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4장

‘개혁‘은 11세기 송의 정치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핵심어이다. - P103

개혁파 사이의 투쟁은 북송 말까지 계속되었으나, 왕안석의 뒤를 따른다고 선언한 자들도 왕안석만큼 넓은 식견과 수양을 갖지 못했다.
1127 년 개봉과 북송이 붕괴된 이후, 희생양을 찾던 남송의 학자들은왕안석을 실패한 개혁을 주도한 단독 인물로 지목했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 후의 사이비 개혁가들이 보인 떳떳치 못한 행동들까지 왕안석과 연관시키는 오류를 범했다는 것이다. - P123

휘종은 선친 신종과 형 철종의 뒤를 이어 철저한 개혁 정책을 밀어붙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휘종은 채경蔡京(1046~1126)이나 동관(1054~1126)과 같은 용렬하고 부패한 관리와 환관에게 의사결정을 위임했으며, 이들이 이끄는 사이비 개혁당이 원한 것은 고작해야 황제를 즐겁게 해주어 자기들의 잇속을 챙기는 것이었다. - P129

화북 지역을 금에게 빼앗긴 후송 조정과 행정 부서들이 서둘러남쪽으로 떠나면서 송 왕조 역사의 두 번째 단계, 즉 1279년까지 152년간 지속되는 남송 시대가 시작되었다. 북송과 남송이라는 용어는물론 송대에는 사용되지 않은 역사학적 명칭이다. 사건을 목격한 동시대 사람들 중에는, 1127년 송 왕조의 와해로 송의 연속성이 훼손되었고 왕조의 개념으로 보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는 견해를 일부 보이기도 했으며,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한 왕조가 서한(전한)과 동한(한)으 - P138

로 나누어지는 것처럼, 송의 역사도 1127년을 기준으로 하여 양분된다고 감히 주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 P139

1005년 거란과 맺은 전연의 맹약을 그대로 따른 금과의 평화 조약은수십 년 동안 평화를 보장해줄 것이었다. 이것들을 종합해보면, 주화파의 편을 드는 것이 황제의 권력과 지위를 강화시킬 수 있는 선택이었다.
공존을 옹호하는 자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진회秦檜(1090~1155)였고 그가 악비 독살을 명령한 관리였다. 악비가 죽은 뒤 곧 진회와 금측 협상 대표인 완안종필이 평화 합의에 도달하여 1141년 12월 25일에 초안을 작성했다. 협정 조건이 송에게 가혹하고 모욕적이었지만 20년 동안은 양국 사이의 평화가 확보되었다. - P155

인구 90퍼센트를 차지하는 다수의 한족이, 요의 영토가 되기도 했지만 전통적으로는 한족 자신들의 고향인 중원에서 살고 있는, 이 다루기 힘든 나라를 어떻게 통치할지의 문제를 놓고 지배 씨족완안부는의견이 갈렸다. 중국의 관료제가 모든 등급의 행정 기능 면에서 장점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그것을 선호했다. 그러나 처음부터자신들의 정권과 독립성이 축소될 것을 두려워했던 여진의 무사장군들은 그에 반대했다. 여진 지배자들은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중국화와 중앙집권화로 가는 문을 열었다. - P158

칭기즈칸의 군사 원정은 중앙아시아 스텝을 가로지르는 오랜 무역길, 즉 이른바 실크로드 상의 부유한 도시들에 집중되었다. 이 국가들은 이전에 있던 전쟁들에 지쳐서 크게 항거하지못했으며, 초원 지대는 몽골 기병대들이 침입하기에는 중국 중남부의진흙 들판보다 수월했다. - P17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왕조의 국가기반은유교에 있습니다. (이렇게) 유교를 강화함은 어느 왕조에서도 유례가없습니다. "
‘유교국가‘라는 용어는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것 또는 유토피아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상고시대에서 차용해온 유교적 통치의상적인 구조와 혼동하면 안 된다. 오히려 이것은 "지성의 전통을 이끌어온 사상과 지배적인 행정 체제인 관료정치가 역사의 무대에서 긴밀히 결합하게 되었음을 가리킨다. 고대 경서에 뿌리를 둔 유교는 도덕, 즉인, 의, 예, 효, 충그리고 무武보다 우선하는 문의 원리와 의례등에 기초한 윤리를 제공하였다. 그것은 교양 있는 상류 계층, 즉 계층적인 구조의 사회에서 다른 모든 계층이 제공하는 봉사를 필요로 하는지식인 지도층의 행동지침으로 간주되었다. - P68

중국은 자신의 우위와 권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형제애‘라는 허구에 합의하는 것을 생각해냈다. 오래된 중국의 가족관계를 모방하여, 요 지배자가 ‘동생‘이 되어 송 지배자를 ‘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이 같은 조약이 가져올 형제 국가의 실제 결과에 대해 송 시대의 사람들은 아주 잘 알았을 것이다. - P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7월에 총 14권의 책을 읽었다. 책을 읽기에는 덥거나 추운 것도 도움이 되는지 여름과 겨울에 좀 더 읽게 되는 것 같다^^

초반에는 역사서 위주로 읽었고 막판에는 무더위가 시작된 만큼 가벼운 책들도 곁들여 가며 읽었다. 


읽은 책들은 모두 리뷰를 길게든 짧게든 올렸지만 그냥 올리기에는 민망하니 간단하게만 써 본다.




< 1984 >

원서로 읽는데다가 중간부터 드문 드문 읽고 진도가 안 나가서 4개월 정도만에 겨우 읽었다.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린 대표적인 소설 중 한 권이라고 한다(그러고 보니 집에 멋진 신세계가 있었는데 읽지를 않았네). 누군가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 문명에 의한 감시와 통제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현 시점에서도 놀라운 통찰을 안겨준다. 문제는 그 감시와 통제로 인해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다는 데 있지 않을까.


< 돌궐 유목제국사 >

구입한 지는 한참 지났는데 이제 읽을 시점이 되어서 읽게 되었다. 작가가 그동안 이 중앙아시아 연구를 해온 연구자라 그런지 믿음이 갔다. 사료가 없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추측에 기반할 수 없지만 돌궐 제국의 전사를 다룬 책이 거의 유일하고 더군다나 중국 등 한문 자료만이 아니라 투르크어에 기반한 유물과 유적 자료를 찾아 사료를 보충한 점은 인정해줄 만하다. 연구자의 남은 책들을 마저 읽어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았다.


<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 4 >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 4권은 수, 당, 오대십국, 북송 시기까지를 다룬다. 6년 전 김용 무협지인 <사조영웅전>에 기반한 역사를 본다고 보았던 것 같은데 북송 부분만 보았는지 그 부분만 흔적이 있고 앞부분은 흔적이 없다. 이것을 읽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 역시 이번에 읽으니 앞부분은 처음 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 당은 정치 체제가 자연스레 이어지는 느낌이지만 송나라는 앞선 오대십국 때문이 아니라 체제 자체가 변혁에 가깝게 바뀌었기 때문에 다른 체제였다. 


< 중국의 역사 : 송대 >

송나라 역사를 훑어 읽을 만한 책이 없을까 해서 찾아보았으나 딱히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은 살 만한 게 없었기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이 책은 작가가 1900년대 초 살았기 때문에 글이 좀 딱딱하고 옛스러운 표현이 많아 고루한 편이다. 그렇지만 내용면에서는 충실한 편이라 느꼈다. 정치, 외교, 군사, 제도,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다룬다. 나는 특히 왕안석의 개혁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다룰 줄이야 하고 놀랐다. 또한 경제, 상업 측면이 무척 자세하다 느꼈다. 송은 북송과 남송이 마치 전혀 다른 국가처럼 느껴지는 측면이 있기에 개혁의 변화의 측면에 다룬 것도 도움이 되었다. 


<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

루쉰의 아내인 주안에 대한 평전이다. 나오자마자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놓길 잘했다 싶다. 어떤 책을 읽든 작가의 작품은 시대적 배경과 개인사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루쉰의 작품을 읽기도 전에 루쉰의 자서전이나 평전이 아닌 전처의 평전을 읽는 것이 우려가 되었다. 하지만 읽고 난 뒤의 소감은 오히려 앞으로 루쉰의 작품을 읽을 때 참고할 만한 하나의 길잡이를 만났다는 생각이다. 주안은 구시대의 여성상에 맞춰 사느라 힘겨운 삶을 살아야만 했다. 루쉰의 사랑과 인정이 있었다면 견뎌낼 수 있었을테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않았다. 


< 조용한 미국인 >

조용한 미국인은 본격적인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기 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기간 동안을 배경으로 한다. 때문에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자연스레 향후 베트남의 암울한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물론 당시 사람들은 이후의 결과를 원치도 않았을 것이고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인물을 통해서 당시 베트남에 들어온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사실 이 책은 전쟁을 배경으로 한 것일 뿐 사람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느꼈다. 순진함은 무모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과 모든 것에 피해 있고 싶다고 해서 방관자로 살 수도 없다는 것 등 말이다.


< 베트남 전쟁 >

조용한 미국인을 읽고 나서 바로 이어서 읽었다. 이 책은 한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전후의 역사를 다루는데 그 때문에 베트남전사라기보다는 베트남 참전의 한국현대사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저자는 한국현대사 전공자고 베트남전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온 바가 있어 신뢰가 갔다. 연구자의 글이 딱딱하기 쉬운데 무척 쉽게 대중적으로 잘 씌어 있어서 술술 잘 읽히는 것이 장점이었다. 베트남전에 한국이 왜 참여헸고 그 이후 전개 과정은 어떠했으며 결과 이후는 어떠했는지 역사를 기술하며 한국을 둘러싼 다른 나라들과의 이해 관계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야말로 친절한 입문서다.


< 성의 변증법 >

파이어스톤이 나아간 곳은 성적 해방의 길이다. 기존의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했던 권리 동등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성적 계급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세계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생식조절에 대한 점유, 인공생식에 대한 주장은 현재로서도 놀라워 보이는데 당시로서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아동기를 없애자'는 주장은 제목만 봤을 때는 와 닿지 않았었다. 페미니즘과 아동기를 없애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동기라는 명칭이 근대의 산물이라고 한다. 중세까지만 해도 그런 구분 자체가 없었다고. 이렇게 근대에 들어서 생긴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등의 구분은 억압을 만들어내는 기제가 되었다. 여성의 급진 해방을 주장했던 파이어스톤은 정작 개인은 불행했던 것 같다. 


< 하버드 중국사 당 >

당의 전기와 후기의 변화에 집중해서 기술하여 변화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었다. 세계적인 제국으로 발돋움한 당이 외부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중앙아시아의 문화가 내부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 금융 거래, 차 문화, 불교 문화, 당시 등 경제, 문화적으로 지금도 사용하는 것들이 이 무렵 등장했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당나라 여성의 권위가 강하다고 인식되는 것은 북방의 이민족과 잦은 교류 때문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한족보다 남녀의 평등이 중요시된 북방의 문화가 이입이 되면서 무측천, 태평공주, 위황후까지 반세기 이상의 시기를 여성이 지배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1 >

1권은 장강과 황하 길을 따른 풍광을 마주하며 역사를 이야기하고 장소에 걸맞는 한시를 소개해준다. 장강 여행에 앞서 중국의 시인 '이백', '두보', '소동파'의 연고지를 찾아간 것은 독자로서도 반가웠다. 장강 여행 중 인상적이었던 두 곳만 꼽아본다면 도원과 황강의 동파적벽이었다. 황하 여행에서는 호구폭포壺口瀑布, 화산 동봉 하기정下棋亭이 인상적이었다. 화산의 화기정은 동봉에 있어 에스컬레이터나 케이블카 등이 없어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거의 수직의 절벽이라 감히 올라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탁 트인 풍경이 멋스러웠다. 무협지에 단골로 나오는 곳이라 그런지 왠지 모를 내적 친밀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2 >

중국한시기행 2권 후속편은 '강남' 지역과 '유배길' 편으로 묶여 있다. '강남' 지역 중 인상적인 곳은 항주였는데 이 곳은 소동파와 인연이 깊다. 소동파는 항주를 최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설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항주의 모습은 소동파가 있어 가능했던 것 같다. 두 번째로 꼽을 곳은 황산이다. "오악에서 돌아오면 산이 보이지 않고, 황산에서 돌아오면 오악이 보이지 않는다"의 문장을 통해서도 오악보다 황산을 꼽은 이유를 알 만하다. 유배지 중 첫 번째로 꼽은 곳은 영주다. 영주는 유종원의 유배지였고 두 번째는 혜주, 이 곳은 소동파의 많은 사연이 담겨 있는 곳이었다. 


<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 >

조선의 근대 시기 백화점은 모든 유행의 집결지이자 집합소 기능을 하는 곳이었다. 1920~1930년대 경성의 백화점에서 팔았던 각종 물건들의 유래를 통해 당시의 풍경을 엿본다. 백화점에서 팔았을 법한 물건들과 광고에 등장하는 단골 아이템들을 통해 그 당시 어떤 것이 유행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백화점의 각 층별로 목차를 설정하는 것은 좋았으나 안내를 백화점을 둘러보는 느낌으로 했다면 더 실감났을 것 같다. 막상 내용은 근대 물품 탄생의 기원과 역사를 설명해주는 것으로만 되어 있어 아쉬웠다(이런 책들은 그동안 많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토지 19 >

일본 스파이(밀정)이가 길가에서 죽음을 당했다. 문제는 이것이 정치적인 보복이 아니라 치정에 의한 살인이라는 것이 문제다. 차라리 조선 독립군에 의해서 살해를 당한 것이라면 속이 더 편했을까. 아무튼 여러 명 등을 친 배설자였으니 그의 말로는 이것이 당연한 귀결이었다. 오가타는 아들인 쇼지와 만주를 여행하면서 인실을 떠올렸다. 영광은 양현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갈등한다. 악극단의 연주자인 자신의 처지가 양현에게 가당치 않다 느꼈을까. 윤국이는 양현을 포기하고 떠났고 환국이와의 관계도 껄끄러워진 영광은 양현을 놓아야 하는 선택에 내몰렸다. 전쟁의 막바지 먹을 것은 부족하고 징용과 정신대로의 강제 연행이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 토지 20 >

막판으로 올수록 과거의 회상 장면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집중력이 좀 흩어지는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작가의 필력이 대단한 것인지 좋은 문장, 생생한 캐릭터들을 만나는 즐거움에 20권까지 잘 달릴 수 있었다. 1년여의 여정 동안 토지를 읽을 수 있어 행복했다. 고전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재독, 삼독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작가님께서 더 오래 사셔서 더 좋은 작품을 남기실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토지라는 대작을 남겨주신 것만으로 독자로서는 두고 두고 읽을 작품이 생긴 것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오 2023-08-02 17: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기 가벼운 책 어딨죠? 다 메인반찬 같은데요..?! ㅋㅋㅋㅋ 화가님께만 곁들임이었던 것이다..

거리의화가 2023-08-02 17:48   좋아요 3 | URL
앗! 가벼운 책 분명 있습니다 있고요ㅋㅋ 그나저나 메인반찬, 곁들임 표현에 빵 터지네요! 8월에는 조금 더 가벼운 책들을 찾아 읽어보도록 해볼까요???

얄라알라 2023-08-03 01:41   좋아요 2 | URL
저도 화가님의 책곳간 소개하시는 다른 포스팅에서 은오님과 비슷한 댓글을 남겼었는데 그 때도 화가님께서 매우 겸손하시게 답변하셨어요. ^^ 겸손하신 화가님!

아무리 봐도, 제겐 소프트아이스크림 같은 책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요^^

그나마 제목과 친하고 읽어본 책이 [1984]인데, 마지막 장 덮으면서 많이 무겁게 느꼈습니다. 조지 오웰이 아프지 않았을 때 썼다면 조금 더 가벼웠을까요?^^

거리의화가 2023-08-03 09:22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
<1984>는 내용이 가볍지 않죠. 지금도 직시할 만한 주제를 던져주는 책이니까요^^
저는 여행기나 테마가 있는 책들을 읽을 때 가볍다고 느끼네요. 제가 구입하는 책들은 주로 묵직한 책들이 많아서인지 가벼운 책을 가뭄에 콩나듯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달에는 여름 휴가도 껴 있으니 가벼운 책들 곁들여 읽어보도록 해야겠어요.

독서괭 2023-08-02 1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역시 화가님 읽은책 목록은 중량감이 엄청나네요. 엄지척!!

거리의화가 2023-08-03 09:23   좋아요 1 | URL
초반에는 좀 그랬네요!^^

stella.K 2023-08-02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 ebs에 김성곤 교수 나와서 강의했는데 느긋하고 한량같은 느낌이 정말 세상 좋은 사람같았습니다. 모름지기 공부란 그렇게 해야하는 것 같은데 너무 쫓기며 하죠? ㅎㅎ

거리의화가 2023-08-03 09:26   좋아요 1 | URL
ebs 출연하셨나보군요. 그쪽에서 방송하시면서 유명해지셨으니 또 초대하신 모양입니다! 복장도 개량한복 입고 나오시는데다가 푸근한 미소 덕분인지 느긋한 여유가 돋보이시죠. 저도 그렇게 공부하며 살고 싶은데 성격상 쉽지 않네요!ㅋㅋ

stella.K 2023-08-03 11:32   좋아요 1 | URL
아, 한마디로 신선같으신 분이죠. 어젠 더워서인지 생각이 안 나더라구요. ㅋ

페넬로페 2023-08-02 18: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7월에 14권도 대단한데
읽으신 첵 모두 다~~~
그 다음 말은 생략!
덥고 추울 때 책 더 안 읽는 사람,
여기 저올시다🤣🙃

거리의화가 2023-08-03 09:28   좋아요 1 | URL
요사이 더위가 좀 심하긴 하네요!
저는 더위 쫓는데 오히려 역사책들이 더 좋습니다. 문학 읽다 보면 감정이 올라와서 더 더울 때가 많아서요ㅋㅋ 페넬로페님 무더위에 건강 유의하세요^^

책읽는나무 2023-08-02 1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벼운 책은 눈을 비비고 살펴봐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14권 진짜 많이 읽으셨어요.
역시 모범생!!!!^^
8월에도 또 열심히 읽으시는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8-03 09:30   좋아요 1 | URL
이제 한 일주일여만 지나면 무더위가 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달에도 즐겁게 책을 만나봐야겠어요^^

잠자냥 2023-08-02 22: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헐… 이 여름에 돌궐 유목제국사 이런 게 읽히는 화가 님 리스펙트.

거리의화가 2023-08-03 09:31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런 역사책이 여름에 더 잘 읽힐걸요? 문학 읽다가 감정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오히려 더 덥더라구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초록비 2023-08-03 0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례지만 토지 완독하신 분 처음 봤어요! 저도 도전해보고 싶네요.

거리의화가 2023-08-03 09:32   좋아요 1 | URL
토지 완독은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한 번에 몰아서 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1년에 나눠서 읽느라 좀 더 힘들긴 했습니다. 초록비님도 한번 도전해보세요^^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3-08-04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서까지 있는데도 14권이라니 대단합니다~!! 대부분이 역시 역사책이군요 ㅋ (토지도 역사책임~!!)
7월 기록이 엄청나십니다!!

거리의화가 2023-08-05 21:01   좋아요 1 | URL
원서는 몇 달에 걸쳐 읽은 거라^^; 아무래도 더위를 쫓는 데는 역사책만한 것이 없습니다.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네요. 새파랑님 건강 잘 챙기시고 8월에 재미난 독서하시길 응원합니다^^
 
토지 20 - 5부 5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20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 1권부터 20권까지 근 1년여 기간 동안의 독서 대장정을 끝마쳤다. 뒤로 갈수록 대강 훑어 읽은 느낌이 들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뭉클함이 있었던 것을 보면 작가의 필력과 내공은 역시 대단했다 싶다.


20부는 무엇보다 조선인이면서 앞장서서 조선인들을 징용으로 끌고 가게 만든 장본인이 심판을 받아서 후련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가 없지만. 그 한 사람의 무게가 징용 인원 몇 십명 또는 몇 백명의 무게와 어찌 견줄 수 있겠는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미래이지만 사람은 당장 내 앞가림을 위해서 누구보다 잘 살고 싶어서 내 동포를 팔아넘기는 유혹에 굴복하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유혹을 이기고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것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인류는 여전히 나, 개인, 그리고 자국의 이익에 우선하여 돌아가는 모습만 보아도 이것은 역사를 넘어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강두매와 홍이는 만주에 온 영광과 한 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이상현 씨 말이야. 인생이 시궁창인 걸 모르겠어?
하는 일 없이 땀 흘려 만들어낸 곡식이나 축내고."
"나도 이선생을 곱게 보는 사람은 아니다. 자네 말대로 나 역시 프롤레타리아니까. 하지만 인간성을 철저히 부정하는 그것에는 동조 못 해! 인민은 일하고 밥 먹는 기계 아니야!"
"기계가 되어야만 미래가 열린다. 그때까지 고생을 해야 해."
"인간은 기계 부속품같이 그렇게 해체되는 게 아니야. 이 만주 벌판 눈구덕 속에서 수많은 우리 조선인들이 죽어갔지만 그들은 심정적으로 죽어갔어. 고귀한 마음으로 죽어갔단 말이야!"

강두매와 홍이는 한 바탕 설전을 벌인다. 송영광은 진심으로 싸우는 줄 알고 놀랐고 홍이는 별 일 아니라 했지만 왠지 슬퍼보였다.

"서로 견해의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강두매는 깨끗하다. 깨끗한 정열이지. 사심이 없다. 그런 면에서 친구지만 나는 그를 존경한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거부감이 있어. 획일적인 그것이 맘에 안 들어. 주의와 주장이 어떻게 다르다고 하더라도 결국 정치나 조직은 다수를 통제하는 것, 보다 이상적으로는 전부를 통제하는 것 아니겠어? 나는 정치나 조직 같은 게 생리적으로 싫어. 당장 시급한 것은 내 터는 찾아야 하고 억압하는 왜적은 물리쳐야 하고, 싫고 좋고 가릴 처지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저는 뭡니까? 돼지군요."

영광의 '돼지' 타령은 이상현과 이어진다. 머리도 몸도 굴리지 않고 그저 한탄하며 사는 삶, 본인을 비하하는 동시에 나아가 이상현도 그런 사람의 일종이라는(강두메의 주장처럼)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 시대 룸펜들을 비하하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영광은 뒤에 정석과 이상현을 만난다. 송관수의 아들인 송영광을 보면서 이상현은 그가 자신과 비슷한 동족임을 느꼈는지 동질적인 감정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송영광도 전쟁이 끝나더라도 조선으로 돌아갈 지 어떨지 결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서 이상현과 같은 방향일지 모른다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사람도 그 감정도 정리하지 않은 채 도망치듯 떠밀려 만주로 온 송영광, 그리고 몇 십년째 만주를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상현, 둘은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만큼은 공통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조병수가 지리산 절로 아들인 남현과 함께 발걸음을 했다. 길상이 그린 관음탱화를 볼 겸 스님이 된 소지감도 만날 겸 해서다. 둘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의 삶을 돌아본다.

"불구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나비같이 살았을 것입니다. 화려한 날개를 뽐내고 꿀의 단맛에 취했을 것이며 세속적인 거짓과 허무를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내 이 불구의 몸은 나를 겸손하게 했고 겉보다 속을 그리워하게 했지요. 모든 것과 더불어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는 물과 더불어 살게 되었고 그리움 슬픔 기쁨까지 그 나뭇결에 위탁한 셈이지요. 그러고 보면 내 시간이 그리 허술했다 할 수 없고..." - P96

아비인 조준구가 없었다면, 불구의 몸이 되지 않았다면 병수는 더 행복했을까. 병수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가 비록 신체적으로는 자유롭지 못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존재임을 느낄 수 있었다. 자유로운 신체를 가졌어도 그 아비는 남을 해치고 욕을 먹는 비루한 삶을 살았다면 그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 그런 망나니 같은 아비를 탓하지 않았으며 아비가 돌아갔을 때도 진심으로 울던 이가 그였다. 누구나 조병수처럼만 산다면 이 세상은 희망적일텐데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홍이는 한복이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홍석기라는 청년을 만난다. 그는 낯선 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징용 갔다가 어느 할머니의 도움으로 무사히 도망할 수 있었다고 자신의 처지를 술술 내뱉는다.

"할머니가 따라왔기 때문에 별 탈이 없었지요. 부처님한테 너가 무사하기만을 빌겠다, 지금도 생각이 나는데 그 할머니 얼굴이 바로 부처님 같았십니다."
"세상에 일본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다 있나? 하 참."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동쪽을 보고 절을 합니다. 할머니한테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장가든 지 한 달도 못 되어 잡혀간 홍석기. 징용에서 도망나온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일 것이겠지만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감행했을지, 그리고 끝내 징용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다치거나 죽어서 돌아온 이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하면 뼈아프고 숨이 가쁘다. 그런 그의 사연을 듣고 홍이는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홍이는 그 때문에 곤욕을 겪는다. 조그마한 일로도 정치, 사상범으로 몰아 잡아 가두던 시절이었으니 오죽했을까.


김두수는 만주를 떠나 서울로 아예 들어온다. 이제 나이도 들었고 더 이상 만주에서 자신이 할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천대받으며 살아온 것이 어디 나라 탓이오? 아버지 죄업 탓이지."
"반가에 태어나서 시정잡배만큼의 대접도 못 받고 능멸과 하시 속에서 살았다. 왜 그랬지? 어떤 놈은 만석 살림으로 떵떵 거릴 적에, 나라도 살인했겠다! 하고말고, 아버지 잘못인가? 이놈의 땅, 세상 때문이지."
"딱하요. 세상에 그런 억지가 어디 있소?"

김두수는 애초부터 사람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유일하게 믿는 사람이라곤 한복이 밖에 없었다. 결국 김두수는 한복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같은 부모를 두었지만 김두수(김거복)와 김한복의 삶은 어쩌면 이리도 다른지. 한 사람은 세상 탓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러지 않고 주어진 운명을 감내하고 욕 안 먹으며 살아왔다. 한복이는 형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는데 이 감정은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명희가 마음을 먹고 내 놓은 거금을 둘러싸고 운동 세력 간에 충돌과 갈등이 발생한다. 충돌의 중심에는 이범준과 몽치다. 이범준은 극렬한 사회주의자인 반면 몽치는 그런 이념과는 거리를 두었고 어찌 보면 신분제에 피해를 입었다고 할 수도 있음에도 그 세계에 부합하며 사는 측면이 있다. 이 무렵 지리산에는 이범준을 받들며 모여든 많은 청년들이 있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모두 동학의 교도라 할 수는 없지만 계급 타파에 대해서는 이론보다 심장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이 땅 식으로, 말하자면 토종, 순종이라 할 수 있는데 자네는 그것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결국은 민족주의 얘기로군요. 그것은 반통합적이며 세계혁명으로 가는 길에는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를 혼돈하지 말게."
"이 말 저 말 할 것 없고, 지금이야말로 적기입니다. 무너져 가고 있는 일본, 느슨해진 후방, 이때야말로 우리가 나설 때 아닐까요? 후방을 교란하는 유격대를 조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해외파들에게 국내에서도 체면이 서는 일이며 민심에도 크게 고무될 것입니다. 앉은뱅이 늙은이도 아니겠고 암죽 받아먹는 갓난아기도 아니겠고 이 산에 있는 사람들은 피 끓는 청년들입니다. 넘쳐나는 힘, 열정에 불타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 생광스러운 힘을 산속에 사장하려는지 도무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전력들이 범상하지 않은 여러분께서 이렇게 무기력해도 되는 겁니까? 저는 여러 번 실망했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지금 살아 있습니까? 죽어 있는 것입니까? 왜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까?" - P384~386

이범준의 말은 과격하지만 분명 이해되는 측면이 있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방향이 다른 것일 뿐인데 이러한 갈등과 충돌을 보면서 해방 후 극렬한 좌우대립의 미래가 그려지는 건 비단 나뿐이 아닐 것 같다. 물론 당시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독립이 되면 우리 나라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미래상을 떠올려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테지. 눈을 뜬 몇몇 사람들은 사회주의자들이 많았고 사회주의 안에서도 분파들이 많았다. 나는 이런 잠재적인 불안 요소를 작가님께서 미리 배치해두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끝은 났지만 뒤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이 많다. 주갑이 아저씨는 살아 계시는건지, 인실이는 어떻게 되었으며 오가타와 쇼지와는 만났는지, 윤국이와 성환이는 살아 돌아오는건지 등등... 그러나 그 많은 인물들의 소식을 다 담기란 어려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은 상상하는 묘미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독자의 기호에 맞게 그들의 미래가 어떠했을지 떠올려보는 것도 좋겠다. 어쨌든 긴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뭔가 시원하기도 한데 섭섭함도 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3-08-01 18: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권 완독하시다니 대단합니다~!
오늘부터 토지의 화가로~!!
이런 엄청난 장편을 완독하셔서 시원섭섭하실거 같아요~!!

거리의화가 2023-08-02 09:07   좋아요 1 | URL
토지의 화가ㅎㅎㅎ 새파랑님이 그동안 응원해주셔서 더 지치지 않고 잘 읽을 수 있었다고 하면 오버인가요?ㅋㅋ 작년 8월부터 읽기 시작했었더라구요. 딱 1년만에 완독의 결실을 맺을 수 있어 뜻깊습니다. 이 책은 재독, 삼독해도 좋을 책임에는 분명한 듯 싶어요. 감사합니다^^

은오 2023-08-02 1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누가 저한테 토지 읽었냐고 물어보면 아니 안읽었지만 내 친구분들 중에 토지 완독하신 분이 있어! 하고 대답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 축하드려요 화가님!! 1년의 대장정 마무리라니 크!!! 😆

잠자냥 2023-08-02 22:0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아 나도 그래야겠닼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08-03 09:34   좋아요 1 | URL
오디오북으로 들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막판에는 초반 회상 장면 나올 때 사건의 기억이 가물거릴 지경이었다는ㅠㅠ 두 분 모두 감사합니다^^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2 : 강남·유배길 편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2
김성곤 지음 / 김영사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한시기행 2권 후속편은 '강남' 지역과 '유배길' 편으로 묶여 있다. 1편에 이어 읽었더니 자연스레 흐름이 이어져서 좋았다. 오히려 1편을 묵혀두었던 게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 '강남'은 대체적으로 장강 중하류 지역의 강소성 남부, 절강성 북부, 안휘성 남부, 강서성 동부 일대를 가리킨다. 넓은 평원과 나지막한 구릉이 주를 이루는 이 지역은 장강과 전당강, 파양호와 태호와 같은 수자원이 풍족해서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했다. 남송 때 강남의 경제력이 급상승하면서 자연을 조경적 차원에서 경영할 수 있었던 까닭에 자연과 인문이 결합된 최고의 풍경이 만들어졌다(P5). 중국의 당송시기 역사를 읽고 마침 이 책을 읽으니 인문, 역사와 지리가 결합되어 활자가 눈 앞의 현실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예로부터 강남 지역은 물이 많아서 수나라 이전까지는 오히려 문제가 되었는데(범람, 질퍽한 땅) 대운하 건설을 시작하면서 관개 용수가 원활해져 농사 짓기에 좋은 땅이 된다. 게다가 남송 시기가 되면 남쪽으로 도읍이 옮겨져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다.

작가가 방문한 지역 중 인상적인 곳은 첫 번째로 항주다. 정치적 격변기에 호북성 황주에서 5년의 생활을 마치고 복권되어 항주 태수로 오게 된 소동파는 항주를 최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병원을 만들고, 상하수도 시설을 개량하고, 빈민을 구제하고 고아들을 돌보기 위한 사업에 나서는 등 여러 부문에서 탁월한 행정가의 면모를 과시했는데, 특히 그가 힘을 쏟아부었던 건 서호를 준설하는 일이었다. 서호는 오랜 세월 퇴적된 토사로 인해 수심이 얕아져서 걸핏하면 물이 범람하여 백성들에게 큰 시름을 안겨 주었다. 소동파는 조정에 특별 지원금을 청하고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서 항주의 많은 백성을 동원하여 서호를 대대적으로 준설했다. 그리고 퍼올린 엄청난 분량의 흙과 모래로 서호를 남쪽으로 가로지르는 제방을 쌓았다. 제방 중간중간 여섯 개의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어 호숫물이 서로 통하게 만들었고 길을 따라 버드나무와 복숭아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품종의 나무와 꽃을 심어서 서호를 감상하는 최고의 산책로로 만들었다(P23~24). 지금의 항주의 모습은 소동파가 있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백성들을 생각하는 관리의 마음이 절로 느껴지는데 오늘날의 관광객도 소동파에게 감사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소동파의 음식 하면 다양한 것이 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동파육이다. 동파육은 황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탄생했다. 이 요리를 만들어 먹을 때만큼은 힘든 유배 생활 중 유쾌함을 느끼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가 황주에서 지은 시 <식저육食猪肉>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동파육 레시피가 적혀 있다.

솥을 깨끗이 씻고
물은 조금만 넣고
땔감을 덮어 불꽃이 일지 않게
절로 익을 때까지 뒤적이지 말고
불 시간 충분하면 절로 맛나게 된다네
황주는 돼지고기가 좋은데
값은 흙처럼 싸다네
귀한 사람들 먹으려 들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은 요리법을 모른다네
매일 일어나 한 그릇 뚝딱
내 알아서 배부르게 먹나니 그대 상관 마시게

돼지고기 값이 흙처럼 싸다니 그만큼 돼지가 풍부하다는 것인가. 일어나자마자 뚝딱 하기에는 기름기가 많을 것 같은데 상관 말라고 하는 걸 보면 동파육에 소동파는 진심이었던 것 같다.
항주에 동파육이 유명해진 것에는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다. 서호 준설이 되자 가난한 백성들이 너도나도 값싼 돼지고기를 들고 와서 태수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람에 관저에는 돼지고기가 가득 쌓이게 되었다. 소동파는 5년 전 황주 유배 시에 개발한 동파육을 백성들에게 다 돌려보내 맛보게 했다. 동파육을 맛본 사람들은 그 맛에 환호했고 마침내 거리 음식점에는 '동파육'이 상품으로 만들어져 팔리기 시작했다(P34).

두 번째로 꼽을 곳은 황산이다. "오악에서 돌아오면 산이 보이지 않고, 황산에서 돌아오면 오악이 보이지 않는다(오악귀래불간산五嶽歸來不看山, 황산귀래불간악黃山歸來不看嶽)." 흔히 오악을 묘사할 때 웅雄, 험險, 준峻, 유幽, 수秀라는 글자를 써서 "동악 태산은 웅장하고, 서악 화산은 험하며, 중악 숭산은 높고, 북악 항산은 깊고, 남악 형산은 수려하다"라고 구분하는데, 각각 모두 '천하제일'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이런 대단한 오악도 황산 앞에서는 그 존귀한 지위를 순간 잃어버린다. 앞서 황산을 예찬한 이 유명한 구절은 본시 명나라의 유명한 여행가 서하객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유복한 관리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평생 천하 명승을 찾아 떠돌며 방대한 여행 기록을 남긴 사람이다. 황산의 최고봉은 연화봉蓮花峰이다. 중심부의 큰 봉우리를 여러 작은 봉우리들이 겹겹이 옹위하여 솟아오르는 형세인데, 한 송이 연꽃이 하늘을 향해 막 피어나는 것 같다 해서 연화봉이라 멋지게 부른 것이다(P102). 다종다양하고 수려한 봉우리와 그 봉우리마다 기이하게 자리잡은 소나무가 구름의 출몰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게 연출하여 황산의 또 다른 별칭은 '운산雲山'이다.

선계의 연뿌리를 뉘 심었는가
대지는 이곳에서 연꽃을 피웠네
곧게 솟아 하늘의 이슬을 마시고
높이 손들어 오색의 노을을 받드네
사람들 향기의 나라에서 맴도는데
길은 연꽃 송이로 난간을 세웠네
연밥은 어느 해 맺으려나
은하수 가는 뗏목으로 쓸 수 있을 것을

선근수수종 대지차개화
仙根誰手種, 大地此開花。
직음반천로 고경오색하
直飮半天露, 高擎五色霞。
인종향국전 로차옥방차
人從香國轉, 路借玉房遮。
연자하년결 창명대범사
蓮子何年結, 滄溟待泛槎。
- 청淸, 매청梅淸 <제화연화봉題畵蓮花峰>

중심 봉우리를 둘러싼 봉우리의 향연을 보고 있으면 정말 신선계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묘한 풍경이었다. 더군다나 황산에는 비래석이 있다. 장방형의 거대한 돌 하나가 우뚝 서 있는데 절벽 가까이에 자리한 평평한 바위를 기단으로 삼아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 있다. 기울어진 각도로 서 있는 품이 금세라도 자리를 박차고 날아오를 기세라 날아서 온 돌, 비래석飛來石이란 이름이 붙었다.


중국 지역의 많은 곳 중 가까우면서도 풍경이 뛰어나고 먹거리가 많은 지역인 강남은 한국 여행객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가보지를 못했다. 다 가보지는 못하더라도 소주와 항주만큼은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


유배길 편은 호남성, 광서장족자치구, 광동성, 해남도를 아우르는 중국 남부의 광대한 지역에 흩어져 있는 유배지를 대상으로 한 여정이다. 중국의 유배지는 주로 남쪽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지금도 가기에 쉽지 않은 길을 당시에 가는 길은 무척이나 어려운 여정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유배길 아닌가. 언제 돌아올 지 모를 슬픔의 길을 따라가자니 고개가 숙여졌다.

첫 번째로 꼽은 곳은 영주다. 영주는 호남성을 흐르는 주요 하천인 상강과 소수瀟水가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호남 지역을 소상瀟湘이라 이름하는데, 풍경이 빼어나고 운치가 넘쳐서 당송 이래로 그림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으니 이른바 '소상팔경瀟湘八景'이다. 소상팔경은 그림의 소재 뿐 아니라 시의 소재로도 널리 활용되었는데, 원나라 희곡 작가인 마치원이 소상팔경을 노래한 <수양곡>이라는 작품이 유명하다. 팔경 중에서 '소상야우( '소상야우'는 상강과 소수가 합류하는 영주 평도를 가리킨다)'를 노래한 작품이다.

어둑한 배 불빛
나그네 꿈도 깨어
떨어지는 빗소리에 마음 부서진다
외로운 배는 오경을 넘고 고향은 만 리 밖인데
떠나온 사람 가슴 적시는 눈물 같은 빗줄기
어등암 객몽회 일성성적인심쇄
漁燈暗, 客夢回, 一聲聲滴人心碎。
고주오경가만리 시리인기항정루
孤舟五更家萬里, 是離人幾行情淚。

고향을 그리워하는 나그네가 희미한 등불 너머로 바라보는 빗줄기는 가슴 시린 눈물이다. 유종원은 이 곳 영주에서 10년 간 유배 생활을 했다고 한다. 유종원은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세족 집안의 자제였다. 스물한 살 진사 시험에 합격한 뒤 정치혁신 운동을 주도했다가 환관과 번진의 눈 밖에 나 실패하였다. 개혁을 이끈 왕은 폐위되고 함께 이끌던 세력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유배를 가게 되었다. 예부원외랑이라는 높은 직급에서 하루 아침에 사마라는 낮은 직급으로 강등되어 갔으니 그 신세가 얼마나 한탄스러웠을까. 유종원은 영주에서 우계愚溪라는 곳을 사랑하여 시냇가 부근에 살림집을 짓고 지냈다. 우계라는 이름도 유종원이 붙인 것이라고 한다. 그윽이 흘러가는 시냇물 우계를 보며 마음이 좀 안정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우계는 비록 세상을 이롭게 할 능력은 없지만, 만물을 거울처럼 비추어 맑고 투명하고, 음악 소리처럼 높게 울리며 흐른다. 그래서 어리석은 나를 즐겁게 해주나니 그곳을 떠날 수 없게 만든다. 나는 비록 세속에 부합하지 못하나 글로써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으며 세상 만상을 다 끌어안을 수 있으니, 어느 것도 내 붓끝을 벗어날 수 없다. 내 어리석은 문사로 어리석은 시내를 노래하리니 혼연일체의 무아의 경지에서 노닐게 될 것이다.
- <우계시서> 중

우계시서를 통해 유종원은 어리석은 자신의 삶이 나아갈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유종원은 정치적으로 실패하여서 비록 이곳에 내려와 있으나 우계처럼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되겠다는 다짐이 엿보인다. 그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문장가로 이름을 날린다. 오히려 그의 글쓰기는 유배 생활로 깊어진 면이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전체 시문 540편 중에서 영주 시기에 쓴 것이 무려 317편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벼슬에 매여 있던 내 인생
행운이런가, 남만 땅 멀리 유배 왔네
한가로이 농부들과 이웃하며 살아가니
간혹 산속의 은자처럼 보인다네
새벽에 밭을 갈아 이슬 풀 뒤집고
한밤중 노를 저어 시냇가를 울리네
오고 가며 사람 하나 만날 일 없어도
길게 노래하면 초 땅 하늘이 푸르러진다네

구위잠조루 행차남이적
久爲簪組累, 幸此南夷謫。
한의농포린 우사산림객
閑依農圃隣, 偶似山林客。
효경번로초 야방향계석
曉耕翻露草, 夜榜響溪石。
내왕불봉인, 장가초천벽
來往不逢人, 長歌楚天碧。

'시냇가에 살다'라는 뜻의 <계거溪居>라는 시이다. 비록 멀리 유배를 왔으나 농부나 은자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의연함을 엿볼 수 있다.

유배길 중 두 번째로 꼽은 곳은 광동성에 있는 혜주다. 혜주는 주강의 삼대 지류 중 하나인 동강이 흘러가는 곳으로 현재 중국 경제를 견인하는 경제 중심 도시 중 하나다. 당송 시기에도 광동성의 중심 지역이었고 거대한 물류의 집산지였다고 한다. 혜주는 아열대 지역이라 사계절 초목이 있고 맛좋은 과일이 풍부한 곳이다.

혜주와 인연을 맺은 이는 소동파다. 혜주는 특별히 인상적인 장소가 있다기보다는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더 재미 있었다. 소동파는 '여지'라는 과일을 무척 좋아했다는 것과 그의 여인 3명에 관한 이야기였다.

소동파가 여지에 관해 남긴 유명한 시가 있는데 <식여지食荔支>다.

나부산 아래는 사계절 봄날
노귤과 양매가 차례로 새로 익어가네
매일 여지 삼백 알을 먹을 수 있다면
영원히 영남 사람 되는 것도 사양치 않으리라

나부산하사시춘, 노귤양매차제신
羅浮山下四時春, 盧橘楊梅次第新。
일담려지삼백과, 불사장작령남인
日啖荔支三百顆, 不辭長作嶺南人。

여지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매일 300알을 먹을 수 있다면 영남 사람이 되겠다는 소리가 나올까. 대단한 사랑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하루에 300알을 먹으면 당수치가 너무 높아지지는 않을까나.

이제부터는 소동파에 대한 여인의 이야기다.
소동파는 19세 되던 해 사천성 미산 남쪽 청신에 살고 있는 왕씨 집안의 16세의 왕불王弗과 결혼한다. 왕불은 아름답고 총명한데다 시서에도 능해서 천제 시인인 동파도 그녀의 능력에 감탄하곤 했다.
왕불은 신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어서, 매사 넘치는 자신감으로 속말을 가리지 않고 내뱉는 동파를 늘 걱정하며 시시로 적당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손님들이 동파를 찾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왕불은 병풍 뒤에서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고 손님이 떠난 후에 적절한 평을 내려 동파에게 조언하곤 했다. 지혜롭고 신중한 왕불의 내조 덕에 동파는 개봉에서 직사관이라는 내직을 맡게 되었다. 동파의 명성이 이제 뻗어나가는 시기 왕불은 돌연 병을 얻고 만다. 결혼한 지 11년, 스물일곱 살의 젊은 나이, 일곱 살 어린 아들을 남기고 갔으니 동파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동파는 왕불을 고향에 묻고 10년이 지나 이런 사를 지었다.

십 년 세월 삶과 죽음으로 갈라져 아득한데
생각지 않으려 해도 잊기 어려운 사람
천 리 길 떨어진 외로운 무덤
그 처량함을 뉘에게 하소연하랴
설사 서로 만난다 해도 알아볼 수나 있으랴
얼굴은 세상 풍파에 시들고
머리는 서릿발이 하얘졌느니

십년생사량망망 불사량 자난망
十年生死兩茫茫, 不思量, 自難忘。
천리고분 무처화처량
千里孤墳, 無處話凄凉。
종사상봉응불식 진만면 빈여상
縱事相逢應不識, 塵滿面, 鬢如霜。
- <강성자江城子>

부인과 사별한 지 10년 세월이 지났으나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었던 소동파는 꿈속에서 부인을 만나 눈물을 흘렸다. 아득한 그리움이 듬뿍 느껴지는 사가 아닐 수 없다.

동파가 다시 부인으로 맞아들인 사람은 왕윤지王閏之라는 여인이다. 왕윤지는 전처인 왕불의 사촌 동생이였다. 동파와는 열두 살 차이가 났는데 왕윤지는 왕불처럼 시서를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성품이 온화하고 후덕했다. 살림살이를 잘 돌볼 줄 알아서 동파는 늘 고마워했다고 한다. 동파의 정치 생활의 부침과 영욕을 함께했던 것은 왕윤지였다. 황주에서 유배 생활을 함께 했고, 항주 태수, 병부상서, 예부상서 등 고위 관직을 섭렵했던 시기에도 함께 지냈다. 왕윤지는 결혼 25년, 향년 46세, 동파 나이 58세 때 숨을 거두었다. 동파는 그녀를 추모하는 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함께 가자 했거늘, 고향 전원으로 함께 돌아가자 했거늘
그대 나를 버리고 먼저 떠났구려
누가 문 앞에서 나를 반겨주리오
누가 밭으로 내게 참을 보내주리오
끝이로구나, 무엇을 어찌하랴
눈물도 다하여 눈이 말라 붙었구나
낯선 도시에 그대를 임시로 안장하려니
나는 참으로 박정한 남편이구나
내 그대와 무덤을 함께하리니
이 언약을 이루어 그댈 다시 만나리다

8년의 세월이 지나고 소동파는 세상을 떠난다. 그 때 곁에 있었던 여인은 시첩 왕조운이다. 동파가 왕조운을 알게 된 것은 항주에서 통판 벼슬을 할 때였다. 당시 왕조운은 관청에 소속된 악기樂妓였다. 연회 자리에서 동파는 가무에 뛰어나고 시서에도 밝은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소동파는 왕조운을 기적에서 빼내어 자신의 몸종으로 들였다. 왕윤지는 비록 현숙한 내조자였지만 소동파의 예술적 동지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한계를 절감하던 왕윤지가 왕조운을 첩실로 들이기를 적극 권하였다. 왕조운은 예술적 동지로 동파의 삶의 한 축이 되었다.

59세 소동파는 광동성 혜주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만년의 고단한 귀양살이를 함께 한 왕조운에게 종종 아름다운 시를 써서 고마움을 표현했다.

나는 백발의 창백한 얼굴, 정히 유마거사의 경지라
빈 승방에 천녀가 꽃잎을 뿌려도 아무렇지도 않다네
붉은 입술 사랑스럽고 빛나는 머리 탐스럽다네
이렇게 천생 만생 인연이 이어지기만을 바랄 뿐
착한 일 좋아하는 심성은 모습 속에 절로 드러나는데
한가한 창가에서 단정하게 앉아 불경을 읽네
내일은 단옷날, 난초꽃 엮어 그대 허리춤에 채워주고
좋은 시 찾아내어 그대 치맛자락에 써주리라
- 소식, <증조운>

왕조운은 30대 초반, 불행하게도 혜주에 도착한 이듬해 말라리아에 걸려 동파 곁을 떠난다. 소동파는 그녀의 소원대로 서호 주변 산기슭에 그녀의 무덤을 만들었다.


여름의 뜨거움을 녹여버릴 정도로 즐거웠던 한시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여름 더위의 한복판에서 멋드러진 풍광을 마주하고 한시를 읊으니 또 하나의 좋은 피서법이 되었다. 역시 더위 쫓는 데는 여행기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3-07-31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 급관심이요
어릴때 한시 읽을때랑 느낌이 너무 다른 순간이 많아요.
중국어로 읽는 분들도 꽤 되시더라구요.
거기에 이 책까지 읽으면 너무 좋을듯 하네요

거리의화가 2023-07-31 15:19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말처럼 어릴 때 이 책을 만났다면 결코 지금처럼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 시기 역사를 알고 인물을 알고 만나면 더 좋을 것이고 무엇보다 삶의 깊이가 좀 쌓이고 만나면 더욱 좋을 책입니다.
마치 여행하는 느낌으로 만났어요. 중국어로 한시를 읊으며 책을 읽으면 한층 더 좋겠죠. 직접 이 책을 들고 그 장소로 가고 싶더라구요!ㅎㅎ

청아 2023-07-31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남에 저런 풍광이 있나보군요? 중국에서 사진에 나온 저런 곳... 사는동안 꼭 가보고 싶어요!
올려주신 한시들 아름답네요.^^

거리의화가 2023-07-31 15:22   좋아요 1 | URL
네^^ 강남은 물이 풍부한 곳이라 아주 아름다운 풍광이 많습니다. 저도 다른 곳은 몰라도 소주, 항주는 꼭 가보고 싶더군요(한국에서 2시간 밖에 안 걸린다고 하네요^^;).
한시는 사연을 알고 보면 더 깊은 울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