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마지막 밤 민음사 모던 클래식 33
로랑 고데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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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잡한 세상에 한 줌 빛을 뿌렸던 유명(有名) 인사들이 2016년 병신년(丙申年)이 밝기가 무섭게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데이빗 보위, 미셸 트루니에, 그리고 신영복.  다시 한 번 그들의 명복을 빈다.


사자(死者)는 말이 없고 우리는 죽음 이후의 세상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먼저 간 이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일뿐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모든 이가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특히 고종석. 그에게 사자란 그저 명복을 빌어주면 그만인 망자(亡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일까?




“명복을 빕니다. 또 한번 경쟁적 추모의 물결이 일겠구나. 나는 (신영복)선생을 20년 동안 가둬놓은 장군들에게 깊은 분노를 느끼고, 그 긴 옥살이를 견뎌낸 선생에게 경외감을 느끼지만, 선생의 책에서 배운 바는 거의 없다.”

_고종석, 트위터


“며칠간 꽃가게가 대목이었겠다.”

_고종석, 트위터(파리 테러 희생자들의 꽃다발 사진을 올리며)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함에 무슨 기준이 있겠으며 모두가 사자의 명복을 빌 이유도 없을 터. 하지만 사자에게 던지는 고종석의 저 유난한 표현 방식에는 어떤 졸렬함이 묻어 있다. 


해서 나는 고종석에게 로랑 고데의 책 『세상의 마지막 밤』을 추천한다. 이 책은 죽은 아들을 다시 한 번만이라도 보기 위해 지옥문을 넘어간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다. 사후 세계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책이 묘사하는 지옥과 그곳 넋의 모습에서 고종석이 보고 느낄 만한 무엇이 있다고는 생각한다.




저 망령은 두 뺨을 눈물로 흠뻑 적신 채 웃고 있다. 조금 전 산 자 중 한 사람이 자기 생각을 떠올렸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녀가 단 한 번도 그만 한 애정으로 자신을 떠올릴 거라고 생각조차 해 본적 없는 사람이었다. 저길 봐라. 다른 망령들은 울다가 제 머리칼을 잡아 뜯는다. 자신들에 대한 기억이 사람들 사이에서 오래 지속될 거라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반대로 그 누구도 더 이상 자신들을 떠올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하는 것이지. 가까운 이들도, 심지어 부모들도. 저들은 피를 토하며 퇴색한다. 완전히 투명한 존재가 될 때까지 점점 더 흐릿해지다가 무를 향해 사라진다.

p.227



로랑 고데는 우리가 알고 있던 지옥의 모습을 다르게 묘사한다. 그에게 지옥이란 그저 고통 받는 공간이 아니라 이승의 모든 것에 감응(感應)하며 버텨내는 곳이다. 이것은 일종의 형벌이 될 수도, 축복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문학에 어떤 기능이 있다고 한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기 위해 기꺼이 그 세계를 창조하고 사유하는 일 말이다. 그곳을 믿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어쨌든 우리 인간은 죽을 때까지 인두겁을 쓰고 살 수밖에 없으니 최소한 그 몫은 하자는 것, 바로 '나'를 위해서다.


나를 위해서, 이제는 세상에 없는 존재들에 대해 입을 함부로 놀리는 것이 아니라, 없는 세상까지 만들어가며 그곳을 느끼고 사유하는 일. 로랑 고데는 그것만이 살아 있는 사람이 해야 할 최소한의 노력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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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0 09: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0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eBook]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리사 크론 지음, 문지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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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과 ‘이야기’를 조합시켰다는 점에서 석영중 작가의 『뇌를 훔친 소설가』가 떠올랐다. 이런 저작은 매번 나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단순하게 추론이나 사례만으로 효과를 주장하는 것보다 그것이 그저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노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이제 독자들은 단순한 ‘사례 모음집’에 만족하지 않는다. 과거의 거장들, 그들의 작품 일부분을 짜깁기해서 ‘~때문에 이 방법은 최고야!’라고 말하는 책들은 이제 진부하다. 오늘날 독자들은 그보다 정확하고 확실한 논증을 원한다.


물론 저자 리사 크론이 신경과학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지라 이 책에 포함된 다양한 과학적 접근은 본론에 올려진 고명 정도라는 게 조금은 아쉽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토록 친절한 시나리오 작법서가 흔치 않다는 점이다. 최대한 논리적으로 이론을 설명하면서도 친절하기까지 하니 스토리 이론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속는 셈 치고 이 책을 통독해보길 권한다.


시드 필드를 필두로 마이클 허그, 린다 시거, 크리스토퍼 보글러, 로버트 맥기, 필립스 & 헌 틀리, 블레이크 스네이더, 존 트루비까지 헐리웃 시나리오 공학, 그리고 스토리 이론을 공부하는 독자라면 무작정 어려운 이론서를 접하기 전 리사 크론의 이 책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로 기본 틀을 잡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다. 입문서로 추천할 만한 책이 생겨 기분이 좋다.




‘잘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이야기 쓰는 법’을 배우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다. 잘 쓰는 것은 두 번째 문제다. 독자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하지 않는다면, 잘 썼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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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서머셋 몸 단편선 - 사르비아총서 608 범우 사르비아 총서 608
서머셋 모옴 지음, 이호성 옮김 / 범우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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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온 지 15년도 넘은 책이라 구성이나 번역이 허술하지 않을까 했는데 기우였다. 특히 번역이 기대 이상으로 깔끔했다. 수록작이 대체로 통속적이긴 한데 문장에 온갖 분칠을 하느라 작가 스스로 결국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길을 잃은 채 출간되는 쓰레기들보다는 백배 천배 낫다. 무엇보다 재밌다!




서머셋 모옴은 우리가 선망해 마지않는, 이른바 절제되고 금욕적인 인간군상이란 전부 쓰잘데기 없음을 선언하며 그러한 가치관에 ‘카 아악 퉤!’ 하고 침을 뱉을 줄 아는 작가였다. 일테면 그는 삶의 가치를 유예한 채 오로지 '노오력'이 최고라 믿는 개미보다는 허구한 날 방구석에 처박혀 기타줄이나 퉁기며 ‘노오래’를 부르다 죽더라도 ‘지금 여기’에 살 줄 아는 ‘베짱이가 짱이야!’라고 외칠 수 있는 넘나 훌륭한 작가였던 것.


그는 묻는다. 금욕과 절제된 삶이란 것이 대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냐고. 방탕과 사치를 일삼고(「약속」) 심지어 충동에 못 이겨 살인을 저지르더라도(「편지」) 지금 이 순간 내 감정, 내 선택에 충실한 자와 비교해 종교와 제도, 타인의 평판과 명예에 묶여 사는 이(「비」, 「최후의 심판」)가 진정 살고 있기나 한 것인지를 말이다.


작품들이 주는 메시지의 공통점은 '지금'을 살아가라는 것이다. 삶의 의미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지 과거나 미래, 종교와 명예 따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평생을 금욕으로 일관하며 지루한 삶을 연명하느니 방탕한 삶을 살았더라도 짧은 생 자신에게 정직했다면 그로써 족하다는 것이다. 과연. 무릎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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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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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라는 책이 출간되었을 무렵, 이 제목은 정희진이니까 도리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서평을 그리 많이 읽어 보진 못했으나 내가 아는 한 정희진처럼 책을 읽는 사람은 국내에 '없다'. 서평들 각 머리말에 표기된 책 제목을 가리고 읽는다면 어떤 책을 읽고 쓴 글인지 아무도 모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본문과는 매우 동떨어진 감상의 나열. 정희진이 누군지 잘 모르는 독자가 이 책을 펼쳐 들었다면 아마도 매우 당황했으리라. 그녀의 텍스트를 처음 맞닥뜨렸을 당시 나 또한 그랬으니까.


'어려운 글'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첫째, 시답잖은 이야기를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하려다 정작 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맥락을 놓쳐 방황하는 글. 둘째, 일상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혹은 애써 외면했던 이들의 언어로 구성된 익숙하지 않은 글. 정희진의 언어는 정확히 후자에 닿아 있다. 사람들이 '익숙'하고 '보편타당' 하다 여기는 글을 그녀가 병적으로 기피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런 언어들이 대개 주류를 위해 복무하기 때문일 테다. 읽을 때 어떤 이물감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주류 권력과 기득권의 관점, 통념, 규범의 언어이며 어떠한 의미도 만들어내지 못함은 물론, 부조리한 세상을 바꿀 수도 없다는 사실을 그녀의 텍스트를 통해 깨달았다.


해서, <정희진처럼 읽기>는 '다르게 사유해서 의미를 만드는 방법'이다. 이 익숙하지 않은 감상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그래서 자신의 입장이 매우 확고한 사람만이 가지는 일종의 특권인 셈. 그녀의 독후감이 독보적인 이유다. 정념의 과잉, 단절된 문장들. 퍽 좋지 않은 눈 넘김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특히 '다른 의견'을 지독히도 꺼리는 한국인이라면 건방져 보이기까지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단단한 뼈가 도사리고 뜨거운 근육이 꿈틀댄다. 허투루 읽을 수 없는 다양한 관점과 주장이 페이지 곳곳에 녹아내린다. 이러한 언어로 자기 사유를 공유하는 이가 한국에 또 있을까? 그녀의 목소리는 표독스럽지만 내가 사는 사회에 다른 모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불편하게(눈부시게) 비춰주는 창과도 같다.


책을 읽은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습득(習得)이고, 하나는 지도 그리기(mapping)이다. 전자는 말 그대로 책의 내용을 익히고 내용을 이해해서 필자의 주장을 취하는(take) 것이다. 별로 효율적이지 않다. 반면 후자는 책 내용을 익히는 데 초점이 있기보다는 읽고 있는 내용을 기존의 자기 지식에 배치(trans/form 혹은 re/make)하는 것이다. 습득은 객관적, 일방적, 수동적 작업인 반면에 배치는 주관적, 상호적, 갈등적이다. -p.36-


이 책은 한겨레 신문사 웹 사이트에서 '정희진의 어떤 메모'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칼럼을 묶은 서평집이다. 이미 읽은 글도 많았지만, 다시 읽어도 또다시 읽고 싶은 그녀만의 주장을 추려냈으므로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주류의 시각과 기득권(남성)의 입장을 여전히 벗지 못한 나에게 그녀의 텍스트는, 읽었던 구절을 다시 읽어도 늘 처음 읽는 듯한 신선함과 익숙하지 않은 어떠한 충격으로 아픈 성찰을 요구한다. 이 불편과 아픔은 외면할 대상이 아니라, 감수해야 할 대상이라고 적었다가 다시 '호응해야 할 대상'이라고 고쳐 써본다. 나와 함께 살아가는 다른 누군가를 잊지 않기 위해서, 나는 정희진이라는 안경을 써야만 한다. 아직 나는 그녀만큼 사유할 수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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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7-03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류를 위해 복무하는 언어,라는 글귀가 쏙 들어옵니다. 다르게 생각하여 읽기! 잘 읽었습니다.

5DOKU 2015-07-03 12:34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26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잘 읽었습니다.. 저는 아직 이 책을 안 읽었지만 읽도록 하겠습돠..

5DOKU 2015-07-26 09:15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책을 통해 생소한 (다른) 책들을 많이 추천 받았는데 곰곰님께서는 아마도 익숙한 책이 많을 듯 싶습니다.
 
리틀 벳 - 세상을 바꾼 1천 번의 작은 실험
피터 심스 지음, 안진환 옮김 / 에코의서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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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일종의 미로와 같아서 우리는 그곳에 들어서면 한치 앞을 구분하지 못한다. 운이 좋은 사람은 어쩌다 뚫린 길을 통해 가던 길을 수월히 가겠지만 역시 운이 좋을 때만 해당하는 경우다. 결국 우리에게는 뚫린 길을 스스로 찾아 걸어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가보지 않은 수많은 길 가운데 뚫린 길을 예측하기 위해 고민하지 말고 어떤 길이든 일단 들어가보자. 만약 그곳이 막다른 길이라면 우리는 하나의 문제를 해결한 셈이다. 나머지 길들 중 뚫린 길이 나올 확률은 그만큼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리틀 벳은 실패를 권장하는 이상한 책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그 이상한 이야기에 솔깃하게 된다. 저자는 실패는 예측의 대상이 아니라 빠르게 경험하고 삶에서 제거할 대상이라고 말한다. 물론 실패는 우리에게 큰 타격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리틀 벳은 그 해답으로 리틀 베팅(작은 실험)을 통해 우리 앞에 놓인 문제와 과업의 실패를 미리 겪어보는 방법을 강조하는 책이다. 실패에 대한 견본은 부담을 줄이는 좋은 역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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