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총 14권의 책을 읽었다. 책을 읽기에는 덥거나 추운 것도 도움이 되는지 여름과 겨울에 좀 더 읽게 되는 것 같다^^

초반에는 역사서 위주로 읽었고 막판에는 무더위가 시작된 만큼 가벼운 책들도 곁들여 가며 읽었다. 


읽은 책들은 모두 리뷰를 길게든 짧게든 올렸지만 그냥 올리기에는 민망하니 간단하게만 써 본다.




< 1984 >

원서로 읽는데다가 중간부터 드문 드문 읽고 진도가 안 나가서 4개월 정도만에 겨우 읽었다.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린 대표적인 소설 중 한 권이라고 한다(그러고 보니 집에 멋진 신세계가 있었는데 읽지를 않았네). 누군가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 문명에 의한 감시와 통제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현 시점에서도 놀라운 통찰을 안겨준다. 문제는 그 감시와 통제로 인해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된다는 데 있지 않을까.


< 돌궐 유목제국사 >

구입한 지는 한참 지났는데 이제 읽을 시점이 되어서 읽게 되었다. 작가가 그동안 이 중앙아시아 연구를 해온 연구자라 그런지 믿음이 갔다. 사료가 없는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추측에 기반할 수 없지만 돌궐 제국의 전사를 다룬 책이 거의 유일하고 더군다나 중국 등 한문 자료만이 아니라 투르크어에 기반한 유물과 유적 자료를 찾아 사료를 보충한 점은 인정해줄 만하다. 연구자의 남은 책들을 마저 읽어야겠다는 의지가 샘솟았다.


<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 4 >

진순신 이야기 중국사 4권은 수, 당, 오대십국, 북송 시기까지를 다룬다. 6년 전 김용 무협지인 <사조영웅전>에 기반한 역사를 본다고 보았던 것 같은데 북송 부분만 보았는지 그 부분만 흔적이 있고 앞부분은 흔적이 없다. 이것을 읽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 역시 이번에 읽으니 앞부분은 처음 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수, 당은 정치 체제가 자연스레 이어지는 느낌이지만 송나라는 앞선 오대십국 때문이 아니라 체제 자체가 변혁에 가깝게 바뀌었기 때문에 다른 체제였다. 


< 중국의 역사 : 송대 >

송나라 역사를 훑어 읽을 만한 책이 없을까 해서 찾아보았으나 딱히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은 살 만한 게 없었기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이 책은 작가가 1900년대 초 살았기 때문에 글이 좀 딱딱하고 옛스러운 표현이 많아 고루한 편이다. 그렇지만 내용면에서는 충실한 편이라 느꼈다. 정치, 외교, 군사, 제도,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다룬다. 나는 특히 왕안석의 개혁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다룰 줄이야 하고 놀랐다. 또한 경제, 상업 측면이 무척 자세하다 느꼈다. 송은 북송과 남송이 마치 전혀 다른 국가처럼 느껴지는 측면이 있기에 개혁의 변화의 측면에 다룬 것도 도움이 되었다. 


< 나도 루쉰의 유물이다 >

루쉰의 아내인 주안에 대한 평전이다. 나오자마자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놓길 잘했다 싶다. 어떤 책을 읽든 작가의 작품은 시대적 배경과 개인사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루쉰의 작품을 읽기도 전에 루쉰의 자서전이나 평전이 아닌 전처의 평전을 읽는 것이 우려가 되었다. 하지만 읽고 난 뒤의 소감은 오히려 앞으로 루쉰의 작품을 읽을 때 참고할 만한 하나의 길잡이를 만났다는 생각이다. 주안은 구시대의 여성상에 맞춰 사느라 힘겨운 삶을 살아야만 했다. 루쉰의 사랑과 인정이 있었다면 견뎌낼 수 있었을테지만 안타깝게도 그러지 않았다. 


< 조용한 미국인 >

조용한 미국인은 본격적인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기 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기간 동안을 배경으로 한다. 때문에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자연스레 향후 베트남의 암울한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물론 당시 사람들은 이후의 결과를 원치도 않았을 것이고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인물을 통해서 당시 베트남에 들어온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사실 이 책은 전쟁을 배경으로 한 것일 뿐 사람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느꼈다. 순진함은 무모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과 모든 것에 피해 있고 싶다고 해서 방관자로 살 수도 없다는 것 등 말이다.


< 베트남 전쟁 >

조용한 미국인을 읽고 나서 바로 이어서 읽었다. 이 책은 한국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전후의 역사를 다루는데 그 때문에 베트남전사라기보다는 베트남 참전의 한국현대사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저자는 한국현대사 전공자고 베트남전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온 바가 있어 신뢰가 갔다. 연구자의 글이 딱딱하기 쉬운데 무척 쉽게 대중적으로 잘 씌어 있어서 술술 잘 읽히는 것이 장점이었다. 베트남전에 한국이 왜 참여헸고 그 이후 전개 과정은 어떠했으며 결과 이후는 어떠했는지 역사를 기술하며 한국을 둘러싼 다른 나라들과의 이해 관계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야말로 친절한 입문서다.


< 성의 변증법 >

파이어스톤이 나아간 곳은 성적 해방의 길이다. 기존의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했던 권리 동등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성적 계급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세계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생식조절에 대한 점유, 인공생식에 대한 주장은 현재로서도 놀라워 보이는데 당시로서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아동기를 없애자'는 주장은 제목만 봤을 때는 와 닿지 않았었다. 페미니즘과 아동기를 없애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동기라는 명칭이 근대의 산물이라고 한다. 중세까지만 해도 그런 구분 자체가 없었다고. 이렇게 근대에 들어서 생긴 아동기, 청소년기, 청년기 등의 구분은 억압을 만들어내는 기제가 되었다. 여성의 급진 해방을 주장했던 파이어스톤은 정작 개인은 불행했던 것 같다. 


< 하버드 중국사 당 >

당의 전기와 후기의 변화에 집중해서 기술하여 변화의 흐름에 초점을 맞추었다. 세계적인 제국으로 발돋움한 당이 외부와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중앙아시아의 문화가 내부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 금융 거래, 차 문화, 불교 문화, 당시 등 경제, 문화적으로 지금도 사용하는 것들이 이 무렵 등장했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당나라 여성의 권위가 강하다고 인식되는 것은 북방의 이민족과 잦은 교류 때문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한족보다 남녀의 평등이 중요시된 북방의 문화가 이입이 되면서 무측천, 태평공주, 위황후까지 반세기 이상의 시기를 여성이 지배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1 >

1권은 장강과 황하 길을 따른 풍광을 마주하며 역사를 이야기하고 장소에 걸맞는 한시를 소개해준다. 장강 여행에 앞서 중국의 시인 '이백', '두보', '소동파'의 연고지를 찾아간 것은 독자로서도 반가웠다. 장강 여행 중 인상적이었던 두 곳만 꼽아본다면 도원과 황강의 동파적벽이었다. 황하 여행에서는 호구폭포壺口瀑布, 화산 동봉 하기정下棋亭이 인상적이었다. 화산의 화기정은 동봉에 있어 에스컬레이터나 케이블카 등이 없어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거의 수직의 절벽이라 감히 올라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탁 트인 풍경이 멋스러웠다. 무협지에 단골로 나오는 곳이라 그런지 왠지 모를 내적 친밀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2 >

중국한시기행 2권 후속편은 '강남' 지역과 '유배길' 편으로 묶여 있다. '강남' 지역 중 인상적인 곳은 항주였는데 이 곳은 소동파와 인연이 깊다. 소동파는 항주를 최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설을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항주의 모습은 소동파가 있어 가능했던 것 같다. 두 번째로 꼽을 곳은 황산이다. "오악에서 돌아오면 산이 보이지 않고, 황산에서 돌아오면 오악이 보이지 않는다"의 문장을 통해서도 오악보다 황산을 꼽은 이유를 알 만하다. 유배지 중 첫 번째로 꼽은 곳은 영주다. 영주는 유종원의 유배지였고 두 번째는 혜주, 이 곳은 소동파의 많은 사연이 담겨 있는 곳이었다. 


< 경성 백화점 상품 박물지 >

조선의 근대 시기 백화점은 모든 유행의 집결지이자 집합소 기능을 하는 곳이었다. 1920~1930년대 경성의 백화점에서 팔았던 각종 물건들의 유래를 통해 당시의 풍경을 엿본다. 백화점에서 팔았을 법한 물건들과 광고에 등장하는 단골 아이템들을 통해 그 당시 어떤 것이 유행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백화점의 각 층별로 목차를 설정하는 것은 좋았으나 안내를 백화점을 둘러보는 느낌으로 했다면 더 실감났을 것 같다. 막상 내용은 근대 물품 탄생의 기원과 역사를 설명해주는 것으로만 되어 있어 아쉬웠다(이런 책들은 그동안 많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토지 19 >

일본 스파이(밀정)이가 길가에서 죽음을 당했다. 문제는 이것이 정치적인 보복이 아니라 치정에 의한 살인이라는 것이 문제다. 차라리 조선 독립군에 의해서 살해를 당한 것이라면 속이 더 편했을까. 아무튼 여러 명 등을 친 배설자였으니 그의 말로는 이것이 당연한 귀결이었다. 오가타는 아들인 쇼지와 만주를 여행하면서 인실을 떠올렸다. 영광은 양현과의 관계를 생각하며 갈등한다. 악극단의 연주자인 자신의 처지가 양현에게 가당치 않다 느꼈을까. 윤국이는 양현을 포기하고 떠났고 환국이와의 관계도 껄끄러워진 영광은 양현을 놓아야 하는 선택에 내몰렸다. 전쟁의 막바지 먹을 것은 부족하고 징용과 정신대로의 강제 연행이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 토지 20 >

막판으로 올수록 과거의 회상 장면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집중력이 좀 흩어지는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작가의 필력이 대단한 것인지 좋은 문장, 생생한 캐릭터들을 만나는 즐거움에 20권까지 잘 달릴 수 있었다. 1년여의 여정 동안 토지를 읽을 수 있어 행복했다. 고전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재독, 삼독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작가님께서 더 오래 사셔서 더 좋은 작품을 남기실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토지라는 대작을 남겨주신 것만으로 독자로서는 두고 두고 읽을 작품이 생긴 것이니 감사할 따름이다. 








댓글(19)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은오 2023-08-02 17:4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기 가벼운 책 어딨죠? 다 메인반찬 같은데요..?! ㅋㅋㅋㅋ 화가님께만 곁들임이었던 것이다..

거리의화가 2023-08-02 17:48   좋아요 3 | URL
앗! 가벼운 책 분명 있습니다 있고요ㅋㅋ 그나저나 메인반찬, 곁들임 표현에 빵 터지네요! 8월에는 조금 더 가벼운 책들을 찾아 읽어보도록 해볼까요???

얄라알라 2023-08-03 01:41   좋아요 2 | URL
저도 화가님의 책곳간 소개하시는 다른 포스팅에서 은오님과 비슷한 댓글을 남겼었는데 그 때도 화가님께서 매우 겸손하시게 답변하셨어요. ^^ 겸손하신 화가님!

아무리 봐도, 제겐 소프트아이스크림 같은 책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요^^

그나마 제목과 친하고 읽어본 책이 [1984]인데, 마지막 장 덮으면서 많이 무겁게 느꼈습니다. 조지 오웰이 아프지 않았을 때 썼다면 조금 더 가벼웠을까요?^^

거리의화가 2023-08-03 09:22   좋아요 1 | URL
@얄라알라
<1984>는 내용이 가볍지 않죠. 지금도 직시할 만한 주제를 던져주는 책이니까요^^
저는 여행기나 테마가 있는 책들을 읽을 때 가볍다고 느끼네요. 제가 구입하는 책들은 주로 묵직한 책들이 많아서인지 가벼운 책을 가뭄에 콩나듯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달에는 여름 휴가도 껴 있으니 가벼운 책들 곁들여 읽어보도록 해야겠어요.

독서괭 2023-08-02 1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역시 화가님 읽은책 목록은 중량감이 엄청나네요. 엄지척!!

거리의화가 2023-08-03 09:23   좋아요 1 | URL
초반에는 좀 그랬네요!^^

stella.K 2023-08-02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난 번 ebs에 김성곤 교수 나와서 강의했는데 느긋하고 한량같은 느낌이 정말 세상 좋은 사람같았습니다. 모름지기 공부란 그렇게 해야하는 것 같은데 너무 쫓기며 하죠? ㅎㅎ

거리의화가 2023-08-03 09:26   좋아요 1 | URL
ebs 출연하셨나보군요. 그쪽에서 방송하시면서 유명해지셨으니 또 초대하신 모양입니다! 복장도 개량한복 입고 나오시는데다가 푸근한 미소 덕분인지 느긋한 여유가 돋보이시죠. 저도 그렇게 공부하며 살고 싶은데 성격상 쉽지 않네요!ㅋㅋ

stella.K 2023-08-03 11:32   좋아요 1 | URL
아, 한마디로 신선같으신 분이죠. 어젠 더워서인지 생각이 안 나더라구요. ㅋ

페넬로페 2023-08-02 18: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7월에 14권도 대단한데
읽으신 첵 모두 다~~~
그 다음 말은 생략!
덥고 추울 때 책 더 안 읽는 사람,
여기 저올시다🤣🙃

거리의화가 2023-08-03 09:28   좋아요 1 | URL
요사이 더위가 좀 심하긴 하네요!
저는 더위 쫓는데 오히려 역사책들이 더 좋습니다. 문학 읽다 보면 감정이 올라와서 더 더울 때가 많아서요ㅋㅋ 페넬로페님 무더위에 건강 유의하세요^^

책읽는나무 2023-08-02 19: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벼운 책은 눈을 비비고 살펴봐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14권 진짜 많이 읽으셨어요.
역시 모범생!!!!^^
8월에도 또 열심히 읽으시는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08-03 09:30   좋아요 1 | URL
이제 한 일주일여만 지나면 무더위가 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달에도 즐겁게 책을 만나봐야겠어요^^

잠자냥 2023-08-02 22: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헐… 이 여름에 돌궐 유목제국사 이런 게 읽히는 화가 님 리스펙트.

거리의화가 2023-08-03 09:31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런 역사책이 여름에 더 잘 읽힐걸요? 문학 읽다가 감정이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서 저는 오히려 더 덥더라구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초록비 2023-08-03 0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례지만 토지 완독하신 분 처음 봤어요! 저도 도전해보고 싶네요.

거리의화가 2023-08-03 09:32   좋아요 1 | URL
토지 완독은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한 번에 몰아서 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1년에 나눠서 읽느라 좀 더 힘들긴 했습니다. 초록비님도 한번 도전해보세요^^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3-08-04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서까지 있는데도 14권이라니 대단합니다~!! 대부분이 역시 역사책이군요 ㅋ (토지도 역사책임~!!)
7월 기록이 엄청나십니다!!

거리의화가 2023-08-05 21:01   좋아요 1 | URL
원서는 몇 달에 걸쳐 읽은 거라^^; 아무래도 더위를 쫓는 데는 역사책만한 것이 없습니다. 막바지 더위가 기승을 부리네요. 새파랑님 건강 잘 챙기시고 8월에 재미난 독서하시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