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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서유기 5 대산세계문학총서 25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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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컸던 홍해아와의 난투는 생각보다 지리했다. 그보다 뒤이어 등장하는 차지국(車遲國)의 삼청관 도사, 호력대선(虎力大仙), 녹력대선(鹿力大仙), 양력대선(羊力大仙)과의 내기 대결이 무척 흥미롭게 읽혔다. 여러모로 도교 풍자(?)적 성격이 돋보이는 에피소드였기 때문이다. 서유기는 기본적으로 도교와 불교가 혼합된 환상 소설이지만 읽을 때마다 도교에 대한 저자 오승은의 풍자가 느껴지곤 했다. 한낱 원숭이 요괴가 옥황상제의 천궁을 뒤엎는다는 설정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서천길 여정 동안 틈만 나면 소환되어 괴롭힘을 당하는 산신령과 사해 용왕의 모습만 보더라도 이 소설에서 도교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삼청관 도사 에피소드에서는 이것이 일종의 확신으로 이어졌다. 세 도사의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들은 각각 호랑이, 사슴, 양 요괴가 둔갑한 것인데 기우제를 빌미로 스무 해 동안이나 차지국을 손바닥 주무르듯 하고 있다. 이곳에서 지내던 승려들은 비를 내리게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노예로 전락한다. 손오공은 도사들과 세 차례의 기우제 내기를 벌이는데 세 도사의 최후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호력대선은 목이 잘리고 녹력대선은 오장육부를 쏟고 양력대선은 펄펄 끓는 기름에서 녹아 사라진다. 이전에 등장하던 요괴들이 대개 관음보살의 도움으로 적당히 수습되거나 또는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며 심판을 받는 게 전부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세 요괴에게만은 오승은이 아주 비참한 결말을 선사한 셈. 


이뿐만 아니다. 최후를 맞이하기 전 이들은 손오공, 저오능(저팔계), 사오정 세 형제의 소변까지 성수(聖水)로 알고 받아 마시기까지 한다. 이쯤 되면 서유기에 등장하는 악당들을 통틀어도 가장 푸대접이 아닌가 싶다. 기우제부터가 도교식 제사가 아니던가? 사실 진원대선이 등장할 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아주 작정하고 도교를 조롱하는 모양새다. 시대가 변하면 이전의 문화는 대개 낡은 것으로 취급되곤 한다. 특히 종교는 발전한 기술력과 비교되어 배척되는 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어쩌면 서유기는 도교에서 불교로 옮겨가는 당시의 사회상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지 소설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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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더블린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216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강훈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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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배계급이 겪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동시에 제국주의의 악행을 고발하는 것만이 식민지 문학으로 알고 있었는데 내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소설 속 더블린의 풍경은 지금껏 읽은 식민지 문학과는 표현 양식이나 분위기나 여러모로 다르게 다가온다.  이 소설 또한 영국의 식민지 아일랜드와 그 속에서 그들이 겪는 척박한 삶을 그려내고 있긴 하다. 다만, 이러한 표면적 고통은 활자 이면에 감추어져 있으며 저자 제임스 조이스 역시 애당초 그렇게 표현할 의도가 전혀 없었던 것 같다. 대단하다. 당시 제임스 조이스는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이는 몇 세기에 걸쳐 영국의 지배 아래 놓여 있던 아일랜드의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긴 식민지 역사에서 나타나는 피지배계급의 삶의 양상은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다를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이 감상을 어떤 말로 표현하면 좋을까 했는데 단편 「작은 구름」에서 꼬마 챈들러라는 인물이 ‘반복되는 신념과 체념, 소박한 즐거움으로 정련된 우울’(p.105)라는 표현으로 정확하게 정의하고 있었다. 아일랜드의 오랜 식민지 역사와 그 중심에 있는 도시 더블린. 그들은 반복되는 신념과 체념 속에서도 소박한 즐거움을 찾아 살아가지만 그것은 결국 정련된 우울일 뿐이라는 것. 마치 제임스 조이스가 “당신이 내 글을 읽고 이렇게 느낄 줄 알고 있었어요.”라고 직접 말하는 듯한 기분. 그는 더블린 사람들의 일상을 필요 이상으로 꼼꼼하게 묘사함으로써 아일랜드가 가진 오랜 피지배적 상흔을 활자 이면으로 던져버렸다.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삶의 고통이 앞서 언급했듯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매 단편 이어지는 일순 깨달음은 그러기에 더 치명적이다. 어쩌면 이것이 그가 말했던 ‘에피퍼니’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오늘날까지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했다면 우리들의 일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한편으로는 상상해보게 된다.


수록 단편 「애러비」를 읽다 문득 내 유년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친한 여동생의 생일이었고 나에겐 생일 선물을 살 돈이 없었다. 절대 빈손으로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꼼꼼하게 뒤지던 책상 서랍에서 새 노트 한 권을 찾았다. 제본이 고급스러운 양장 노트였으면 좋으련만, 어릴 적 학교에서 쓰던 흔한 ‘공책’이었다. 200원. 노트 뒷면에 쓰인 가격이 내심 마음에 걸렸지만 이제 생일 파티에 참석할 수 있게 됐다는 설렘을 안고 집을 나섰다. 꽤 먼 거리였지만 들뜬 마음에 걷다 보니 어느새 나는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실로 많은 사람이 생일상에 둘러앉아 있던 기억. 모두 비밀히 준비했을 선물들이 예쁜 포장지에 싸여 저마다 앉은 자리 뒤편에 놓여 있었다. 불안했다. 케이크에 촛불이 켜지고 축하곡이 한 소절 끝날 때까지도 내 머릿속에는 온통 다가올 선물 증정식 생각뿐이었다. 저녁 시간 창 밖이 어두워졌다. 생일상 아래, 아무도 관심 없는 그 어두운 공간에, 가지고 왔던 공책을 두고 나왔다. 겨울이었던 것 같다. 집에 가는 길이 유난히 멀고 차가운 바람에 입고 나온 코트 소매가 펄럭대던 기억이 난다. 걷는 내내 생일상 아래 두고 온 공책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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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서유기 4 대산세계문학총서 24
오승은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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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 홍호로(紫金紅葫蘆)와 양지옥 정병(羊脂玉淨甁)으로 유명한 금각대왕, 은각대왕 형제 그리고 말미에 잠깐 등장하는 우마왕과 나찰녀의 자식 홍해아 등. 슬슬 이름난 악당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대개는 3편에서 인삼과를 먹은 삼장을 잡아먹기 위해 일행을 공격하는 요괴(삼장법사를 잡아먹으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소문이 요괴들 사이에 돈다)다. 재미있었던 부분은 이들이 관세음보살의 설계(?)라는 설정. 삼장 일행의 여정이 너무 쉬운 것(?)을 염려한 관세음보살이 일테면 난이도 조절을 한 셈. 3편에서 느꼈던 게임 개발자(관세음보살)와 게이머(삼장 일행)의 관계가 자꾸만 떠올라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편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손오공이 별명을 바꿔가며 금각, 은각 형제를 속여먹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본래 별명 ‘손행자’를 행자손이니, 자행손이니 순서만 바꿔 삼 형제 행세를 하는데 금각과 은각은 이걸 또 곧이곧대로 믿어 버리는 장면에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금각, 은각 에피소드의 전반적 분위기가 코믹 그 자체다. 손오공이 두 형제의 졸개를 속여 보배를 바꿔치기 하는 장면 역시 그렇다. 마치 한 편의 콩트를 보는 느낌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두 형제는 원래 태상노군의 금로와 은로를 맡아 관리하던 동자들이었던 것. 꼬맹이들이 일으킨 소동답게 순박한 면이 있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안타깝게도 금각, 은각 역시 관세음보살의 설계임이 드러난다. 그런데 이를 한탄하는 손오공의 모습마저도 참 재밌다.




원, 보살님도 너무하시지! 이 손오공을 풀어주실 때만 하더라도, 일심전력으로 당나라 스님을 안전하게 모시고 서천 땅으로 가서 경을 얻어오라고 하시며, ‘길이 험난하여 나아가기 어렵더라도 걱정하지 말아라. 위급한 지경에 처하게 되거든 내가 친히 가서 구해주겠다’ 하시더니, 이제 와서 도리어 요괴 마귀들을 시켜 우리 갈 길을 가로막고 이렇게 훼방을 놓을 수 있단 말이오? 이야말로 언어도단이고말고! 그러니 보살님도 어지간히 사나운 팔자를 타고나셔서 평생토록 남편감을 못 만나셨지 뭔가. 


p.290



사족 하나만 붙이자면 몇 편인지 가물가물한데 변신술을 쓰는 손오공에 대한 묘사가 ‘변검’과 매우 흡사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번 편에서도 역시 그 변검을 묘사한 듯한 ‘손바닥이 문지르고 지나간 자리에는 손행자의 본래 모습이 여실하게 드러났다.’(p.57) 같은 구절이 등장하길래 신기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변검술은 19세기에 와서야 등장한 중국의 가면극이란다. 오승은이 서유기를 쓴 시기가 16세기인데 어째서 소설 속에는 변검술처럼 보이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일까? 역자 임홍빈 씨의 자의가 들어간 해석일까? 아니면 그저 신뢰성 떨어지는 인터넷 정보일 뿐일까? 누가 속 시원히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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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천국에서
김사과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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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나의 재능을 어디에 쓸 것인가 고민하세요. 그 꿈을 좇다 보면 돈을 버는 거지, 돈 벌어서 어디에 쓰겠다, 그건 아니에요.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입고 살 때 얼굴에서도 가장 예쁜 빛이 나요. 얼마 전에 만난 젊은이에게 꿈을 물었더니 ‘7급 공무원’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정신 차리라”고 한 대 때렸어요. 7급 공무원은 네가 뭔가를 하고 싶은 과정이 될 순 있어도 그 자체가 어떻게 꿈이 될 수 있느냐고요.


_한비야, 인터뷰 「반장 하면 ‘반기문’ 되기 유리하냐고요?」 중에서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판타지’ 소설 작가다운 발언이다. 한비야, 그녀야말로 자신의 꿈을 팔아 돈을 번 장본인이 아니던가. 하지만 한국의 모든 젊은이가 그녀처럼 판타지 소설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늘의 한국은 그녀의 말마따나 꿈을 좇다 보면 돈을 벌게 해주는 그런 곳이 아니다. 그보다 돈을 벌어서 내 입에 풀칠이라도 하는 것이 시급한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꿈은 그 이후에나 꿔볼 수 있는 사치와 같다. 그녀에겐 7급 공무원은 그저 과정일 뿐이겠지만 누군가는 일단 사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벌이를 제공하는 7급 공무원은 엄연한 꿈이다.


『천국에서』의 케이는 한비야와 같은 어른들이 만든 ‘천국’의 대표적인 희생양이다. 케이는 먼저 뉴욕에서 그 천국을 맛본다. 꿈을 좇는 사람들이 건설한 화려한 도시 뉴욕 말이다. 그곳에서 또래의 친구들이 자유롭게 살아간다. 이어 서울로 돌아온 케이는 어떤 무질서를 느낀다. 뉴욕과 같은 천국이 되고는 싶지만 헬조선으로 대변되는 현실 속에서 서울은 그저 최대한 뉴욕처럼 보이고 싶은 도시일 뿐. 그래서 케이는 진짜 꿈을 좇는 친구들을 찾아 홍대로 간다. 뉴욕만큼은 아니지만 그들은 적어도 꿈과 자유를 좇지 않던가.


그러던 케이의 생활은 초등학교 동창 지원을 만나면서 급격히 바뀐다. 지원의 생활은 케이가 경멸하던 삶의 전형이다. 꿈 따위는 포기한지 오래. 인천의 작은 공단에서 힘든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삶. 지원과 그 가족들의 모습은 케이가 뉴욕과 홍대에서 느낀 천국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곳에서 케이는 천국에서 느낄 수 없었던 ‘진짜’를 경험한다. 비록 비루한 삶이지만 최소한 그들은 오늘날 꿈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케이는 지원을 떠날 수 없다.


아마도 케이는 그제야 자신이 그렇게 원하던 천국의 실체를 깨달았을 것이다. 뉴욕, ‘꿈을 좇아’ 남의 땅을 찾아와 원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갈아 만든 도시. 그리고 서울, ‘꿈을 좇아’ 이전의 낡은 것을 모두 무너뜨리고 건설한 도시. 두 곳은 각각 그 나라를 대표하는 천국이다.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 여겨지는 곳. 이곳에서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보이지 않는 그곳에 진짜 삶이 있다. 케이에게 사는 대로 생각하는 지원은 ‘꿈’이 아니라 ‘진짜’다.




모든 게 망가졌는데, 왜 아무것도 무너져내리지 않아? 왜 다 무너져내렸는데 아무것도 끝장나지 않지? 왜 끝장이 났는데,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는 거냐고? 분명히 뭔가 잘못된 거야.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거라고. 그런데 여기가 천국이래.


p.446



꿈을 좇는 삶,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삶이 최고의 가치인 한비야에게 7급 공무원이 꿈인 젊은이는 ‘맞아야 할’ 대상이다. 사는 대로 생각했을 뿐인 젊은이는 꿈을 좇지 않았다는 이유로 ‘맞았다’. 똑같은 이유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침략자들에게 학살당했고, 서울의 어느 세입자는 오늘도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모두들 이곳을 천국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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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4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은 천국이라는 환상을 좇을 것이냐, 자신이 실현할 수 있는 삶에 만족할 것이냐겠죠. *^^

5DOKU 2016-02-14 05:10   좋아요 0 | URL
꿈을 좇지 않으면 루저 취급하는 게 문제인 듯합니다. 누군가는 그저 현실에 안주하고 살 수도 있는데 말이죠.
 
민감한 진실
존 르 카레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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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이후 마치 암세포처럼 대한민국 사회를 뒤덮은 존재가 있다. 지난 3년간 한국 사회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세 글자, 국.정.원. 대체 이들이 관여되지 않은 사안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가운데 지난여름 의문의 사건 하나가 세간을 혼란에 빠트렸다. 바로 국정원 직원 자살 사건이다. 공식 발표된 정보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바보가 아닌 이상 도무지 믿어 넘기기 어려운 그 일은 언제나 그랬듯 온갖 가십성 음모론들만 남긴 채 냄비처럼 식어버렸다. 물론 나 또한 그 냄비 중 하나였고. 그리고 얼마 전 이 소설을 읽다 문득 잊혀졌던 그 기억이 되살아났다. 정부의 기밀 공작, 의문의 자살, 서둘러 화장된 시신. 이것은 비단 소설 속 이야기인가?


르 카레가 SIS(영국 정보국 비밀정보부) 출신 작가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똑같은 SIS 출신인 이언 플레밍의 소설과는 다르게 그의 작품에서 그려지는 요원들은 대개 평범하며 추레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나는 이쪽이 좀 더 진실에 가깝다 본다. 소설 속 인물 키트 프로빈은 우리가 욕하던, 한국으로 치자면 국정원에 해당하는 부류이자 커리어 통틀어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쓸쓸한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 중년 남성이다. 그런 그에게 퍼거스 퀸이라는 신임 외부무 차관의 은밀한 제의가 들어온다. 영국령의 작은 섬 지브롤터에서 ‘야생동물작전’으로 명명된 반테러 소탕 작전이 곧 벌어질 예정이고 그는 여기서 차관의 눈과 귀의 역할만 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프로빈은 거진 강제로 이 작전에 투입되지만 긴박한 상황 속에서 난데없는 작전 성공 소식만을 접한 채 강제 귀환한다. 뒤이어 쫓기듯 치러진 정부의 기사 작위 수여와 이어진 달콤한 은퇴 생활. 그의 머릿속에서 의문의 ‘야생동물작전’이 서서히 희미해져 갈 때쯤 당시 작전에 함께 투입되었던 동료 ‘젭’이 찾아오고 그날의 진실이 드러난다.




자네가 무슨 정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몰라도―망상이든, 진술이든, 전자장비든, 말하지 마―자네가 파멸하게 전에 파기해. 어리석은 계획들은 화이트홀 구석구석에서 매일 같이 오가다가 폐기돼. 부디, 자네의 미래를 위해서, 이것 역시 그중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여.


p.150



이번 작품을 읽고 나는 한국 국정원에 대한 막연한 불신과 적대감을 철회했다. 연민은 아니다. 엄밀히 말해 무조건적인 비난보다는 이제는 조금 더 냉정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뜻이다. 사실 여하를 막론하고 눈살부터 찌푸리게 만드는 그들을 말이다. 사실 국정원은 연민의 대상이 아니다. 이는 엄연히 그들이 자초한 이미지일 터. 하지만 지난여름의 사건과 이번 독서 경험은 어쩌면 내가 모르는 ‘민감한 진실’이 있을지도 모르며 국정원 그들 또한 소설 속 젭과 같이 정부에게 이용되고 버려질 수 있는 한낱 소모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불러왔다. 특히 이 소설은 다른 작가도 아닌 바로 그들과 같은 길을 걸어온 존 르 카레가 쓴 이야기이기에 호소력이 더욱 짙다. 


르 카레 소설 속 인물들의 특징은 ‘무모한’ 도전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더불어 그 무모한 도전에 화답이라도 하듯 르 카레는 자신이 창조한 그들에게 기꺼이 실패를 선물한다. 혹자는 의미 없는 작업이라 비난할 것이다. 현실감을 살리는 건 좋지만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실패를 주목한다. 만약 그들의 도전이 성공으로 끝난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그것은 진실을 가리는 거짓된 작업이다. 포장된 진실. 다만, 르 카레는 몇 백 페이지에 걸친 이들의 실패 역사가 사람들이 노상 미디어로만 접한, 선별되고 잘린 결말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숭고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의 소설은 그런 실패의 자명함에도 굴하지 않는 소수에 대한 찬사와 같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수많은 실패에 하나씩 이름을 붙여주는 작업. 만일 세상 사람 모두가 입을 모아 비난하는 부류의 인간을 어느 개별자의 유일한 삶으로 조명하는 것이 문학의 사명이라면 『민감한 진실』은 그 사명에 대한 가장 명확한 응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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