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2 : 강남·유배길 편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2
김성곤 지음 / 김영사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국한시기행 2권 후속편은 '강남' 지역과 '유배길' 편으로 묶여 있다. 1편에 이어 읽었더니 자연스레 흐름이 이어져서 좋았다. 오히려 1편을 묵혀두었던 게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서 '강남'은 대체적으로 장강 중하류 지역의 강소성 남부, 절강성 북부, 안휘성 남부, 강서성 동부 일대를 가리킨다. 넓은 평원과 나지막한 구릉이 주를 이루는 이 지역은 장강과 전당강, 파양호와 태호와 같은 수자원이 풍족해서 예로부터 물산이 풍부했다. 남송 때 강남의 경제력이 급상승하면서 자연을 조경적 차원에서 경영할 수 있었던 까닭에 자연과 인문이 결합된 최고의 풍경이 만들어졌다(P5). 중국의 당송시기 역사를 읽고 마침 이 책을 읽으니 인문, 역사와 지리가 결합되어 활자가 눈 앞의 현실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예로부터 강남 지역은 물이 많아서 수나라 이전까지는 오히려 문제가 되었는데(범람, 질퍽한 땅) 대운하 건설을 시작하면서 관개 용수가 원활해져 농사 짓기에 좋은 땅이 된다. 게다가 남송 시기가 되면 남쪽으로 도읍이 옮겨져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다.

작가가 방문한 지역 중 인상적인 곳은 첫 번째로 항주다. 정치적 격변기에 호북성 황주에서 5년의 생활을 마치고 복권되어 항주 태수로 오게 된 소동파는 항주를 최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병원을 만들고, 상하수도 시설을 개량하고, 빈민을 구제하고 고아들을 돌보기 위한 사업에 나서는 등 여러 부문에서 탁월한 행정가의 면모를 과시했는데, 특히 그가 힘을 쏟아부었던 건 서호를 준설하는 일이었다. 서호는 오랜 세월 퇴적된 토사로 인해 수심이 얕아져서 걸핏하면 물이 범람하여 백성들에게 큰 시름을 안겨 주었다. 소동파는 조정에 특별 지원금을 청하고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서 항주의 많은 백성을 동원하여 서호를 대대적으로 준설했다. 그리고 퍼올린 엄청난 분량의 흙과 모래로 서호를 남쪽으로 가로지르는 제방을 쌓았다. 제방 중간중간 여섯 개의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어 호숫물이 서로 통하게 만들었고 길을 따라 버드나무와 복숭아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품종의 나무와 꽃을 심어서 서호를 감상하는 최고의 산책로로 만들었다(P23~24). 지금의 항주의 모습은 소동파가 있어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백성들을 생각하는 관리의 마음이 절로 느껴지는데 오늘날의 관광객도 소동파에게 감사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소동파의 음식 하면 다양한 것이 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동파육이다. 동파육은 황주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탄생했다. 이 요리를 만들어 먹을 때만큼은 힘든 유배 생활 중 유쾌함을 느끼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가 황주에서 지은 시 <식저육食猪肉>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동파육 레시피가 적혀 있다.

솥을 깨끗이 씻고
물은 조금만 넣고
땔감을 덮어 불꽃이 일지 않게
절로 익을 때까지 뒤적이지 말고
불 시간 충분하면 절로 맛나게 된다네
황주는 돼지고기가 좋은데
값은 흙처럼 싸다네
귀한 사람들 먹으려 들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은 요리법을 모른다네
매일 일어나 한 그릇 뚝딱
내 알아서 배부르게 먹나니 그대 상관 마시게

돼지고기 값이 흙처럼 싸다니 그만큼 돼지가 풍부하다는 것인가. 일어나자마자 뚝딱 하기에는 기름기가 많을 것 같은데 상관 말라고 하는 걸 보면 동파육에 소동파는 진심이었던 것 같다.
항주에 동파육이 유명해진 것에는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다. 서호 준설이 되자 가난한 백성들이 너도나도 값싼 돼지고기를 들고 와서 태수에게 감사를 표하는 바람에 관저에는 돼지고기가 가득 쌓이게 되었다. 소동파는 5년 전 황주 유배 시에 개발한 동파육을 백성들에게 다 돌려보내 맛보게 했다. 동파육을 맛본 사람들은 그 맛에 환호했고 마침내 거리 음식점에는 '동파육'이 상품으로 만들어져 팔리기 시작했다(P34).

두 번째로 꼽을 곳은 황산이다. "오악에서 돌아오면 산이 보이지 않고, 황산에서 돌아오면 오악이 보이지 않는다(오악귀래불간산五嶽歸來不看山, 황산귀래불간악黃山歸來不看嶽)." 흔히 오악을 묘사할 때 웅雄, 험險, 준峻, 유幽, 수秀라는 글자를 써서 "동악 태산은 웅장하고, 서악 화산은 험하며, 중악 숭산은 높고, 북악 항산은 깊고, 남악 형산은 수려하다"라고 구분하는데, 각각 모두 '천하제일'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그런데 이런 대단한 오악도 황산 앞에서는 그 존귀한 지위를 순간 잃어버린다. 앞서 황산을 예찬한 이 유명한 구절은 본시 명나라의 유명한 여행가 서하객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유복한 관리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평생 천하 명승을 찾아 떠돌며 방대한 여행 기록을 남긴 사람이다. 황산의 최고봉은 연화봉蓮花峰이다. 중심부의 큰 봉우리를 여러 작은 봉우리들이 겹겹이 옹위하여 솟아오르는 형세인데, 한 송이 연꽃이 하늘을 향해 막 피어나는 것 같다 해서 연화봉이라 멋지게 부른 것이다(P102). 다종다양하고 수려한 봉우리와 그 봉우리마다 기이하게 자리잡은 소나무가 구름의 출몰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게 연출하여 황산의 또 다른 별칭은 '운산雲山'이다.

선계의 연뿌리를 뉘 심었는가
대지는 이곳에서 연꽃을 피웠네
곧게 솟아 하늘의 이슬을 마시고
높이 손들어 오색의 노을을 받드네
사람들 향기의 나라에서 맴도는데
길은 연꽃 송이로 난간을 세웠네
연밥은 어느 해 맺으려나
은하수 가는 뗏목으로 쓸 수 있을 것을

선근수수종 대지차개화
仙根誰手種, 大地此開花。
직음반천로 고경오색하
直飮半天露, 高擎五色霞。
인종향국전 로차옥방차
人從香國轉, 路借玉房遮。
연자하년결 창명대범사
蓮子何年結, 滄溟待泛槎。
- 청淸, 매청梅淸 <제화연화봉題畵蓮花峰>

중심 봉우리를 둘러싼 봉우리의 향연을 보고 있으면 정말 신선계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묘한 풍경이었다. 더군다나 황산에는 비래석이 있다. 장방형의 거대한 돌 하나가 우뚝 서 있는데 절벽 가까이에 자리한 평평한 바위를 기단으로 삼아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 있다. 기울어진 각도로 서 있는 품이 금세라도 자리를 박차고 날아오를 기세라 날아서 온 돌, 비래석飛來石이란 이름이 붙었다.


중국 지역의 많은 곳 중 가까우면서도 풍경이 뛰어나고 먹거리가 많은 지역인 강남은 한국 여행객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가보지를 못했다. 다 가보지는 못하더라도 소주와 항주만큼은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


유배길 편은 호남성, 광서장족자치구, 광동성, 해남도를 아우르는 중국 남부의 광대한 지역에 흩어져 있는 유배지를 대상으로 한 여정이다. 중국의 유배지는 주로 남쪽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지금도 가기에 쉽지 않은 길을 당시에 가는 길은 무척이나 어려운 여정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유배길 아닌가. 언제 돌아올 지 모를 슬픔의 길을 따라가자니 고개가 숙여졌다.

첫 번째로 꼽은 곳은 영주다. 영주는 호남성을 흐르는 주요 하천인 상강과 소수瀟水가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호남 지역을 소상瀟湘이라 이름하는데, 풍경이 빼어나고 운치가 넘쳐서 당송 이래로 그림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으니 이른바 '소상팔경瀟湘八景'이다. 소상팔경은 그림의 소재 뿐 아니라 시의 소재로도 널리 활용되었는데, 원나라 희곡 작가인 마치원이 소상팔경을 노래한 <수양곡>이라는 작품이 유명하다. 팔경 중에서 '소상야우( '소상야우'는 상강과 소수가 합류하는 영주 평도를 가리킨다)'를 노래한 작품이다.

어둑한 배 불빛
나그네 꿈도 깨어
떨어지는 빗소리에 마음 부서진다
외로운 배는 오경을 넘고 고향은 만 리 밖인데
떠나온 사람 가슴 적시는 눈물 같은 빗줄기
어등암 객몽회 일성성적인심쇄
漁燈暗, 客夢回, 一聲聲滴人心碎。
고주오경가만리 시리인기항정루
孤舟五更家萬里, 是離人幾行情淚。

고향을 그리워하는 나그네가 희미한 등불 너머로 바라보는 빗줄기는 가슴 시린 눈물이다. 유종원은 이 곳 영주에서 10년 간 유배 생활을 했다고 한다. 유종원은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세족 집안의 자제였다. 스물한 살 진사 시험에 합격한 뒤 정치혁신 운동을 주도했다가 환관과 번진의 눈 밖에 나 실패하였다. 개혁을 이끈 왕은 폐위되고 함께 이끌던 세력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유배를 가게 되었다. 예부원외랑이라는 높은 직급에서 하루 아침에 사마라는 낮은 직급으로 강등되어 갔으니 그 신세가 얼마나 한탄스러웠을까. 유종원은 영주에서 우계愚溪라는 곳을 사랑하여 시냇가 부근에 살림집을 짓고 지냈다. 우계라는 이름도 유종원이 붙인 것이라고 한다. 그윽이 흘러가는 시냇물 우계를 보며 마음이 좀 안정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우계는 비록 세상을 이롭게 할 능력은 없지만, 만물을 거울처럼 비추어 맑고 투명하고, 음악 소리처럼 높게 울리며 흐른다. 그래서 어리석은 나를 즐겁게 해주나니 그곳을 떠날 수 없게 만든다. 나는 비록 세속에 부합하지 못하나 글로써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으며 세상 만상을 다 끌어안을 수 있으니, 어느 것도 내 붓끝을 벗어날 수 없다. 내 어리석은 문사로 어리석은 시내를 노래하리니 혼연일체의 무아의 경지에서 노닐게 될 것이다.
- <우계시서> 중

우계시서를 통해 유종원은 어리석은 자신의 삶이 나아갈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유종원은 정치적으로 실패하여서 비록 이곳에 내려와 있으나 우계처럼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되겠다는 다짐이 엿보인다. 그는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문장가로 이름을 날린다. 오히려 그의 글쓰기는 유배 생활로 깊어진 면이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전체 시문 540편 중에서 영주 시기에 쓴 것이 무려 317편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벼슬에 매여 있던 내 인생
행운이런가, 남만 땅 멀리 유배 왔네
한가로이 농부들과 이웃하며 살아가니
간혹 산속의 은자처럼 보인다네
새벽에 밭을 갈아 이슬 풀 뒤집고
한밤중 노를 저어 시냇가를 울리네
오고 가며 사람 하나 만날 일 없어도
길게 노래하면 초 땅 하늘이 푸르러진다네

구위잠조루 행차남이적
久爲簪組累, 幸此南夷謫。
한의농포린 우사산림객
閑依農圃隣, 偶似山林客。
효경번로초 야방향계석
曉耕翻露草, 夜榜響溪石。
내왕불봉인, 장가초천벽
來往不逢人, 長歌楚天碧。

'시냇가에 살다'라는 뜻의 <계거溪居>라는 시이다. 비록 멀리 유배를 왔으나 농부나 은자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의연함을 엿볼 수 있다.

유배길 중 두 번째로 꼽은 곳은 광동성에 있는 혜주다. 혜주는 주강의 삼대 지류 중 하나인 동강이 흘러가는 곳으로 현재 중국 경제를 견인하는 경제 중심 도시 중 하나다. 당송 시기에도 광동성의 중심 지역이었고 거대한 물류의 집산지였다고 한다. 혜주는 아열대 지역이라 사계절 초목이 있고 맛좋은 과일이 풍부한 곳이다.

혜주와 인연을 맺은 이는 소동파다. 혜주는 특별히 인상적인 장소가 있다기보다는 그와 관련한 이야기가 더 재미 있었다. 소동파는 '여지'라는 과일을 무척 좋아했다는 것과 그의 여인 3명에 관한 이야기였다.

소동파가 여지에 관해 남긴 유명한 시가 있는데 <식여지食荔支>다.

나부산 아래는 사계절 봄날
노귤과 양매가 차례로 새로 익어가네
매일 여지 삼백 알을 먹을 수 있다면
영원히 영남 사람 되는 것도 사양치 않으리라

나부산하사시춘, 노귤양매차제신
羅浮山下四時春, 盧橘楊梅次第新。
일담려지삼백과, 불사장작령남인
日啖荔支三百顆, 不辭長作嶺南人。

여지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매일 300알을 먹을 수 있다면 영남 사람이 되겠다는 소리가 나올까. 대단한 사랑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하루에 300알을 먹으면 당수치가 너무 높아지지는 않을까나.

이제부터는 소동파에 대한 여인의 이야기다.
소동파는 19세 되던 해 사천성 미산 남쪽 청신에 살고 있는 왕씨 집안의 16세의 왕불王弗과 결혼한다. 왕불은 아름답고 총명한데다 시서에도 능해서 천제 시인인 동파도 그녀의 능력에 감탄하곤 했다.
왕불은 신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어서, 매사 넘치는 자신감으로 속말을 가리지 않고 내뱉는 동파를 늘 걱정하며 시시로 적당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손님들이 동파를 찾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왕불은 병풍 뒤에서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고 손님이 떠난 후에 적절한 평을 내려 동파에게 조언하곤 했다. 지혜롭고 신중한 왕불의 내조 덕에 동파는 개봉에서 직사관이라는 내직을 맡게 되었다. 동파의 명성이 이제 뻗어나가는 시기 왕불은 돌연 병을 얻고 만다. 결혼한 지 11년, 스물일곱 살의 젊은 나이, 일곱 살 어린 아들을 남기고 갔으니 동파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동파는 왕불을 고향에 묻고 10년이 지나 이런 사를 지었다.

십 년 세월 삶과 죽음으로 갈라져 아득한데
생각지 않으려 해도 잊기 어려운 사람
천 리 길 떨어진 외로운 무덤
그 처량함을 뉘에게 하소연하랴
설사 서로 만난다 해도 알아볼 수나 있으랴
얼굴은 세상 풍파에 시들고
머리는 서릿발이 하얘졌느니

십년생사량망망 불사량 자난망
十年生死兩茫茫, 不思量, 自難忘。
천리고분 무처화처량
千里孤墳, 無處話凄凉。
종사상봉응불식 진만면 빈여상
縱事相逢應不識, 塵滿面, 鬢如霜。
- <강성자江城子>

부인과 사별한 지 10년 세월이 지났으나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었던 소동파는 꿈속에서 부인을 만나 눈물을 흘렸다. 아득한 그리움이 듬뿍 느껴지는 사가 아닐 수 없다.

동파가 다시 부인으로 맞아들인 사람은 왕윤지王閏之라는 여인이다. 왕윤지는 전처인 왕불의 사촌 동생이였다. 동파와는 열두 살 차이가 났는데 왕윤지는 왕불처럼 시서를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성품이 온화하고 후덕했다. 살림살이를 잘 돌볼 줄 알아서 동파는 늘 고마워했다고 한다. 동파의 정치 생활의 부침과 영욕을 함께했던 것은 왕윤지였다. 황주에서 유배 생활을 함께 했고, 항주 태수, 병부상서, 예부상서 등 고위 관직을 섭렵했던 시기에도 함께 지냈다. 왕윤지는 결혼 25년, 향년 46세, 동파 나이 58세 때 숨을 거두었다. 동파는 그녀를 추모하는 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함께 가자 했거늘, 고향 전원으로 함께 돌아가자 했거늘
그대 나를 버리고 먼저 떠났구려
누가 문 앞에서 나를 반겨주리오
누가 밭으로 내게 참을 보내주리오
끝이로구나, 무엇을 어찌하랴
눈물도 다하여 눈이 말라 붙었구나
낯선 도시에 그대를 임시로 안장하려니
나는 참으로 박정한 남편이구나
내 그대와 무덤을 함께하리니
이 언약을 이루어 그댈 다시 만나리다

8년의 세월이 지나고 소동파는 세상을 떠난다. 그 때 곁에 있었던 여인은 시첩 왕조운이다. 동파가 왕조운을 알게 된 것은 항주에서 통판 벼슬을 할 때였다. 당시 왕조운은 관청에 소속된 악기樂妓였다. 연회 자리에서 동파는 가무에 뛰어나고 시서에도 밝은 그녀에게 매료되었다. 소동파는 왕조운을 기적에서 빼내어 자신의 몸종으로 들였다. 왕윤지는 비록 현숙한 내조자였지만 소동파의 예술적 동지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한계를 절감하던 왕윤지가 왕조운을 첩실로 들이기를 적극 권하였다. 왕조운은 예술적 동지로 동파의 삶의 한 축이 되었다.

59세 소동파는 광동성 혜주로 유배를 떠나게 되었다. 만년의 고단한 귀양살이를 함께 한 왕조운에게 종종 아름다운 시를 써서 고마움을 표현했다.

나는 백발의 창백한 얼굴, 정히 유마거사의 경지라
빈 승방에 천녀가 꽃잎을 뿌려도 아무렇지도 않다네
붉은 입술 사랑스럽고 빛나는 머리 탐스럽다네
이렇게 천생 만생 인연이 이어지기만을 바랄 뿐
착한 일 좋아하는 심성은 모습 속에 절로 드러나는데
한가한 창가에서 단정하게 앉아 불경을 읽네
내일은 단옷날, 난초꽃 엮어 그대 허리춤에 채워주고
좋은 시 찾아내어 그대 치맛자락에 써주리라
- 소식, <증조운>

왕조운은 30대 초반, 불행하게도 혜주에 도착한 이듬해 말라리아에 걸려 동파 곁을 떠난다. 소동파는 그녀의 소원대로 서호 주변 산기슭에 그녀의 무덤을 만들었다.


여름의 뜨거움을 녹여버릴 정도로 즐거웠던 한시 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여름 더위의 한복판에서 멋드러진 풍광을 마주하고 한시를 읊으니 또 하나의 좋은 피서법이 되었다. 역시 더위 쫓는 데는 여행기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스 2023-07-31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책 급관심이요
어릴때 한시 읽을때랑 느낌이 너무 다른 순간이 많아요.
중국어로 읽는 분들도 꽤 되시더라구요.
거기에 이 책까지 읽으면 너무 좋을듯 하네요

거리의화가 2023-07-31 15:19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 말처럼 어릴 때 이 책을 만났다면 결코 지금처럼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 시기 역사를 알고 인물을 알고 만나면 더 좋을 것이고 무엇보다 삶의 깊이가 좀 쌓이고 만나면 더욱 좋을 책입니다.
마치 여행하는 느낌으로 만났어요. 중국어로 한시를 읊으며 책을 읽으면 한층 더 좋겠죠. 직접 이 책을 들고 그 장소로 가고 싶더라구요!ㅎㅎ

미미 2023-07-31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남에 저런 풍광이 있나보군요? 중국에서 사진에 나온 저런 곳... 사는동안 꼭 가보고 싶어요!
올려주신 한시들 아름답네요.^^

거리의화가 2023-07-31 15:22   좋아요 1 | URL
네^^ 강남은 물이 풍부한 곳이라 아주 아름다운 풍광이 많습니다. 저도 다른 곳은 몰라도 소주, 항주는 꼭 가보고 싶더군요(한국에서 2시간 밖에 안 걸린다고 하네요^^;).
한시는 사연을 알고 보면 더 깊은 울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