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꽃세상이다. 철 모르고 좀 당겨서 온 배꽃들이 얼어죽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앞다투어 피고지는 꽃들도 눈물나게 애잔하기는 마찬가지다. 바람의 손길을 기다리며 바람끼를 실컷 드러내고 있는 고 예쁜것들이라니.
누군가 보내준 꽃 사진을 보다, 하늘이 없다면 저 꽃이 저리 예쁘게 보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은 또 하얀 구름이 없다면 덜 예쁘겠지.
우리는 서로 알게 모르게 배경이 되어주기도 배경이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그 배경이 좀 살갑지 않아도 믿음으로 구축된 거라면 견딜 만할까. 그래 그렇다고 생각된다. 그러기를 바라며 3월이 흘렀고 4월도 삼분의 일이 지났다. 아시아 옛이야기를 주제로 시각장애인들과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하고 낭독녹음도 여전히 하고 있다. 올해 들어 결석이 잦았던 두 달을 보충하려고 좀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고마워 영화>를 점자도서관 측에서 녹음도서로 지정하여 시작하였다. 나로선 지루하기도 유용하기도 고맙기도 한 제의다. 다시 읽으며 오자가 또 눈에 들어온다. 문장의 흐름과 리듬도 낭독하며 짚어 볼 수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전자도서로도 작업중이라고 들었다. (그분들을 위한 특별한 기기가 있다) 아무튼 두 개 파일 정도 녹음하는 중에 급한 책 요청이 들어와 내 책은 잠시 쉬고 먼저 녹음하였다. 손원평 장편소설 <아몬드>다.
아몬드 / 손원평 / 창비 (총 263쪽)
녹음시작 2018. 3.28 - 4. 11 완료 (총 11파일)
2018 '원북원부산 ' 후보도서로 지정된 책이다. 등장인물 곤이의 설정 상 욕설이 거침없이 나오는 부분이 제법 있다. 그래도 귀여운 정도라 시원하게 내뱉었다. 대리만족이랄까. 내 안에 욕쟁이가 훅 튀어나온다.ㅎㅎ
어덜트 소설이라는 이름을 달아 두 주인공도 10대의 남학생이다. 결핍을 타고난 아이들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주변인물과 상황이 나아가는데 약간은 억지스러운 설정도 있지만 따뜻한 결말을 맺고 싶어한 작가의 의도로 읽힌다. <아몬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공감의 부재를 짚는다. 공감에도 능력이라는 이름을 다는 게 불편하지만 당연한 느낌을 갖지 못하거나 두려워하는 우리들의 비겁한 내면에 돋보기를 댄다. 역시 가슴이 머리를 지배할 수 있다고 나도 믿는다. 아몬드는 왜 아몬드인지 여기선 비밀.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24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