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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는 여섯 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김숨 작가의 소설집을 도서관에서 보고는 반가운 마음에 들고 왔다.
그동안 읽어봐야지하면서 여태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아마도 더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책장을 열고 차례를 먼저 훑어 보았다. <쥐의 탄생>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자라> <별> <피의 부름> <곤충채집 체험학습> 제목을 보고는 대강 짐작해보지만 독특하다는 인상만 갖고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쥐의 탄생> 쥐의 탄생이라는 제목만으로는 그 폭력성을 감히 상상도 못했다.
쥐잡기 전문가라는 세 명의 남자가 집으로 왔다. 이들은 남편이 보낸 사람들이다. 그녀는 아이를 재워두고 잠시 TV를 보며 십자수를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평온함 그 자체, 아이를 재우고 난 뒤에 잠시의 휴식이란 달콤함 그 자체인데 느닷없이 세 명의 쥐잡기 전문가가 들이닥친다. 그 순간 이 평화로운 가정과 그녀가 느낄 공포감이 전해져왔다. 아내와 상의 한마디없이 그들을 집으로 보낸 그녀의 남편에 대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베란다를 화장실을 거실을 온 집안을 쥐를 잡겠다고 혈안이 되어 돌아다니는 그들이 마치 우리집에 오기라도 한 듯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급기야 아이가 자고 있는 방안까지 들어가 자기들 마음대로 아이를 안아들고 서로가 서로를 닮았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대는 상황까지 정말 소름끼치도록 폭력적이었다.
나였다면 과연 그들을 집안으로 들였을까? 집안에 숨어 있다는 쥐보다 그들이 더 무섭다. 망치와 쇠꼬챙이와 쇠막대를 들고 쥐를 잡겠다는 자체가 얼마나 무식한가 말이다.
어린시절 쥐잡이 끈끈이에 잡힌 쥐를 본 적이 있다. 쥐약을 놓기도 하는데 보통 개를 키우는 집에서는 쥐약을 잘못 놓아 개가 죽는 경우도 많았다. 밤마다 자려고 누우면 천정에서 다다다닥하고 쥐들이 뛰어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집 뒤꼍으로 어느 굴엔가 쥐가족이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날엔 햇빛 좋은 마당에서 고양이가 생쥐를 가지고 놀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쥐가 친숙해지거나 쥐를 사랑스럽다고 생각하진 못하겠다. 어쨌든 쥐를 잡아야 한다는 것부터 공포스럽긴 한데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세 명의 남자가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것은 더 못 볼 것만 같다.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제목만으로는 대체 뭐가 처음일까? 하고 궁금했다.
해부대에 오를 염소를 기다리는 학생들, 아무 의미없는 말들이 오고가는 실험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인간을 위해 희생되어지는 수많은 동물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소설이었다.
"해부중에 염소가 깨어나면 어쩌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그는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끼쳐 어깨를 떨었다. 염소가 아직 오지도 않았고, 따라서 아직 염소의 배를 가르지도 않는데, 그는 그것이 걱정이었다. 개구리 해부 실습 때 핀셋으로 장기들을 끄집어내고 있는데 마취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번쩍 눈을 뜨고 자신을 노려보던 게 떠오르기까지 했다.(p49)
나는 개구리 해부 실험에 대해 생각할때면 지금도 소름끼친다. 매끈한 개구리가 사지를 벌리고 누워 있고 여섯명의 아이중 누구도 쉽게 면도칼을 집어들지 못했었다.
<자라>
"그는 자신의 말마따나 철저하게 식욕과 성욕, 그 두 욕망에만 충실한 힌간이었다."(p91)
TV채널을 돌리다보면 음식프로그램이 넘쳐난다. 먹는 일은 우리 삶의 어쩌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먹는 즐거움을 나도 잘 안다. 맛있는 음식, 좋아하는 음식을 먹다보면 그때만큼 행복한 순간도 없으니 말이다.
식욕과 성욕은 원초적 본능 그 자체인데 식욕은 때로 성욕을 돕는 듯 하다. 스테미너가 넘치는 음식, 남자들의 정력과 관련한 음식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찾아서 먹는 음식이니 말이다.
(소설과는 전혀 상관없는 생각들이 많았다)
<벌>
"일벌들이 영왕벌을 왜 죽였을까?"/ "한 벌집에 여왕벌이 두리 있을 수는 없으니까."/ "둘이 한 자매처럼 우애 있게 살면 안 돼?"/ "여왕벌은 하나여야 해."/ "왜?"/ "그것이 벌들 세계의 법칙이니까."/ "법칙?"/ "인간세계에만 법칙이 있는 줄 알아? 벌들 세계에는 인간세계에는 없는 법칙이 있지."(p147)
인간세계에도 통용되는 얘기인 듯, 한 남자와 두 여자가 함께 살 수 없다.
<피의 부름>
"아버지, 어서 노루 피를 먹고 싶어요."
"그래, 너처럼 어리고 순한 노루를 잡아서 네 입으로 피를 흘려넣어주마......"
"아버지, 저처럼 어리고 순한 노루여야 해요."(p195)
허약한 아이의 건강을 위해 어리고 순한 노루의 피를 마시게 한다는 이 글을 읽는데 소름이 끼치고 무서웠다.
물론 육식을 좋아하는 나는 닭, 돼지, 소, 오리를 잘 먹는다. 이제부터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걸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곤충채집 체험학습>
"나비를 잡았구나......!"(중략)/ 아들이 나비를 꺼내려 망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나비를 꺼내는 과정에서 날개가 찢어진다.
그가 말릴 새도 없이 아들이 멀쩡한 왼쪽 날개를 찢는다. / "무슨 짓이냐?"/ 아들이 고개를 비틀어 그를 쳐다본다. 백치에 가까운 표정이 깃든 얼굴이 순간적으로 소름 끼쳐 그는 더는 말을 잊지 못한다. / "짝짝이잖아요."
순짐함을 가장한 아이의 폭력성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아이들이 잠자리를 잡고 싶어해도 잠자리채 하나 관찰상자 하나 사주지를 못했다. 아이들이 곤충채집 그물로 곤충을 마구잡아대는 것이 싫었고, 관찰상자에 갇혀 파닥거리는 곤충을 보는 것이 싫다. 우리 아이들은 그런 나를 잘 이해하진 못했지만 곤충을 함부로 잡아 날개를 찢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어린시절의 어느때 장난이 심한 한 아이가 잠자리의 날개를 모두 잘라냈던 기억이 있다. 그떄의 그 참혹한 광경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때 그 아이의 장난에 잠자리는 날개를 잃었고 잠깐의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잔인했다. 그들도 생명이 있는데 말이다. 인간이 느끼는 고통만이 고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지고 몸서리치게 싫었던 기억들도 수면위로 올라오고 그랬다. 인간이라서 그랬을까, 자연을 정복하는 것만이 인간들이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혐오감이 느껴진다. 사실 그 혐오감은 나에 대한 혐오감일 수도 있고, 수치스러움일 수 도 있다. 오늘 당장 고기를 먹지 않을 자신이 없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생물들에게 감사해야겠다.
사람답게 사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정답은 여전히 찾기 어렵다. 해답 또한 정답은 아니니, 동물들과 사람들 그리고 잔인함과 폭력성, 그리고 내 아이들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내일도 이어서 김숨 작가의 소설을 읽을 예정이다.