낯선 작가의 이름을 통해 그들의 작품을 찾아 뒤지게 되고 문학작품에 심취한다면 작가와의 내밀한 만남을 조금 일찍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쌍둥이 주인공은 밤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틈을 타 헤드라이트를 켜고 서재에 간다. 아마도 아빠의 오래된 서재일 테다. 아이들의 키로는, 고목의 수피에서처럼 책냄새가 훅 하고 콧속으로 들어오고 아빠가 동서고금의 책들이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는 숨막히는 방일지도 모른다. 청소년들이 읽기에 부담스러운 고전문학작품을 이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흥미로운 모험으로 접근하다. 가장 꼭대기의 책에서부터 아래로 차츰 내려오며 특별한 체험으로 작가를 엿보게 되고 그들이 쓴 책 속으로 빠져들며 모험을 한다. 무시무시하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하고, 부조리하기도 한 모험들은 모두 작가의 특성을 엿볼 수 있는 키워드들이다. 물론 이 책에서 각 장마다 판타지형식으로 나온 짧은 일화가 한 작가의 모든 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작가의 다른 면모와 정신세계를 엿보는 시간으로도 흥미롭다. 쌍둥이와 함께 독자는 알려져 있지 않거나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일화와 함께 작가의 내면세계로 짧지만 강렬한 여행을 하는 셈이다. 이들은 여러 작가들의 다채로운 면모를 엿보고 보통 사람이 아닌, 작가로서의 삶과 독특한 생각, 더불어 한 인간으로서의 정서와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또한 작가별로 작품탄생의 심리적, 환경적 영향도 조금 짚어볼 수 있다.


각 편마다 글의 길이가 길지 않다. 책의 두께도 얇고 손에 쥐기에 아담하다. 문장은 압축적이고 늘어지지 않는다. 한밤의 판타지이지만 눈 한 번 깜박 하는 정도의 짧은 시간이 흐른 것뿐이라는 인상을 주어 신비하다. XY편을 제외한 24명의 작가를 나타내어 주는 삽화가 들어가 있는데 인물의 개성을 잘 담았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달리의 그림을 보는 것 같기도 한 그림들에는 작가의 실제생활과 작품, 정신세계를 단적으로 담아내려는 의도가 보이며 내용과 삽화가 잘 어울려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각 편마다 반복구절이 배치되어 글 전체가 하나의 리듬을 타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밤이다. 드디어 집 안의 불이 모두 꺼졌다. 뷔바르와 리코세는 서재의 책장 위로 올라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모두 일곱 개의 선반이 있었다. 두 아이는 선반의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곳에서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땅이 아득하게 보이는 곳, 그곳에서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라는 글귀가 각 편의 서두에 나온다. 그리고 각 편의 마지막에는 작가들에 대한 주인공들의 이해가 나름대로 서술되어있다. 예를 들면, 루이스 캐럴 편에서 “작가들은 우리가 새로운 시각으로 더 멀리 볼 수 있도록, 때로 우릴 물구나무 세우기도 하는 것 같아.” 라고 기발한 생각으로 이끈다. 그러고는 침대로 돌아와 깊고 달콤한 잠으로 빠져든다.


이 책은 문학작품을 읽고 작가에 대한 환상을 가져보았던 이들, 작가의 일화에 놀라웠던 기억이 있는 이들도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청소년 시리즈로 나온 만큼 문학작품 읽기에 빠지려는 이들이나 작가의 꿈을 꾸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손 내밀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욤 아폴리네르로 시작해서 에밀 졸라에 이르기까지, 고전문학작가와 그 책을 통한 여행으로 밤잠을 설친 쌍둥이가 만들어 낸 독특한 작가사전이다. 하지만 스펙터클한 사건이나 상상의 세계를 기대하면 부족하게 느낄 것이고 그저 문학작가와 작품의 맛을 살짝 보고 독자가 더 깊은 맛을 찾아 스스로 나아가게 하는데에 의미를 둘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서, 에밀 졸라에 대한 쌍둥이들의 진지한 생각을 읽어보자.

 

- 뷔바르와 리코세는 전혀 몽상적이지 않은 이 작가, 사회 문제에 진지하게 참여하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며 살았던 이 작가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맞아, 졸라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으로 우릴 데려가 주었어. 아마 그는 우리가 낮 2시에 정오의 시간을 구하는 법 없이, 그냥 우리의 시간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 같아.”

“그래. 작가는 진실을 찾는 사람들이기도 하니까.” - 156쪽


나름의 방식으로 삶과 인간, 세상을 그려내려고 한 작가들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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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7-01-31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 안내에서 보고 궁금했던 책이에요. 저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진달래 2007-02-01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이네요... 기억해 두겠습니다. ^^

프레이야 2007-02-01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청소년/어린이 책 분야에 우리나라에선 이런 소재의 책은 아직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 작가들로도 이런 식의 작가사전을 만든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의 고전 작가들 말이죠^^

카페인님/ 네, 흥미로웠어요. 파랑새출판사라 믿음도 가구요.^^

부엉이 2007-02-0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재밌는 리뷰 넘 감사드려요. 가끔 신간 보내드릴게요. 그치만 절대 리뷰의 압박을 느끼시진 말고요! 제맘 아시죠? ^^;;

짱꿀라 2007-02-0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기품있는 리뷰를 만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향기로운 2007-02-0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너무 멋져요^^;; 저도 보관함에 담아두어요^^

프레이야 2007-02-0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엉이님/ 좋은 책 흥미롭게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당연 부엉이님 마음 알지요^^
산타님/ ^^ 고맙습니다.
향기로운님/ 초등학생이 읽기엔 재미없을 것 같지만요... ^^
에고 오늘도 우체국 갈 시간을 못 내어 버렸어요. 애들 방학도 다 끝나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