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서유기 4 대산세계문학총서 24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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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자금 홍호로(紫金紅葫蘆)와 양지옥 정병(羊脂玉淨甁)으로 유명한 금각대왕, 은각대왕 형제 그리고 말미에 잠깐 등장하는 우마왕과 나찰녀의 자식 홍해아 등. 슬슬 이름난 악당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대개는 3편에서 인삼과를 먹은 삼장을 잡아먹기 위해 일행을 공격하는 요괴(삼장법사를 잡아먹으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소문이 요괴들 사이에 돈다)다. 재미있었던 부분은 이들이 관세음보살의 설계(?)라는 설정. 삼장 일행의 여정이 너무 쉬운 것(?)을 염려한 관세음보살이 일테면 난이도 조절을 한 셈. 3편에서 느꼈던 게임 개발자(관세음보살)와 게이머(삼장 일행)의 관계가 자꾸만 떠올라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편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손오공이 별명을 바꿔가며 금각, 은각 형제를 속여먹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본래 별명 ‘손행자’를 행자손이니, 자행손이니 순서만 바꿔 삼 형제 행세를 하는데 금각과 은각은 이걸 또 곧이곧대로 믿어 버리는 장면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금각, 은각 에피소드의 전반적 분위기가 코믹 그 자체다. 손오공이 두 형제의 졸개를 속여 보배를 바꿔치기 하는 장면 역시 그렇다. 마치 한 편의 콩트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두 형제는 원래 태상노군의 금로와 은로를 맡아 관리하던 동자들이었던 것. 꼬맹이들이 일으킨 소동답게 순박한 면이 있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안타깝게도 금각, 은각 역시 관세음보살의 설계임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를 한탄하는 손오공의 모습마저도 참 재밌다.




원, 보살님도 너무하시지! 이 손오공을 풀어주실 때만 하더라도, 일심전력으로 당나라 스님을 안전하게 모시고 서천 땅으로 가서 경을 얻어오라고 하시며, ‘길이 험난하여 나아가기 어렵더라도 걱정하지 말아라. 위급한 지경에 처하게 되거든 내가 친히 가서 구해주겠다’ 하시더니, 이제 와서 도리어 요괴 마귀들을 시켜 우리 갈 길을 가로막고 이렇게 훼방을 놓을 수 있단 말이오? 이야말로 언어도단이고말고! 그러니 보살님도 어지간히 사나운 팔자를 타고나셔서 평생토록 남편감을 못 만나셨지 뭔가. 


p.290



사족 하나만 붙이자면 몇 편인지 가물가물한데 변신술을 쓰는 손오공에 대한 묘사가 ‘변검’과 매우 흡사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번 편에서도 역시 그 변검을 묘사한 듯한 ‘손바닥이 문지르고 지나간 자리에는 손행자의 본래 모습이 여실하게 드러났다.’(p.57) 같은 구절이 등장하길래 신기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변검술은 19세기에 와서야 등장한 중국의 가면극이란다. 오승은이 서유기를 쓴 시기가 16세기인데 어째서 소설 속에는 변검술처럼 보이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일까? 역자 임홍빈 씨의 자의가 들어간 해석일까? 아니면 그저 신뢰성 떨어지는 인터넷 정보일 뿐일까? 누가 속 시원히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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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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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주 잠깐이나마 외부인의 시선을 견지(見地)해본 사람은 내부의 문제점이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이게 마련인 듯하다. 홍세화 그 역시도 마찬가지였을까? 프랑스 망명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그에게 한국 사회가 처음으로 건낸 말은 “여러분 부―자 되세요! 꼭이요!”라는 자본의 목소리였다. 유행어가 될 만큼 국민은 그 목소리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고 내남없이 지갑을 열어 응답했다. 그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고국을 떠나 있었던 세월 동안 한국이라는 나라의 어딘가가 많이 변했다는 것을.


타국 생활을 해본 사람들 가운데서도 제3의 눈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나뉜다. 전자는 내부에서 볼 수 없는 건물의 균열을 외부를 비롯한 다양한 위치에서 파악하고 사유할 줄 아는 데 반해 후자는 잠깐 경험한 이상적인 건물의 내부와 현재 자신이 머무르는 건물의 내부를 비교하는 데서 그치고 만다. 결국 ‘지 자랑’일 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관심 밖이다. 아마도 홍세화는 전자에 가까운 인물일 것이다. 그는 내부인이자 외부인의 시선으로 이 나라의 교육에서부터 노동, 주류와 비주류, 앎과 무지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을 세세히 훑어 내려간다. 대개 그가 다녀온 프랑스와의 비교로 채워져 있긴 하다. 다만 단순히 서구 중심적 관점에서 나온 비교라 보기에 그의 비판은 논증의 구조는 견고하고 사유의 날은 뾰족하다.


책을 읽다 보니 우리는 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하는 물음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문제는 오늘 사회가 이 책이 나온 시점보다 더 절망적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줄곧 말하는 ‘생각의 주인’으로 살기가 이제는 정말이지 힘들기만 한 세상이다. 물신 지배로 부추긴 계급 사회와 교육 획일화를 통한 세대 양극화는 자본과 정치가 합작한 최고의 발명품이자 이데올로기. 기업은 더 교묘한 방법을 동원해 소비자로 하여금 원해서 지갑을 열었다는 착각에 빠뜨리고 정치는 오늘의 사회를 개선할 의도가 전혀 없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으레 그렇듯이 우리는 여전히 전쟁 중이란 사실을 상기시킬 다양한 정치적 공세를 펼쳐댄다. 이는 삶의 불안감을 조성하고 보수를 집결시키는 진부한 레퍼토리지만 유권자들은 내가 던지는 표가 누구의 판단에서 나왔는지는 전혀 의심하지 못한다.


가령 그들은 개성공단 폐쇄가 정부의 ‘합리적’ 판단이라 믿는다. 언제 북한이 핵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마당에 돈줄(개성공단)을 계속 방관할 수 없다는 것. 우리가 받을 경제적 타격이 억 단위든 조 단위든 무슨 상관이랴. 오로지 “니들은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지?”로 대변되는 공포만이 현재 사회 최고 역점으로 부각한다.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살아온 노인들은 당대 정치의 좋은 먹잇감이다. 선동과 선거의 도구가 따로 없다. 노인들이 ‘요즘 애들’을 운운할 때 입시 제도 교육에 길든 젊은 세대는 그들을 멍청한 개 취급한다. 정작 이 세대 전쟁의 승자가 누군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전쟁의 주체는 표를 챙기고 뒤처리는 국민의 몫이다. 도래할 경제적 타격과 사회적 부작용은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겐 보이지 않는 부채와 같다.




우리의 애국주의는 자발성을 기대할 수 없다. 국가는 나를 지배할 뿐 나를 위해 해주는 게 없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외치게 하고, 애국주의를 주입시키려고 애쓴다. 학교에서는 애국을 강조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게 한다. 후진국일수록 스포츠가 '국위선양'의 도구로 동원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p.166



이러한 세상에서 진정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 가능할까? 홍세화는 끊임없는 자문만이 정답이라고 말한다. ‘스피노자가 강조했듯 사람은 이미 형성한 의식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을 고집하고 쉽게 버리지 않는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더욱 물어야 한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생각이 어떻게 내 것이 되었나, 라고.’(p.16) 말이다. 독서와 토론을 통해 주체적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고 익숙한 제도 교육과 쉴새 없이 떠드는 미디어의 목소리를 부단히 의심하는 생활. 이것만이 내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버리고 이 미친 세상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살아갈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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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정리학 - 뒤죽박죽된 머릿속부터 청소하라!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뜨인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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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3명은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한다. 뒤집으면 6.5명 정도가 1년에 책을 고작 한 권 정도 읽는다는 얘기가 된다. 안 읽어도 너무 안 읽는 것이다. 솔직히 내가 그 6.5명 중 하나였다. 1년에 많으면 두세 권 정도 읽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작년(2015)에 읽은 책 권수를 합쳐보니 대략 40권 정도가 나왔다. 다독가들은 콧방귀를 뀔 수준이지만, 나에겐 비약도 이만한 비약이 없다. 그리고 내가 독서에 ‘재미’를 붙이게 된 건 어디까지나 이 책의 공이 컸다.


그때 내가 독서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 이유를 최근에 와서야 깨달았다. 첫째, 책과 친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친해질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지금 관점에서 본다면 책이라는 것도 친밀감을 쌓아야 마치 밥을 먹듯 독서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듯하다. 둘째, 집중력 부족. 이건 비단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닐 성싶다. 주변에 티브이니 컴퓨터니 만화책이니 온갖 재미난 일들로 가득해서 그런가 의자에 궁둥이 붙이고 1시간 이상 책 읽기가 무모한 도전처럼 느껴지는 사람 많으리라. 중요한 건 나는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사실. 그런데 어떻게 책과 친해질 수 있었냐고?


바로 낙천적인 아침 두뇌 덕분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수면 도중 뇌를 정리한다. 일명 렘Rapid Eye Movement 수면 상태. 아침에 잠에서 깼을 때 우리가 맛보는 상쾌함은‘밤사이에 머릿속이 말끔히 정리되어 널찍한 빈 공간이 생겼기 때문이다.’(p.45) 더불어 그 시간대 집중력이 가장 높아진다고 한다. 당시 나는 아침에 할 일이 딱히 없었다. 속는 셈 치고, 욕심부리지 말고 하루에 한 시간씩만 읽어보자 하는 심정으로 시도해보았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그리고 일 년. 특별한 일이 있던 날을 제외해도 거진 하루도 빠짐없이 독서를 할 수 있었다. 물론 오늘까지도 꾸준히. 무려 내가 말이다.


저자는 아침 두뇌의 활용법뿐만 아니라 창작에 필요한 여러 가지 팁을 알려준다. 이런저런 팁도 팁이지만 더 재미난 점은 저자의 ‘비유력’이다. 비유들이 하나같이 그럴싸하고 재미있다. 입시 교육에 길든 사람들을 글라이더 인간에 비유하는가 하면 오로지 배우기만 하고 활용하지 않는 사람의 뇌를 창고형 두뇌에 비유한다. 아이디어 개발 과정을 술 담그는 양조법에 비유하는 것도 특이하다. 금방 떠오른 아이디어는 바로 활용하지 말고 술을 재우듯 잠시 잊어보라는 것. 그래야 나중에 확인해봤을 때 잘 익은 술과 그렇지 않은 술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다고. 이뿐인가? 거짓 좀 보태서 이 책은 거진 모든 챕터가 비유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이렇게 비유력이 좋은 작가를 사랑한다. 나에게 좋은 책이란 곧 비유가 좋은 책이기도 하다. 혹여나 재미가 좀 없더라도 비유만 괜찮다면 그깟 별점 아낄 이유가 없다. 


비유도 일종의 창작 행위다.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게 바로 비유. 아무리 저명한 학자가 쓴 교양서면 뭐하나? 일반인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온갖 전문용어로 도배된 책이라면 그건 수면제와 다를 바 없는데. 나는 이미 이 책을 통해 그 비유의 덕을 본 독자다. 다른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최근 이 책의 개정판(책이있는풍경 출판, 『생각의 틀을 바꿔라』)이 출간되었다고 들었다. 사실 일본에서 이 책이 나온 지는 20년도 훌쩍 지났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최근에야 알려진 모양이지만 홍보 한 번 하지 않은 책이 서점 매대를 꾸준히 비워내고 또 이렇게 개정판까지 찍어냈다는 건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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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코드 2016-02-16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기좋습니다.읽고싶네요.

5DOKU 2016-02-16 13:10   좋아요 0 | URL
개정판이 나왔던데 한 번 읽어 보시죠.

3코드 2016-02-16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장바구니에담아놓을께요.감사...
 
언어의 달인, 호모 로퀜스 - 언어가 춤을 춘다 세상을 다 말하라!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3
윤세진 지음 / 그린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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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제 트위터에서 다소 황당한 일을 목격했다. 맞춤법이 엉망인 어떤 글을 캡쳐한 트윗이 타임라인에 올라왔다. 캡쳐 사진을 올린 유저는 단지 맞춤법만으로 캡쳐 속 사람이 ‘비서울권’, ‘고졸’, ‘일용직 노동자’라는 걸 유추해냈다. 물론 실제로 그러한지는 확실하지 않다. 만약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언어 능력 하나만으로 누군가의 학력과 지역, 나아가 경제 능력까지 판단해버리는 게 문제다. 캡쳐 트윗을 올린 유저를 옹호하는 다른 트윗도 보았다. 그 사람을 비하하거나 무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단지 가여워했을 뿐이라는, 말인지 방구인지 당최 분간이 안 되는 옹색한 변명. 비난은 안 되지만 연민은 상관없다 그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며 처음에는 저자가 좀 엉뚱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줄임말이나 신조어, 사투리나 비속어가 실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주장. 분명 저자의 말은 언어에 대한 나의 통념을 재고하도록 부추기는 면이 있었다. 우리는 반드시 글을 형식에 맞도록 써야하며, 독서를 할 때에는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라 배웠건만 저자는 그런 것에 굳이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다. 이상하다? 티브이에선 아나운서가 18번은 일제의 잔재니까 애창곡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던데?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저자는 이것이 엄연한 편견이라고 주장한다. 애당초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부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수많은 언어가 닿고 섞여서 조금씩 변화해 온 것인데 언어순혈주의를 내세워 18번이니, 애창곡이니 하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18번이라 부르면 어떻고 애창곡이라 부르면 어떤가? 이미 사람들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또 잘 사용해오고 있는데 말이다. 표현의 본래 속성이 잘못된 것이 아닌 이상 구태여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듣고 보니 그렇다. 이어서 저자는 묻는다. ‘이 말은 일본어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서 버리고, 저 말은 영어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서 또 버리고, 그런 식으로 버리다 보면 마지막에 남는 '순우리말'은 얼마나 될까?’(p.118)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관계 맺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우고 익힌 언어들을 통해 내가 나의 언어를 갖게 된 것처럼, 이렇게 낯선 언어가 자신의 것과 뒤섞이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됨으로써 이러저러한 언어들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 언어란 그렇게 처음부터 이질적인 것들의 ‘화합물’로 있었던 것이지, 결코 단일 원소로 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국어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건 일종의 강박관념일 뿐이다.


p.114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결국 ‘창의력’. 우리는 스스로 언어의 용법을 속박하고 있다. 언어를 가두면 가둘수록 사고 또한 갇히게 마련이고 이는 필시 창의력의 빈곤을 불러온다. 인간의 행위가 언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굳이 속박하여 사고를 제한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넌 어린애도 아니고 왜 자꾸 줄임말을 쓰냐?”, “보그체 그거 다 허세 아니야?”, “저 연예인은 아직도 사투리를 못 ‘고쳤네’”……. 이런 편견을 알게 모르게 내면화한 사람들이 모인 사회가 결국 ‘다름’을 ‘틀림’으로 해석하고 빼어난 사람을 나댄다고 비난한다. 


여기서 그치면 다행. 우리는 어쩌면 앞서 언급했던 어느 트위터 유저와 같이 규범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인생까지 모조리 재단해버리는 치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글이 탄생하던 시기 조선의 고관대작들은 그것을 천한 것들이나 사용하는 언문(諺文)이라 불렀다. 그리고 2016년 현재, 우리는 그 언문으로 또다시 그들과 같은 벼슬아치 짓거리를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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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DOKU 2016-02-15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책 정보 노출에 오류가 있는 모양이다.

책 제목은 『언어의 달인, 호모 로퀜스』다.

알라딘, 일해라!

yureka01 2016-02-15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어는 결국 많이 쓰이면 그게 맞는 거란 생각입니다.자장면이 짜장면이 되듯이....

5DOKU 2016-02-15 19:28   좋아요 0 | URL
간혹 하나를 구조 전체에 영향을 주는 사례가 있긴 합니다. 다만, 일반적인 경우 저도 님이 말씀하신 게 맞다고 봅니다.
 
[eBook] 천국에서
김사과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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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나의 재능을 어디에 쓸 것인가 고민하세요. 그 꿈을 좇다 보면 돈을 버는 거지, 돈 벌어서 어디에 쓰겠다, 그건 아니에요.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입고 살 때 얼굴에서도 가장 예쁜 빛이 나요. 얼마 전에 만난 젊은이에게 꿈을 물었더니 ‘7급 공무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정신 차리라”고 한 대 때렸어요. 7급 공무원은 네가 뭔가를 하고 싶은 과정이 될 순 있어도 그 자체가 어떻게 꿈이 될 수 있느냐고요.


_한비야, 인터뷰 「반장 하면 ‘반기문’ 되기 유리하냐고요?」 중에서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판타지’ 소설 작가다운 발언이다. 한비야, 그녀야말로 자신의 꿈을 팔아 돈을 번 장본인이 아니던가. 하지만 한국의 모든 젊은이가 그녀처럼 판타지 소설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늘의 한국은 그녀의 말마따나 꿈을 좇다 보면 돈을 벌게 해주는 그런 곳이 아니다. 그보다 돈을 벌어서 내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것이 시급한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꿈은 그 이후에나 꿔볼 수 있는 사치와 같다. 그녀에겐 7급 공무원은 그저 과정일 뿐이겠지만 누군가는 일단 사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벌이를 제공하는 7급 공무원은 엄연한 꿈이다.


『천국에서』의 케이는 한비야와 같은 어른들이 만든 ‘천국’의 대표적인 희생양이다. 케이는 먼저 뉴욕에서 그 천국을 맛본다. 꿈을 좇는 사람들이 건설한 화려한 도시 뉴욕 말이다. 그곳에서 또래의 친구들이 자유롭게 살아간다. 이어 서울로 돌아온 케이는 어떤 무질서를 느낀다. 뉴욕과 같은 천국이 되고는 싶지만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현실 속에서 서울은 그저 최대한 뉴욕처럼 보이고 싶은 도시일 뿐. 그래서 케이는 진짜 꿈을 좇는 친구들을 찾아 홍대로 간다. 뉴욕만큼은 아니지만 그들은 적어도 꿈과 자유를 좇지 않던가.


그러던 케이의 생활은 초등학교 동창 지원을 만나면서 급격히 바뀐다. 지원의 생활은 케이가 경멸하던 삶의 전형이다. 꿈 따위는 포기한지 오래. 인천의 작은 공단에서 힘든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삶. 지원과 그 가족들의 모습은 케이가 뉴욕과 홍대에서 느낀 천국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곳에서 케이는 천국에서 느낄 수 없었던 ‘진짜’를 경험한다. 비록 비루한 삶이지만 최소한 그들은 오늘날 꿈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케이는 지원을 떠날 수 없다.


아마도 케이는 그제야 자신이 그렇게 원하던 천국의 실체를 깨달았을 것이다. 뉴욕, ‘꿈을 좇아’ 남의 땅을 찾아와 원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갈아 만든 도시. 그리고 서울, ‘꿈을 좇아’ 이전의 낡은 것을 모두 무너뜨리고 건설한 도시. 두 곳은 각각 그 나라를 대표하는 천국이다.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 여겨지는 곳. 이곳에서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보이지 않는 그곳에 진짜 삶이 있다. 케이에게 사는 대로 생각하는 지원은 ‘꿈’이 아니라 ‘진짜’다.




모든 게 망가졌는데, 왜 아무것도 무너져내리지 않아? 왜 다 무너져내렸는데 아무것도 끝장나지 않지? 왜 끝장이 났는데,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는 거냐고? 분명히 뭔가 잘못된 거야.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거라고. 그런데 여기가 천국이래.


p.446



꿈을 좇는 삶,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삶이 최고의 가치인 한비야에게 7급 공무원이 꿈인 젊은이는 ‘맞아야 할’ 대상이다. 사는 대로 생각했을 뿐인 젊은이는 꿈을 좇지 않았다는 이유로 ‘맞았다’. 똑같은 이유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침략자들에게 학살당했고, 서울의 어느 세입자는 오늘도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모두들 이곳을 천국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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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4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은 천국이라는 환상을 좇을 것이냐, 자신이 실현할 수 있는 삶에 만족할 것이냐겠죠. *^^

5DOKU 2016-02-14 05:10   좋아요 0 | URL
꿈을 좇지 않으면 루저 취급하는 게 문제인 듯합니다. 누군가는 그저 현실에 안주하고 살 수도 있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