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박람강기 프로젝트 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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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문 즉, 편지 형식의 글만이 주는 이점이 있다. 첫째, 대상이 명확하다는 것. 이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불특정다수를 향해 쓰인 글 특유의 보편타당함이나 모호함이 없다는 뜻이다. 둘째,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함을 지녔다는 것. 다시 말해 교정이나 편집, 검열 등을 거치지 않은 일종의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때문에 편지에는 쓴 사람의 감정과 관점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는 그런 편지를 하나로 엮은 책이다. 중요한 건 누구의 편지냐는 것인데, 이 책은 무려 하드보일드의 전범, 버버리 코트에 담배 한 개비를 꼬나문 차가운 도시 남자의 전형, 밀실에 갇힌 추리 장르를 건물 바깥으로 끌어낸 인물. 다름 아닌 레이먼드 챈들러의 편지라는 사실.


레이먼드 챈들러라는 이름은 솔직히 말하자면 단지 무라카미 하루키를 위시한 몇몇 익숙한 작가의 찬사로서만 접해본 게 다였다. 그는 분명 한 시대를 풍미한 것도 모자라 하나의 장르를 정립한 인물임에도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덜 알려진 감이 있다. 그런데 그에게 큰 영향을 받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떤가. 지금의 한국 문학이 그의 영향력에서 자유롭다고 장담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여, 궁금했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대체 어떤 작가일까. 될 수 있으면 이미 출간된 소설로 접하기보다는 창작인으로서의 챈들러, 인간 챈들러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 서간문이라는 형식은 그 조건을 충족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이 작가, 쿨하다...!” 책을 덮은 후 느낀 감상. 이력 따윈 중요하지 않다느니 독자들의 의견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느니 챈들러가 동료 작가와 편집자 그리고 특정 독자에게 보낸 이 예순여덟 편의 편지는 이렇듯 하나같이 ‘쿨’하다. 이런 걸 보면 차도남 필립 말로가 괜히 탄생한 것이 아니구나 싶기도 하고 말이다. 편지로 그는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기도 하고 거침없이 화를 내기도 하며 또 언제그랬냐는 듯 자세를 고쳐 앉아 나긋나긋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 쓴다는 것, 다시 말해 창작에 대한 챈들러의 관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쿨한 문장으로 짜인 창작론. 이론서의 진부함도 없고 지루하지 않아 좋다.




글쓰기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스타일이고, 스타일은 작가가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입니다. 스타일에 대한 투자는, 성과는 느리고, 에이전트의 비웃음과 출판사의 오해를 살 겁니다. 그러다 서서히 당신이 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겠죠. 글을 쓰면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작가는 항상 성공할 거라는.


p.35



특히 ‘스타일’과 관련된 그의 충고들은 가슴에 새겨둘 생각이다. 자신의 작품을 표절한 작가에게 그는 도리어 응원의 편지를 보낸다. 다만, ‘어느 지점까지는 연료를 좀 빌려 쓰고 가더라도, 언젠가 자기 속의 걸 태워서 스스로 탱크를 몰아야 하는 날이 올’(p.47) 거라며, 모방으로 시작한 창작도 좋지만 결국은 ‘스타일’이 없는 작가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나의 장르를 정립한 인물의 충고답다. 또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에는 글쓰기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p.56) 할 각오로 부단히 써야 한다는 사실도 빼놓지 않는다.


모방에서 자유로운 작가는 없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챈들러 역시 누군가의 연료를 빌려 쓰며 달려온 작가일 터. 하지만 위대한 작가들은 결국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선 안 된다는 사실. 이것이 챈들러가 수십 편의 편지로 말하고자 했던 단 하나의 진리가 아니었을지. 그는 자신의 작가 인생을 통해 그것을 증명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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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1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글을 잘 쓰네요.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네요.
부럽습니다. *^^*

5DOKU 2016-02-12 00:29   좋아요 0 | URL
과찬이십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ㅠ_ㅠ

김연화 2016-02-12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작가세요jQuery18309043138869129239_1455229148914? 평론가만큼 쓰시는듯

5DOKU 2016-02-12 14:52   좋아요 0 | URL
못난 글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ㅜ

김연화 2016-02-12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작가세요jQuery18309043138869129239_1455229148914? 평론가만큼 쓰시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